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문화 가꿔가기21] 북의 수학영재 육성 비결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7/12/10 [00:0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세계 수학올림피아드대회에 참가한 북 청소년 선수들     ©자주시보

 

▲ 국제 수학올림피아드 시험을 치르는 장면 

 

언젠가 한국 사이트에서 “수포자”라는 단어를 처음 볼 때 뭔가 바라던 일이 수포(물거품)로 된 사람을 가리키는 줄로 여겼다. 그런데 “수학포기자”의 준말이라기에 웃음을 터치고 말았다. 

사실 인생 수십 년에 미적분이나 입체기하문제를 풀 일이 없는 사람들로서는 중학교, 고교, 대학에서 심오한 수학을 배울 필요성에 회의를 느끼게 마련이고, 자식들이 수학 때문에 아우성치는 게 안쓰럽기도 하겠다. 

 

상당수 사람들의 공포와 증오의 대상으로 되는 수학이란 무엇인가는 물음에 사람마다 답은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밥벌이의 훌륭한 수단일 수 있다. 예컨대 미국에 간 중국인들 가운데는 영어를 잘 하지 못하나 수학실력 하나로 좋은 일자리를 찾은 사람들이 꽤나 된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명예와 재부를 얻는 길일 수도 있다. 수백 년 전 유럽에서 난제제출과 풀이가 유행되고 대결과 도박까지 진행되었던 게 전형적이고, 근년에 간간히 보도되는 도박판의 비밀을 밝혀내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건들도 그러하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훌륭한 두뇌게임일 수도 있다. 

물론 가장 간단한 대답은 교과서적인 “수학은 모든 과학의 기초이다”이겠다. 한 개인에게는 어느 과학분야에서 큰 성과를 거두는 토대로 되고, 한 나라에게 있어서는 전반적인 국력을 강화하는 토대로 된다. 

 

수많은 과학연구가 이러저런 도구와 계기들을 필요로 하는 것과 달리, 수학은 종이 몇 장, 연필(혹은 펜) 한 대면 손을 댈 수 있고 심지어 머리 하나만 있으면 어디서나 사색할 수 있으므로 인구가 적은 나라들에는 특히 매력적이다. 

조선(북한)은 정권창립 초기부터 기초과학연구를 중시해왔고, 근년에 위성(남에서 말하는 로켓), 미사일, 핵 및 여러 분야에서 수많은 성과를 발표하는 게 토대가 단단한 덕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조선에는 수학자나 수학영재를 다룬 문학작품들이 적잖아, 필자가 전날 일부 소개했었다. 이번에는 연구자나 영재가 아니라, 수학자와 영재들을 키워낸 교육자를 찬미한 단편소설을 한 편 소개하련다. 지난 10월 말 통일문화 가꿔가기 18편 “북에서 모범 검사의 모습이란”(www.jajusibo.com/sub_read.html?uid=36358)에서 거든 문학작품집 《군자리처녀》(탁숙본 지음, 문학예술출판사 2017년 4월, 도합 312쪽)의 236~262쪽에 실린 《삶의 자취》이다. 

 

2016년에 창작된 작품은 일인칭으로 되었는데 서술자는 유네스코와의 사업 때문에 여러 해 “재외생활”을 하던 교육성(교육부)의 간부 전 아무개이다. 평양의 놀라운 변화에 감탄하던 “나”는 해외사업총화를 마치고 딸 영숙이와 함께 조선적십자병원으로 가서 사돈인 윤여방 선생을 문안한다. 윤 선생은 병은 아랑곳하지 않고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과학계 실태와 미래과학자거리의 새 집을 배정받은 감격을 말한다.

 

▲ 미래과학자 거리 [사진제공-신은미]

 

돌아오는 길에서 딸을 통해 윤 선생의 심장병상황과 평소 생활을 알게 된 “나”는 윤 선생이 교단에서나 가정에서나 훌륭한 교육자라고 말하다가 문득 생각나서 윤 선생의 명예칭호가 뭐냐고 묻는다. 헌데 딸이 딱히 모르고 시아버지가 어떤 높은 표창과 훈장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나”의 나무람을 받은 영숙은 오히려 그런 건 잘 모르지만 한 가지만은 정확히 알고 있다고 자신 있게 대답한다. “내”가 뭔가고 다그쳐 물으니 영숙이는 또박또박 대답한다. 

