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일침378] 한국 임시정부와 광복군 실망스런 진실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7/12/14 [19:29]  최종편집: ⓒ 자주시보

 

▲ 광복군 시절의 윤영무 선생의 다부진 표정, 그는 2001년 본지와의 대담에서 광복군 시절 아무리 일제와 싸우고 싶어도 상부에서 명령을 내리지 않아 일제와 총  한방 쏴보지 못하고 동포들에게 군자금이나 걷으러 다니다가 해방을 맞이하여 부끄럽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그런 광복군을 박정희 정권부터 점점 무슨 애국자인양 내세우기 시작하자 부끄러워 미국으로 이주하고 말았다며 일부 광복군 출신들이 국내에 남아 무슨 절세의 애국자인 양 하는 것을 보면 그 위선에 안쓰러움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고인은 미국에서 얼마 전 영면에 들었다. 그는 그래도 양심이 있는 광복군이었다.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 민족통신과 대담하는 윤영무 선생(오른쪽) 

 

문재인 대통령의 첫 중국방문코스에 충칭(중경)이 끼었다. 지난 미국방문의 전례에 비춰보면 문 대통령이 임시정부 옛집에 가서 방명록에 어떤 글을 남기든지 한국 정객과 언론들이 반달 쯤은 우려먹을 것 같다. 

 

2차 세계대전 기간에 임시정부 명의로 활동한 단체는 여럿이었다. 특히 유럽에 많았는데 한국처럼 지금까지 논란을 일으키는 사례는 거의 없다. 한국 임시정부 산하에 속했다고 알려진 광복군처럼 지금까지 논란을 일으키는 그 시절의 군대도 찾아보기 어렵다. 

 

박정희 시절까지 찬밥 신세던 광복군이 정통성이 부족한 전두환 시절에 슬슬 지위가 올라가더니 한국군의 뿌리를 광복군에서 찾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이제 와서는 거의 정설로 굳어졌다. 

임시정부 또한 광복 후 성원들이 개인신분으로 귀국할 수밖에 없었고 이승만 시절부터 배척당한 역사가 상당히 긴데 차차 지위가 올라가고 어느 정객도 임시정부를 건드리지 않게 되었다. 

임시정부와 광복군은 근년에 성역화 추세가 갈수록 심해지고, 특히 임시정부는 한국의 건국연도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면서, 1948년을 건국 원년으로 보느냐 1919년을 원년으로 보느냐가 엉뚱하게도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으로까지 되었다. 

 

임시정부와 광복군을 소재로 삼아 치열한 논란을 벌리는 사람들의 주장을 접해보면 원시자료를 도대체 얼마나 보았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임시정부던 광복군이던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 던지는 돌덩이나 자기 정견을 펴기 위한 개념 정도로 간주된다. 

일본군에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출하여 고생 끝에 충칭으로 찾아갔던 청년 장준하가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시정부를 폭파해버리고 싶다고 울분을 토한 건 파쟁이 심하던 임시정부가 열혈청년의 눈에 얼마나 한심하게 비쳤느냐를 잘 말해준다. 

사실 필자는 워낙 중국 동북의 항일역사만 접하다가 1970년대 말부터 비공산당계열, 즉 이른바 민족계열의 반일역사를 한국 책들을 통해 조금씩 접하면서 상당히 존경심을 품다가, 1945년까지 임시정부와 광복군 활동 자료들을 보고 존경심이 싹 사라져버렸다. 

 

광복군은 해놓은 일이 별로 없는 데다가 중국 정부의 비용을 따내기 위해서 속임수도 마다하지 않았다. 조선의용대는 여러 해 전에 이미 갈라져 상당수가 중국 북부지방과 중남부 지방에 가서 중국공산당이 영도하는 팔로군, 신사군과 손잡고 조선의용군으로 활약했는데, 광복군은 의용군 성원들도 자체의 명부에 집어넣어 군비를 받아냈던 것이다. 하긴 당시 중국의 국민당 군대와 군벌군대들에서는 “츠쿵샹(吃空饷, 빈 자리 군인봉급을 먹기)”가 유행되어 한 개 중대 120명이라면 정원보다 10여 명 쯤 적은 수를 유지하면서 빈 자리 만큼 군비를 중대장이 떼먹고, 연대면 100여 명 군비를 연대장이 뜯어먹는 게 상례였다. 위에서 내려와 검열할 때에는 중대장들끼리 연대장들끼리 부족부분을 보내주어 검열을 무사통과시키기도 했다. 그런 유행에 비기면 광복군의 거짓명부는 큰 중국 부대에 비해 사람수자와 금액이 많지 않은 편이지만 아무래도 치사하다. 

광복이 된 다음에야 광복군이 된 광복군이 얼마냐를 집계해보면 흥미로운 결과가 나올 것이다. 

 

임시정부 또한 친일파들보다야 훨씬 낫다만 충칭에서 국민당 정부와 오고간 서류들을 제대로 읽어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살림이 어려워서 돈이 얼마 필요하다, 돈 **만원을 보내준다 따위가 수두룩하다. 백범 김구가 스스로 거지 중의 상거지라고 말한 건 상하이(상해)시절이라고 기억되는데, 충칭에서도 크게 나아졌다고 말하기 어렵다. 

 

필자로서는 역사를 돌이켜볼 때만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다가도 한숨이 나온다. 70여 년 전에 돈이 없어 남에게서 얻어다가 살아가던 임시정부 때와는 달리 현재 한국은 세계 10대나 20대 경제강국에 끼인다고 자랑하니까 돈은 문제가 아니지만, 돈을 왕창 주겠으니 보호해줍시사고 미국에 붙어사는 모양이 질적으로는 70여 년 전과 달라진 게 없고 오히려 퇴보했다고까지 할 수 있다. 

 

한국에서 누군가들의 구미에 맞춰 걸러지고 다듬어진 선전물들이 아니라 실제로 원시자료를 읽어보고 연구하여 임시정부와 광복군을 제대로 파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길 바란다. 옛 시절에 완벽하지 못했다 해서 그걸 덮어감추거나 뻥튀기하기보다는 후대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처사하는 게 훨씬 낫다. 정객이든 언론이든 보통 사람이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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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한나라 17/12/15 [01:43]
임시정부와 광복군의 실망스런 진실 상해임시정부는 나라잃은 노인내들 소일거리하는 노인정일뿐 나중엔 주도권다툼하느라 지들끼리 암살하고 총질했음 제대로 싸운건 오직 김일성 장군의 조선항일유격대뿐 감히 비교자체가 안됨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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