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일침353] 10월 26일 단상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7/10/27 [05:44]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독재자 박정희가 10.26일 여성들을 끼고 술을 마시다 부하 김재규 총에 맞아 사망했다. 하지만 그가 남긴 박근혜, 최태민과 최순실이 다시 이 나라를 온통 적폐의 온상을 만들었다.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마을 어귀의 나무그늘에 앉아있는 노인에게 한 여행자가 다가와 물었다. 

“이 마을에서 어떤 위인이 태어났습니까?” 

“아기들만 태어났네.” 

세상에는 타고난 위인이 없듯이 0시부터 중요했던 날짜는 없다. 시간이 흐르다나니 어떤 사건이 발생하여 역사에 기록될 따름이고, 따라서 사후에 그 중요성을 알게 된다. 10월 26일도 그러하다. 

 

1979년 8월 31일에 중국 국무원 문화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성립 31돌을 기념하여 9월 9일부터 15일까지 베이징(북경), 상하이(상해), 선양(심양), 창춘(장춘) 등 16개 도시에서 “조선영화주간(朝鲜电影周)”활동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상영된 영화들로는 《금강산처녀》, 《생활의 길을 따라서》, 《보이지 않는 요새》,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 등이 있었다. 그중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는 1979년에 제작된 새 영화였다. 

 

대도시가 아닌 조선족 집거지역들에서는 10월에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가 상영되었는데, 공교롭게도 필자는 병으로 상영기간을 놓쳤다. 외출이 가능해 진 후 동창생들이 영화가 정말 재미있었다고 말하여 얼마나 부러웠던지 모른다. 예전에 이등박문이 꼭같이 생긴 대역 6명을 데리고 차에서 내렸는데 안중근 의사가 정확히 진짜 목표를 쐈다는 전설도 들으면서 영화를 구경한 사람들이 부러웠고 시샘까지 났었다.

 

그달 말의 일요일(찾아보니 10월 28일이었다) 오후에 동네 친구들이 모여 노는데 한 애가 “남조선의 박정희가 죽었다더라”고 말했다. 다른 애들이 모두 반신반의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 라디오방송과 신문들이 확인해주었다. 그러니까 제일 먼저 그 소식을 퍼뜨린 애는 식구들이 “남조선방송”을 듣고 한 말을 옮겼던 모양이다. 이듬해 중국 신문들이 박정희 저격사건경과를 연재하여 인기를 끌었고, 6월에는 시사출판사(时事出版社)가 《朴正熙血溅宫井洞(박정희가 궁정동에 피를 뿌리다》라는 소책자도 출판되어 꽤나 팔렸다. 

 

한편 홍콩을 거쳐서 멀리 에돌아 들어온 어느 한국잡지가 재판과정을 소개했는데 현장에 있었던 2명의 여자들이 걸어가는 뒷모습을 싣고 “*양”이라던가 칭했던 걸 식구들이 보면서 수군거렸던 일도 인상에 남는다. 

중국의 언론들과 책자 그리고 한국잡지 덕분에 저격사건이 10월 26일에 일어났음을 기억하게 되었고, 마침 중국인민지원군 항미원조 참전기념일로서 너무나도 잘 아는 10월 25일 뒤에 이어졌으므로 절대 잊어버리지 않게 되었다. 

 

조선예술영화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를 필자가 실제로 본 건 2005년에 DVD를 통해서였고, 역시 그해에 인터넷으로 검색하다가 안중근 의사가 청나라 하얼빈(할빈)에서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을 저격한 날짜가 1909년 10월 26일임을 알게 되어 70년을 사이 둔 놀라운 일치에 깜짝 놀랐다. 

 

이러저런 이유로 안중근 의사를 기념하는 사람들은 적잖고 진실과 거짓, 허풍들이 뒤섞인 책들도 숱해 나도는데 10월 26일을 저격일로 크게 기념하는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다. 그와 달리 박정희 서거(?)일이라고 기념활동을 벌리는 한국사람들은 꽤나 된다. 하기는 박정희 고향에서는 그를 반인반신으로 믿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완전히 신으로 떠받드는 사람들도 있다니까, 기념활동의 존재는 놀라울 게 아니다. 

 

금년 7월에 필자가 정문일침 291편 “박정희 기념우표 취소는 조금 유감”(www.jajusibo.com/sub_read.html?uid=34536)에서 박정희 출생(탄신?) 100돌 기념우표발행이 취소된 데 대해 나름 주장을 펼쳤더니, 심하게 나무라는 독자들이 있었다 한다. 박정희처럼 미워하는 사람들과 숭배하는 사람들이 극과 극을 이루는 경우도 흔치는 않다. 더욱이 탄핵을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운명과도 얽히다나니 논란이 한결 치열해진다. 

 

자유한국당이 박근혜 출당을 추진하는 현황이라, 10월 26일 자유한국당의 정객 류석춘 씨가 박정희 추모식장에 갔다가 박근혜 지지자들에게 욕을 먹었다는데, 다음 달 박정희 100돌 생일에는 어떤 진풍경들이 벌어질까 벌써부터 궁금해난다. 

필자는 박정희- 박근혜의 무오류를 믿는 골수 지지자들이 자유한국당을 규탄했다는 기사를 접하고 다른 장소에서 벌어진 규탄을 연상하고 피식 웃었다. 

 

언젠가 중국의 탈북자 송환에 항의한다고 서울 주재 중국대사관 앞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한자와 영문으로 구호가 찍힌 플랜카드가 가관이었다. 한자들이 “中國 蠻行 糾彈”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글 한자음으로 읽으면 “중국 만행 규탄”이니 말이 되지만, 중국어로는 어순이 틀리거니와 단어들도 잘못 썼다. “蠻行(만행)”과 “규탄(糾彈)”이 한자어이기는 해도 중국어에서는 쓰이지 않는다. 하기에 그 여섯 글자를 본 중국인들은 무슨 소린지 알 리 없고 따라서 시위자들이 일껏 항의한 효과도 제로이다. 필자야 물론 어떤 단어들을 어떻게 맞춰야 중국인들에게 항의메시지가 정확히 전달되는지를 잘 알지만, 그런 사람들이나 좋아할 일을 왜 하겠는가? 

지난해부터 국정원과 청와대가 개입한 “관제데모” 내막이 차차 드러나는데 돈값을 못하는 엉터리 플랜카드를 누가 제작했는지도 밝히면 필자 같이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속이 시원하겠다. 

 

전날의 시위자들이 과녁을 잘못 겨눈 무효과 시위를 벌렸다면, 오늘의 박근혜 지지자들은 가뜩이나 몸집이 줄어든 우익보수를 더 잘게 쪼개는 역할을 했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그들이 최대 적수로 삼는 사람들이 퍽이나 좋아할 일을 했다고 평할 수 있다. 역사에 남을 정도까지는 되지 못하더라도 뒷날 누군가 2017년 10월 26일을 박근혜 지지자들이 자충수 둔 날이라고 묘사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10월은 자주시보 후원확대의 달입니다.

기자는 퍽 늘었는데 점점 정기후원이 줄어들어 후원히 절실한 상황입니다.

애독자 여러분들의 따뜻한 후원격려부탁합니다.

관련 기사 바로 가기 : www.jajusibo.com/sub_read.html?uid=35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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