 

“시아버님은 명예나 훈장이나 표창하고는 천리담을 쌓고 살고계신다는거예요, 천리담!”(240쪽) 

 

순간 “나”는 공연한 걸 물었다는 생각에 얼굴이 뜨거워나 아무 말도 못한다. 딸을 집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윤 선생과의 사연을 추억한다. 

 

1950년대 말, 교원양성반을 마친 “나”는 평양제1고급중학교 초급반 수물분과 물리교원으로 배치되면서 분과장이자 노동당 세포비서인 수학교원 윤여방과 알게 된다. 분과에 4명은 여자고 남자교원은 윤 선생 1명밖에 없었으며 물질적토대가 매우 빈약한 학교에서 남성들의 손이 절실히 필요한 때라 남녀교원들이 모두 “나”를 환영한다. 

 

윤여방은 전쟁기간에 김일성 최고사령관의 결정으로 대학들이 다시 운영될 때 전선에서 총을 펜으로 바꿔쥐고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편을 잡은 실력가였다. 대동강 기슭에 일떠선 노동자아파트 2층에서 사는 윤 선생의 아내는 영예군인이었고 세 아이는 모두 전선에서 피흘리며 함께 싸웠던 전우들의 자식이다. 윤 선생은 평양 오탄합숙에서 독신생활을 하는 “나”를 가끔 일요일에 자기 집으로 부르곤 했다. “합숙생활은 궁금할 때가 많을 거요”(242)가 이유다. 여기서 “궁금하다”는 뭔가 먹고 싶어 속이 허전하다는 뜻이다. “나” 또한 쉬는 날이면 때때로 윤 선생의 집에 찾아갔는데, 어느 일요일에는 공교롭게 저녁식사 때 들어갔다. “내”가 되돌아서려 하니 윤 선생은 팔을 붙잡아 끌면서 부득부득 식탁 앞에 앉힌다. 합숙밥이야 어디 성차겠느냐고 말하면서. 

 

단란한 분위기에서 식사하는데 갑자기 식탁 밑에서 쟁강 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 수저를 멈추고 발치를 내려다보니 4살 짜리 영철이가 국사발을 옮기다가 바닥에 떨여뜨려 깨지는 소리였다. 옆의 엄마가 꾸지람을 하려고 눈길을 흘기는데, 윤 선생이 재빨리 식탁 위의 고뿌(컵)을 다쳐 상 위를 물이 질벅하게 만든다. 눈길들이 윤 선생에게 쏠리니 그가 한 말이 수십 년 뒤에도 “나”의 기억에 생생히 남는다. 

 

“내 나이 몇 살인데 이런 실수를 하는데 4살짜리야 더 말해 뭣하겠소. 여보,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아이를 키우고있다는걸 알아야 하오.”(같은 쪽) 

 

하여 “나”는 부모들에게 중요한 게 뭔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주인공의 특징을 잘 살린 대목이므로 길더라도 2페이지 가량 분량을 그대로 인용한다. 

 

“아이들의 자존심과 존엄을 지켜주는것, 이것이야말로 부모들이 갖추어야 할 품성에서 중요한것이 아니겠는가고. 깨여져나간 그 어떤 물건보다 아이들의 자존심이 더 소중하고 중요하다는것, 이를테면 아이들의 공에 맞아 깨여져나간 유리창이나 아이들의 장난에 의하여 꺾어져버린 꽃나무나 나무가지들은 이미 죽어버렸다는것, 그렇다고 하여 무작정 욕설로 아이들의 자존심마저 손상시켜서는 안된다는것, 깨우쳐주면서 긍정에로 이끄는것을 홀시하게 되면 우리 아이들의 정신세계에까지 영향이 미치게 되는데 이것이야말로 일실다실이 아니랴 하는 생각을 하게 되였다. 

