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문화 가꿔가기5] 북 소설《력사의 출항》속에 그려진 60년대 핵개발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6/09/04 [02:41]  최종편집: ⓒ 자주시보


한국언론들의 조선(북한)관련보도들을 보다나면 갑갑할 때가 많다. 군더더기가 너무 많아서이다. 간단한 사실도 기어이 동기분석을 길다랗게 붙이고야 시름 놓는 게 한국 일부 언론의 기자와 편집들이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잠수함탄도미사일시험발사성공에 기여한 과학자, 기술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는 건 간단한 사실이다. 그런데 어떤 한국언론들은 주제를 바꾸어, 북의 과학자들만은 “피의 숙청”을 피해간다고, 실패를 하더라도 숙청되지 않는다고, 북의 탄도미사일성능개진은 김정은 위원장이 과학자들을 엄청 대우해주기 때문이라고 길게 늘여놓았다.

 

기자와 편집의 의도와는 달리 어떤 네티즌들은 북이 과학자, 기술자들을 인정해주는 건 배워야 한다면서 한국의 현실과 비교하는 댓글을 달았다. 물론 곧 반박댓글들도 붙었고 고정된 틀인 “북이 좋으면 북에 가라”도 등장했다. 또 어떤 이들은 “공돌이”를 언급하면서 한국이 어떻다고 탄식했다.

 

필자는 한국의 이공과 출신들의 대우상황을 잘 모르는데, 여러 해 전부터 한국국내환경에 불만을 품은 한국인들이 많음은 어느 정도 느꼈다. 이명박 정부시절 중국의 유명한 과학자로서 로켓과 위성, 우주산업에 지대한 공헌을 한 쳰쉐썬(钱学森 전학삼, 1911~ 2009)이 서거하여 중국의 최고위층들이 모두 조문하는 등 중국에서 추모열풍이 이니, 한국 네티즌들은 대개 부럽다는 반향을 보였다. 저런 대우 덕에 중국의 우주산업이 올라갔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나 하면, 쟝쩌민 주석과 후진타오 주석이 이공과 출신인 걸 거들면서 그런 사람들이 한국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도 있었다.

 

몇 해 지나 중국의 최도지도자가 이공과출신이 아닌 사람으로 바뀌었으나 이공과 출신들의 대우가 떨어진 건 아니다. 오히려 근년에는 이공과를 졸업한 사람들이 할 일이 더욱 많아졌다. 첨단장비들의 국산화 작업이 대대적으로 추진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서 과학자나 기술자들이 남들보다 엄청 높은 보수를 받으면서 호화판 생활을 누리는 건 아니다. 중국의 경제실력으로 굉장한 보수를 주지 못할 건 아닌데, 과학자들에게 호화별장, 거액상금 등을 제공했던 소련과는 달리 중국은 금전보다 명예표창을 더 중히 여기는 자기의 전통을 지켜나가고, 과학자, 기술자들도 금전을 따지는 걸 수치로 여긴다. 필자가 지난 7월에 소개했던 중국식 미사일방어체계의 공신인 천더밍(陈德明)도 돈을 바라고 연구한 게 아니다.

 

중국은 상당한 정보들을 공개하고 있으나 어떤 주제로 글을 쓰려면 정보부족을 절감하게 된다. 해외에서 중국의 어떤 분야나 어떤 기관, 어떤 인물을 “심층해부”했다는 글들이나 책들을 보면 내용의 빈약함과 논리의 비약 때문에 한심할 때가 많다.

 

조선은 중국보다 훨씬 “폐쇄”적이라고 인정되니까 바깥에서 추측으로 일관된 글들이 양산되는 것도 글쎄 이상하지는 않다. 헌데 요언제조자들의 존재보다 더 문제로 되는 건 극히 제한된 정보들만 접하고 받아들이면서 언젠가 머릿속에 굳어진 “북한 이미지”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이다. 김정은 위원장과 잠수함탄도미사일시험발사성공 기여자들의 기념사진촬영보도에는 살상무기를 만드는 자들을 잘 대하지 말고 민생에나 신경 쓰라는 댓글도 달렸다. 조선은 근년에 경제발전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특히 경공업분야에서 숱한 성과를 내놓는다. 전에 비해 새 제품들이 많이 나온다는 건 과학자, 기술자들의 노력이 자금의 지지를 받음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 전에는 군사비가 큰 몫을 차지했는데 이제는 군비가 줄어들고 경공업분야에 예산분배가 많아진 것이다. 민생과 직결되는 성과들을 조선 매체들이 열심히 보도하고 한국의 《통일뉴스》를 비롯한 언론들이 그때그때 전하는데, 주류언론들이 무시하거나 간단히 스쳐지나기 때문인지, 북한이 핵과 미사일에만 돈을 쏟아붓는다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은 조선의 경공업발전을 전혀 모른다. 아무리 개방된 사회라도 폐쇄된 마음으로는 진실을 볼 수 없음을 보여준다.

