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사진사가 들려준 김정숙과 김주석 사랑 일화
[기획연재] 동북항일유적지 취재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0/12/23 [06:3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김일성 주석 부부와 함께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던 중국인 전우 주보중 부부, 앞에는 어린시절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주보중의 딸 '주희'     © 연변학자 제공 사진, 백운종 기자 재촬영 

 

▲ 항일무장투쟁 당시 김일성부대의 여성투사들, 가운데가 김정숙 대원인듯     © 연변학자 제공 사진, 백운종 기자 재촬영 

 

▲ 항일무장투쟁대오를 지휘하던 청년 김일성, 아래는 사진을 제공한 연길 역사학자의 설명글이다.     © 연변학자 제공 사진, 백운종 기자 재촬영 
▲ 항일무장투쟁 시기 김일성 주석 부부, 구글 사진 검색으로 찾았는데 설명을 보면 조국광복회를 확대하던 시기라고 나와 있으니 아마 1930년대 중후반으로 보인다. 연길 조선족 학자들은 1936년 본격적으로 사랑을 하게 되었다고 했으니 한창 사랑을 키워가던 시기인 듯 한다. 표정만 봐도 느껴진다.  최근 인터넷에 소개된 영상물을 보니 김일성 주석도 이 사진을 지칭하는 듯 한데,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라고 언급하는 대목이 나왔다.  © 자주민보
▲ 항일무장투쟁시기 김일성 주석 부부, 아마 원동기지 때인 듯하다. 사진을 분석해 보면 이 시기 김일성 주석의 몸이 제일 가벼웠다. 거의 얼굴  살이 없었다. 실제 연길 학자들 말에 따르면 식량이 부족해 개구리를 잡아 끼니를 에웠다고 한다.  김정숙 대원의 표정에서 남편에 대한 사랑과 함께 존경의 감정이 느껴진다. 행복한 표정이다. 사진은 2005년 남북여성대회 때 평양에 전시된 사진을 본지에서 재촬영 한 것   ©자주민보

 

▲ 오른쪽 2번째가 김정숙 대원, 원동기지 때의 사진이라고 한다. 연길 조선족 역사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김정숙 항일투사는 동료애가 깊어 특히 여성 대원들이 그렇게 따랐다고 한다. 후배에 대한 사랑도 깊어 한 10대 초반 어린 소녀 대원을 데리고 자며 돌봐주었는데 김일성 주석이 소부대 활동을 갔다가 돌아오게 되면 김일성 주석과 함께 자러가는는 바람에 그 소녀 대원이 자신도 따라가서 함께 자겠다고 졸랐다는 이야기도 연길 역사학자들 속에서는 유명하다. 손을 잡고 있는 모습만 봐도 김정숙 투사에 대해 동료들이 얼마나 친근한 정을 느끼고 있는지 알린다. © 연변역사학자 제공, 백운종 기자 재촬영


 
24일은 서양뿐만 아니라 북한에서도 뜻깊은 날인 것 같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이날이 북에서는 김일성 주석의 아내이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어머니인 김정숙 항일투사의 탄생일이어서 대대적인 기념식을 진행하는 날이라고 한다.

최근 중국 연길 항일유적지 취재기간 필자를 안내했던 리송덕 교수 등 연길 조선족 역사학자들도 24일 즈음에 김정숙 항일투사의 기념식에 참석할 예정이라며 자못 기대에 들떠 있었다. 매년 김정숙 항일투사가 태어난 백살구로 유명한 회령 오산덕에 초청받아 간다는 것이다.

들어보니 연길 조선족 학자들이 김정숙 항일투사에 대해 각별한 생각을 가진 이유가 있었다.


지난 3월 연길의 항일유적지 취재 과정에 연길조선족자치주 기관의 사진사로 일해 온 황범송(80) 사진작가로부터 김정숙과 김일성 주석과 관련된 흥미 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귀국하자마자 천안함 사건 분석에 매달리는 통에 이 때 취재한 기사들을 거의나 쓰지 못했는데 이제라도 그 아쉬움을 달랠 겸 그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1940년 초 만주일대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던 김일성 주석이 러시아 원동 기지로 거점을 옮겼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김일성 주석은 원동기지에서도 변함없이 여러 소부대를 국내와 만주 일대에 파견하여 물자를 나르는 일제 기차나 일제 통치 기관을 공격하거나 반일지하조직을 건설하는 일을 왕성하게 전개했는데 김일성 주석도 직접 소부대를 이끌고 자주 국내와 만주 일대에 진출했었다고 한다.

특히 중국 한족 출신 전우였던 위증민을 찾기 위해 나왔을 때는 위험을 마다하지 않고 곳곳에 진출했었다는 사실은 연길 역사학자들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내용이다.


그런 활동을 마치고 김일성 주석이 이미 동료들 앞에서 결혼식을 올려 아내로 맞이한 김정숙 대원 등 청년단조직원(황범송 사진사가 말한 명칭으로 북의 공식입장과는 다를 수 있음)들과 함께 다시 원동 기지로 돌아가다가(이 가능성이 높지만 처음 원동으로 건너가던 시기에 벌어진 일일 수도 있을 듯, 기억이 조금 애매함) 열이 많이 나는 전염성이 심한 병에 걸렸는데 일제 경비가 삼엄한 소만국경 근처에서 그만 정신까지 잃을 정도로 증상이 심해졌다고 한다.