문득 지난해 어느날 이 집에 왔을 때 목격한 일이 떠올랐다. 

내가 그 집에 들어섰을 때 부엌바닥은 온통 우유《바다》였다. 알고보니 영철이가 식장에서 우유병을 꺼내다가 병이 미끄러워 바닥에 떨어뜨려 그 지경이 되였던것이다. 뒤늦게 이 사실을 발견한 윤 선생은 우유《바다》광경앞에서 기가 차련만 그의 표정은 매우 침착했다. 그런 경우 나같으면 아이의 엉치를 철썩 하고 때리거나 아니면 큰소리를 치기마련이였겠지만 그의 말이나 행동은 달랐다. 그는 첫눈에 사태의 원인을 꿰뚫고 아이에게 말했다. 

《얘야, 도대체 너는 무슨 걸작품을 만들려고 그러느냐? 이런 엄청난 우유세계는 처음 보는구나. 어쨌든 이미 시작한 일이니 우유를 가지고 네 마음대로 놀아봐라. 그런 다음 싫증이 나면 아버지를 찾아라. 아버지는 웃방에서 선생과 토론할테니 필요하면 찾거라. 그때 나하고 바닥을 닦아내자꾸나.》 

그날 영철이는 아버지의 말대로 바닥에 쏟아진 우유를 가지고 장난을 치며 시간가는줄 모르고 놀았다. 그러다나니 옷은 두말할것도 없고 얼굴이며 머리칼까지 온통 우유로 매닥질하여 주제가 말이 아니였다. 내가 윤 선생과 토론을 마치고 다가갔을 때까지 영철이는 여전히 장난에 미쳐 내가 다가가는것도 느끼지 못하고있었다. 아이들은 보통 한가지 장난엔 인차 싫증을 느끼며 다른것을 요구하는것이 상례이다. 

그런데 영철이는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우유를 가지고 시간가는줄 모르고 놀았다. 

나는 그 광경앞에서 입을 딱 벌리였다. 

하지만 윤 선생은 나와 달랐다. 

《영철아, 정말 희한하구나. 이건 분명 <세계지도>가 아니냐? 볼수록 놀랍구나. 그렇지. 여기는 전설에 가라앉았다는 아트란티스대륙 같구나. 현재 세계지도에는 이 대륙이 없지 않니. 그럼 저쪽은 남극, 이쪽은 북극, 우리 나라는 어디쯤 될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그 애가 우유《바다》에서 일어났을 때 윤 선생이 말했다. 

《애야, 실컷 놀았지. 그다음은 어떻게 할가? 이렇게 어지럽혀놓은것을 너는 반드시 치워야 한다는걸 알고있겠지?》 

그 말에 영철이는 응 하고 대답했다. 

《그러면 어떤 식으로 우유를 닦아내면 좋겠니? 해면으로 할가 아니면 비날론걸레로 빨아낼가? 그것도 아니면 막대기밀대로 밀어낼가? 어느쪽이 너에겐 마음에 드느냐?》 

영철이는 해면을 선택했고 그래서 윤 선생은 아이와 같이 우유《바다》를 말끔히 청소하고 옷도 새것으로 갈아입혔다. 그리고는 말했다. 

《애야, 내 말을 잘 들어라. 너는 작은 손으로 큰 우유병을 드는데서 실패해서 이 지경을 만들었지, 우리 위생실로 가서 병에다 물을 채워넣고 그 손으로 옮길수 있는 방법을 네가 알아낼수 있게 함께 해보자꾸나.》 

이렇게 되여 영철이는 두손으로 병의 어디를 잡으면 그것을 떨어뜨리지 않고 안전하게 옮길수 있다는 묘리를 실물을 통하여 체득하게 되였다. 그리하여 영철이는 실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것을 벌써 그때 체득하게 되였고 실수는 결코 실수로 머무르는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반드시 배울것이 있으며 교훈은 성공의 길로 이끌어준다는 리치도 알게 되였다. 

