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문화 가꿔가기6] 소설에서 그려진 50여 년 전의 군건설 논쟁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6/09/11 [02:30]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북 장편소설 '역사의 출항'     ©자주시보, 중국시민


통일문화 가꿔가기 5편에서 총서 “불멸의 향도”중 장편소설 《력사의 출항》의 핵관련 부분을 간추려 소개했더니, 소설의 주요내용인 “주로 105탱크사단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군건설노선쟁론”을 알려달라는 반향이 들어왔다. 하여 이례적으로 이번 주일에도 같은 소설을 다룬다.

 

조선(북한)의 언행을 이해하기 어렵다거나 예측불가하다는 말이 많은데, 아예 조선의 지도층이 비이성적이서 그렇다고 단언해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아무리 특이해보이는 언행들도 나름대로의 논리적근거와 변화발전법칙이 존재하는 법이다. 이런 의미에서 50여 년 전에 일어난 군건설관련 쟁론들을 현재의 조선문인들이 어떻게 그리느냐를 살펴보는 것도 무의미하지는 않겠다.

 

조선의 장편소설들은 대체로 주요인물과 내용을 별도로 정리, 소개하는데, 종이 한 장의 앞뒤에 갈라서 찎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총서작품들은 물론 어지간히 중요한 작품들도 줄거리소개에 앞서 조선의 출판부문사람들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정치적, 사상적의의를 정리해 넣는다. 《력사의 출항》에 첨부된 내용소개는 이렇게 시작된다.

 

“선군은 5천년 우리 민족사의 교훈으로부터 출발한 력사의 필연이며 선군혁명의 주력군,  기둥인 우리 인민군대의 생명선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래일도 수령의 군대, 당의 군대로서의 력사적사명을 수행해 나가는것이다.”

 

《력사의 출항》을 쥐어짜면 청년 김정일과 다른 인물들의 활동을 통하여 위의 주장을 입증하는 것이다. 위의 결론과 다른 생각들도 존재했으므로 과학자가 핵개발에 참여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논란이 벌어졌고, 군을 어떻게 건설하느냐에 대해서도 쟁론이 벌어졌다. 이번 글에서는 105탱크사단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을 주로 다룬다.

 

장편소설은 105탱크사단의 첫 지휘관이었던 항일투사 류경수의 미망인 황순희(역시 항일투사로서 조선혁명박물관의 관장을 오래 맡았고 아직도 생존함)의 이러저런 고민으로 시작되면서 105탱크사단이 간접적으로 나오는데, 직접 등장하기는 72쪽에서부터이다.

 

항일투사이며 사단장인 리두익은 연말, 연초에 고민이 많다. 원래 보병사단장으로 일하다가 1958년 봄에 탱크부대로 자리를 옮긴 그는 우선 탱크를 배우는 게 급선무였다. 1년 남짓이 애쓴 끝에 소리만 들어도 탱크상태를 알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아마추어가 프로로 전환하는 개인적 변화 외에, 리두익의 골칫거리는 나라의 외아들 장갑부대인 105탱크사단의 병영건설과 훈련장건설 등 큰 문제들과 얽혔다.

 

전쟁초기에 인민군의 탱크부대가 공격전에서 놀라운 전과를 거뒀음은 널리 알려진 바이다. 워낙 2차 세계대전 후기에 반탱크수단들이 늘어나고 화염병만으로도 탱크를 까부시는 전례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탱크가 한 물 간 무기로서 별 볼일 없게 되었다는 논의가 분분했는데, 인민군의 탱크부대 활약으로 그런 논의가 쑥 들어가 버린 건 세계장갑부대역사에 명기된 것이다. 평원에서의 활동을 기본으로 한다는 탱크부대의 기존관념을 깨버리고 산악지대를 돌파하면서 싸운 것 또한 세계장갑부대역사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제공권이 없는 상황에서 싸우다나니 손실이 상당했고, 전쟁의 후기에는 임무가 바뀌어 평양방어를 분담했다. 평양부근에서 큰 싸움이 일어나지 않다나니 특별한 공로를 세울 기회가 없었고, 휴전 후에도 한동안 평양방어가 임무였다. 그러다가 1958년 가을 쌍운리라는 곳으로 이동했는데 어떻게 건설해나가겠느냐가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다.

 

리두익의 눈에 비친 1960년 초의 부대 상황은 불만스러운 데가 많다.

 

“정문을 넘어서자 곧 마주하게 되여있는 T자형의 볼품없는 부대 군인회관으로부터 산기슭에서 중턱까지 마구 굴려다놓은 큰 바위돌모양으로 띠염띠염 널려앉은 지휘부 각 부서건물들과 자그마한 개울을 사이에 두고 저편 기슭에 질서없이 지은 군관사택마을이며가 눈에 걸려들면서 생각을 붙잡아놓기때문인가싶다.
교방해들어와앉을 때와 별반 달라진것이 없다.
주변정리나 말끔히 했을뿐 새로 건물을 지었거나 개축한것은 거의 없다. 그러면 한해가 넘도록 두익이네는 한 일이 없는가?
그렇지는 않다. 무엇보다 크게 해놓은것은 도운산골짜기에 땅크훈련장을 새로 꾸린것이였다. 여기에 들어와 첫 사업으로 그 문제를 제기했을 때 지휘부부터 꾸려놓고봐야 한다고 말들이 많았지만 두익은 귀를 꾹 막고 땅크훈련장을 꾸리는데 주력했다. 그러면서 지난 조국해방전쟁경험을 살려 적들의 1차항공타격으로부터 인원과 땅크를 보호할수 있는 방어공사도 동시에 내밀어 지금 마지막단계에 이르렀다. 이것이면 한해사이 일을 적게 했다고는 말할수 없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성차지 않고 허전한가?
두익이는 그것을 모르지 않았다.
해놓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이 어방없이 더 많았던것이다.
무질서하게 배치되여있는 지휘부 각 부서건물들도 최고사령관명령에 의하여 려단으로부터 사단으로 승격증편된 부대의 체모에 걸맞게 정리해야 하고 회관도 볼멋에 쓸모있게 개조해야 하고 넓은 사단방어구역안의 여러 골짜기들에 전개된 관하 부대, 구분대들의 병영건설도 다그쳐야 한다. 특히는 마지막단계에 이른 방어공사도 빨리 완성해야 한다. 해야 할 일은 그뿐이 아니다. 부대의 부업토대도 마련해야 하고 어방없이 모자라는 군관사택문제도 풀어야 하며 아이들이 공부할 학교와 유치원도 지어주어야 한다.“(74쪽)

