5대 이어온 김일성주석과 장울화열사 우의
[현장] 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의 장울화 열사 기념관 방문기
노길남 특파원
기사입력: 2012/01/09 [20:24]  최종편집: ⓒ 자주시보

[중국 무송=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 중국인 장울화 열사가 항일투쟁 시기인 1930년대에 다른나라 지도자인 김일성 주석의 안위문제와 관련하여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바쳤다는 사실은 인류역사에서 보기 드문 사례이다. 기자는 이번 김정일 위원장 조의방북 기간에 이들 가족7명과 만나 특별대담을 나눈뒤, 장울화 열사의 장남 장금천 선생(79)과 평양을 떠난 직후 중국에서 만나기로 약속해 지난 4월 2일 장울화 열사의 생가와 묘지가 있고, 이들 가족들과 지역정부에서 운영하는 박물관이 있는 무송으로 갔다. 이곳에서 일부 가족들과 만나 장울화 열사릉과 생가에 마련된 유적관도 둘러 보았다.(사진들을 통해 현지 분위기를 소개함)]

 


중국 무송에 있는 장울화열사릉 정문에서 장금천 선생과 민족통신/자주민보 대표들 모습
 


[신년특집-2]

김일성주석 위해 자결한 중국인 장울화열사




[중국 무송=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 중국인 장울화 열사가 항일투쟁 시기인 1930년대에 다른나라 지도자인 김일성 주석의 안위문제와 관련하여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을 바쳤다는 사실은 인류역사에서 보기 드문 사례이다.

장울화 열사 묘지와 기념비가 보이는 모습
 
기자는 이번 김정일 위원장 조의방북 기간에 이들 가족7명과 만나 특별대담을 나눈뒤, 장울화 열사의 장남 장금천 선생(79)과 평양을 떠난 직후 중국에서 만나기로 약속해 지난 4월2일 장울화 열사의 생가와 묘지가 있고, 이들 가족들과 지역정부에서 운영하는 박물관이 있는 무송으로 갔다. 이곳에서 일부 가족들과 만나 장울화 열사릉과 생가에 마련된 유적관도 둘러 보았다.(사진들을 통해 현지 분위기를 소개함)

중국인 장울화는 1913년 1월18일 통화현 열수하자에서 이름난 갑부 장만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그의 아버지가 김일성 주석의 아버지 김형직 선생이 의사로서 병을 고쳐준 것이 인연이 되어 서로 가까워지자 아들들인 소년 장울화와 김일성 소년은 소학교때부터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20대 청년시절에 항일유격대인 김일성 부대의 지하공작 성원으로 참가하여 활동하는 과정에서 한 변절자의 꾀임에 넘어가 김일성부대의 사령관인 김일성 장군과 이 부대의 위치가 발각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자신이 경영하던 사진관에서 쓰던 독소물을 마시고 자결하고 말았다. 그 사건이 발생된 시기는 1937년 10월27일, 음력으로는 10월초이�날로 기록되었다.

열사릉에 마련된 기념관 일부 모습
 
장울화 열사 가족은 항일투쟁시기에 김일성 부대에 총들과 유격대원들의 의복 등을 지원하였고, 김일성 주석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모든 정성과 성의를 다하여 지원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인연 때문에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조국해방 시기, 그리고 주체사회주의가 건설된 이후에 김일성 주석은 이들 가족들을 찾아서 만나기 위해 무척 노력해 왔다. 그 첫 상봉이 1985년에 이뤄졌고, 그 이후 김일성 주석과 이들 중국인 가족들은 그야말로 친가족 이상으로 서로 끈끈한 관계를 맺어 왔다. 장울화 열사의 아버지 장만정 선생으로 계산하면 1세대, 그 아들 장울화 열사관계가 2세대, 그리고 그의 장남인 장금천 세대와의 관계가 3세대, 그의 아들 장기 세대가 4세대이고, 장기세대의 자녀들과의 관계도 밀접하게 지속되어 왔기 때문에 장울화 가족과 북녘 지도자 가정과는 무려 5세대로 이어져 오고 있다.

민족통신 특파원은 평양을 떠나 베이징에서 연길로 비행기로, 그리고 연길에서 무송으로는 자동차편으로 갔다. 마침 연길에 항일열사 기행취재차 장기체류중이던 자주민보 이창기 대표와 만나 조선족 항일열사에 조예가 깊은 이송덕 선생과 연길시 유적지 관계를 담당하는 지방정부의 한간부의 협조를 얻어 4월2일 아침7시에 무송을 향해 떠났다. 가는 과정에 김일성 부대가 활동했던 항일유적지들과 김정숙 항일투사가 유격대에 입대한 곳 등 여러군데도 들렸다. 눈이 많이 와 자동차 바뀌가 헛도는 바람에 중간 중간에서 지체되기도 했다. 밤9시30분께 장금천 선생 댁에 도착해 그의 자택에서 저녁식사 대접을 받고 인근 호텔에서 하루를 묵고 이튿날 오전에 장울화 열사릉과 전시관, 그리고 그의 생가에 마련한 유적관들을 돌아보고 돌아왔다.