 

조선의 과학기술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이다. 헌데 자료가 하도 부족하다나니 추측이나 “탈북자”들의 주장이 시장을 많이 차지한다. 이런 상황은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지난 달 《과학기술로 북한 읽기1》라는 책이 출판되었다는 보도를 보고 감탄이 절로 나왔다.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를 가늠하고도 남음이 있기 때문이다. 북의 과학기술 정책사를 연구한 첫 박사인 강호제 박사가 내놓은 저서란다.

 

▲ 강호제, 『과학기술로 북한 읽기1』 (RPScience, 2016) 표지     © 자주시보, 중국시민

 

경남과학고, 배정고,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거치며 과학기술자를 꿈꿨던 사람이 결국 평화통일에 힘을 보태자고 “북한 과학기술 정책사”라는 분야를 골랐단다. 2007년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북한의 기술혁신운동과 현장 중심의 과학기술 정책 : 천리마 작업반 운동과 북한 과학원의 현지 연구사업을 중심으로』 라는 제목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9년이 지나 내놓은 게 위의 저서이다.

 

책내용은 《자주시보》를 비롯한 여러 언론들이 보도한 바라, 구태여 중복할 필요가 없는데, 필자 개인적으로는 이른바 “월북과학자”들에 지나치게 집착한 점이 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북의 핵, 하면 도상록부터 명단을 길게 늘여놓으면서 추측을 일삼는 사람들이 있는데, 대개 월북과학자들나 외국의 자료를 훔친 사람들 덕에 북의 핵이 발전했다는 식이라 수박 겉 핥기보다도 못하다는 느낌을 준다. 물론 북이 자체로 양성한 과학자들에 대해서는 자료가 부족하고, 책을 소개하는 기사를 쓴 임재근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교육연구팀장도 전날 월북과학자들을 양산했던 남에서 “IMF 이후 가혹한 구조조정 속에 과학기술자 홀대는 가속화되었고, 그 여파가 대학에도 그대로 전가되어” 결과 월미(越美)과학자를 양산하는 현상을 꼬집었으니, 이남 사회에서 “월북과학자”는 어느 정도 관심사로 되는 모양이다. 문학인, 영화인들이나 미술가들에 대해서도 “월북”수식어가 붙은 사람들에 연구와 관심이 집중되고 특히 미술품은 “월북화가”들의 것이 한국에서 값이 나가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형평성을 잃고 북의 진실한 상황을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월북과학자들을 다룬 조선의 자료와 문학작품들을 꽤나 읽어보았으나(예컨대 양잠학자 계응상 박사가 주인공인 장편실화소설 《탐구자의 한생》), 근년에는 조선에서 생겨난 과학자, 기술자들에 더 흥미를 느낀다. 적당한 작품이 있으면 이제 다루기로 작정하면서, 오늘은 과학자가 주역이 아닌 작품에서 나오는 좀 특이한 과학자와 그의 변화를 얘기하련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주인공으로 되는 총서 “불멸의 향도”계열 장편소설 《력사의 출항》(김홍익 지음, 문학예술출판사 2016년 4월 출판, 503쪽)이다.

 

▲ 북 장편소설 '역사의 출항'     ©자주시보, 중국시민

 

소설은 1959년 섣달 그믐날부터 시작하여 청년 김정일이 김일성종합대학 입학 엿새를 앞둔 1960년 8월 25일 김일성 수상을 따라 서울제105탱크사단에 찾아가는 이야기로 끝난다. 잘 알려졌다시피 조선은 이 날에 김정일 선군영도가 시작되었다 하여 “선군절”로 정하였고 소설제목 “력사의 출항”도 그런 의미에서 이해가 된다.

 

소설은 주로 105탱크사단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군건설노선쟁론을 다뤘는데, 최현, 황순희 등 실명으로 등장하는 항일혁명투사들과 달리 차엄봉이라는 민족보위성 부상은 뒷날 실각한 민족보위상 김창봉을 원형으로 삼은 모양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최현의 아들인 소년 최룡강이 나와 아버지에게 엉뚱한 질문을 했다가 혼나니 그 원형이 최룡해임은 뻔하다. 이밖에 유명한 가사를 많이 쓴 시인 한찬보가 전쟁기간 105탱크사단에서 싸웠던 경력 때문인지 실명으로 나오는데, 다른 인물들은 대체로 가명으로 짐작된다. 소설에서 다뤄진 역사사건들은 필자가 대체로 아는 바이고, 인물들도 비교적 익숙한 셈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를 느낀 건 남들보다 분량을 적게 차지하는 박사, 국가과학원 분원장 김상익이다.

