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문화 가꿔가기10] 북 소설 속의 수학영재 망명과 해커연습
-중편소설 《아름다운 산》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7/06/04 [14:41]  최종편집: ⓒ 자주시보

 

랜섬 웨어가 급작스레 세계적인 화젯거리로 떠오르던 2017년 5월 중순에 필자는 정문일침 251편 “랜섬 웨어가 없는 청정지역이 됐다는 북”(www.jajusibo.com/sub_read.html?uid=33569)을 써서 랜셈 위어를 북의 소행으로 돌리지 않는 한국의 특이한 상황을 지적했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한국에서가 아니라 외국에서 랜섬 웨어가 조선(북한)의 해커조직과 관계된다는 증거를 발견했노라는 소리가 나와, 한국에서 열심이 받아썼고 조선은 강력히 반박했다. 《자주시보》는 5월 말에 랜셈 웨어가 중국 남방출신의 해커들과 관계될 수 있다는 기사(www.jajusibo.com/sub_read.html?uid=33825)를 전했다.

 

랜섬 웨어 공포가 한 풀 죽은 다음 요즘 시간이 좀 생겨서 필자는 조선 수학영재의 망명과 해커연습을 다룬 책을 한 권 펼쳐들었다. 지난해에 보았던 중편소설 《아름다운 산》(윤광연 지음, 문학예술출판사 2016년 3월 출판발행, 253쪽, 사진)이다.

 

▲ 북의 소설 '아름다운 산'     © 자주시보, 중국시민


책에 끼인 종이에서는 이렇게 소개했다.

 

“소설은 과학과 기술을 앞세워 강성국가를 건설하시려는 위대한 ***의 높은 뜻을 받들어 과학연구분야에서 자신들의 창조적지혜와 재능을 다 바쳐가는 청년과학자들을 형상화하고 있다.
주인공 김효식은 지칠줄 모르는 과학적탐구와 뜨거운 애국적열정을 다 바쳐 세계최첨단의 암호화공식을 발견하여 세계수학계에 혜성처럼 떠오른다.
그는 과학기술교류로 다른 나라에 가있는 기간에도 자신을 유혹하는 과학연구조건에 흔들림 없이 주체조선의 과학자로서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소설은 주인공을 비롯한 청년과학자들의 투쟁과 생활을 통하여 과학에는 국경에 없어도 우리의 과학자들에게는 사회주의조국이 있다는 억척불변의 신념을 간직하고 투쟁할 때 그 어떤 불가능이란 있을수 없으며 그것은 무궁무진한 창조적힘의 원천으로 된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제목과 이런 소개를 보고 책을 사려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사실 필자는 제목만 보았을 때 녹화사업을 쓴 소설인 줄로 여겼었다. 그런데 생각 밖으로 볼 재미가 있었다.

 

소설은 “평양- 모스크바행 국제렬차는 오전 10시 15분 정시로 평양역을 떠났다.”는 말로 시작된다. 유럽의 어느 나라로 가는 조선수학자대표단이 열차에 탔는데 “대표단이라야 단장과 단원 두명뿐이다.”
“대표단”에 대한 조선의 선호는 예로부터 이름이 높아, 4월의 봄 예술축전을 비롯하여 조선에서 진행되는 여러 가지 행사들에 누군가 혼자 가더라도 무슨 대표단의 명의를 붙였다 한다.

 

소설의 대표단은 실제로 단의 성격을 갖는데, 세계적인 수학난제들의 풀이와 관계된다. 20세기 초엽에 독일 수학자 다비드 힐베르트가 내놓은 23개의 난제들이 70년대 중엽에 거의 다 풀렸다가 유럽의 이름난 수학자 아돌프 월리 박사가 20세기의 마지막 년대들에 풀어야 할 문제들을 몇 개 더 제기했다. 그런데 그중에서 제일 어렵다고 생각되는 세 번째 문제를 조선의 청년수학자 김효식이 풀어냈다. 조선수학자협회는 그의 계산을 신중히 검산하고 검증한 후 풀이답안을 국제수학자연맹과 월리 박사에게 보냈다. 한 달 가량 아무 반응이 없다가 월리 박사가 김효식을 자기 나라로 초청하는 초청장을 보내왔다. 틀렸다고 여겨 논쟁을 걸려는지 아니면 자기의 난제들에 제일 먼저 답을 낸 수학자와 인연을 맺으려는지 취지를 알 수 없다. 그래도 김효식의 계산이 정확하다고 믿은 조선수학자협회는 그 기회에 세계수학자들과의 연계를 늘이기 위해 초청에 응하고 대표단을 조직한다. 소련유학경험이 있는 수학연구소 과학담당부원 홍익준이 단장이 되고 김효식이 단원이 된다.

 

부원은 조선의 자료들과 문학예술작품들에 자주 나오는데, 경우에 따라 상당한 권한을 행사한다. 홍익준은 젊은 시절 유학하고 귀국한 다음 과학계가 아니라 교육계에 몸담기를 원했으니 한때는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김효식의 담임교원으로 있었다. 그러니 옛 스승과 제자가 대표단을 무어 출국하는 셈이다.

