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역사이야기75] 고구려 안장왕의 사랑이야기1
이용섭 기자
기사입력: 2017/11/03 [03:48]  최종편집: ⓒ 자주시보
▲ 고구려 고분벽화의 씨름그림 

 

▲ 고구려의 개마무사     ©자주시보

 

서기 5세기 말에 들어서면서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 사이에는 어느 정도 힘의 균형이 갖추어지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삼국의 쟁패전도 치열하게 벌어졌다. 고구려 제22대 안장왕(安臧王)과 백제 한 지방의 장자(長子)인 한씨(韓氏)의 딸 한주(韓珠)와의 아름다운 그러나 목숨을 건 사랑이야기가 펼쳐지게 된다. 또한 안장왕과 한주라는 평범한 평민 출신의 여자와의 사랑은 양국 사이에 전쟁으로까지 비화되는 국가와 국가 사이의 문제로까지 확대된다.

아래에 ‘해상잡록(海上雜錄)’에 있는 안장왕과 한주의 사랑이야기를 단재 신채호 선생이 주역하여 조선상고사(朝鮮上古事)에 실어놓은 원문 전문을 먼저 올려준다. 

‘안장왕과 한주의 사랑이야기’가 가지게 되는 역사적, 문화적 의미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 상세하게 다룰 것이다. 

 

▲ 고구려 무용총 벽화     ©

 

 

안장왕의 연애전쟁과 백제의 패퇴

 

고구려 안장왕은 문자왕의 태자인데 그가 태자가 되었을 때에 일찍이 상인 행장을 하고 개백(皆伯, 지금의 고양 행주 원주)으로 놀러나갔다.

당시 그 지방의 장자인 한 씨의 딸 주(株)는 절세의 미인이었다. 안장왕이 백제 정찰관의 눈을 피하기 위하여 한 씨의 집으로 도망가서 숨어있다가 주를 보고 놀라고 기뻐하여 드디어 몰래 서로 정을 통하고 부부가 되기를 약속했다. 그 후 은밀히 주에게 ‘나는 고구려 태왕 태자이니 귀국하면 대군을 거느리고 와서 이 땅을 취하고 그대를 맞아갈 것이다.’라고 말하고는 도망하여 귀국하였다.

 

그런데 당시의 백제 태수(太守)가 한 씨의 딸 주가 미인이라는 소문을 듣고는 그 부모에게 청하여 그녀와 결혼하려고 하였으나 한주는 죽기를 결심하고 거절하였다. 그러나 부모의 강박과 태수의 진노(震怒)가 보통이 아니었다. 이에 한주가 어쩔 수 없이 ‘제가 이미 정을 준 남자가 있습니다. 그가 멀리 나가서 돌아오지 못하였으나 그 남자의 생사 여부나 알아본 뒤에 결혼하겠습니다.’라고 하였더니, 태수는 더욱 크게 화를 내면서 ‘그 남자가 누구냐, 어째서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느냐, 그는 틀림없이 고구려 간첩이므로 네가 말하지 못하는 게 아니냐! 적국의 간첩과 통하였으니, 너는 죽어도 죄가 남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그녀를 옥에 가두어 사형시키겠다고 위협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또 온갖 감언으로 꾀이었다. 주가 옥중에서 노래하여 말하기를,

 

‘죽어죽어 일백 번 다시 죽어 

백골이 진토(塵土)되어 넋이야 있든 없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 있으랴’

 

하니, 듣는 자마다 눈물을 흘렸으나, 태수는 이 노래를 듣고 더욱 주의 뜻을 돌릴 수 없음을 알고 죽이기를 결정하였다.

안장왕이 한주가 갇혀있다는 사실을 은밀히 탐지하여 알고 나서는 더할 수 없이 속이 탔으나 그를 구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여러 장수들에게 조서(詔書)를 내려 명하였다. ‘만일 개벽(皆伯縣)을 회복하여 한주를 구해내는 자가 있으면 천금의 상금과 만호후(萬戶侯)의 관작(官爵)을 상으로 줄 것이다.

그러나 그 현상(懸賞)에 응모하는 자가 하나도 없었다.