 

김상익이란 물론 실명이 아니다. 조선의 과학사를 연구한 이들이라면 원형의 진짜 이름을 찾아낼지도 모른다. 이 사람은 청년 김정일이 당시 미국과 사이좋게 지내려던 소련의 “평화공존”타령에 따라 움직이는 조선사람들 때문에 고민하는 대목에서 처음 나온다. 청년 김정일의 고중 동창생인 문동길은 내각계획위원회의 국장으로 일하던 양아버지 문홍수가 국방공업발전에 쓰기로 정해진 자금을 다른 부문에 돌리는 착오를 범하여 양강도 어느 임산사업소의 소장으로 좌천(한국식으로는 이런 것도 “숙청”인가?)되는 바람에 역시 시골로 간다. 문동길이 평양에 왔다가 어떤 동창생은 만났으나 민청부위원장 김정일을 만나지 못하고 아쉬워하면서 돌아간 일을 알게 된 김정일은 김일성 수상이 잘 아는 문홍수가 고위 정객들의 요구에 동조하여 자금을 돌려버린 걸 가슴 아프게 여긴다.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떠나 남의 장단에 춤을 추는 이러한 사상적동요는 그 한사람에게서만 나타나고있지 않다.
우리 나라에서는 물론 다른 나라들의 수학계에서도 《조선의 가우스》로 높이 떠올리는 국가과학원의 어느 분원장을 실례들수 있다. 그는 국방과학분야의 인재들을 맡아키울데 대한 요구앞에 자기가 맡은 연구의 긴박성을 운운하며 그 제의를 선뜻 받아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며 국제과학토론회마당에서 만난바 있는 아인슈타인의 그 무슨 《고민》을 실례들었다고 하는데 《아인슈타인의 고민》이란 하루아침에 수십만의 생명을 앗아간 미국의 원자탄개발에 과학자로서의 자기의 권위가 악용된데 대한 속죄의 고민을 두고 하는 말이였다.“(52쪽)

 

1959년 12월 31일 밤에 한 생각이다. 김상익 박사 본인은 137쪽에서 정식 등장하는데, 1956년 2월 초의 어느 날이다. 남산재 밑에 있는 국립도서관에 간 김상익은 책을 돌리고 빌리러 온 청년 김정일과 만나 대담하면서 큰 충격을 받는다. 두 사람의 만남이 그려진 3장 4절은 148쪽부터 156쪽까지이다.

 

3장 3절의 소개에 의하면 김상익은 “모든 자연과학의 기초라고 할수 있는 수학과 당시로서는 최첨단과학분야에 속하는 핵물리학계통의 극히 제한된 몇몇 전문가들속에서의 그의 지위는 누구도 따를수 없는 높이에 있었다.”(138쪽)”는데 그의 동료들의 말에 의하면 그는 17세기 유명한 학자, 문장가의 몇대 손으로서 증조 혹은 고조할아버지 때 봉건정부의 압력에 못 이겨 벼슬길에 나섰다가 본의 아니게 당쟁에 말려들어 쓴 맛을 본 다음 대대로 정치와 담을 쌓고 살아 도고하고 완고한 학자가문을 이뤘다.

 

“정치와 무관하다고 하면서도 계몽사업으로 민족의 운명을 먼저 이룩하고 그 힘으로 장차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는 실력배양론에 어느 정도 공감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열둬살소리를 들을적에 벌써 서울에 올라가 고학으로 상당한 지식을 쌓은 그는 해방직후 김일성종합대학이 일떠서자 선참으로 달려온, 이를테면 불타는 지식열의 소유자였다.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시기 모든 대학생들과 함께 전선으로 달려나갔던 그는 그후 대학생들이 전선에서 소환되여 백송리로 돌아올 때 그 첫 순서로 뽑혀왔으며 그중 뛰여난 학생들을 류학으로 뽑아갈 때 역시 맨 선참 뽑히워 포화속에 잠긴 조국땅을 글썽한 눈물속에 돌아보며 국경을 넘어갔었다.
이국땅에 가서도 그는 여전히 손꼽히는 수재였다.
수물학계통에서 력사가 있다고 하는 발전된 나라 류학생들과 대학의 이름난 교수들과도 땅땅 엇서리만큼 두각을 나타낸 그는 졸업할 때 주재국으로부터 자기네 나라에 떨어져 보다 안정된 조건속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으며 연구사업에 종사할것을 권고받았다. 하지만 그는 추호의 망설임이나 미련도 없이 조국으로 돌아왔다. 전쟁을 이긴 조국땅, 하지만 재속에 묻혀버린 사랑하는 조국땅을 세상이 보란듯이 일떠세우는데 지금껏 먹고 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애써 다져넣은 지식과 재능을 바치고픈 뜨거운 열망에 실려서였다.
조국은 젊은 그에게 자연과학분원의 한개 부서를 맡기였고 우리 나라 기초과학의 토대를 닦는데 모든 재능을 다 바칠수 있도록 당시로서는 불가능하게 생각되는 조건까지도 다 마련해주었다.
한창나이에 과학자로 최성기를 향해 쉼없이 돌진해가는 그에게 당은 이제 보다 중요한 일을 떠맡기려 하고있었다.”(139쪽)