 

중국과 러시아를 거치는 긴 여행 끝에 두 사람은 월리 박사의 국가에 도착한다. “도시의 중심거리는 중립국선포로 2차세계대전 때는 물론 그전에도 다른 파괴행위를 겪지 않아 도로폭이 좁고 우중충하여 중세기풍경을 그대로 보이더니”(23쪽)라는 묘사를 보면 스위스로 짐작된다. 참고로 시대배경은 20세기 말이다.

 

월리 박사의 수학연구소는 “교외의 나지막한 산턱에 자리잡은 하늘잎나무숲속의 2층양옥”(같은 쪽)이다. 5년 전에 아내를 잃은 그에게 친구가 조카딸을 보내주어 월리의 서기이자 연구소 “경영자”로 일하는데, 스페인계로 짐작되는 처녀의 이름은 쏘냐다.

 

문제풀이를 보았느냐는 홍익준의 물음에 월리 박사는 봤다면서 “몹시 놀랍고 실망스러웠다”(24쪽)는 말로부터 시작하여 “두나이강을 아프리카대륙에 가서 찾아보려는 무분별한 착상으로 생각했다”(같은 쪽)고 한다. 긴장해하는 홍익준과 달리 김효식은 이해를 한다. 뒤이어 월리 박사는 김효식의 답이 증명된 경과를 설명하고 김효식에게 사죄하면서 세계수학게에 큰 공헌을 했다고 칭찬한다.

 

효식에게 “당신은 절대로 정치에 관여하지 마시오. 정치는 이미 이 지구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갈라놓고있지만 수학에는 자본주의수학과 사회주의수학이 따로 있는게 아니니까. 자, 우리 수학세계의 진실한 뉴대를 위하여.”(26~ 27쪽)라고 축배사를 한 월리가 순전히 수학의 견지에서 효식의 재능을 인정한다면, 쏘냐는 효식에게 인간적으로 호감을 갖는다. 그러나 약속한 처녀가 있는 효식은 쑈냐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고 또 월리 컴퓨터에 저장된 암호화자료에 반하여 호텔로 돌아가지 않고 연구소에서 밤을 새운다.
소설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암호학이란 21세기를 전후하여 인류에게 들이닥친 정보산업의 해일속에서 태여난 응용수학의 한 분야이다.
지금 세계는 조밀한 인터네트망으로 덮이여 개인서신과 기업거래, 군사정보교환과 국가정책작성 등 모른 인간활동이 콤퓨터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런 조건에서 열살잡이아이가 제 줌만 한 콤퓨터의 마우스를 눌러 한 나라 국방성의 정보도 알아낼수 있고 강도들이 손전화기 하나로 대은행의 금고번호와 화페거래량도 쉽게 연산해낼수 있다. 오직 필요한 대방과만 통하는 암호프로그람이 없이는 정보산업의 발전을 담보할수 없게 되였다.
그리하여 많은 수학자들이 암호프로그람작성에 달라붙게 되여 암호학이라는 새로운 수학분야가 개척되고 이 분야 학자들의 세계적인 조직인 국제암호학련맹도 생겨났다.
암호학은 정보학보다 더 좋은 두뇌와 더 기묘한 방식을 요구한다.”(112쪽) 

 

홍익준도 어쩔 수 없이 효식과 함께 밤을 새운다. 이처럼 두 사람이 외국에서 연구를 며칠 진행하는데, 쏘냐의 외삼촌 칼 윈터가 연구소에 찾아온다. 윌리의 대학동창생인 윈터는 열두 개 나라에 지사를 둔 암호회사의 경영자로서 세계의 백수십 개 업체와 업무거래를 하고있다. 김효식에 대한 월리의 평가는 뛰어난 활동가인 윈터의 구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두 사람이 만나는 대목에서 한국출신의 과학자 이휘소도 거들어진다.

 

“《자네에게 수학천재가 와있다면서?》
윈터가 서재의 쏘파에 앉아 려송연을 피워물며 물었다.
《음, 지난번에 필즈상을 받은 프리드맹이나 도날드슨에 못지 않네.》
《동양인이라지?》
《음, 조선사람일세.》
《조선사람이라… 자네는 우리가 1975년 미국에 갔을 때 페르미연구소에서 만났던 조선사람이 생각나나?》
《리휘소 말인가?》
《그때 사람들은 20세기 전반기는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세계였다면 20세기 후반기는 리휘소의 물리학세계로 될것이라고 말했지.》
《그런데 그런 천재를 죽이다니, 미국사람들이란 잔인하기 그지없거던.》
《자기들을 배반했으니까.…  어쨌든 조선족의 대뇌피질엔 주름살이 몇개 더 있는 모양이야.》”(127쪽)

 

이휘소 사망의 진실여부를 젖혀놓고, 조선의 소설에서 이렇게 묘사되엇다는 건 조선의 학자와 문학가들이 이휘소라는 인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말해주므로 나름 의의를 갖는다고 생각된다.

