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일침380] 문재인대통령 베이징대 연설문의 부족점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7/12/18 [01:52]  최종편집: ⓒ 자주시보

 

 

▲ 2017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베이징대학 강연     © 청와대

 

중국을 국빈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에 15일 베이징대학에 가서 연설했다.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의 베이징대학 연설 뒤 9년 만이란다. 그러고보니 이명박 대통령이 베이징대학에서 자기가 젊은 시절 중국 여자와 연애했는데 성사됐더라면 “중국 사위”가 될 뻔 했다고 말했기에, 필자가 그 천박함을 지적한 글을 쓴 기억이 난다. 9년이 지난 요즘은 이명박 이름만 보고 들어도 귀차니즘이 발동해 옛 글을 다시 찾아 링크를 걸 마음조차 나지 않는다. 

 

2008년 당시 베이징대학의 현장에는 조선족들도 여럿 앉았다. 그중의 한 분이 뒷날 자서전을 출판했는데 김일성 주석, 김대중 대통령 등 남북의 최고지도자들을 바라본(단독접견이 아니고 대화도 없었기에 필자는 “만나본”이 아니라 “바라본”이라는 표현을 골랐다) 경력을 상세히 적었는데, 이명박 대통령을 바라본 정황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기에, 왜 뺐느냐고 물었더니 얼굴부터 찡그리며 손을 휙 저으면서 대답하기를 

“원숭이상에다가 눈깔까지 빼대대한 게..” 

한국인들이 이명박 대통령을 “쥐”라고 부르는 줄을 잘 아는 필자는 원숭이에 비기는 표현에 크게 웃었다. “빼대대하다”는 아마도 함경도 사투리일 텐데 사전들에서도 정확한 해석을 찾지 못했으나 사람들은 대체로 작고 좁은 걸 가리킨다고 이해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생김새가 정반대인 문재인 대통령은 인상이 괜찮다. 실시간으로 소식과 평가들이 퍼지는 워이씬(微信, 중국판 카카오톡) 따위에서 아직 인상담을 보지 못했지만, 이후에 어느 조선족이 회고문장이나 회상기에 문재인 대통령을 바라보았던 걸 자랑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연설문 수준도 이명박 식 잡담 끼인 연설(?)보다 훨씬 높았다. 단 오류가 있어서 아쉬움을 남긴다. 

 

“마오쩌둥 주석이 이끈 대장정에도 조선청년이 함께 했습니다. 그는 한국의 항일군사학교였던 '신흥무관학교' 출신으로 광주봉기(광둥꼬뮌)에도 참여한 김산입니다. 그는 연안에서 항일군정대학의 교수를 지낸 중국공산당의 동지입니다. 저는 엊그제 13일, 그의 손자 고우원(까오위엔) 씨를 만났습니다. 그 분은 중국인이지만 조선인 할아버지를 존경하며 중국과 한국 사이의 깊은 우정으로 살고 계셨습니다.” 

 

▲ 김산(장지락)  

 

한국에서 말하는 “대장정”이란 홍군의 2만5천리 장정이다. 본인은 쓴 적 없고 알지도 못하지만 미국 기자 님 웨일즈가 달아준 가명 “김산”으로 더 잘 알려진 장지락은 장정에 참가하지 않았다. 1934년 10월 중앙홍군이 쟝시성(江西省, 강서성)을 떠날 때 장정 대오의 조선인은 20여 명이었다고 추정되는데, 이듬해 10월 싼베이(陕北, 섬북)까지 이른 사람은 무정과 양림 2명 뿐이었다. 일명 삐쓰티(毕士悌, 필사제)인 양림은 1936년 홍군이 황허(黄河, 황하)를 건너 산시성(山西省, 산서성)으로 쳐들어 갈 때 강변에서 전사했고, 무정은 뒷날 중공 군대의 포병 책임자와 조선의용군 사령으로 활동하다가 1945년에 조선으로 돌아가 활동했으며 전쟁시기에는 2군단장으로서 남하했고 1951년 중국에서 병치료하다가 호전가망이 없으니 죽어도 조국에 돌아가 죽겠다고 요구하여 귀국해 사망했다. 그 무덤은 2007년에 필자가 들은 바로는 평양 교외에 있다고 한다. 

 

양림과 무정 외의 조선인 대장정 참가자들은 이름을 남기지 못했다. 단 한국에서 꽤나 팔렸다는 조선족 노작가 김학철의 자서전식 장편소설 《격정시대》에서는 주인공의 지인이 대장정을 마치고 싼베이에 이르렀다고 설정했는데, 그건 허구다. 