얼마나 교훈적인가. 이날 윤 선생은 영철이한테서 지금까지 체험하지 못한것을 발견하게 되였다고 하면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숨이었는 기질은 찾아내고 그 점을 격려하여 꽃피워줘야 한다고 생각하오.》 

이 말은 3살짜리의 장난질에서 무엇인가 느낀바가 크다는 의미였다. 

나는 이날 윤 선생의 행동에서 부모들이 어린아이들의 잘못을 무턱대고 욕만 할것이 아니라 중요한것은 아이들의 천성적인 기질을 발견하고 이끌어주는것이라는데 대하여 새삼스럽게 느끼였다. 바로 그렇게 키운 영철이는 썩 후날 공화국의 이름있는 위성과학자로 성장하였고 영숙이의 남편이 되였던것이다.”(242~244쪽)

 

윤 선생이 키워낸 다른 한 인재는 최호림이다. 전선동부의 유명한 1211고지전투 전사자의 아들인 그는 선천선신경장애로 말을 못해 1학년에 입학할 때 하마터면 농아학교에 갈 뻔 했는데 청각장애는 없었기에 학교에 받아들여졌고, 어느 학급에 넣는가는 문제가 생겨났다. 교무부에서는 1학년 담임교원으로서 “내”가 담임한 학급에 받으라는 결정을 내렸고, 분과장을 통해 결정을 전달받은 “나”는 선뜻 응하지 못했다. 윤 선생이 힘들게 “나”를 설득하여 최호림의 병력서와 병원감정서도 요해해보았는데 글로 자기 의사를 충분히 표명한다고 소개한다. “나”는 1학년 학급담임이 나 하나 뿐인가고, 학교에서 사회적 분공도 많은 교원에게 하필 그런 학생을 왜 맡기는지 모르겠다고 볼부은 소리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그때 왜 그런 말을 했던지 후회가 된다. 

한참만에 윤 선생은 나에게 한 마디 했다. 

《병원의학감정서에는 참고부호를 치고 이렇게 써있었소. 

<실어증으로 말을 못하는 증상은 본인이 혀의 률동훈련을 부단히 하면 능히 극복할수 있다고 본다.>라고 말이요.》 

《나는 교육자이지 의사가 아니지 않습니까? 선생님은 무엇때문에 의학감정서에 명기된 내용을 말씀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이 제가 왜 그 학생을 맡아 치료까지 하라고 권고하시는지 참 리해하기 힘듭니다.》

우리의 대화는 이것으로 끝났다. 

그후 윤여방선생은 당시 3학년 학급을 담당한 상태였지만 학교 교무지도원과 토론하여 호림이가 망라된 제1학년 3반 학급을 자진하여 맡게 되였다. 그때부터 윤여방선생은 그의 학습지도는 물론 그의 실어증을 치유하기 위하여 할수 있는 노력을 다하였다. 

그는 우선 전문의료부문 선생들을 만나 의학지식을 습득하는 한편 전국적인 범위에서 권위있는 선생들과 련계를 가지고 치료사업을 벌려나갔다. 물론 학생의 어미니 역시 적극적이였다.”(247~ 248쪽)

 

이처럼 누구도 시키지 않았고 강요하지도 않은 일을 찾아한 윤 선생은 혀훈련수단을 연구하여 입에 알맞춤한 구를 만들어넣는 방법을 생각해낸다. 처음엔 메추리알을 넣고 굴려보게 했으나 곧 부스러졌다. 다음에는 맞춤한 차돌을 골라 넣었으나 너무 굳어서 이빨에 손상을 주었다. 다음에는 유기유리구를 만들어 이용하여 하여 끝끝내 최호림이 말을 하게 되었다. 필자 생각에 지금 같으면 무독성플라스틱으로 공을 만들어 사용하면 가장 좋을 것 같다. 