 

10일 가량인 대표단의 체류일정이 끝날 무렵에 윌리가 차린 만찬회에는 윈터와 그 나라 주재 조선무역대표도 참가한다. 즐거운 분위기에서 식사하던 중에 윌리가 조심스레 무역대표에게 김효식 박사가 여기 와서 자신과 같이 연구사업을 할 수 없는가고 묻는다. 초청장을 보낼 때부터 품었던 속심이다. 무역대표는 즉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윈터는 멸시하듯 윌리를 보는데, 울리는 이렇게 설명한다.

 

“《난 결코 김박사의 재능을 타작하자는게 아닐세. 나의 좋은 연구조건, 세계수학계와의 련계. 그러나 난 로쇠했거던. 우리 두사람의 지혜와 경험이 합쳐지면 대단히 큰 하나-- 경이적인 수학적발견이 이룰될 수 있단 말일세.》
《철부지! -- 김박사는 공산권에서 온 사람이야. 오늘날에 순수 과학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나? 수학문제든 정치문제든 모든게 첨예한 이데올로기전쟁이란 말일세. 동유럽의 사회주의가 정치지진으로 산산쪼각이 난 이때 그걸 지키려고 혁명의 붉은기를 더 높이 추켜드는 북조선땅에서 공동연구자를 데려온다?
대표선생, 저 사람을 리해해주시오. 수학자들의 정치적식견이란 강보에 싸인 갓난아이나 같지요. 하하…》
윌리의 얼굴이 벌개졌다.
무역대표가 위로하듯 그에게 말했다.
《윌라박사의 진심은 충분히 리해됩니다. 또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우리 두 나라사이에는 아직 국가적인 외교관계가 맺어지지 않았고, 또 금방 제기된 문제이기때문에 시간과 절차가 필요합니다.》”(129~ 130쪽)

 

윌리의 제의는 이렇게 일단 거품으로 된다. 그런데 김효식과 홍익준의 출발날짜가 하루 늦어진다. 비행기표예약이 좀 늦어 1등석을 사지 못한 게 이유인데, 손님들은 2등석이든 3등석이든 다 괜찮다고 했으나 윌리 측에서는 주인 된 예의를 충분히 지키겠다고 나선다.
짐을 다 꾸린 상태에서 하루 시간이 더 생기니, 홍익준은 변화를 무역대표부에 알린 다음 시내구경을 나가고, 김효식은 새벽부터 일어나 여전히 암호화자료들을 연구한다.

 

“콤퓨터앞에서 암호화자료들을 한페지, 한페지 펴나가는 효식은 수학이라는 한터전에서 자라는 새 품종의 곡식작황을 보는 심정이였다.
암호학공식의 작용원리와 내장방법, 그 공식을 유도해내는 수학의 각이한 방식들…  온 세상이 조밀한 인터네트망으로 련결된 현시대에 최첨단의 암호화방법을 가질 때만이 그 집단, 그 국가의 존엄이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유지될수 있을것이다.
효식은 자료에 묻히면 묻힐수록 아쉬운 생각이 가슴속에 자꾸 갈마들었다.
암호학의 세계적인 추세와 최근에 개발한 암호프로그람을 보지 못한것이다.
가을열매는 보지 못한채 여름철의 무성한 푸성귀만 본것 같았다.”(130~ 131쪽)

 

윈터의 브룬트스 회사에 가보지 못한 걸 아쉬워할 때 마침 쏘냐가 전화를 걸어와 보고 싶다고 말하기에 김효식은 자기의 소원을 얘기하고 두 사람은 회사로 간다. 영국 버밍검 대학 출신인 로버트 해리슨이 맞이하여 수학자들 사이의 대화를 나누고 연구팀이 최근에 개발한 가리쯔 암호공식을 보여주며 고급설비들이 즐비한 회사를 참관시킨다. 또한 해리슨은 자기네는 어느 한 나라, 한 지역의 과학연구기지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인터내셔널 집단이라고 주장한다. 나이레지아인, 대만계 중국인, 유태인, 인디아(인도)인, 체코, 벌가리아, 뽈스까(폴란드)인들이 수두룩하다면서 김 박사도 여기서 일해볼 의향이 없는가고 묻는다. 김효식은 농담으로 간주한다.
쏘냐와 둘이 남은 김효식은 노래도 듣고 춤도 좀 추다가 오후에 응접실의 컴퓨터 앞에서 최근 개발된 암호화방정식들을 열심히 들여다본다. 저녁 무렵에 쏘냐가 커피잔을 들고 들어오는데, 몇 시 간 컴퓨터와 씨름하면서 시력이 나빠졌던 효식은 무심히 커피를 받아 마신다. 그리고는 밀려드는 잠에 취해 긴 소파에 누워 꼬박 24시간을 잔다. 커피에는 강한 수면제가 들어있었다. 효식을 사랑하여 보내고 싶지 않았던 쏘냐의 돌출행위였다. 외삼촌 윈터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지만 효식을 놔주기 싫은 마음은 마찬가지다.