 

아랫사람들의 반대는 설득하거나 눌러놓을 수 있으나 윗사람의 반대는 대하기 어려운 법이다. 그런데 리두익의 처사를 제일 강력하게 반대하는 사람이 민족보위성(뒷날의 인민무력부, 지금의 인민무력성) 부상인 차엄봉이다. 항일유격대시절에는 전우였고 후에는 상하급관계를 10여 년 유지한 사이인데, 차엄봉은 직위로 자기 주장을 내리먹이려 들고, 리두익은 혁명가에게는 높고낮음이 없다고 믿으면서 생각하는 일들을 내밀고 나간다.

 

“혁명앞에 지닌 사업상분담이 다를뿐이다. 그 누가 상급이 되였다면 혁명의 리익의 견지에서 볼 때 그것이 필요하여 취하여진 정당한 조치이므로 혁명가는 그것을 무조건 받아들일 의무밖에 없다.
그리고 인간적으로도 그를 사심없이 존중해야 한다. 그 존경이 그 사람에 대한 수령의 높은 당적신임을 진심으로 받드는것으로 되기때문이다. 지금까지 두익은 이것을 철칙으로 삼아왔다.
한데 아래사람들이 정중히 받들며 지켜주는 자기의 높은 직무에 실려져있는 보다 높은 당적신임을 남들에 비한 자기의 월등감(우월감)으로 잘못 해석하고 행세하려드는 일군들이 간혹 있다.
차엄봉이한테서 그런 느낌이 가볍지 않게 풍겨오는데 두익은 그것이 싫었다.“(274쪽)

 

자본주의사회사람들이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게 공산주의정당 혹은 단체나 사회주의국가 사람들의 평등의식이다. 송환을 강력요구하는 평양출신 김련희 씨도 이 점을 설명했는데, 이 주제를 제대로 다루려면 책 몇 권으로도 부족할 테니 간단히 언급하는데 그친다.

 

위에서 그려진 장면들을 내놓고도 병사들이 반토굴집에서 거주하는 등 리두익의 눈에 비친 병영상황이 불만스럽다면 차엄봉이 보기에는 아주 한심하다. 물론 생활조건은 개선해야 되는 법이나, 애초의 문제는 훈련장 및 방어공사 등 부대전투준비와 직결된 사업과 병영개선을 동시에 밀고 나가기에는 노력과 자재, 시간이 엄청 모자랐다는데 있었다. 당초 리두익은 이런 논리를 전개했다.

 

“땅크훈련장이 없는 땅크부대는 축구경기장이 없는 축구선수단과 마찬가지다. 병영건설, 사택건설, 부업지준비… 뭐 해야 할 일이 수두룩하지만 그것들도 종당에는 미국놈들과 싸워 이길 힘을 키우자니 필요한것 아니겠는가? 사실 지금 병영때문에 병사들이 군무생활에서 크게 지장받는것이 없는 조건에서는 더욱 그렇다.
군대는 훈련은 오늘이 마지막이고 래일은 전투장에 나서야 한다는 관점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때문에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훈련을 잘하여 하루빨리 부대의 힘을 키워야 하는데 훈련장이 없이 어디서 훈련을 하겠는가? 뭐니뭐니해도 훈련장부터 마련해놓아야 한다.”(279쪽)

 

하여 한두달 사이에 종합훈련장이 만들어졌고 1959년 여름철 2기전투정치훈련에 들어서면서부터 정식 이용하기 시작, 대대별로 탱크를 몰고 와서 열흘씩 집중훈련을 하다가 돌아가는데, 운전수들의 운전솜씨가 눈에 띠게 높아지는 건 물론, 온 부대에 훈련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른다.
그런데 차엄봉을 비롯한 사람들은 왜 훈련장보다 병영건설을 앞세워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뿌리는 당시 국제정세에 대한 판단에 있었다. 소련에 가서 몇 해 유학한 적 있는 차엄봉은 이렇게 말한다.