김일성 주석은 그렇게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황에서 가끔 타는 소리로 ‘물’을 찾았는데 그 소리도 문제였지만 안전이 확인된 이동로를 떠나 물을 찾아나서는 일은 안전상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는 상황이어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에도 청년단조직원들은 결연히 물을 찾아 나서려고 하는데 김정숙 대원이 이를 제지시키고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뚝뚝뚝 떨어지는 붉은 선혈을 열에 들떠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물을 찾는 김일성 주석의 입에 한참 넣어주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물을 찾는 소리를 치던 김일성 주석이 진정되어 경비가 삼엄한 국경지대를 무사히 뚫고 원동기지로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황범송 사진작가는 이 이야기를 ‘심’ 씨 성을 가진 동료 사진작가로부터 들었는데 심 씨의 아내가 바로 김정숙 대원과 함께 그 자리에 있었던 청년단조직원의 한 사람이어서 아내로부터 직접 들은 것이라고 했다.

그 아내는 45년 해방 직후 김정숙의 초청으로 평양에 들어가 3개월 간 김일성 주석 집에서 함께 머물며 뜨거운 환대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연길로 돌아와서도 남편 심 씨에게 평양으로 가자고 그렇게 애소했지만 이미 일자리와 생활터전이 연길에 안착되어 있던 남편이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 해서 결국 가지 못하고 연길에서 살게 되었다고 한다.


황범송 사진작가는 항일유적지를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등 항일역사 연구도 진행했던 사진작가이며 수백장의 관련 사진을 가지고 있었다.

황범송 사진작가는 중국 공산당 당원이기는 하지만 역사에 있어서는 보수와 진보를 가르지 않고 오직 진실만을 말해온 사람이다.

일례로 한국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유족들이 모 출판사에 낸 친일파 논쟁 소송에, 연길의 유명한 역사학자인 리송덕 교수와 함께 초청되어 법정에서 진술을 한 적이 있는데 이때는 박근영 씨 등, 유족 측을 대변하는 증인으로 섰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본 군사대학을 나오고 졸업식 때 천황께 맹세의 선서를 하는 등 친일행적을 남긴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문제의 책에 나온 항일독립군 학살만행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것이 진술의 핵심이었다. 리송덕 교수는 해방직전엔 일제 패망을 확신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중국공산당 독립군 측으로 넘어오겠다고 통지까지 했었는데 비가 와서 강물이 불어 건너지 못했다는 명백한 증언이 있다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당시 출판사 측의 변호사는 현 민주노동당 대표인 이정희 변호사였는데 이정희 변호사도 이 관련 사료 증거를 면밀히 살핀 후 연길 역사학자들의 주장에 수긍했다고 한다.

그래서 리송덕 교수는 당시 이정희 변호사에 대해 큰 감동을 받았다고 고백했었다.

“우리가 제시한 그 많은 자료를 다음 재판 때까지 다 읽고 와서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주장할 것은 딱딱 주장하는데 히야, 거 대단한 여성입디다. 한국에 그런 변호사가 있다는 데 정말 놀랐습니다.”- 리송덕 교수

김정숙 대원에 얽힌 일화도 이런 역사학자들이 찾아 발굴해서 전해주는 것이니 매우 신뢰성이 높다고 본다.


황범송 사진작가는 이와 관련된 일화가 북에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북의 책이나 방송에서 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연길의 항일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한결같이 김정숙 대원의 김일성 주석에 대한 충성심과 그 뜨거운 정성과 사랑 그리고 열열한 항일독립의지는 일반인들이 쉽게 상상할 수 없는 경지라고 했다.

일제 토벌대 추격을 받는 상황에서 김일성 주석의 세탁한 옷을 빨리 마르게 하기 위해 그것을 맨몸에 입어 말리기도 했다는 사실은 연길뿐만 아니라 북에서도 유명한 이야기라고 했다.

그래서 연길의 학자들은 김일성 주석의 항일역사뿐만 아니라 김정숙 대원의 역사유적지에 대한 발굴 사업에도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고 했다. 그들은 김정숙 대원이 가족과 살았던 곳 그 오빠가 항일투쟁을 하다 일제에게 학살되었던 언덕, 김일성 주석과 처음 만나 곳 등등까지 다 발굴하고 관련 사적물들을 보존하고 있었다.


리송덕 교수는 그 김정숙 대원과 김일성 주석이 사랑을 본격적으로 키운 해를 1936년으로 추정했다. 김일성 주석이 김정숙 대원을 보기 위해 1936년 처창즈를 찾아갔다는 증언이 있다고 했다. 특히 36년 조선 국경과 멀지 않은 만강에서 많이 친해졌었다고 했다.

몇 해 전 필자도 무송 항일유적 취재 당시 만강을 가본 적 있다. 영하 30도의 맹추위에 만강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지만 그 얼음 속으로는 백두산 줄기줄기 흘러온 강물이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다.

백두산이 하도 높고 깊어 그런지 얼지 않은 여울목 만강물은 더 없이 맑고 깨끗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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