 

한편 그즈음 사회적으로 천리마운동이 벌어지면서 교육부문에서도 천리마학급쟁취운동이 진행됐는데, “내”가 맡은 학급이 제일 먼저 궐기했고 학교의 첫 천리마학급칭호를 쟁취했다. 이런 성과로 “나”는 중앙에서 조직한 전국교육일꾼열성자모임에 참가해 경험토론을 했고, 높은 급의 국가수훈도 받았으며 차차 시와 교육부문에서 제기되는 일들에 많이 관여하게 되었다. 하여 본신 교수사업에 빠지는 때가 적지 않았다. 

어느 해인가 교재집필사업에 동원되었다가 학교에 들렸는데 윤 선생이 학교가 이젠 남의 집 같지 않느냐고 뼈 있는 물음을 던지고는 지금 분과에 물리수업이 걸려있다고 돌아와 교단에 서달라고 부탁한다. 

 

“《선생님, 그런데 어찌겠습니까? 내가 동원되고싶어서 하는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분과장선생님이 이러시면 나도 처신하기가 힘들어집니다.》

《그래요? 나는 선생의 정열과 재능이 아까와서 하는 말이요.》

이것은 윤 선생이 진정으로 나를 위하여 한 말이였다. 

하지만 이날 나는 내가 한 말이 엄격한 의미에서 진심이 아니였다고 말할수 있다. 그때 나는 천리마학급칭호쟁취운동에 궐기하면서 학교에서 제기되는 크고작은 일들을 맡아 처리하는 과정에 학교에서 자기를 내세워주는데 도취되여 그만 자신도 모르게 우월감과 명예에 현혹되여있었던것이다. 

이때부터 나와 윤 선생은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하였다. 

엄격히 말하면 윤 선생쪽에서는 나를 변함없이 따뜻이 대해주었지만 내 자신 그를 경원시했다고 말할수 있다.”(249~ 250쪽) 

 

“나”는 결국 행정 쪽으로 발전하여 한때 윤 선생이 가리라고 소문났던 교육위원회로 자리를 옮겨 나중에는 모 부서의 처장으로서 해외출장과 상주를 하게 된다. 한편 영숙이가 영철이와 결혼한 다음 윤 선생의 생일날에 집으로 찾아갔던 나는 자리에 모인 제자들 중에서 최호림을 보고 놀란다. 김일성 종합대학 수학부에 들어가 공부했고 학급에서 단연 1등을 하는 최우수학생으로서 졸업했고 결혼을 했던 최호림이다. “나”는 사제지간의 뜨거운 정에 인간으로서 교육자로서 큰 충격을 받고 윤 선생의 인간성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놀라운 충격은 그 뿐이 아니다. 교육위원회로 옮겨간 지 썩 후에 해외출장을 마치고 귀국한 “나”는 교육성의 신임 당책임비서가 전날 자기가 일하던 학교의 당비서기에 사업보고를 마친 다음 장시간 회포를 나누다가 의문을 털어놓는다. 전에 교원들은 윤 선생이 성으로 소환된다고 알고 있었는데 어떻게 자기가 오게 되었는가고, 비밀이 아니면 알려달라고 청한다. 책임비서는 윤 선생이 자기를 찾아온 경과를 알려준다. 

 

“어느날 그를 찾아 들어온 윤 선생은 당생활수첩을 펼친채로 정색하여 말했다 .

《비서선생님, 당조직앞에서 터놓고싶은것이 있어 왔습니다.》

《?!》

《그건, 그거… 지난번 우에서 내려온 일군과 담화할 때 좀 께름직한것이 있었는데…》

윤 선생은 갑자르며 말을 못했다. 

《도대체 무슨 소립니까? 윤 선생이 당조직생활에 뭘 개운치 않은게 있습니까?》

당비서가 다우쳐물었다. 