 

이런 묘사로 보면 김상익은 월북했으나 월북당시는 과학자가 아니었으므로 “월북과학자”로 부르기는 적당치 않다. 김일성종합대학 1기생으로서 뛰어낸 수재였고 또 나라 건설에 기여하려고 마음먹은 모양인데, 여러 가지 생각이 복잡해서 국립도서관에 도움을 받으러 왔던 그는 이 책 저 책을 뒤져보다가 김일성 장군이 지휘한 소왕청보위전이 소련의 레닌그라드보위전보다 훨씬 앞서 진행됐음을 알게 되고 책에 끼인 종이에 쓰인 글들을 보면서 무척 놀란다. 김상익은 글을 쓴 사람이 수령의 아들임을 알게 되고 마침 공무로 국립도서관에 온 내각사무국도서실 한윤선 실장에게 이분이 자주 도서실에 오느냐고 묻는데, 한윤선은 담담한 어조로 그렇다고, 김일성 수상의 분부로 “내각사무국 일군들의 독서정형을 매해 장악하는데 해마다 1등의 자리는 그분이 차지하고 잇습니다.”(143쪽)라고 대답한다. 국립도서관의 조흥규 관장도 청년 김정일이 국립도서관에 여러 차례 온다는 걸 증언하고, 한윤선은 찾는 책이 국영도서관에 없으면 창전네거리에 있는 고서점에서랑 사본다고 설명한다. 김상익은 청년 김정일의 소왕청방어전 평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글은 평이한데… 주장이 강하고 뜻이 명백한 하나의 론문같은 글입니다. 불과 두장밖에 안되는 글에 담겨진 이 새로운 분석과 주장속에는 우리 군대가 현대제국주의와 맞서싸우는데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원칙과 방도가 다 있습니다. 중요하게는 문장바다에서 강하게 비껴나오는 그분의 철석같은 의지입니다. 동서고금의 이름난 병서들을 정통한 기초우에서 내리는 완벽한 결단이라는 생각이 든단 말입니다.”(143쪽)

 

대화가 한 단락 끝나 관장과 실장이 일보러 간 다음 혼자서 책을 보던 김상익의 뒤에 청년 김정일이 나타나서 관장선생님을 찾는다. 김상익은 남들이 어디 갔는지 몰라 대답 못하는데, 청년 김정일이 혹시 김상익 박사선생이 아니냐고 묻는다. 뜻밖의 물음에 나를 어떻게 아느냐고 박사가 물으니, 청년 김정일은 세계 수학계에서 “조선의 가우스”로 불리는 선생님을 왜 모르겠느냐고, 여러 나라 과학잡지들과 신문에 난 사진을 보았는데 여기서 만날 줄은 정말 뜻밖이라고, 자기는 선생님을 존경하는 이 나라 청년학생 중의 한 사람이라고 말하더니 수령의 높은 평가 “김상익선생과 같은 과학자야말로 진정한 애국자”를 전한다.

 

“박사는 미궁속으로 빠져드는 자신을 붙들어낼 힘이 없었다.
(고급중학교 학생으로서 나를 알아볼 사람이 이 나라에는 없다.
다른 나라 과학잡지에서 봤다?
어지간한 관심과 노력이 아니고서는 다른 나라 과학잡지를 볼수도 없거니와 본다 해도 저렇게까지 내 얼굴을 기억해둘 리유가 없다.
글쎄 그건 그렇다 치고 나같이 보잘것 없는 사람에 대한 ***의 평가를 저렇듯 자상히 알고있을수 있는가?
나자신도 모르는 그이의 말씀을 말이다.
그렇다면 이 학생은 누구인가?)
순간 박사의 눈앞에서 번쩍 하고 섬광이 일어났다.”(150쪽)

 

김상익은 상대방의 정체를 알아챈다. 의자에서 일어나 자리를 권하는데 관장과 실장이 돌아왔다. 김일성 수상이 찾는 《김립시집》을 빨리 가져가려고 자리를 뜨던 청년 김정일은 주춤 멈춰서더니 김 박사에게로 되돌아온다. “아인슈타인의 고민”을 운운하는 김상익 때문에 김일성 수상이 마음 쓰던 일을 상기해서이다. 김 박사는 자뭇 긴장하여 몇 걸음 다가선다.