 

그보다 좀 앞서, 효식이 윈터에 회사에 가 있을 때 낮에 그와 식사를 같이 하려던 홍익준은 무역대표와 함께 호텔로 돌아왔다가 방이 빈 걸 보고 깜짝 놀란다. 해질 때까지 기다려도 소식이 없다. 둘은 유괴작전을 윌리가 벌렸다고 추정하여 전화를 걸어 알아보는데, 효식의 안부를 묻는 윌리의 반향으로는 가늠하기 어렵다. 대표는 그날 밤으로 조선에 변화를 보고한다. 이튿날 새벽에 홍익준이 윌리와 다시 통화하고 둘이 찾아가 만나도 보는데 윌리의 놀라움과 안절부절을 홍익준은 죄진 자의 과장으로 단정한다. 허나 무역대표는 윌리의 눈에 비낀 감정을 진실로 간주한다.

 

“마피아보다 더한 <두뇌도적>들이 살판친다는것을 잊어버”(176쪽)린 자신을 뉘우치던 윌리가 돌아온 쏘냐에게 물어보니 쏘냐는 놀란 척 한다. 윌리는 사태를 짐작하고 윈터의 회사로 찾아간다.
“헤드헌터”를 중국어로는 “례터우(猎头, 머리사냥꾼)”으로 옮겼는데 왜서인지 조선에서는 “두뇌도적”이라고 옮겼다. 윌리는 윈터와 쟁론을 벌인다. 윈터는 세계적인 수학발명을 노리는 김효식이 현대과학의 찬란한 첨단지역에서 과학의 정글지대로 돌아갈 것 같으냐면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김효식의 변신을 믿는다. 또한 김효식을 초청했고 체류기간을 연기한 사람이 윌리임을 상기시키면서 보도계에 폭로하겠다는 윌리를 저지시킨다.
며칠 뒤 그 나라의 조간신문들에 일제히 기사가 실린다.

 

“북조선의 수학박사 김효식 우리 나라에 망명 요구. 과학연구차로 이 나라에 온 북조선의 수학박사 김효식(31살) 자기는 그 어떤 사회제도도 개의치 않고 인류를 위한 과학연구에 몸바칠 결심이라면서 연구조건이 충분한 여기에 남아 열심히 일할 생각을 말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의 정신상태가 안정될 때까지 일체 외부인원들을 만나지 않겟다고 했다.”(181쪽)

 

여권에 붙였던 사진도 조그마하게 첨부된다. 동유럽 사회주의붕괴와 더불어 수많은 망명기사들을 보아온 그 나라 사람들은 무심히 대하나, 조선 무역대표부 청사는 발칵 뒤집힌다. 그때까지 남아있던 홍익준은 김효식의 자유주의경향과 개별적인 행동을 바로잡지 못한 자신의 책임을 뉘우친다. 무역대표는 가짜기사, 거짓말 소식들이 자본주의사회에 많다면서 동지를 믿자고 타이른다. 허나 홍익준은 우리 세대와 효식이네 세대가 다르다고, 오늘의 행복을 지난날과 대비해볼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무역대표는 흥분되어 “그럼 젊은 동무들은 다 믿지 말아야 한다는거요?”(182)라고 반문한다. 대표부는 “망명”을 “선언”한 자국공민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하나, 그 나라 외무성에서는 본인의 요구라면서 거절한다. 무역대표부는 항의각서를 외무성에 전달한다. 본인과의 상면을 거절하는 한 우리는 이 사건을 모략과 음모로 간주할 것이며 이에 대한 후과는 전적으로 당신네가 책임질 것이라는 내용이다. 그 다음날 홍익준은 혼자 귀국한다. 원래 체류일정보다 일주일가량 지체되었다.

 

한편 마취에서 깨어난 김효식은 잠깐 잠들었던 줄 알았다가 놀라운 변화에 깜짝 놀라고 집요한 회유에 시달린다. 조선에서도 그와 관련된 사람들이 고민과 고통으로 모대긴다.

 

필자는 서술의 편리를 위하여 지금까지 김효식의 유럽방문선만 이야기했으나, 소설은 김효식의 성장선, 사랑선을 유럽행선과 엇갈아 묘사하면서 열독피로도를 낮추고 사회상과 인간상을 중편소설치고는 꽤나 폭넓게 그렸다. 김일성 수상을 만나뵈었던 전쟁고아들이 결합하여 이룬 가정에서 태어난 산골소년이 스승들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자신의 재능을 알고 가꿔가면서 수학박사로 자라난 과정, 어린 시절의 동창생이고 조선중앙통신사의 번역원인 리혜영과 깊이 사랑하면서도 연구에서 빛난 성과를 얻기 전에는 결혼하지 않는다고 혼기를 미뤄오는 과정 등은 김효식이 왜 “망명”에 동의할 수 없느냐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김효식에게 보름동안 살면서 잘 생각해보라고 제의한 윈터는 감시카메라로 김효식의 일거일동을 관찰하고 학자의 명예욕을 만족시켜주는 연구조건을 보장하겠다는 장담과 인간의 물질적 본능을 충족시켜주는 보수로 꼬인다. 그러나 1류급에 해당되는 보수는 오히려 김효식의 거부감만 불러일으켰고, “망명”기사 및 쏘냐와 함께 즐기는 사진을 보여줘도 김효식은 무표정하며 늘 연구실에 들어박혀 연구에 전념한다. 갖은 유혹도 통하지 않으니 윈터는 자존심이 상해 김효식을 쫓아버릴 생각도 한다.