 

“사회주의는 제국주의를 이겼다. 사회주의를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며 당초에 그것을 없애버리려고 청소한 쏘련을 사면포위하고 덤벼들던 제국주의가 오늘날에 와서는 인구와 령토와 경제면에서 더는 무시할수 없는 세력으로 승승장구한 사회주의와 평화적으로 함께 살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속으로는 미워도 할수 없다. 이것은 사회주의의 승리다.”(91쪽)

 

때문에 그는 전투준비보다는 생활에 더 흥미를 갖고 병영을 멋있게 꾸리는데 신경을 쓰는데, 소설에는 전군에 보여주기사업만 언급했다만, 필자가 보기에는 외국군대와의 교류에서 자랑거리로 내세우고 싶은 심리가 작용한 것 같다. 그는 갱도공사용 시멘트를 병영건설에 쓰라고 넘겨주었는데, 105탱크사단에서는 그걸 쓰지 않고 정치부장 전태윤이 고안한 5화토블로크로 벽체를 쌓는다. 당지에 흔한 백토와 석비레에다 보일러슬러그, 볏겨를 적당히 배합하고 거기에 약간의 시멘트를 섞어 찍은 블로크인데 굳기가 시멘트불로크에 못지 않고 겨울에는 훨씬 덥다. 그런데 차엄봉은 볏겨블로크로 비하하면서 비행기에서 떨구는 폭탄이나 함포탄에 견딜 것 같은가고 참모장 한규석을 나무란다. 한규석은 머리는 좋으나 주대가 약하여 윗사람에게 흔들리는 약점이 있다. 리두익이 나서서 그런 타격에는 고강도시멘트로 지었다 해도 지상건물이 견디지 못한다고, 하기에 무엇보다 방어공사부터 내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당한 논박에 말문이 막힌 차엄봉은 다른 트집을 잡는다. 저번에 저쪽 넓은 벌이 있는데다 병실자리들을 잡아주었는데 왜 제멋대로 협소한 골짜기에 들여앉혔는가는 것이다. 참모장 한규석의 얼굴이 거멓게 즉은 색을 띠면서 곁에 선 정치부장을 본다. 그 무언의 호소에, 정치사업으로 늘 리두익을 잘 돕던 전태윤이 나선다. 아랫대목은 대화와 행동들이 여러 인물의 특징을 잘 보여주므로 길더라도 그대로 인용한다.

 