 

"《선생님을 만나면 묻고싶은것이 있었는데…》하고 김정일동지께서는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으시였다.
《선생님은 미국의 루르벨트대통령을 핵무기연구와 제작으로 추동하는 범죄적인 문건에 수표한 아인슈타인이 말년인 1955년에 핵무기를 철폐할데 대한 <럿쎌- 아인슈타인선언>을 내놓은데 대하여 생각해보신적이 있습니까?》
너무도 갑작스런 질문이여서 조홍규관장과 한윤선실장은 박사한테서 긴장한 눈길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김상익박사자신은 미리 예견하고 있었거나 또는 늘 생각해오던 문제가 아닌가깊을만치 평온한 얼굴빛으로 대답올리는것이였다.
《따로 생각해둔것은 없지만 제2차 세계 대전직후 미국주재 쏘련대사인 그로믜꼬와 만난 자리에서 아인슈타인이 한 말이 있지요.
<미국사람들을 포함한 우리모두는 지금 자기들이 타고있는 둥근 배가 어떤 운명에 처하게 되겠는지 잘 모르고있다. 그때 만약 히틀러가 원자탄을 만들어내지 못하리라는것을 알았더라면 나는 미국의 원자탄계획을 지지하지도 않았을것이다.>
그 말을 놓고 범죄적인 <맨하탄계획>구상과 실현에 20세기 최고의 대학자로서의 자기의 권위가 악용됨으로써 인류가 제 머리우에 핵이라는 무시무시한 먹장구름을 이고 항시 불안에 싸여 살아야 하는 원자탄시대의 서막을 열어놓은 도덕적책임에서 벗어나보려는 그의 모지름이 그 선언을 탄생케 하지 않았겠는가, 이런 정도로 생각해봤을뿐 더 깊이 생각해본적은 솔직한 말로… 없습니다.》
《핵무기의 위험성에 대하여 그 누구보다 잘 알고계실 박사선생님은 남달리 생각이 많았으리라고 믿었는데…》
김정일동지께서는 자신의 기대에 닿지 못하는 그의 대답에 실망하신듯 더이상 말씀을 잇지 않으시였다.
그이를 향하여 선 박사의 고개가 숙어졌다. 곁의 두사람, 관장과 실장도 눈둘바를 몰라 허둥거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조용한 어조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이 지구상에 일단 핵무기가 출현한 이상 쉽게는 없어지지 않을것입니다. 더우기 그 핵무기가 <힘의 정책>으로 세계를 제패하려는 미국과 같은 제국주의국가들의 수중에 장악되여있는 한 핵철폐는 평화로운 세계를 갈구하는 인류의 꿈으로만 존재할는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놓고볼 때 아인슈타인의 그 모지름이 자기 어깨우에 실린 도덕적책임의 무게는 얼마간 덜어줄지 모르나 인류의 머리우에 드리운 핵위협의 무게는 단 한그람도 덜어내지 못할것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 서겠습니까?
작은 나라, 힘이 약한 나라의 인민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제국주의자들의 원자탄을 머리우에 이고 항시 불안에 떨어야 한다는 결론에 떨어지게 되며 그 불안때문에 제국주의자들의 하수인노릇을 하는 길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여났고 민족으로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그렇게 살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섭니다.
우리 나라 속담에 불은 불로 다스려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이에 대하여 좀더 깊이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선생님의 과학연구사업에서 성과를 빕니다.
안녕히 계십시오.》"(153~ 155쪽)

 

청년 김정일이 한윤선과 함께 방을 나간 뒤, 한동안 침묵이 흐르다가 김상익 박사가 청년 김정일의 나이를 알아본다. 고급중학교 졸업반이라는 대답에 김 박사는 열여덟?! 대단하다고, 마음속에 자기 가정 하나만을 안고 살아도 철이 들었다며 부모들이 한시름 놓을 나이인데 온 나라의 정사를 다 안고 있다면서 감탄한다. 뒤이어 그는 부끄럽다고 말한다. 조국이 어려운 때 나라의 돈으로 공부한 학자로서 가슴 속에 나 하나의 명예만을 안고 지금껏 살았다는 것이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조 관장이 이상해 하니, 김 박사는 실은 그 때문에 관장선생을 만나자고 했는데 늦었다면서 맥 빠진 소리를 한다.