《성으로 소환되는 최종담화시에 나는 갈수 없다고 하면서 그 원인을 제가 메니에르병이 있기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사실은 그런 소견이 약간 있었는데 그걸 과장해서….》 

《메니에르병이란?》

《그 병에 걸리면 때때로 사람이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며 발작시에는 사고력이 비정상으로 되는 병이 아닙니까?.》 

《그래서 전선생을 추천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저는 정말 학교를 뜨기 싫었습니다. 학생들과 헤여지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알만 합니다. 윤 선생의 심정이 리해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갑자기 머리가 방망이에 맞은듯 뗑해오는 강한 충격을 받았다. 나의 입에서는 아- 하는 소리가 저도 모르게 새여나왔다. 

윤 선생은 학교를 떠나기 싫어 그런 생각까지 하면서 그 자리에 나를 추천했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닐수 없었다. 

아, 나는 어찌하여 윤 선생과 같이 오래동안 생활하면서도 그의 진속을 그렇게도 몰랐던가 하는 생각으로 가슴을 쳤다. 

내가 이러는데 책임비서가 말했다. 

《그는 평시에 표창도 훈장도 다 양보했소. 세포비서가 훈장과 표창을 받아 뭘하는가고 하면서 자신에게는 당의 신임이면 된다고 그 모든것을 다 사양했소. 학교를 떠나고보니 그에게 정말 큰 표창 하나 안겨주지 못하고 온것이 후회되오. 이건 내 진심이요.》 

나는 책임비서동지의 말을 들으면서 숙연한 생각에 잠겨 아무 말도 못했다. 

책임비서는 나를 바라보며 한마디 더했다. 

《언제인가… 동무가 큰 훈장을 받은것도 윤 선생의 양보에 따른것이 아니였는지 모르겠소.》 

《?!》

…”(254~255쪽)

 

전에 윤 선생의 성과자료에 기초하여 논문을 써서 교육학계에 이름을 날렸고 윤 선생의 칭찬을 받은 “나”는 언제까지 학교에 있겠는가고 물은 적 있다. 윤 선생의 대답은 “나”의 생각과 너무나도 멀다. 

 

”… 군대에서 포병이라면 마땅히 포수가 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쟁때 나는 1211고지에서 포병으로 싸웠다. 포병부대에는 측지수도 있고 정찰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포수로 복무했다. 교육부문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부문에서 복무하고있다. 하지만 나는 솔직히 교육자 하면 교단에 선 교원을 첫자리에 놓고싶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일생 교단을 지켜갈 결심이다. 

마치도 포병부대에서의 장탄수처럼!…”(253쪽)

 

결국 윤 선생은 한평생 교단에 섰다. 서술이 현시점으로 돌아와 거의 매일 병원에 전화를 걸며 윤 선생의 병치료에 신경을 쓰던 나는 어느 날 심장촬영 관동맹조영소견을 직접 보고 놀란다. 90% 협착 등 상황이 엄중하다. 의사는 관동맥에 폐색되었지만 심장에 우회로가 형성되었다, 이것을 기적이라고밖에는 달리 설명할 수 없다고, 선생은 확실히 자기 직무에 대한 신념의 강자라로 평가한다. 

 

“내”가 이 사실을 교육위원회 책임비서에게 알리고 자리를 같이 하는데, 책임비서가 외국의 최신 수학잡지를 내놓으며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고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재교육의 동향》이라는 글을 읽어보라고 권한다. 글은 우선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츠상을 소개한 다음 얼마 에 진행된 수학올림픽경기에서 최우수상과 1등의 영예가 모두 조선의 청년대학생들에게 돌아갔고, 그 팀을 이끈 교원이 김일성종합대학의 60대의 유명한 최호림 박사였다고 전한다. 

 

“그는 필쯔상후보로 제기하려는 국제수학협회에 자기에게는 필쯔상의 명예보다 더 중요한것이 있다고, 그것은 조국의 명예라고 하면서 세계적인 명예를 조용히 사양하였다. 이번 수학올림픽은 동양에서 혜성처럼 솟구쳐오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눈부신 교육발전을 직접 보게 되는 훌륭한 계기였다고 높이 평가하였다.…》”(257쪽) 

 

책임비서는 “나”에게 오래 전 윤 선생이 종파분자들에 의해 보급이 중지되었던 《김일성원수께 드리는 노래》를 학교에서 가르치던 일을 상기시키면서 윤 선생이 최호림을 비롯한 학생들을 잘 키워냈다고 평한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 후 자주 윤 선생과 자신을 비교해보니 사회적 직무가 그보다 높고 가슴의 훈장도 명예칭호도 그보다 썩 앞서있지만 이상하다. 