“《사단당위원회에서 협의하고 그렇게 바꾸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건 어째서? 무슨 리유로?》 그를 돌아보는 부상의 눈길이 대번에 바늘끝처럼 꼿꼿해졌다. 
《병영을 그렇게 개활지대에 일직선으로 앉히게 되면 보기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우선 아까운 논밭을 더러 침범해야 하고 향좌가 서북방향으로 앉기때문에 채광조건과 온도보장도 걸리고 또…》
《또 뭐요?》 느릿느릿하면서도 저력있는 정치부장의 대답이 확신성을 띠여가는데 따라 점점 더 꼿꼿해지는 눈길로 그를 치떠보던 부상이 더 기다려내지 못하고 소리쳤다.
《무엇보다는…》 리두익이 대신 나섰다. 《전쟁때 적항공대의 목표가 되기 쉽기때문에 총참모부에 내가 제길 해서 바꾸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곧 《폭발》할것 같은 부상의 그 무엇으로부터 두 지휘관을 보호하려는 내심이 깔린 대답이였다.
《여보, 누군 뭐 전쟁을 생각 안하는줄 아오? 전쟁에 대비하는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말그대로 보여주기사업인것만큼 볼멋이 있어야 하지 않겟소? 그런데 이렇게 좁은 골짜기에 들여다 저런 흙집을 지어놓으면 어떻게 하는가 말이요? 그러니 전번에 그어준대로 저쪽 개활지대에 내다가 다시 하시오. 알겠소? 총참모부엔 내가 지실 주겠소.》
누구도 대답하는 지휘관이 없었다.
《알겠는가, 참모장?》 부상이 저보다 어방없이 큰 한규석의 턱밑에 바싹 다가서며 따졌다.
《토론해보겠습니다.》 그가 얼결에 대답했다.
《거기에 뭘 토론할게 있소?》 하고 리두익이 어정쩡하게 대답하는 한규석을 마뜩잖은 눈길로 건너다보며 툭 쏘아붙였다.
《응?!》 사단장의 단호한 자세에 놀란듯 그를 돌아보던 부상이 모자채양을 꾹 눌러쓰더니 짐짓 노여워하는 표정을 짓고 말했다.
《여보, 두익동무! 난 그래도 동물 생각해서 당신네 사단에서 보여주기사업을 하자고 제길 하고 이렇게 했는데 당신은 너무하구만.
솔직한 말루 난 당신네 부대에 내려와 하루밤 묵어가고싶어두 어디 잔등을 붙이고 누울만 한 객실 하나 온전한게 없어 못 그러오. 물론 이건 해보는 소리고… 회관도 그렇소. 난 그걸 반대하지는 않소. 그러나 먹고 자는 자리가 훤하고 편안해야 노래도 잘 나오고 또 영화볼 재미도 있지 않겠소. 이 병실을 잘 지어놓고 그래 이 차엄봉이 와서 살겠소?》
《그렇다면 말 좀 합시다. 부상동무가 와서 살진 않겠지만 솜씨를 보이고 얼굴을 내자는거지요.》
《뭐요?… 내가?!》
《나도 부상동무가 우릴 위해주는걸 고맙게 생각합니다. 전군앞에서 병영꾸리기 보여주기사업을 잘하자는 그 요구에도 반대가 없소.
그러나 어떤 그 누구의 얼굴이나 일솜씨를 시위하는데 원칙을 양보할수는 없소. 멋을 부리기 위해 농민들의 땅을 함부로 침범할수 없고 미국놈폭격기들이 빤히 내려다보닌 저 벌 판에다 우리 땅크병들의 잠자리를 정할수는 없단 말이요.》
?!…
침묵속의 긴 눈싸움끝에 차부상의 눈길이 먼저 아래로 떨어졌다.
《좋소. 이 문제는 후에 다시 보기요.》
리두익의 반발도 뜻밖이였지만 차부상의 유연한 자세도 의외였다. 금시 무엇인가 일어날줄 알았는데 차부상이 이렇듯 주춤 물러서는 바람에 긴장되였던 공기가 다소 풀리는듯 하였다.
《병영자리문제는 그렇다 치고…》 차엄봉이 짐짓 범상한 투로 화제를 바꾸었다. 《여기에 동원된 인원은 왜 이렇게 적소?》
리두익에겐 누길을 주지 않고 한규석을 보면서 묻는데 꽤 자중하는 어조였다. 하지만 더 큰 폭발을 품은 자중이라는것은 누구에게나 명백하였다. 소리없이 팽팽히 튕기우는 그 복판에 한규석이 나섰다.
《기본력량은 훈련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갱도공사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병영건설도 내밀기로 결정하고…》
《여보!》 그가 말머리나 뗐을가 했는데 차엄봉부상이 꽥- 하고 폭발했다. 드디여 터뜨릴 분화구를 찾은것이였다.
《결정?! 뭘 결정한다는거요?》
우선 큰소리로 주변공기를 꽉 눌러놓고 그는 계속했다.
《지휘관이 노루라면 노루지, 그래 당신넨 성의 명령도 어디 결정이요, 뭐요 하면서 밑에서 흥정하자는건가? 내가 당신네더러 시범병실보여주기준비를 하랬지 방어공사보여주기준비를 하랬는가? 회관보여주기준비를 하랬는가 말이야? 가타부타하지 말고 병실건설에 모든 력량을 집중하시오. 땅크훈련장을 꾸릴 땐… 내가 양볼 해줬는데 방어공사는 바쁘지 않소. 회관도 마찬가지요. 보여주기사업을 보장한 다음 보란 말이요. 책임은 내가 지겠소.
***께도 내가 직접 보고를 드리겠소.
명심하오. 회관이나 방어공사는 당신네 사단적인 사업이지만 보여주기사업은 성적인 사업이란 말이요!》
그리고는 간다온다 소리도 없이 차있는데로 다가서던 부상이 《참모장.》하고 한규석을 따로 불렀다. 한규석이 다가가자 이편을 보지 않으면서, 그러나 다 들으라는 투로 그는 말했다.
《명심하오. 동무네가 준비되는걸 보고 보여주기사업에 내놓든지 말든지 결심하겠소. 그러니 동무넬 생각해서 마련해준 기회를 놓치지 마오.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만 행운을 가져다준단 말이요.》
《알았습니다.》 규석은 몇걸음 처져 서있는 두 지휘관을 돌아보며 힘없이 대답했다.
부릉- 윙- 하고 아까부터 발동을 걸어놓고있던 차가 그를 태우고 쭉 미끄러져나가기 시작했다. 세 지휘관은 차에 대고 규정대로 거수경례를 붙였다. 뒤좌석에 틀지게 앉아 한손을 반쯤 들었다 내리는것으로 답례하던 부상이 얼마쯤 구을러가던 차를 멈춰세우고 뒤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차에 그냥 앉은채 손짓으로 두익을 불렀다.
스적스적 다가서는 두익을 참을성있게 지켜보던 부상이 그가 다가오자 얼굴에 느슨한 웃음을 담고 말했다.
《내 동무에게 한마디 충고하겠소. 안사람건사를 잘하시오.》
그 한마디 배앝고는 문을 쾅 닫아버렸다.”(186~ 188쪽)

 

밑도 끝도 없는 빈정거림과 먼지바람을 리두익에게 들씌워 놓고 차엄봉의 차가 멀어져 간다. 리두익의 아내 화순은 전쟁기간에 알게 되어 결혼한 후처다. 중상을 입은 연대장을 간호하다가 품속에 간수한 피 묻은 사진이 어머니를 잃은 연대장의 아들임을 알게 되었다가 결혼에 이어졌는데, 그 사내애가 나이를 조금씩 먹고 만경대혁명학원에 갔는데 여러 모로 계모와 엇서기 시작하여 골머리를 앓는다. 그런데 그녀가 리두익의 차를 타고 평양에 다녀오는 걸 차엄봉이 길에서 보고 리두익을 비꼰 것이다. 사단장의 차란 공무용인데 아내가 제멋대로 타서는 되느냐는 논리다. 청년 김정일은 사내애와 계모의 모순을 푸는 문제에도 관심을 돌린다. 소설에서 이런 사소한 일들은 여러 갈래의 부선들로 전개된다.

 

차엄봉이 별 수단을 다 썼으나 병영도 회관도 결국 리두익의 주장대로 진행된다. 차엄봉은 은근히 불만스러워 트집들을 잡는다. 회관에 새로 꾸린 당력사연구실(1970년대에는 김일성동지사상연구실이던가는 이름으로 불렸다)은 왜 만들었느냐고 묻는다. 큰 회의나 문화정서활동은 주로 큰 회관을 이용하고 당학습이나 소회의는 여기서 하겠다는 전태윤의 설명을 듣는둥 마는둥 연구실에 들어선 차엄봉은 창문과 창문 사이에 낸 넓은 공간을 가리키며 저 벽엔 뭘 걸자는가고 묻는다. 리두익의 발기에 따라 유화 《보천보홰불》과 《고난의 행군》을 걸기로 부대당위원회에서 토론했다고 전태윤이 대답하는데, 부상은 말허리를 끓고 훈시조로 넘어간다. 아랫대목들도 그대로 인용한다.