 

약속된 날짜에 김효식이 찾아와 의자에 앉더니 주저없이 말한다.

 

“사장선생, 저는 선생님과 쏘냐가 표시해준 성의가 극진한데도 불구하고 왜 조국으로 돌아가야 하는가에 대하 말씀드리고저 합니다.

 

저는 우리 나라 북부 자강도라는 곳의 산골마을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여나 갈매봉이라는 아담한 동산에서 뛰놀며 자랐습니다. 내가 중학교를 졸업할무렵 어머니가 불치의 병으로 돌아가 대학입학시험을 치러 가는 길차비를 마을녀인들이 해주었고 수학선생님이 같이 따라나섰습니다. 대학기간에 우리 나라에서는 학생들에게서 학비를 받는것이 아니라 장학금을 내줍니다. 그 장학금은 학생들로 하여금 국가의 애정과 사회의 기대를 느끼게 합니다. 나는 대학기간 정세가 긴장해서 2년동안 군사복무를 했는데 우리가 다시 대학으로 떠날 때 수도에 회의차로 올라가있던 사단장이 직승기로 천여리길을 날아와 전송해주었습니다. 스승들이 나의 학위론문을 위하여 서슴없이 자기의 연구자료들을 넘겨주었고 선배들이 문제풀이에 집념하고있는 내 방에 들어와서는 창문을 닫아주고 사과를 깎아놓아주고는 소리없이 물러가주군 했습니다. 나의 지식은 이렇게 깃들었고 재능은 이렇게 꽃폈습니다. 당신들은 우리 나라에 대해 지구상에서 가장 첨예한 열점지대이며 개미가 독사와 맞서듯 엄청난 대결속에서 순간의 안식도 모르고 사는 곳이라고들 알고있습니다 .옳습니다. 우리는 미국과 맞서서 간고분투하고있습니다. 이런 우리를 두고 어떤 사람들은 무모한짓이라 하고 어떤 사람들은 장하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민들모두는 자기를 장하게 여기고있으며 하루하루의 생활을 투쟁으로 간주하고있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건달을 부리는 사람이 없고 눈을 흘기는 사람도 없으며 모두가 우리자신이 선택한 사회주의제도를 위해 힘껏 일하고 있습니다. 제가 쏘냐에게 이미 말했지만 조국에는 사랑하는 처녀가 있습니다.
이번 외국출장을 마치고 돌아가면 우리는 결혼식을 하자고 약속했습니다. 내 심장에는 그외의 다른 녀자가 들어앉을 자리가 없습니다. 저는 내 조국으로, 내 고향으로 꼭 돌아갈것입니다.”(220~ 221쪽)

 

윈터는 김효식에게서 강인함과 선량함을 함께 본다. 김효식이 귀국해서도 쏘냐와 사장선생을 잊지 않겠다고 말하니 윈터는 저도 모르게 고맙다고 인사한다. 그날로 윈터는 조선 무역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사죄하고 자국 외무성에도 본인의 요구대로 효식을 귀국시키겠다고 통고한다. 효식이 비자연장수속을 끝내고 여장을 꾸릴 때 윈터는 쏘냐를 시켜 자기 회사의 암호학자료를 수록한 하드원판 5개를 보내준다. 드디어 효식은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출국한지 33일 째였다.

 

무슨 정보기관이 개입한 사건이 아니어서인지 수학자 “망명”사건은 특별한 곡절이 없이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귀국한 김효식은 윈터 회사의 수십 명 연구사 집단이 5년 세월을 바쳐 100자리수까지 연산을 마친 가리쯔 방정식을 전부 검토한 기초에서 새로운 무엇을 얻어낼 계획을 제기하고 수학연구소 소장 김종훈의 지지를 받는다. 혼자서 하면 1년 내지 1년 반이 걸리고 둘이 하면 열 달 정도를 예상한다. 수학연구소에 새로 배치된 3명의 이과대학 졸업생 가운데서 1명을 방조자로 뽑게 된다.

 

“평정서를 보면 세사람의 수학실력은 대학적으로도 다섯손가락안에 들었고 품행이나 조직생활에서도 우수했다.”(229쪽)

 

김종훈이 먼저 만나보니 김세민이란 청년은 김효식 박사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고 암호학에 대해서도 공상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한다. 김종훈의 눈에는 적임자이다. 두 번째 청년은 확률론이 전공으로서 이미 연계가 있는 조종수학연구실로 보내달라 했고 셋째 청년은 처음부터 독자적인 과제를 맡고싶다고 새내기로선 좀 과한 욕망을 표현한다. 조종수학지망생을 젖혀놓은 김세민과 황원혁 사이에서 하나를 골라야 한다. 그런데 김효식의 선택이 흥미롭다. 쾌히 자기 밑에서 일하겠다는 김세민이 아니라 독자적인 과제를 맡고 싶어하는 황원혁을 달라고 한다.

