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의 첫 포병무력 탄생지 태평촌 수분하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6/02/20 [20:5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1935년 6월 20일, 청년 김일성 주석이 이끌던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 제3, 4퇀의 일부 병력은 이 곳에서 태평구로 쳐들어오는 위만군을 저격하여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이 전투에서 동북인민혁명군은 처음으로 로획한 박격포를 사용하여 도강하는 위만군을 대량으로 소멸하는 전과를 올리었다.  북은 이날을  포병무력이 탄생한 날, 포병절로 기념하고 있다.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마을 어귀의 태평구전투 기념비, 하나는 한국어, 다른 하나는 중국어인데 내용은 같다.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 1935년 6월 20일 동북항일연군 김일성부대가 처음으로 노획한 박격포를 쏘아 일본제국주의 토벌대를 격멸한 대화소포강(현재는 수분하라고 함), 박격포는 로흑산 전투에서 노획한 것과 일제의 주구로 전락한 위만군 부대 중에 일부부대를 독립운동진영으로 돌려세웠는데 그 부대 박격포를 가지고 강을 건너오는 위만군 일제토벌대를 격멸한 것이다.  당시엔 지금보다 강이 훨씬 깊고 더 넓었다고 한다.   ©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 리송덕 전 연변박물관 혁명역사 주임은 바로 이 위치에서 박격포 전투가 벌어졌다고 말했다. 예전엔 강이 훨씬 더 깊고 넓어 쇠줄을 당겨 이동하는 줄배를 설치해 놓고 강을 건너다녔다고 한다.      ©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 2015년 당창건 70돌 기념 열병식에 처음으로 항일유격대 복장의 열병대오가 말에 박격포를 매달고 행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북은 첫 포병무력의 기원 전투를 1935년 6월 20일 라자구 태평촌 대화소포강 전투에서 찾고 있다.  북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포병무력을 중시하고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도 김일성종합군사대학에서 포병 현대화 연구에 많은 심혈을 기울여 포병에 gps체계를 도입하는 등 현대화작업을 선도했다고 한다. 북의 미사일도 결국은 넓은 의미의 포병 무력에 속한다.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동북만주 왕청에서 동북 러시아 쪽으로 가다보면 라자구라는 넓은 벌판이 펼쳐진 마을이 있는데 그 라자구 태평촌에서 항일유격대의 첫 포병전투가 벌어졌다고 해서 2015년 9월 리송덕 전 연변박물관 혁명역사부 주임과 함께 찾아갔다.

 

태평촌 어귀에는 이 태평구 전투를 기념하여 기념비까지 세워 첫 포병전투를 기념하고 있었다. 기념비에는 1935년 6월 20일,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 제3, 4퇀(동북인민혁명군 즉, 항일조중연합군 중에서 김일성 주석이 이끌었던 부대)의 일부 병력은 이 곳에서 태평구로 쳐들어오는 위만군을 저격하여 심대한 타격을 주었으며 이 전투에서 동북인민혁명군은 처음으로 로획한 박격포를 사용하여 도강하는 위만군을 대량으로 소멸하는 전과를 올렸다고 적혀 있었다.

 

 

▲ 로흑산 전투 등에서 항일유격대가 노획한 박격포     ©자주시보

 

 

▲ 태평구전투 약도     © 자주시보

 

 리송덕 역사가는 김일성 주석이 로흑산 전투에서 악질적인 정안군을 요정내고 노획한 박격포로 태평촌 수분하(당시 대화소포강) 줄배를 타고 건너오는 위만군 일제 토벌대를 타격하여 배를 격침시키는 전과를 올렸다고 설명했다. 북에서는 노흑산 전투에서 노획한 박격포만이 아니라 일제로부터 애국진영으로 돌려세운 위만군 부대의 박격포까지 동원해서 첫 포병전투를 진행했다고 말하고 있다. 위만군은 일제가 만주사변 이후 만주국 군대 중에 일제에 투항한 병사들로 만든 부대이다.

 

어쨌든 청년 김일성 주석이 지휘해서 승리한 전투여서 그런지  북은 이날을  포병무력이 탄생한 날, 포병절로 기념하고 있다. 당시 항일유격대가 포까지 꽝꽝 쏴 대자 적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갔고 유격대원들은 신명이 나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고 한다.