 

"《사실 난 달포전에 중앙위원회 한 일군으로부터 지금 맡아보고있는 분원사업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국방과학분야의 교육사업을 맡아보지 않겠느냐는 권고를 받았습니다.

과학연구에 내 한생을 다 바쳐 헐벗고 굶주리며 문명밖에서 살아온 우리 인민들이 *** 마련해주신 이 좋은 세상에서 잘 입고, 잘 먹으며 남부럽잖게 살도록 하는 일에 이바지하는것이 나의 신념이고 소원이라고 좋게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방금 그분의 지적을 받고보니 그 권고가 어떤 개별적일군들에 의하여 마련된 기안이 아니잖는가 하는 느낌이 든단 말입니다.》"(155~ 156쪽)

 

썩 뒷쪽의 342~357쪽에 펼쳐진 7장 5절에서는 김일성 수상이 직접 김상익 박사를 만난다. 6월의 일이다. 청년 김정일이 김 박사의 식성을 알아내고 직접 식사표를 짰는데, 자연과학분원으로 현지지도를 나가게 된 김일성 수상은 여요리사들이 김 박사가 제일 좋아하는 순두부국을 만들기 위해 콩을 망질하는 걸 보자 두 팔을 걷어붙이고 한동안 망질을 도와준다.

 

"《내가 직접 갈아서 만든 순두부국인줄 알면 박사선생이 더 맛있게 먹을게 아니겠소.》"(343쪽)

 

미국(1945), 소련(1949), 영국(1952), 프랑스(1960)가 핵무기를 보유한 상황에서 김일성 수상은 핵문제를 민족이 존재하느냐 또다시 망국노로 되느냐는 생사존망의 관건적문제로 보면서 심혈과 정력을 기울이는데, 이날 겸상하게 되는 김상익은 김일성 수상이 그 사업을 위해 각별히 지목하고 중하게 선발한 인재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런데 본인이 제의를 거절하는 바람에 약간의 장애가 생겼다. 당의 뜻임을 밝히면 태도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김일성 수상은 김상익이 새 사업에 진심으로 공감하게 달라붙게 하려면 자신이 꼭 만나야겠다 생각하고, 또 청년 김정일의 판단을 들은 다음 그 생각을 굳힌다. 2월 초 국립도서관에서의 상봉 뒤 청년 김정일과 김일성 수상 사이에는 이런 대화가 오갔다.

 

"《오늘 김상익박사를 만난 기회에 핵문제를 가지고 말을 나누어봤는데 그는 이 문제를 우리 민족의 생사와 련결하여 생각해보지 못하고있는것 같습니다. 범인류적견해에 서있습니다. 우리 나라처럼 령토와 인구가 작으면서도 군사전략상 중요한 위치에 있는 나라들인 경우 자기 힘을 키우지 않는다면 제국주의, 지배주의자들의 핵위협밑에서 항시 벗어나지 못하게 되며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구원할수 없다는것에 대하여 그는 생각지 않고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그를 직접 만나보는것이 좋겠다?》

《***을 만나뵈워야 그는 지금 우리 나라에서 무엇이 가장 큰 애국으로 되며 우리 민족이 낳은 우수한 과학자로서 수세기동안 대국들의 억눌림을 당한 우리 민족앞에 쌓아야 할 가장 큰 공적이 무엇인가를 알게 될것입니다.》"(344~ 345쪽)

 

하여 분원에 대한 현지지도가 이뤄지고 김일성 수상은 김상익 박사와 같은 차를 타고 숙소로 간다. 예정대로는 식사 30분, 담화 30분이다.
수학과 과학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김일성 수상은 문득 옛 문장가가 지은 시를 한 수 읊는다.

 

조선의 근심은 군사가 없는것
제갈래 사람많아 세력은 나뉘였네
진정으로 생각해 눈물을 금할수 없어
하필이면 문장가만 성인이라 하랴. 

 

김일성 수상은 한 행 한 행 동안 뜨게 천천히 시를 외우고 김상익 박사는 시구의 문학적 의미보다는 그 시를 통해 김일성 수상이 주고저 하는 웅심을 깨달으려 노력한다.
대화가 오간다.