장금천 선생이 붓글씨로 쓴 선물을 주는 모습
 
장금천 선생은 민족통신 특파원과 자주민보 대표에게 각각 붓글씨로 쓴 감사표시에 관한 글과,중국어로 출판한 김일성 주석과 장울화 열사에 관한 두권의 도서, 그리고 산삼이 든 상자선물을 주며 감사를 표시했다. 이창기 자주민보 대표는 이미 3년전인 2008년 이곳을 방문하여 장울화 열사와 김일성 주석에 관련된 역사에 대해 3차례나 보도한바 있었다. 이창기 대표는 장울화 열사뿐만 아니라 중국동북지역에 산재한 항일투쟁유적지들을 많이 방문하면서 글들도 40여차례 써오면서 깊은 연구사업도 전개해 왔다. 그래서인지 그의 역사지식은 학자들 수준 그 이상으로 놀랄만한 정도로 많은 지식들을 터득하고 있었다.

장울화 열사와 중국동북지역의 항일투쟁사에 관한 자주민보 이창기 대표의 역사기행 글들은 다음과같다. www.jajusibo.com에 들어가면 항일투쟁사 에 관한 글들이 40여편 된다. 이 글들을 열림하면 중국동북지역에서의 항일투쟁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2005.5.23 자주민보 첫기사에서 홍기하전투 유적지가 소개되었다: 1940년 3.25전투를 통해 김일성 부대가 일제토벌대를 강타한 유적지로 중국땅에서 중국 지방정부가 기록을 남기고 있다.
-2005.8.8 자주민보는 두번째 기사에서 길림 육문중학교를 방문하여 김일성 주석의 학생시절 기념관들을 취재한바 있었다.
-2005.8.11 자주민보 세번째 기사는 ‘왕청유격근거지’에 대해 조선족 학자들과 함께 참관하고 취재보도하였다.
-2005.8.11 자주민보 네번째 기사는 ‘소왕청꼴 뾰족산’ 그리고 민생단 2천명 죽은 이야기와 14명 사형집행된 장소 소개.
-2005.8.12 자주민보 다섯번째 기사는 중국화룡현에 위치한 청산리전투기념비와 왕청현(27만 인구 중 조선족 7만가량) 소개.
-2005.8.14 자주민보 여섯번째 기사는 어랑촌의 14용사들을 다룬 자료소개.
-2005.8.28 자주민보 일곱번째 기사는 백일평전적지 혹은 올기강전투(1939.6)에 대해 소개.
-2005.8.30 자주민보 여덟번째 기사는 홍기하전투유적지(1940.3.25) 소개.
-2008.2.19 자주민보 이창기 대표 수필 “중국은 백두산에 공항도 만드는데…”
-2008.4.16 자주민보 이창기 대표가 중국인 항일혁명 전우 ‘장울화 열사’의 묘지와 생가를 다뤘다.
-2008.4.18 자주민보 이창기 대표가 김일성 주석 안전위해 목숨바친 장울화 열사 장남 장금천 선생과 특별대담 소개.
-2008.4.24 자주민보 이창기 대표가 김일성 주석이 장울화 열사가족에게 보낸 선물들 소개
-2009.2.3 자주민보 이창기 대표가 1932년 4월 25일 토기점골 등판에서 100여명으로 구성된 반일인민유격대의 창건식을 진행한 이야기와 그것을 본 후 몇 달 뒤 강반석 어머니가 세상을 떴던 소식과 함께 묘지를 이장한 내용을 소개.
-2010.12.23 자주민보 이창기 대표가 김일성 주석과 김정석 항일여성투사와의 사랑의 이야기 소개.
-2011.4.27 자주민보 이창기 대표가 약왕묘 지하실(길림 북산공원)에서 1927~30년 지하조직활동을 전개하던 유적지 소개.
-2011.5.8 자주민보 이창기 대표가 길림 용담산산성과 고구려 지혜 소개,
-2011.6.23 경박호 주변 유적지 소개-김정일 위원장 1년에 중국 3번 방문 이야기와 함께 소개.
-2011.6.29 자주민보 이창기대표가 영안현 남호두촌(혁명로구성자촌) 소자지하 상류 깊은 밀림 속에 세워진 남호두회의 기념비와 얽힌 이야기 소개.
-2011년 9.30: 길림인근 풍만수력발전소 근처에 발전기 비밀을 숨기려고 일제때 조선인, 중국인이 2만명 학살당한 유적지가 있어 이것을 소개. 일제는 1937년부터 1945년 사이 이곳에 거주하는 양민들 15만명을 학살한 것으로 폭로하고 있다.
-2011.10.31: 보천보전투(1937.6.4)와 장백현 항일격전지 소개한 자료.
-2011.11.1: 장백현에서 압록강을 따라 차로 20여분을 남쪽으로 내려가면 18도구하가 압록강과 합류하는 지점에 작은 동굴이 하나 있다. 이곳과 김일성 항일유격대의 반일투쟁에 얽힌 이야기 소개.
-2011.12.6: 이 글은 이송덕 역사학자가 중-한 두개 기고문들을 자주민보에서 소개하 ㄴ글로서 “장백현과 항일투쟁사”에 관한 자료이다.


장울화 열사 생가에는 장금천 선생가족 거처와 함께 기념관들이 설치되어 있다.
 

생가의 기념관:장울화 열사와 김철주(김일성 주석 동생)의 조각품과 사진들이 보인다.
 

생가 기념관에서 장금천 선생, 아들, 딸 사위 손자, 손녀들이 기념촬영
 

장울화 열사 가족들이 김일성 주석을 만난 기념사진들
 

생가에 설치된 기념관 벽에는 김일성 주석, 장울화 열사 가족들이 보인다.
 

생가 방문객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며 대화를 나누는 장금천 선생과 그의 장남 장기씨.
 

장울화 열사 유가족들이 김일성 주석을 만나고 찍은 기념사진
 

중국어로 된 김일성과 장울화 도서들과 이를 번역한 도서(5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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