김일성 주석은 중국 주보중 부대 등을 지원하기 위해 북만원정을 가서도 이 박격포 부대를 앞세워 일제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이후 백두산 지구로 진출하여 이동이 잦고 기습과 매복전을 중심으로 산악 유격전을 진행할 때는 박격포를 사용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 태평촌과 북만원정에서 포병무력이 얼마나 위력적인지를 잘 깨달았던 김일성 주석은 해방 후에도 포병무력 건설에 많은 관심을 돌렸다. 그래서 일명 카츄사포라고 하는 소련의 다련장로켓포도 들여왔고 그런 북의 강력한 포병무력 때문에 한국전 내내 국군과 미군은 치명적인 타격을 자주 입었다. 물론 당시 제공권을 미군이 장악하여 북은 공중 폭격 때문에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김정은 제1위원장도 포병무력을 매우 중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서도 포병학을 전공했고 북의 포병체계 현대화도 그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포병에 GPS체계를 도입하는 등 완전한 혁신을 주도했고 그 공을 인정받아 군통수권을 물려받았다는 한국 언론들의 보도가 있었다.

연평도 포격전에서 확인된 북의 포 명중율은 사실 매우 놀라운 수준이어서 이를 분석한 우리 국방전문가들도 감탄할 정도였다는 보도도 나왔었다.

대통령 직속인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의 이상우 위원장은 2011년 2월 14일, <중앙선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연평도 포격전을 놓고 "북한은 무인정찰기까지 동원해 탄착 지점을 봐가며 쐈다. 완벽하게 준비했다”면서 “통일되면 포격을 기획한 북한 장교를 불러 술 한 잔 사고 싶을 만큼 빈틈없는 기획이다”라고 언급하기까지 하였다.

 

지금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어 북에 대한 제재문제로 온 세계를 들썩이게 하고 있는 로켓 즉 북의 미사일도 결국 넓은 의미의 포병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대공미사일도 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북은 이제 대공미사일이 아주 발전된 조건이기 때문에 어떤 전투기도 북녘의 푸른하늘을 어지럽힐 수 없다고 자신하고 있다.

또 대륙간탄도미사일로 미 본토와 주요 미군기지를 순식간에 초토화할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다.

 

미군은 이에 맞서 B-52, B-1 핵전략폭격기, F-22, F-35 스텔스 전폭기, 항공모함에 가득 싣고 있는 여러 종류의 전투기 등으로 북의 핵심 거점을 초토화하겠다며 지금 그런 전략무기를 한반도에 전개하여 북을 위협하고 있다.

 

여전히 북미대결전의 기본은 포병대 공중타격의 대립구도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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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똑바로 16/02/20 [23:11]
솔직히 연평도 포격은 낙제점이다. 절반이 바다에 떨어져서 문책 당했다 한다. 문책당한 거 까지는 증명이 어렵지만 포탄 절반이 바다에 떨어진 건 사실이다. 이게 뭐가 명중률이 높냐? 수정 삭제
카사21 16/02/21 [05:40]
위의 멍청한 놈아!! 너나 기사 제대로 읽고 글써라!! 그리고 연평도 사건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고 와라!! 수정 삭제
나라사랑 16/02/21 [12:45]
대통령 직속인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의 이상우 위원장은 2011년 2월 14일, 중앙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연평도 포격전을 놓고 “한심하고 처참하게 당했다”고 평가하였다. 이상우 위원장은 “K-9은 땅에 고정시켜 발사하면 백발백중하는 무기다. 포격전 당일 4문으로 각각 15발씩, 60발 쐈다. 그런데 국군이 59발 째 쏘자마자 곧바로 북에서 포탄이 날아왔다”며 해병대가 K-9 포탄을 다 쏠 때까지 기다렸다가 정확하게 포탄을 재장전하는 시간대에 공격해왔다는 것이다. 또한 이상우 위원장은 땅속 터널에 있던 예비용 2문에 대해서는 인민군이 특수 장갑탄을 쏴 터널을 뚫고 들어가 2문의 전자제어장치를 고장내버렸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이어, 연평도에 대포병 레이더가 있는데 두 대 모두 작동이 안 된 것도 북이 재밍(전파교란)해서라고 보고 있었다. 더구나, 당시 해병대는 인민군의 포탄이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그래서 연평도 앞 작은 섬의 해안포에 대고 반격을 했는데 나중에 보니 실제로 인민군이 포를 쏜 곳은 개머리 반도였다는 것이다. 헛짚었다는 것이다.

이상우 위원장은 “군이 얼마나 나사가 빠졌는지 예를 들면 한이 없다. 더 조사해야겠지만 북한은 무인정찰기까지 동원해 탄착 지점을 봐가며 쐈다. 완벽하게 준비했다”면서 “통일되면 포격을 기획한 북한 장교를 불러 술 한 잔 사고 싶을 만큼 빈틈없는 기획이다”라고 언급하기까지 하였다. 이상우 위원장으로는 당시 인민군의 작전에 대해 최상의 평가를 내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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