 

“《여긴 노래도 부르고 춤이랑 추면서 휴식하는 문화생활장손데 이런데까지 싸움하는 그림을 걸어놓고 군인들을 긴장시킬 필요가 뭐요? 풍경화 같은걸 걸어놓는게 옳지 않소? 응, 정치부장.》
《총정치국비준을 받아 벌써 다 그려놨습니다.》
《총정치국에서? 누구?》
《부국장동지가 직접 나와서 보고…》
《부국장이?! 그 사람이 무슨 예술을 안다구… 좌우간 잘해보오. 난 모르겠소. 동무네가 하는 일은…》
혀밑소리로 중얼거리며 회관을 나선 부상이 벌써 앞마당에서 발동을 걸고 대기하는 승용차에 오르다가 두세명 군인들이 올라가 작업하는 채양우에 시선을 박고 누구에게라없이 물었다.
《저기선 뭘하오?》
《구호를 걸 준비를 하고있습니다.》 이번에도 전태윤이 대답했다.
《무슨 구호?!》
《부대당위원들에게 분공을 주었는데 아직 규정짓진 못했습니다. 당의 기본구호들중에서 군인대중의 뜻에 가장 부합되는 안이 제기되면 당위원회에서 토의결정하고 총정치국에 제기하여…》
《여보!.》 부상의 입에서 오늘 두번째로 큰소리가 울렸다.
《무슨 위원회타령이 그리 많소? 정치기관도 군사사업을 위해 있는거요. 그런데 정치부장이 <당위원회, 당위원회> 하고 돌아가면 군사일군들이 축잡혀 일해내겠소? 안 그렇소?》
부상은 이번에만은 두익의 공감을 살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모양 그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두익은 침묵으로 마주보았다.
내키지 않는 지시나 명령에 접했을 때 하는 무언의 반발이였다. 폭탄같은 그 무엇인가를 품은 무언이였다.
그에게서 응당하게 기대했던 지지를 얻어내지 못한 부상의 목소리가 대뜸 높아졌다.
《그리구 군대건물 이마빡에다 구호는 또 무슨 구호요?
그건 전쟁준비에도 좋지 않소. 적기에게 표적이 되여 괜히 얻어맞지 십상이란 말이요. 그리니 채양우가 휑해 정 보기 뭣하면 군대모표나 큼직하게 붙여놓는게 좋겠소.》
그러면서 이번에는 기어이 대답을 받아낼양으로 지휘관들의 얼굴을 쭉 훑어보았다. 했으나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얼음처럼 랭랭해진 부상의 시선이 그 누구보다 애써 자기를 피하는 한규석의 얼굴을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알았소, 참모장?》
《…》
《이제 사람들이 오면 부득불 이 회관도 돌아보게 되겠는데 내 말대로 하오.》
한규석도 고개를 숙이고 대답을 피했다. 그러자 팩하고 돌아서서 차에 오르려는 그를 리두익이 성큼 막아섰다.
《같이 가기요.》
지금껏 입다물고있던 사단장이 갑자기 너나들이로 나오자 한순간 퀭해진 부상이 《어딜 가자는거요?》하고 물었다.
전번과 같은 맵짠 비판이 쏟아질것을 그가 못내 두려워하는듯 한 인상을 느낀 두익은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동무가 가는데까지!》
벌써 반대편으로 돌아간 두익은 스스로 문을 열고 차에 올랐다.
전에 없던 그의 태도에 벙벙해진 부상은 두익을 바라보기만 할뿐 대처를 못했다. 전태윤, 한규석 등 주런이 따라나왔던 사단일군들도 자기네 사단장의 돌연한 행동에 위구감을 감추지 못하며 불안한 눈길로 지켜보기만 했다.
《가기요.》 
부상은 두익의 의도를 리해하지 못한채 운전수에게 재촉했다.
자기를 지켜보는 사단지휘관들의 지꿎은 눈빛앞에서 한시바삐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에 쫓기운것이였다.
차가 부대구역을 벗어나 얼마쯤 달렸을 때 좌석에 제빠듬히 몸을 제끼고가던 부상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난 평양으로 가오.》
《나도 평양까지 함께 가겠소.》
《무슨 일루?》
《가면서 말하겠소.》
그다음 침묵. 두익은 그가 자기 입에서 텨져나올 말을 꺼리고있다는것을 알았다. 그래서 한시바삐 피하려고 하는, 더 정확하게는 사단구역에서 빨리 벗어나려고 하는 그의 속생각이 어조와 거동에 그대로 비껴있었다. 그런데 두익에게는 그것이 오히려 언짢고 불쾌했다. 그때문에 말머리를 떼고싶은 욕망이 사라졌다.
그사이 차는 묵천읍과 평양으로 갈라지는 갈림길목에 이르렀다.
그래도 침묵이였다.
(아니다. 해줄 말은 하기 싫어도 해야 하고 또 듣기 싫어해도 해줘야 한다!)
차가 갈림길목을 지나 퍼그나 달렸을 때 두익은 드디여 결심하고 운전수에게 말했다. 《.차를 좀 세우오.》
운전수는 잔뜩 찌프린 인상을 짓고 앉아가는 부상을 후사경으로 지켜보며 그냥 차를 몰았다. 그의 지시를 기다리는 자세였다.
그렇게 한동안 달린 다음에야 부상은 마깝지 않은 어조로 운전수에게 차를 세울것을 지시했다. 차가 길옆바투 멈춰서자 부상은 제 먼저 내릴 차비를 하면서 두익에게 말했다.
《내리기요. 나한테 조용히 할 말이 있는것 같은데…》
《그렇소.》
두익은 그가 생각보다 순순히 응하는데에 한편 다행스럽고 한편 의혹스러운 생각을 하면서 길에 내려섰다.
그다음 문을 닫는데 탕 하고 저쪽문이 먼저 닫기더니 멈춰섰던 차가 부릉- 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니?!》 두익에게 누런 먼지바람을 들씌우며 차는 곧 속도를 높였다.
《허참!》
벌써 언덕너머로 사라지는 차를 바라보다가 두익은 저 혼자 웃어버리고말았다. 그한테 속히운 자신이 어이없기도 하고 한편 우습기도 했던것이다. 전태윤과 한규석을 태운 사단장차가 뒤따라온것은 그로부터 몇분후였다.”(267~270쪽)