 

"《<갈담역에서 부른 노래>라고… 듣자니까 이 시를 지은 사람이 김선생의 먼 조상벌이 된다던데…》
《그런 소리가 있긴 한데 저도 확실한건 모르겠습니다.》
《그가 누구의 조상인가 하는건 물론 그리 중요치 않소.
문제는 나라를 걱정하는 애국적지식인들이 경각에 놓인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며 이렇게 안타깝게 호소도 하고 경고장도 울리고 했지만 수백년동안 음풍영월하며 줄곧 눈앞의 당파싸움에만 열중한 조선봉건통치배들이요.》"(350쪽)

 

뒤이어 김일성 수상은 중종 7년(1512)년 흥천사와 흥석사 두 절간의 큰 종을 녹여 총통을 제조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으나 결국 대비전에서 쓸 그릇을 주조하게 된 일부터 시작해 “을묘왜변”, “임진왜란”을 거들고 음풍영월이 20세기 초의 망국에까지 이어져 40년 동안 일제 치하에서 갖은 모욕과 수난를 겪은 비극을 애기한다. 항일무장투쟁시기에 나라를 되찾으면 제일 먼저 인재양성부터 해야겠다고 결심했던 일, 애국미헌납운동으로 돈이 좀 쥐어지나 종합대학부터 세운 일, 각지에 널린 지식인들을 불러오고 남쪽에까지 “김일성 명의”로 된 위촉장을 보내 민족의 재사들을 모은 일 등을 두루 얘기하던 김일성 수상은 김 박사와 함께 마당에 나가 계속 담화한다.

 

"《현정세는… 우리에게 전략적안목을 가지고 나라의 방위력을 새로운 높이에서 더욱 강화할것을 요구하고있습니다.
명백히 말하면 우리 조국의 절반땅을 가로타고앉은 미국이 핵까지 끌어다놓고 우리를 위협공갈하고있는 이상 우리도 그에 대응할 보다 강력한 억제력을 가져야 하며 그놈들이 살인적인 대량살륙무기를 지구상의 임의의 장소에 실어다 터뜨릴수 있는 운반수단을 갖추어놓고 제놈들의 비위에 거슬리는 나라들과 인민들의 머리우에 퍼부으려고 하는 이상 우리도 그놈들의 아성에다 징벌의 호된 불벼락을 갖다 퍼부을수 있는 수단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요. 이것은 자명한 리치이며 명백히 자위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누가 해내겠는가?》"(353~ 354쪽)

 

뒤이어 김일성 수상은 미국과 소련이 타국의 학자들을 이용해 핵무기를 보유한 사실들을 열거한 다음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우린 이들처럼 그런 과학기술인재들을 다른 나라에서 모집해올수는 없는것이고 오직 하나 우리자신이 인재를 키워서 해내는 길밖에 없소. 이것은 국방과학분야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주체요.
김상익동무, 이젠 내가 동무에게 말하고저 하는 취지를 알았겠지만 바로 이때문에 지금 한창 과학연구사업에서 눈부신 성과를 내고있는 동무에게 우리 당은 국방과학교육사업의 일익을 맡기자는것입니다.》"(354~ 355쪽)

 

먼발치에 서 있는 청년 김정일의 눈에 김일성 수상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무릎을 꺾으며 주저앉는 학자의 모습이 안겨온다.

 

"《***, 저에 대한 당의 조치에 ***의 이처럼 크고 무거운 심뇌의 뜻이 깃들어있는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무엄하게 고집을 세운 절 용서해주십시오.》"(355쪽)


김일성 수상은 푸른 나무 잎사귀를 잡았던 손으로 김상익의 어깨를 잡아 일궈세우며 말한다.

 

"《고맙소. 내 부탁을 이렇게 선선히 받아주어서…》
《아닙니다, ***! 고마운건 저입니다.
일전에 자제분을 만나뵙고 돌아가 생각이 깊었습니다.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여났고 민족으로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노예로 남에게 머리를 숙이고 살수는 없다던 그 말씀이 내 마음속에서 순간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 말씀을 새기며 마음의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내 다 들었소.》
《제 이제 곧 그리로 내려가… ***의 뜻을 받들겠습니다.》"(같은 쪽)

 

청년 김정일은 “수령과 한 과학자가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놓고 위대한 부탁과 심장의 맹세를 나누는 불멸의 순간”(같은 쪽)을 목격하면서 생각을 굴린다.

 

"심중에 소용돌이치며 흐르던 감정의 세찬 격류가 점차 리성의 목소리로 선명하게 이어졌다.
《한없는 조국애, 민족애의 심장에서 출발한 ***의 군사중시사상의 핵은 곧 사람, 인간중시사상이다. 다시말하여 군대를 이루는 2대력량인 군인들과 무장장비중에서 첫째는 사람, 즉 군인대중이고 또 국방공업강화에서 기본은 설비나 기술보다도 그것을 담당하게 될 사람, 즉 국방공업분야의 혁명인재다.》"(356쪽)

 

김상익 박사는 김일성 수상에게 정중히 인사를 드리고 떠난다. 뒤이어 김일성 수상은 청년 김정일에게 올해 2월 프랑스가 네 번째로 핵보유국이 되었는데 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서 대국들의 핵활동에 대한 자료를 넘겨준다. 문건을 재빨리 훑어본 청년 김정일은 이미 전부터 깊이 생각해온 문제이므로 곧 대답한다.