 

“저한텐 방조자가 아니라 저와 경쟁을 하며 과제의 더 많은 몫을 자기가 맡으려고 애쓰는 공동연구자가 필요해서 그럽니다.”(230쪽)

 

김종훈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홍익준의 제의로 김효식이 둘을 직접 만나서 담화하고 고르게 되는데 김세민과의 담화는 아주 즐겁게 진행된다.

 

“매우 영리한 이 청년은 담화의 취지를 이미 알아가지고 효식에 대한 열렬한 존경을 표시하면서 제편에서 먼저 같이 일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황원혁이라는 청년은 앞에 와앉는 자세부터가 맞갖지 않은 인상이였다.
그는 효식이가 암호학에 대해 몇마디 말을 시작하자 앞질러 《효식동지의 연구과제가 몇년이나 걸리겁니까.》하고 퉁명스럽게 물었다.
《2, 3년 아니, 5, 6년이 걸릴수도 있지.》
《그러면 그동안 나는남의 연구사업을 보장만 하다가마는게 아닙니까?》
《왜 보장만 하겠소? 난 같이 일하자는거요.》
《같이 일한다구요?…  임금두 신하들과 같이 일한다고 말하지요.》
《아니요, 난 연구과제를 나누어가지고 같이 일할 공동연구자를 찾는중이요.》
《그게 어디 말이나 됩니가? 효식동지는 박사고 난 초학도인데.》
《난 란류운동의 력학적모멘트들에 대한 방정식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지 암호학분야에선 동무나 다름없는 초학도요.》
《예?》
외로 돌렸던 원혁의 눈꼴이 효식을 움쭉 돌아보았다.
마주보며 효식이가 말을 이었다.
《앞섰다면 시간으로 계산해서 반년정도 먼저라고 할가?… 내가 브룬트스회사에서 암호학자료를 보면서 최신암호방정식들까지 개념적으로나마 체득하는데 스무날이 걸렸소. 난 필요한 자료를 선정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을 소비했으나 동무는 퍽 빠를수 있소. 거기에서 가져온 자료를 다 주겠소.》
《공동연구가 끝난 다음에 어떻게 하겠습니까?》
서슴없이 자기를 겨눈채 비키지 않는 원혁의 눈초리를 보며 효식은 이 친구의 야심이 조련치 않다고 생각했다.
《론문을 두사람의 이름으로 발표하지. 동무의 이름을 먼저 놓겠소.》
그제에야 황원혁이 손바닥으로 제 얼굴을 쓸며 웃음소리를 냈다.
《하하하… 그래서는 안됩니다. 이름순서는 물론이고 활자의 크기로라도 연구에 바친 매 사람의 노력이 공정하게 표시돼야 합니다..》
결국 효식의 요청에 호응한셈이였다.
효식은 직방 물었다.
《그래 나와 같이 일하겠소?》
인차 대답할줄 알았는데 황원혁은 웃입술을 아래턱이틀로 서너번 갉아본 후에야 《예.》했다.”(230~ 232쪽)

 

이 중편소설을 읽으면서 필자의 입가에 미소가 넘실거린 게 이 대목이다. 선배, 후배를 따지면서 선배는 기합을 주고 후배는 설설 기는 게 아니라 각자의 개성이 충분히 발휘되는 인간관계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김세민이 뭐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그의 성격으로는 새로운 분야의 개척이 어려울 테고 기존성과에 빛을 더하는 일을 더 잘할 것 같다. 아무튼 조선소설이나 영화, 드라마들에서는 사교성이 지나치게 좋은 사람들의 이미지가 별로이니, 외부인사들이 조선사람들과 접촉할 때에도 착착 감겨드는 식으로 나서는 게 오히려 부작용을 놀 수 있음을 여기서 귀띔한다.

 

연구소에서는 암호연구조에 방을 하나 내준다. 효식은 서로 방해가 되지 않도록 컴퓨터를 반대되게 놓아 서로 등을 지고 앉으려 하는데, 원혁은 컴퓨터를 나란히 놓자고 주장한다. 서로 방해가 되지 않고 서로 자극이 된단다. 헛눈 파는 일도 없게 되고 졸지도 않게 된단다. 하여 두 사람은 이따금씩 긴장한 옆얼굴을 띠여보면서 경쟁적으로 연구를 진행한다. 황원혁은 승벽심 또한 굉장히 강해 음식을 먹을 때에도 효식이보다 한 알이나 반쪽이라도 더 먹고야 자리에서 일어난다.