 

정치기관도 군사사업을 위해 있다면서 정치일꾼들의 언행이 군사일꾼들을 축잡히게 한다는 식으로 정치일꾼과 군사일꾼들을 모순적인 관계에 놓는 건 위험하다. 중국공산당은 당과 군 관계에서 당이 총을 지휘해야지 총이 당을 지휘하게 해서는 절대 안된다는 게 철칙인데, 차엄봉의 말은 바로 총이 당을 지휘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위험한 생각을 품었기에 나중에 “군벌주의자”로 되고 만다. 그러면 차엄봉은 왜 여러 모로 부족점을 보였는가?
황순희는 이렇게 분석한다.

 

《차엄봉은 어려서부터 산림대에서 막 굴러먹다가 유격대로 넘어온 동무로서 성격이 거칠고 편협해요. 일단 밉게 본 사람에 대해서는 여간 아니예요.》(263쪽) 

 

산림대란 일제침략시기 중국인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반일무장단체인데 공산당의 지도를 받지 못했기에 조직이 엄밀하지 못했고 전투력도 떨어졌다. 차엄봉의 원형으로 보이는 김창봉이 산림대에 있었던지는 모르겠는데, 머리는 굉장히 좋았던 모양으로 고위직을 맡은 다음 일부 항일유격대 출신 노장들을 깔보았다 한다. 어느 조선사람은 김창봉이 “***의 신임을 저버렸다”고 평가했는데, 소설에 그려진 언행에 비춰보면 인간수행은 평생작업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엄봉은 보복할 기회를 얻는다. 맹훈련을 벌리고 돌아오던 탱크부대에서 황보기범 승조의 312호 탱크가 고장나 뒤떨어졌다가 수리하고 따라가다가 여인 셋을 만난다. 그중 정치부중대장의 아내가 이제 막 해산할 판이었다. 유달리 부끄러움을 타다나니 곁에서 해산일이 다가온 줄 몰랐다가 급한 목에 부딪친 것이다. 황보기범은 운전수만 남기고 조준수, 장탄수 등을 내리게 하더니 여인들을 탱크에 태운다. 읍까지 30리가 넘는데 걸어가다가는 생명이 위급하니 불편한대로 타라는 것이다. 여인들이 불편보다는 전투차에 타는 걸 꺼리는데, 황보기범이 우리가 책임진다면서 우선 위급한 생명부터 살리고봐야 된다고 한다. 하여 탱크는 읍으로 달려가고 여인은 아들을 순산한다. 뒤늦게 대대에 돌아온 황보기범은 격노한 대대장과 지휘관들과 마주친다. 제정신인가고, 탱크가 뭐 구급차인가고 대대장이 외친다. 명령 없이 개별적으로 움직인 걸 인민군에서는 “자유주의문제”라고 말한다. 이로 하여 부대는 물론 민족보위성에서까지 어떻게 처리해야 되느냐는 격렬한 쟁론이 벌어진다. 차엄봉을 비롯한 사람들은 엄벌을 주장한다. 리두익과 항일투사들의 생각은 다르다. 청년 김정일은 최현, 리두익 등 항일투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하느냐에 대해 지론을 펼친다. 결과적으로 황보기범은 군적을 박탈당하지 않았고 또 소원이던 노동당원으로 된다. 한편 보위성으로 불려간 리두익은 뜻밖에도 보병군단장으로 옮겨가고 보병사단장이던 항일투사 김충렬이 십여 년 몸 담았던 탱크부대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회관의 채양(챙)에는 “경애하는 김일성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당중앙위원회를 목숨으로 사수하자!”는 구호가 붉은 글씨로 써붙여지는데, 조선의 역사책에 의하면 군대에서 그거도 105탱크사단에서 제일 먼저 이 구호가 나왔다 한다. 소설에서 청년 김정일은 이렇게 말한다.