 

"《핵의 발견은 인류의 문명과 보다 행복하고 유족한 세계의 미래를 위하여 위대한것이였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평화적인류의 머리우에 버섯구름을 말아올림으로써 핵은 세계제패를 위한 렬강들의 무모하고 횡포한 위협과 공갈의 수단으로 전환되였습니다.
앞으로 렬강들사이의 핵군비경쟁은 더욱 증대될것이며 자주적인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핵공갈은 더욱 로골화될것입니다.
이로부터 우리 나라에 대한 미국의 침략야망이 변하지 않는 한 미국이 가지고있는 모든 타격수단에 대하여 우리는 그에 대응하는 강력한 억제력을 다 갖추고있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일찌기 프랑스의 철학자인 빠스칼이 말했듯이 정의가 없는 힘은 곧 횡포인것만큼 우리는 강력한 물리적힘이 안받침된 정의로써 정의가 없는 힘의 횡포를 제압해야 합니다.》"(356쪽)

 

김일성 수상은 마당 한끝에서 한창 푸름을 떨치며 자라는 한 그루 전나무에 시선을 준채 아들의 대답을 주의깊게 듣더니 조용한 어조로 말한다.

 

"《옳다. 오직 그것만이 우리 민족을 구원하고 이 땅에 영원한 정의와 평화를 가져올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다.》"(357쪽)

 

핵에 관한 내용은 여기에서 끝난다. 지금 조선에서 핵과 미사일 등을 연구하는 과학자, 기술자들은 김상익 박사의 몇 대 제자들이라고 볼 수 있겠다. 사진과 동영상들에 나오는 사람들은 거개 청년, 중년들인데 주체사상이 정립된 뒤에 테어나 교육을 받았으니 김상익 박사 같은 고민은 없었으리라. 필자는 소설을 보면서 이런 생각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조선이 1964년에 원자탄폭발을 성공시킨 중국보다 훨씬 앞당겨 핵무기를 보유했다 주장하고, 또 그런 설을 믿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꽤나 된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1960년에 김일성 수상의 고민거리가 핵개발에 필요한 과학자배양이라 핵무기보유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 혹 어떤 사람들은 소설은 소설이라면서 굳이 조기보유설을 믿고 싶어할 수도 있겠다만, 1950년대와 1960년대 조선의 과학연구상황을 소개한 자료들과 그 시기를 다룬 문예작품들을 보면 조기보유설이 말이 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소설은 어디까지나 소설이다. 오랜 세월 조선의 공식적인 태도는 핵무기를 만들 의사도 능력도 없다는 것이었고, 김일성 주석도 공식 석상에서 핵에 대한 부정적인 의사를 내놓았으므로 장편소설 《력사의 출항》은 그런 주장들을 뒤집는 격이다. 그러면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소설에서의 김일성 수상과 청년 김정일의 견해가 현시점에서 조선이 핵무기를 어떻게 이해하느냐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다고 보면 알맞겠다.

 

지난 해 건당 70돌 기념대회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인민을 거듭 언급하면서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우리 인민들이 훌륭한 생활을 누리도록 하겠다고 다짐한 것과 결부해 보면, 조선의 핵과 미사일을 평화적인 건설을 위한 방패라고도 볼 수 있다. 조선이 핵무기보유를 선포한지 10년이 되도록 누구의 머리 위에 떨구지 않은 걸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책임적인 핵보유국임을 알리고 싶어 하는 조선의 뜻과 정반대로 해석하는 사람들이야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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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시민님 철수 16/09/04 [11:52] 수정 삭제
  참으로 훌륭한 자료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건모르지요 ㅎㅍㅍ 16/09/04 [15:51] 수정 삭제
  중국시민은 은근히 여기서 조선의 핵개발이 중국핵개발보다 한참늦다는것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93년 여름 어느날 어느 장소에서 중국 조선족과 같이 일했었는데 조선을 무시 깔보는 버릇이 있다는걸 느낌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조선족이면 조선사람인데 왜 그럴까요. 민족적 관점에서 추리 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중국은 핵 미사일 병기 다가지고 있지만 경제 내세우면서 미국에게 질질끌려 다니는 꼴보면 핵이있으면 뭣하고 미사일이 있으면 어디다 쓰겠습니까. 작은 조선은 선두에서 저렇게 미제와 당당히 싸우고 있는데 UN또는 국제무대에서 하는 꼬라지 하고는 뭐 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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