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역사이야기81] 고구려 안장왕의 사랑이야기8
이용섭 기자
기사입력: 2017/12/28 [14:12]  최종편집: ⓒ 자주시보

 

▲ 고주몽     ©자주시보

 

고구려와 백제 사이에 벌어진 첫 번째 충돌은 백제 제9대 책계왕(286년 즉위, 13년 간 재위, 286~298) 원년(286), 고구려 서천왕(270년 즉위, 23년간 재위, 270~293) 16년(286) “고구려가 대방(帶方)을 공격하니 대방이 지원을 요청하니, ‘대방은 우리와 장인과 사위관계의 나라이니 그 청을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하여 군사를 내어 지원하여”전투를 벌인 사건이다. 이 첫 충돌에 대해서는 후일 상세할 예정이니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다.

 

서기 286년 고구려 서천왕, 백제 책계왕 재위시 벌어진 첫 충돌 이후 고구려와 백제, 백제와 고구려 사이에는 비록 고구려가 백제에 대한 원망하는 마음은 있었을지라도 큰 충돌 없이 100여 년간은 평화를 유지해왔다. 그러니 고구려와 백제, 백제와 고구려 사이의 본격적인 대결전은 이미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구려 고국원왕 39년(369), 백제 근초고왕 24년(369)에 있었던 충돌부터 본격적인 대결전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고구려와 백제는 고구려 고국원왕 39년(369), 백제 근초고왕 25년(369) 양국이 본격적인 대결전에 들어간 후 고구려 보장왕(642년 즉위, 26년 간 재위, 641~668) 14년(655), 백제 의자왕(641년 즉위, 21년간 재위, 641~662) 15년(655) 고구려·백제·말갈이 연합하여 신라의 북변을 공격하여 30여 성을 빼앗을 때까지 약 380여 년 이상의 긴 세월동안 서로 침략을 일삼는 등 첨예한 갈등관계에 있었다. 

 

이와 같이 고구려와 백제가 첨예한 갈등관계에 있었던 한복판의 시기에 태자(太子)로 있던 515년(필자의 추정 년도)즈음 고구려 제22대 안장왕이 상인으로 변장을 하고 고구려와 백제 국경을 접하고 있던 백제 변경 <개백련>으로 놀러갔던 것이다. 이에 대해 해상갑투를 인용하여 단재 신채호 선생은 “안장왕이 상인 행상을 하고 개백으로 놀러갔다.”고 하였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안장왕이 태자시절 스스로 간첩이 되어 백제 변경 지역인 개벽련으로 정탐활동을 하기 위해 변장을 하고 침투했다고 해석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인용된 부분에서 한주(韓珠)에게 청혼을 한 백제 태수(太守)가 “이미 정을 준 남자가 있어 청혼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한주의 말에 격노하여 하는 말이 “그 남자가 누구냐, 어째서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느냐. 그는 틀림없이 고구려의 간첩이므로 네가 말을 못 하는게 아니냐. 적국의 간첩과 통하였으니 너는 죽어도 남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한주를 옥에 가두고 사형시키겠다고 위협하였다. 인용문이 이와 같은 내용은 안장왕이 상인으로 변장을 하고 백제 변경을 정탐하기 위해 간첩으로 침투를 하였다는 유력한 증거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고구려 제22대 안장왕(휘는 홍안)과 백제 개백련의 장자(長子) 한씨의 딸 한주의 목숨을 바칠 정도의 열렬한 사랑, 사랑의 애간장을 끊을 듯한 애절한 사랑이야기는 고구려와 백제, 백제와 고구려 사이에 약 150여 년간 이어진 첨예한 국가 간의 갈등에 의해서 필연적으로 싹이 트게 된 것이다. 즉 우연이 아닌 필연적인 운명적인 사랑이야기라는 말이다. 적국의 간첩이자 태자로써 차기 임금에 오르게 될 인물과 또 다른 적국의 평범한 여인의 사랑이야기, 참으로 아름답기 그지없는 줄거리이다. 

 

2. 고구려 제22대 안장왕과 백제 한주의 사랑이 싹트게 된 사회적 배경

 

지금으로부터 약 1500여 년 전 고구려 제22대 안장왕 태자시절, 백제 변경 개벽련 장자 한씨의 딸 한주 사이에 싹튼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의 사회적 배경, 즉 고구려와 백제 사이의 민족, 사회적 배경과 동질성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고구려와 백제, 백제와 고구려 간의 민족·사회적 배경이나 동질성이 없었다면 한주의 인용문과 같은 사랑이야기가 성립될 수가 없다. 따라서 이러한 양국 간의 동질성에 대해 알아야 그 사랑이야기 전반을 이해할 수가 있다.