 

《군인들의 사상교양거점인 회관에 당의 기본구호를 붙이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우리 인민군대의 사명과 성격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심각한 정치적문제, 사상문제가 있습니다.
혁명과 건설의 모든 령역에서 다 그러하지만 총대처럼 사상과 밀접한 관계를 이루는것은 없습니다. 사상을 놓친 총대는 부지깽이보다 못합니다. 혁명군대의 손에 쥐여진 총대에서 수령의 군대라는 이 사상과 신념만 들어내면 그 총대는 곧 녹쓸게 되고 녹쓴 총대는 목표를 향하여 제대로 불을 뿜을수 없게 됩니다. 총대의 힘은 결국 사상의 힘, 신념의 힘인것입니다. 그런데 인민군대의 총대에서 당의 군대라는 사상과 신념을 걷어내면 무엇이 남겠습니까.》(369쪽)

 

1956년의 반종파사건에 관련하여 조선에서는 일부 사람들이 조선인민군의 성격을 통일전선의 군대라고 정하자고 했다고 얘기한다. 소설에서도 그 말이 나오는데, 이에 대한 반론이 당의 군대이다.
소설의 앞부분에서 정치사업을 잘 하려고 고심하던 전태윤이 옛날의 탱크소대장이며 시인인 한찬보를 찾아가서 《땅크병들의 노래.》 보다 정확히 말하면 《105땅크사단의 노래》를 지어달라고 부탁하여 한찬보가 옛부대로 와서 생활을 체험하며 가사를 지었는데, 《근위땅크병들의 노래》라는 가사가 창작위원회에서 창작위원들과 동료들의 혹평을 받았다.

 

《찬보동무, 오래간만에 옛 부대에 갔다오더니 땅크발동소리에 귀가 멨구만. 열두줄짜리 가사에 땅크란 말이 여섯번도 더 나오니 말이요.》(375~376쪽)

 

게다가 신임 사단장 김충렬은 제목만 듣더니 이렇게 말한다 .

 

《모르긴 하겠지만 땅크소리만 요란한건 아니겠지? 말하자면 이게(그 순간 신임사단장의 큼직한 주먹이 자기의 심장우에 얹혀졌다.) 나왔겠지? 응, 땅크병들의 심장의 노래가 말이요?》(375쪽)

 

한찬보는 그만 아찔해난다. 과연 소리만 크고 심장은 없는가고 가사를 들여다보고 또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고민에 찼던 한찬보는 회관개관식에서 땅크병들이 부르는 《김일성원수께 드리는 노래》(이 노래는 류경수가 추진하여 1958년에 발표되었다 한다)를 듣고 구호판을 보면서 충격과 감동을 받아 구상을 확 바꾸어 새 가사를 짓는다. 그 노래가 지금까지 불려오는 《당중앙을 목숨으로 사수하자》이다.

 

▲ 북 노래 '당중앙을 목숨으로 사수하자'     ©자주시보, 중국시민


사진에서 3절의 두 번째 줄에 “김일성 대원수님”이라고 나오는데, 원래 가사는 “김일성 원수님”이었다. 조선의 노래들은 시대변화에 따라 조금씩 바뀌는 게 특징이다.


이 노래가 퍼진 다음 색다른 해석들이 나왔다. 최룡해를 원형으로 하는 10살 소년 최룡강이 여름방학 중 등교날이 되어 학교에 갔다가 집에 돌아와서 밑도 끝도 없이 최현에게 “아버지도 당중앙위원회 위원이지요?”하고 묻는다. 최현이 어리둥절해나는데, 놀러왔던 항일투사 김일이 “그렇다. 너의 아버지는 당중앙위원회 위원이다.”라고 대답해주니, 룡강은 “그럼 우리 아버지도 당중앙위원회나요?”라고 묻는다. 어리둥절해난 어른들이 캐물었더니, 룡강이가 예술소조공연에 내놓을 곡목으로 된 이 노래를 배웠는데 노래를 가르치던 중급반 학생이 “당중앙위원회란 당중앙위원회 위원 이상 간부들을 두고하는 말이다. 그러니 누구누구의 아버지는 다 당중앙위원회다.”라고 해석해주었다는 것이다. 아들의 이야기를 듣던 최현은 참지 못하고 아들의 엉덩이를 철썩 갈기고는 꽥 소리를 친다.
《그 덜돼먹은 녀석한테 가서 말해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는 바로 김일성동지이시라고 말이다.》 그리고는 《조선말소사전》을 내려놓고 해석해준다. 《봐라, 수반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머리라는 뜻이야, 머리! 머리에 무엇이 있느냐? 뇌수가 있지. 그러니 생각해봐라. 김일성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당중앙위원회를 목숨으로 사수하자는 구호의 뜻이 뭐냐? 우리 당을 이끄는 당중앙위원회의 최고수뇌는 ***이시라는 뜻이야! ***을 사수하자! 라는 뜻이란 말이다.》(이상 내용은 482~ 483쪽에 있음)
청년 김정일은 얼굴이 벌개서 마당으로 뛰어나가는 최룡강과 마주쳤던 항일투사 오백룡 중장에게서 이 사연을 전해들으면서 미소를 짓는다.

 

소설의 고조는 군사대항훈련이다. 쌍방은 105탱크사단과 리두익의 보병군단. 얼마전까지 탱크부대를 지휘했던 리두익은 최대의 약점을 겨냥하여 외통길로 넘어가는 좁은 길목에 살아있는 거목들을 아지째로 찍어다가 가로세로 엇결어 쌓은 다음 흙벼랑을 파괴하여 통째로 길에 내리앉히는 작전방안을 짠다. 그러면 탱크들이 돌파하는데 두세 시간은 걸리니 예정된 공격시간을 맞출 수 없고 따라서 보병들이 이기게 된다. 이 방안에서 관건은 가장 결정적인 대목에 폭파하여 “적”군이 어쩔 수 없는 미궁에 빠지도록 하는 것이기에 비밀보장과 시간엄수에 각별한 주의를 돌리고 가장 믿음직한 공병들이 파견된다. 작업을 진행하는 공병들을 발견한 황보기범은 눈앞이 아뜩해난다. 진짜 적이라면 도화선에 불을 달기 전에 쓸어버리고 통과하면 되겠는데 훈련하는 전우라 그렇게 할 수 없다. 하여 그는 가장 위험한 방법을 고른다. 공병들이 도화선에 불을 달고 떠난 다음 달려가서 몽땅 뽑아버린다는 것. 공병들은 여러 가지 조건을 타산하여 도화선을 짧게 늘이고 불을 달고 떠난다. 황보기범이 달려가서 도화선들을 뽑다가 폭발에 날려간다. 공병들이 다시 달려왔으나 탱크들은 벌써 앞으로 달려간다. 그 뒤에도 이러저런 두뇌게임과 총포전이 벌어지는데 결국 탱크사단이 이긴다. 리두익은 큰 충격을 받는다.