 

중국에서 공산혁명 자체를 장정에 비유하기도 하니까 “마오쩌둥 주석이 이끈 대장정”을 중국공산혁명이라고 이해한다면 김산- 장지락의 참가를 인정할 수 있다만, 문맥상 그렇게 이해될 수 없다. 

 

1937년에 님 웨일즈는 옌안(延安, 연안)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간 사람명단을 보다가 어떤 인물이 책을 많이 빌려다 보았기에 호기심이 동해서 알아보다가 장지락을 만나게 되었으니, 원래 취재계획에는 없는 일이었다. 기자의 물음에 답을 주다다니 장지락이 일대기를 이야기했고 그 기록이 뒷날 책으로 출판되어 이름이 났다. 본인은 사망한 뒤라 이름이 난 줄도 모르지만. 중국공산혁명에서 활약하고 크게 기여한 조선인들은 많고 그 활동기간, 지위, 업적이 장지락을 초과하는 사람들도 있건만, 장지락은 주로 자신의 구술 덕분에 이름이 해내외에 알려졌으니, 역사적인 관점으로는 공평하지 못하다. 

 

필자는 장지락 본인의 말만 받아 쓴 님 웨일즈의 책 《아리랑의 노래》(중국에서는 《백의동포의 영상》이라는 제목으로 조선어 판본이 출판됐다)만이 아니라 장지락과 상당기간 같이 보냈던 중국인들의 회상, 그리고 옌안을 방문했던 외국인의 인상기 등등을 두루 보았으므로 김산- 장지락을 일부 한국인들처럼 우러르지 않는다. 

 

역사는 가정을 모른다지만, 장지락이 오래 살아서 광복 후 귀국해 “연안파”의 일원이 되었더라면 한국에서 그처럼 우러를 수 있을까? 어쩌다나니 “트로츠키파”감투를 쓰고 옌안에서 사형당한 유일한 조선인이 됐으므로 광복 후의 반도 남북 정세와 무관하게 되었고 따라서 뒷날 한국인들이 님 웨일즈의 책을 보고 추앙하게 되었다. 한편 조선(북한)에서도 종파라고 비판하는 “연안파”와 관계없는 인물이라 하여, 김일성 주석이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중국 전우 장울화를 추억하면서 장지락을 언급하게 되었다. 

 

“지난날 신규식, 박영, 양림, 한위건, 장지락, 김성호, 정률성, 한악연 등 수천수만에 달하는 조선공산주의자들과 조선의 애국자들이 중국혁명을 위해 몸바쳐 싸운것처럼 수많은 중국의 아들딸들도 조선혁명을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바치였다.” 

 

또한 중국에는 장지락- 김산을 “조선족의 영웅”으로 간주하는 조선족들이 있다. 20세기의 역사가 하도 복잡하여 우리 민족의 인물들 중 남과 북, 해외 동포들이 별 논란 없이 함께 우러르는 사람이 굉장히 드문데, 장지락도 그중의 한 사람이지만 필자 개인적으로는 아무래도 지나치게 부풀려졌다고 여긴다. 

 

장지락- 김산에 대한 역사평가는 보는 사람들의 입장과 안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허나 그의 기본경력은 뜯어고칠 필요도 미화할 필요도 없다. 유감스럽게도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문은 바로 역사사실부분에서 허점을 드러냈다. 문재인 대통령 본인이 장지락- 김산의 경력을 소상히 알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 허점 혹은 오류는 연설문 작성팀의 부족점을 드러낸 것이다. 

 

지난 해 8. 15에 박근혜 대통령이 연설에서 안중근 의사의 순국지점을 하얼빈 감옥이라고 했다가 곧 네티즌들에 의해 지적되었고, 둬 달 뒤 최순실이라는 민간 여인이 대통령 연설문을 주물렀던 사실이 밝혀져 해내외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연설문으로 망신한 사례가 엄연히 있는데도 기본역사사실을 헷갈린 대통령 연설문이 생겨났으니, 지난해처럼 대중의 지적과 풍자를 불러오지 않았더라도 문제는 심각하다. 해외연설은 역사에 기록되고 허점이 드러나면 두고두고 국제망신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필자가 자주 “사소한 오류”들을 꼬집는다고 불쾌해하는 이들도 있겠다만, 그런 수준의 오류를 지적할 필요가 사라지기를 필자만큼 바라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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