 

1) 고구려·백제의 민족동질성에 대해서

 

이이 앞 선 장들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구려와 백제, 백제와 고구려는 그 뿌리가 같다고 하였다. 도대체 그 뿌리, 나라의 근본이 어떻길래 두 나라는 한 뿌리에서 나왔다고 하는지 여기서는 그 뿌리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백제는 제18대 전지왕(405년 즉위, 16년간 재위, 405~420) 2년 (406) 왕이 직접 동명왕 사당에 직접 마지막 배알을 할 때까지 역대 임금들이 즉위하면 배알을 하는 등 동명성제를 시조로 모셨다. 

 

그럼 아래에서 고구려와 백제의 건국 과정에 대해서 보기로 한다.

상세한 분석은 추후 삼국시대 혹은 다국시대에 대한 글을 연재 할 때 할 계획이다. 또 필자도 역사를 연구하면서 항상 가졌던 아쉬움은 각 국의 건국 과정을 분석하면서 각각 따로 하여 서책이 다르다는 것이다. 따라서 각 국의 건국과정을 분석하기 위해서 이 책, 저 책 수많은 책들을 수북히 쌓아놓고 찾는 번거로움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고구려와 백제의 건국 과정을 다룬 각 사서의 내용들을 동시에 올려놓고 분석을 할 것이다. 이 점을 참작하기 바란다. 똘한 모든 사서들에 기록되어 있는 건국 과정에 대한 전문을 올린다.

 

(1) 고구려의 건국

고구려의 건국은 시조 동명성제가 하였다. 다만 그 건국 년대와 혼인과정, 그리고 나라를 이어 받은 부분에 대해서 각 사서와 그 연구자들 사이에 차이가 있는 도 사실이다. 특히 고구려의 건국년대에 대해서는 그 차이가 대단히 심하다. 따라서 그에 대한 이론 역시 대단히 크다. 물론 강단 사학에서는 삼국사기의 기록도 믿을 수 없다고 하는 상황에서 삼국사기의 고구려 건국년대보다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는 기록들을 인정할 리는 전혀 없다. 강단사학이 그렇다고 하여 우리도 손맥을 놓고 깍이우고 잘려져 나가고 숨겨진 우리 조상들의 발자취를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고구려의 건국 년대를 정밀하게 고증하고 논증하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일단 여기서는 고구려사를 본격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아니고 고구려와 백제의 뿌리가 같음을 논증하고 고증을 하기에 고구려의 건국 년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기고 한다. 

 

고구려의 건국 과정에 대해 각 사서들의 약간 차이를 보이고 있기에 될 수 있으면 한 편이라도 더 많은 자료를 올려놓고 비교·분석할 필요성이 있다. 고구려 건국에 관한 역사 사서들 중에서 삼국사기, 삼국유사, 광개토경호태열제릉비문 해석자료, 신단실기, 신단민사, 조선상고사, 조선상고문화사 그리고 한단고기의 기록들을 전문 인용을 해보도록 한다. 우리가 인용하고자 하는 자료들의 고구려 건국 내용만 해도 고구려 건국사를 비료·분석 연구하는데 부족함이 없다고 본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스스로 각 사료들을 치밀하게 비교·분석해보기를 바란다. 

 

⓵ 삼국사기 권 제 13, 고구려본기 제1시조 동명성왕

 

시조 동명성왕의 성은 고(高)요, 휘(諱)는 주몽(주몽: 상해象解라고도 함)이다. 이에 앞서 부여왕(扶餘王) 해부루가 아들이 없으니, 명산대첩에 빌어 아들 낳기를 원하던 터에 그가 타고 있는 말이 곤연(鯀淵)에 이르러 큰 돌을 보고 마주 대하여 눈물을 흘렸다. 왕은 괴이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그 돌을 밀어 보니 거기에 노란 개구리 형상을 지닌 금색 와형(蛙形)의 어린아이가 있었다. 왕은 기뻐하며 “이는 하늘이 내게 좋은 아들을 주신 것이다.”하고 거두어 길렀다. 이름을 금와(金蛙)라 하였다, 그가 장성하자 태자로 삼았다. 그 뒤에 재상 아란불이 아뢰기를 “일전에 천신이 내게 강림하여 말하기를 장차 내 자손으로 하여금 여기에다가 나라를 세우게 할 계획이니 너는 부디 피해 가라. 동해 가에 가섭원(迦葉原)이라는 땅이 기름지고 오곡생산에 알맞으니 도읍할 만하다.”하였다, 왕은 드디어 그곳으로 도움을 옮기고 국호를 동부여라고 하였다. 그 구도(舊都)에는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이 자칭 천제의 아들 해모수(해모수)라 하고 도읍을 정하였다. 

 <삼국사기, 김부식 지음, 신호열 역해, 동서문화사 286쪽>

 

여기까지는 고구려 시조 동명성제의 뿌리를 밝히기 위해 북부여(北夫餘)에서 동부여(東夫餘)를 건국하는 과정과 북부여 고초에서는 새로운 단군(檀君)이 등장하는 과정을 기록한 내용이다. 이에 대한 정밀한 분석은 뒤로 미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이만 그친다.

 

-계속

 

2017년 12월 11일 

서울구치소에서 이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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