 

“빠직거리며 타드는 도화선을 걷어내려 뛰여든 《적》군병사는 이 훈련을 명실공히 전투로 생각하고 사생결단하였는데 불을 단 아군병사는 문자그대로 훈련으로 생각하고 임무수행에 림한데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근본비결이 있었던것이다.
그런데 두익인 그렇게 진것이 분하지 않고 오히려 기뻤다.
땅크사단과 더불어 살며 일해온 지난날의 자기가 새 군단에 와 일하기 시작한 오늘날의 자기를 이긴것이였다. 바로 오늘날의 《나》를 이긴 어제날의 《나》에게 앞으로의 《나》를 승리에로 무한정 떠밀수 있는 잠재력이 깃들어있다는 확신으로부터 오는 기쁨이였다.“(469쪽)

 

한편 김충렬 역시 리두익에게 고맙다고 인사한다.

 

《뭐가 고마운가 하면… 알짜 보병지휘관인 당신이 105땅크사단을 저런 강철사단으로 키워 나에게 넘겨준것이 고맙다는 소리요.》(472쪽)

 

황보기범은 희생된다. 조선의 규정은 잘 모르겠다만 중국인민해방군에는 군사연습이나 훈련이 “사망지표”라고 부르던가 하는 허용수자가 있다. 1970~ 80년대에 군대에서 복무했던 사람의 말에 의하면 사단의 경우 1년에 지표가 1. 5명으로서 초과하면 지휘관들이 처벌받게 된단다. 소수점 아래까지 나누는 건 아마 중증장애자의 출현을 염두에 둔 것 같다. 물론 타들어가는 도화선에 달려가는 사람이 사망지표 따위를 생각할 리는 없겠다만, 군사훈련이나 연습이란 어느 정도 위험성을 동반하기 마련이고 따라서 어느 정도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점을 여기서 상기시켜야겠다.

 

소설은 1960년 8월 25일 청년 김정일이 김일성 수상을 따라 105탱크사단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끝난다. 청년 김정일의 사진을 찍은 사진사에게 오백룡이 이렇게 말한다.

 

《이제 두고보오. 우리 혁명이 말이요. 김정일장군이 군령도의 첫 출항의 자욱을 새긴 이 기슭을 세세년년 찾고 또 찾을것이요. 알겠소, 동무?》(501쪽)

 

책 제목은 이 말에서 따온 것이다.
한편 점심식사를 거의 다 마친 청년 김정일은 김일성종합대학 입학을 축하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감사합니다.
이제 한주일후부터 김일성종합대학에 가서 공부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오늘의 이 걸음이 더욱 무겁게 느껴집니다.
나는 대학기간에 두개의 과제를 수행하려고 합니다. 하나는 과학의 요새를 점령하는 과제요, 다른 하나는 오늘에 시작한 이 걸음을 계속하여 수령님의 인민군부대시찰을 보좌해드리면서 군대강화를 위한 사업에 더 큰 관심을 돌리려고 합니다.》(502쪽)

 

사진사는 항일투사들의 분부대로 청년 김정일의 말을 토 하나 빠질세라 수첩에 써넣었지만, 너무나도 평범하게 하는 그 말의 뜻을 다 알지는 못한다.
작가는 이렇게 썼다.

 

“우리 인민이, 우리 조국이 그리고 정의와 자주와 평화를 지향하는 세계 혁명적인류가 쌍운리의 한 군관사택앞 샘물터의 너럭바위우에서 하신 그이의 말씀속에 담겨진 신념과 의지를 다 알자면 수십년세월이 더 흘러야 했다.
선군이라는 말이 새로운 시대어로 우리 말 사전에 오른것은 그로부터 40년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였다.“(502쪽)

 

일행이 쌍운리를 떠나가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과거를 제대로 알면 현실이 보이고 미래도 알리는 법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 수년 이래 군사훈련에서 “멋따기, 보여주기”를 거듭 반대해왔는데 소설 속의 보여주기 반대와 일맥상통한다. 훈련이 오늘이 마지막이고 내일은 실전이라고 간주하는 의식도 지금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전쟁발발가능성에 대해 소설 속의 수령 및 항일투사들은 차엄봉과 다른 견해를 가졌는데, 현재 조선에서는 차엄봉과 비슷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기반이 사라졌다고 보아야겠으니, 항상 전쟁가능성에 대비하는 언행이 나름대로의 논리성을 갖는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나라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힘으로 꼽히는 군력이 생겨나고 자라난 경과를 통해 조선을 보다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혹자는 선전이라고 일축할 수도 있겠다만, 정체불명의 “북 소식통”의 주장들보다는 훨씬 가치가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자주시보》 독자분들의 생각은 어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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