 

“왜서인지 생각할수록 지금의 자기자신이 남의 옷을 빌려입은 때처럼 마음이 편하지 않고 부자연스럽기만 했다.》”(259쪽) 

 

윤 선생이 퇴원하여 집에서 안정하게 된다. 그의 80돌 생일에 “나”는 아내와 함께 미래과학자거리로 가서 궁궐 같은 집을 구경하며 감동을 받는다. 아내와 딸이 전실에 상을 차리고 “나”도 일손을 거들어주는데 윤선생의 제자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한다. 그들속에는 당, 정권기관에서 일하는 일군들도 있었고 문학, 예술부문, 출판보도부문에서 일하는 작가들과 기자들도 있다. 초인종이 요란스레 울리더니 나이 지긋한 사람이 젊은 대학생들을 데리고 들어선다. 최호림이다. 

 

“나”와 인사를 마친 최호림은 수학계 성과자료들을 펼쳐놓으며 금색으로 장식한 정교한 함을 꺼내더니 월계수 무늬가 햇살처럼 빛나는 메달을 꺼내들고 윤선생에게 이번 수학올림픽 금메달이라고 알린다. 그리고는 선생님이 아니시였다면, 고마운 사회주의교육제도가 아니였다면 어찌 오늘의 이 영광이 있을 수 있겠는가고 말을 이어간다. 

뭇사람이 최호림이 든 메달과 상장을 부러움 속에 바라보는데 당중앙위원회의 한 책임일꾼이 교육위원회 책임일꾼과 같이 찾아와서 윤 선생의 손을 잡고 희소식을 전한다. 

교육위원회가 올린 윤여방 선생 사업정형보고자료를 받아본 김정은 원수가 80돌 생일상을 차려서 보내주었고, “인민교원”의 영예를 수여해주는 게 좋겠다고 말했으며, 계속하여 “불편한 몸으로 후대교육교양에 한생을 바친 윤 선생의 건강을 회복시켜주기 위하여 외국의 이름있는 병원에 보내여 심장치료를 받게 할데 대한 하늘같은 사랑의 조치를 취해주”(261쪽)었다는 것이다. 

 

요란한 박수갈채가 터지고 윤여방 선생이 감격에 목메여 정말 고맙다고, 심장이 뛰는 한 교단에서 내리지 않겠다고 말한다. 영숙이가 행주치마 차림으로 달려와 시아버지의 품에 안겨 이게 정녕 꿈은 아니지요 라고 물으며 눈물을 흘린다. 

소설은 “이날 윤여방선생의 집에서는 《내 나라 제일로 좋아》의 노래소리가 밤늦도록 울려나왔다.”(262쪽)라는 구절로 끝난다. 

 

결말은 말없는 헌신을 누구나 몰라주더라도 노동당과 수령은 다 알아준다는 식이니까, 조선 문학예술작품들을 많이 접한 사람들로서는 상투적인 수법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단 김일성 시대부터 김정일 시대를 거쳐 김정은 시대에 이르기까지 최고지도자가 공로있는 지식인들에게 생일상을 보내였다는 기사들이 해마다 여러 건 발표되는 걸 보면 그건 틀에 박힌 허구가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다. 

 

어떤 작품들은 해설을 길게 해야 되고 어떤 작품들은 그대로 독자들의 이해와 판단에 맡기면 된다. 한평생 고급중학교(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교육자를 주인공으로 삼은 탁숙본 노작가의 단편소설 《삶의 자취》는 후자에 속하므로 필자는 더 군말을 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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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17/12/10 [16:47]
가끔 너무맹목적이네요.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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