 

원혁은 하드원판 5개에 들어있는 암호학자료들을 20일 남짓한 기간에 파악했고, 그동안 효식은 가리쯔 방식검산과정의 공정별계산에 쓰일 공리와 정리, 방정식들을 분류하여 놓았다. 수십 명 연구사들이 5년 동안 한 일을 두 사람이 검산하는 게 간단치 않다. 보름 정도 지나 둘은 각기 가리쯔방식 계산자들이 공연히 우회한 지점들을 발견한다. 적중한 새 공식을 찾아내지 못해 몇 십리 길을 에돌아 간 것이다. 그 다음 발견한 결점은 해킹당할 지점들이 여러 군데인 것이었다. 가리쯔방식의 결점들과 암호학의 수학적 모향이 차차 명확히 파악되나, 새로운 방식의 착상은 쉬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느덧 가을에 들어서면서 몸이 좋지 못하던 효식은 어느 날 컴퓨터 키보드 위에 볼을 대고 엎딘다. 원혁은 잠시 눈을 붙이는 모양이라고 생각했으나 한참 지나도 그 모양이다. 급히 의사와 구급차가 달려오고 평양 제2인민병원에 실려간 효식의 뇌를 찍은 CT사진에는 오른쪽 뇌반구에 손톱만한 세 군데의 허혈반점이 발견된다.
치료전투 끝에 효식은 닷새 만에 의식을 차리고 혜영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 정양한다. 중학교 시절의 옛 스승들에게서 여전히 인생철리를 배운다. 옛 교장은 효식의 망명 얘기를 믿지 않았다고 한다. 옛 동창생들의 반향은 다르다.

 

“그때 효식을 맞이한 동무들의 반가움은 농촌청년들답게 단순하면서도 깨끗한것이였다.
《효식아, 고문 쎄게 하던?》
《야, 반역자 처단하러 특공댈 무어 보내려댔다.》
《여, 한달나마 외국물 먹고온 이 자식 갈매천에 잡아넣구 깨끗이 씻어내자.》”(243~ 244쪽)

 

순박한 사람들 속에서 요양하던 김효식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보내준 약재들을 받는다. 과학원 사업을 요해하다가 김효식의 병에 대한 보고를 받고서 보낸 약재들이다. 깊은 감동을 받은 김효식이 어머니의 무덤을 찾아보고 혜영이와 함께 숲속을 거닐면서 생각의 나래를 펼친다. 문득 영감이 떠오른다. 새로운 수학적 모형이 눈앞에 그려진다. 저도 모르게 소리를 친 효식은 혜영의 손을 뿌리치고 내닫더니 관리위원회에 가서 평양의 황원혁에게 전화를 건다.
이튿날 김효식은 리혜영과 함께 평양으로 간다. 보름 만에 김효식과 황원혁은 타원곡선산수를 이용한 프락탈모형방식의 새로운 암호화연산공식을 만들어낸다.

 

“온 연구소가 달라붙어 공식검토에 들어갔다. 다음으로 그 연산공식에 의한 암호화프로그람을 만들어 중앙은행과 각 도 은행사이의 인터네트결재에 적용하였다. 그리고 그들자신이 해커가 되여 그 인터네트망에 거짓수자들을 조작하여 잠입시켰으나 모두 발각되고 은행들사이의 결재비밀은 엄격히 고수되였다. 연산속도는 가리쯔방식의 2배, 연산용적은 1/3. 과학원심의위원회에서는 조선의 수학자들이 발명한 새로운 암호화공식을 세상에 공포하기로 하였다.
국제암호학련맹에 보낸 론문의 표제는 다음과 같다.
《2진체상의 타원곡선산수를 리용한 프락탈모형의 새로운 암호화방법》…”(252쪽) 

 

월리가 제일 먼저 축하전보를 보내고 세계의 여러 지역들에서 연거푸 전보들이 날아든다.
국제암호학연맹총회로 떠나기에 앞서 김효식은 리혜영과 결혼식을 치른다. 5살 때 만났던 두 사람이 33살에 부부로 된 것이다. 김효식은 고향과 조국 앞에 얼마만큼이라도 보답했다고 긍지를 느끼고 기다려준 혜영에게 감사를 드린다.

 

《마가을의 청량한 하늘에선 고향의 산새들이 여전히 즐겁게 지저귀고있었다.》(253)라는 말로 소설이 끝난다.

 

소설은 약간 의문을 남긴다. 조선은 인터넷과의 접촉이 극히 제한되었다는데,  “다음으로 그 연산공식에 의한 암호화프로그람을 만들어 중앙은행과 각 도 은행사이의 인터네트결재에 적용하였다. 그리고 그들자신이 해커가 되여 그 인터네트망에 거짓수자들을 조작하여 잠입시켰으나 모두 발각되고 은행들사이의 결재비밀은 엄격히 고수되였다.”니 말이다. 조선 은행들이 조선의 내부망으로 연결되었다고 보면 문제가 없을 텐데 왜 “인터네트망”이라고 했을까? 아무튼 소설의 묘사를 통해 조선의 과학자들이 암호학을 연구하면서 해킹과 반해킹을 시험해봄을 알 수 있다. 소설이 묘사한 20세기 말에는 암호학이 조선에서 몇 사람의 연구로 첫 걸음마를 뗐는데 근 20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연구대오의 규모가 상당하리라는 걸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단 한국의 일부 언론들과 “전문가” 그리고 수사기관들이 걸핏하면 떠드는 것처럼 조선의 인터넷공격능력이 세계 최고여서 해커들이 중국에 거점을 두고 한국 농협을 비롯한 전산망에 침투했는지, 동남아의 무슨 은행에 들어가 돈을 빼냈는지, 미국 소니회사에 들어갔는지는 필자가 이렇다 저렇다 단언할 바가 아니다. 지금까지 조선의 비밀을 해킹으로 얻어냈다는 소리는 나오지 않았으니까, 조선의 방어능력은 대단함을 미뤄볼 수 있다.