 

안장왕에게는 안학(安鶴)이라는 이름의 친여동생이 있는데, 그 또한 절세의 미인이었다. 그는 늘 장군 을밀(乙密)에게 시집가려고 했으며 을밀 또한 안학을 사랑하여 그를 아내로 맞이하려 하였으나 왕은 을밀의 문벌(文閥)이 낮고 한미(寒微)하다고 해서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을밀은 병을 핑계대고 벼슬을 버리고 집에서 쉬고 있었다.

이때에 이르러 왕의 조서를 듣고 왕을 찾아가 뵙고 말했다.

‘천금의 상금과 만후의 관작은 다 신이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신의 소원은 안학과 결혼하는 것뿐이올시다. 신이 안학을 사랑함이 대왕께서 한주를 사랑하심과 마찬가지이니 대왕께서 만일 신의 소원대로 안학과의 결혼을 허락해 주신다면, 신 또한 대왕의 소원대로 한주를 찾아 올리겠나이다.

왕이 여동생 안학을 아끼는 마음보다 한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강하여, 마침내 하늘을 가리켜 맹세하고 을밀의 청을 허락하였다.

 

을밀이 해군 5천을 거느리고 해로로 떠나면서 왕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신이 먼저 백제를 쳐서 개백현을 회복하고 한주를 살리겠사오니, 대왕께서는 대병(大兵)을 거느리시고 천천히 육로로 쫓아오시면 수십 일이 안 되어 한주를 만나시게 될 것입니다.’하고 비밀히 결사대 20명을 뽑아 미복(微服)에 무기를 감추어 가지고 미리 앞에서 개백현에 들어가게 하였으나, 백제의 태수는 이를 깨닫지 못하였다.

 

태수의 생일에 관리와 친구(벗)들을 모아 크게 잔치를 열고, 여전히 한주가 마음을 돌리기를 바라고 사람을 보내어, ‘오늘은 나의 생일이다. 오늘 너를 죽이기로 결정하였으나, 만약 네가 마음을 돌린다면 곧 너를 살려줄 것이니, 그러면 오늘이 너의 생일이라고도 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꾀여 말했다.

그러자 한주가 대답하여 말했다. ‘태수가 주의 뜻을 빼앗지 않는다면 오늘이 태수의 생일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태수의 생일이 곧 주의 죽는 날이 될 것이며, 주의 생일이면 곧 태수의 죽는 날이 될 것입니다.’

 

태수가 그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빨리 사형을 집행하라고 명령을 내리자, 을밀의 부하 장사들이 춤추는 손님(舞客)으로 가장하고 연회석으로 들어가, 칼을 빼어 많은 빈객(賓客)들을 살상하고, 고구려 병 10만 명이 이미 입성하였다고 외치니, 성안이 온통 소란해졌다.

을밀이 이에 군사들을 몰고 성을 넘어 들어가 감옥을 부수고 한주를 해방시키고 성안의 모든 창고들을 봉해놓고 안장왕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한강 일대의 각 성읍(城邑)을 쳐서 항복시키니, 백제가 크게 놀라 소동(騷動)하였다. 

이에 아무런 장애 없이 백제의 여러 군(列郡)을 지나 개백현에 이르러 한주를 취하고 안학을 을밀에게 시집보냈다.<조선상고사 단채 신채호 원저 / 박기봉 옮김>

 

이상은 단재 신채호 선생이 ‘해상잡록’에 실린 고구려 제 22대 안장왕과 백제 장자 한 씨의 딸 한주와의 국경을 넘은 사랑이야기를 조선상고사에 기록해 놓은 내용이다.

얼핏 보면 간단한 것 같은 위 ‘안장왕의 사랑이야기’의 내용에는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인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주 후속 연재기사에서 상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2017년 10월 24일 

서울구치소에서 이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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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찾자 17/11/03 [07:56]
언제면 우리도 고구려를 되찾겠는지,북과 남이서로싸움질만하다나면 고구려는 고사하고 두개조선으로여영영갈라질수있다.사대망국에서벗어나우리민족끼리힘을합쳐통일국가이루고남쪽의경제력과북쪽의군사력을 다합쳐부강조선건설하고빼앗긴고구려도되찾자는것이나의평생소원이다.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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