 

이번에 글을 쓰기 위해 소설을 다시 읽으면서 약간 불만스러웠던 건, 김효식의 “망명”을 기정사실화하여 리혜영 등에게 커다란 고통을 안겨줬고 그밖에도 불미스러운 언행들이 적잖았던 홍익준이란 인물이 왜 그렇게 됐는지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못한 점이었다. 
홍익준은 대학의 담임시절에 학부장이던 김종훈을 찾아와 학부대항 문답식 경연에서 김효식을 빼달라고 요구한다. 문답식 경연의 구체적인 내용은 소개되지 않았는데, 필자의 어슴푸레한 인상으로는 그런 부류의 문답에 정치와 시사에 대한 내용들이 많았다.
홍익준이 내세운 이유는 전국대학생과학토론회에 내놓을 논문을 김효식이 준비한다는 것이다. 김종훈은 김효식의 요구임을 확인하고 효식을 사무실로 부른다. 토론회는 3개 월 뒤에 진행되는데 열흘 동안만 하루에 한두 시간씩 시간을 내면 될 문답식 경연이 논문집필에 방해될 리 있는가고 묻는다. 김효식의 머리가 수그러진다. 김종훈은 이탈리아 작가가 쓴 소설 《쿠오레》를 보았느냐고 묻는다. 19세기 이탈리아의 아키치스가 쓴 유명한 작품은 “한 이탈리아 학생의 일기”라는 부제가 붙었는데 을 중국에서는 《사랑의 교육》이나 《사랑의 학교》라는 제목으로 번역출판되었고 한국에서는 어떻게 번역됐던지 기억나지 않는다.

 

김종훈은 《쿠오레》에 나오는 펠보니 선생과 효식을 가르친 자강도 산골학교의 수학선생이 “다 제자들을 위하여 자기를 아낌없이 바친 량심적이고 선량ㅎ나 교육자들인것만은 분명한데 그들에게서 서로 다른 점은 무엇일가?”(109쪽)라고 묻는다.
김효식은 꼭같지는 않다고, 펠보니는 소학교 교원이지만 자신의 선생님은 중학교 교원이고 또 여자라고 어정쩡하게 대답한다.
김종훈은 유감스럽다고, 그처럼 두뇌가 명석한 효식이 자기 선생을 그런 정도로 밖에 인식한다고 실망스러워한다. 김효식의 고개가 다시 꺾여진다.

 

“김종훈이 강의하듯 말했다.
《펠보니선생은 서로 물고뜯는 자본주의사회에서 불쌍한 한 아이를 위해 사랑을 바친 인도주의적인 덕행의 소유자라면 호식의 수학선생님은 서로 돕고 이끄는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하에서 자기가 담당한 학생들을 나라의 역군으로, 혁명의 기둥감으로 키우려고 애쓰는 우리 시대 혁명가요. 이런 정신적차이도 분석할줄 모르고… 그건 효식이가 전공만 잘하면 된다고 하면서 주체사상학습과 당정책학습을 소홀리 했기때문이요.
내 생각엔 제국주의자들이 지식인들에게 던지는 유혹의 미끼를 제일먼저 받아물 사람은 바로 효식이와 같은 사람이라고 보오. 자기 재간만 인정해주고 자존심만 만족시켜준다면 효식인 그자들이 요구하는 미싸일탄도를 서슴없이 계산해줄거란 말이요!》
《아니, 선생님!… 》
효식은 아연해서 부르짖었다.
김종훈은 김효식이라는 한 인간의 생활속에서 벌어진 구체적인 세부를 출발점으로 해서 이야기를 시작한 다음 론리적인 추리를 거쳐 수학적인 귀납법으로 전공만을 주장하는 일부 과학자들의 치명적인 약점을 정확히 타격하였다.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우리 과학자들에게는 주체의 사회주의조국이 있다.”(109~ 110쪽)

 

김효식의 유혹극복에 김종훈이 미리 놓아준 일침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보인다.
《아름다운 산》을 읽고 또 간만에 “통일문화 가꿔가기”를 쓰면서 거듭 떠오른 게 지난 해부터 한국의 일부 언론들이 열심히 띄워줬던 “탈북 수학영재”였다. 20살 미만의 수학올림픽 은상 수상자가 보통 사람들보다야 수학에 능하겠지만, 공정한 국제시합에서 은상만 탔다는 건 재능의 한계를 드러낸다. 물론 시합과 연구는 다른 개념이라 혹시 어느 분야에서 특출한 재능을 드러내 일정한 업적을 쌓을지도 모르나, 한국의 과학연구실태에 비춰보면 장미빛 환상을 갖기 어렵다. 어린 나이에 특별한 선택을 한 사람이 한국식 술문화에나 젖어들어 술이나 마시다가 타고난 재능을 낭비하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2017년 6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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