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문화 가꿔가기26] 미국에게 뺏길 뻔한 북의 첫 올림픽금메달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8/01/28 [04:12]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정치와 갈라놓을 수 없는 체육 

 

평창 동기올림픽이 하루하루 다가온다. 현대올림픽의 120여 년 역사에서 평창올림픽만큼 정치, 군사 정세변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불확실한 대회는 없었던 것 같다. 

체육은 정치와 무관해야 된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정치와 갈라놓기 어려운 게 체육이다. 

 

조선의 첫 하기올림픽 금메달수상자가 바로 정치 때문에 따놓은 금메달을 떼일 뻔 했다. 1972년 8월 27일 제20차 뮌헨올림픽에서 50미터 소구경자유보총 엎드려 60발 사격경기에서 599점을 기록해 올림픽 및 세계 신기록을 세우고 금메달을 획득한 리호준이다. 

 

▲ 1972년 뮌헨 올림픽 사격 금메달 수상자 리호준     © 자주시보, 중국시민


텔레비전시대에는 좋던 궂던 메달리스트와 메달수상자들을 화면으로 보여줘야 되다나니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유도 금메달을 따낸 북의 계순희 선수 같은 사람은 남과 해외 동포들에게도 익숙해졌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허나 리호준 선수는 종이매체와 라디오방송 시대에 금메달을 따고 풍파를 겪다나니 1973년 4월에 인민체육인 칭호를 수여받고 1978년에는 우표(사진)에 찍히기도 했으나 그 사적도 풍파도 계순희 등 후배들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셈이다. 

 

▲ 리호준 선수와 그 성과를 담은 1978년의 조선우표     © 자주시보, 중국시민



♦ 1등을 했으나 곧 시상대에 오르지 못한 리호준

 

하여 필자는 조선의 금성청년출판사가 2014년 6월에 펴낸 《조국을 빛내인 올림픽우승자들(1)》(사진)이라는 책에서 관련내용을 소개하련다. 

 

▲ 조선의 올림픽금메달수상자들을 소개한 책 《조국을 빛내인 올림픽우승자들(1)》,     © 자주시보, 중국시민

 

책은 리호준과 다른 올림픽금메달 수상자들인 권투선수 구영조, 최철수, 체조선수 배길수, 홍은정, 레슬링 선수 리학선, 김일, 유술선수 계순희, 안금애, 역도선수 엄윤철, 김은국, 박현숙, 림정심 등을 수상시간 순서에 따라 소개했다. 도합 263쪽인 책에서 5~52쪽의 리호준 부분- “첫 올림픽금메달수상자-- 리호준”이 18% 정도를 차지하고 극성도 제일 강하다. 다른 사람들은 고심한 노력 끝에 성공했다는 다소 진부한 이야기들만 있으나, 리호준은 따놓은 메달을 확보하느냐가 사활적인 문제로 걸렸기 때문이다. 

 

글은 “세상을 놀래운 《미국놈 털가슴》일화”, “불같은 정열, 강의한 의지로”, “위대한 령장의 슬하에서”라는 세 꼭지로 이루어졌다. 

 

올림픽 개막식 다음 날 8시에 시작된 경기에서 리호준과 미국선수 빅토르 아우에르의 성적이 앞자리를 차지한다. 리호준은 6발 만에 9점을 맞췄고 빅토르는 26발을 9환에 맞춰 까지 총점수가 동점이 되었다. 50발, 55발을 넘기면서 경쟁이 한결 치열해졌는데, 미국선수의 탄알이 9점에 박혔고 리호준의 탄알은 9점과 10점 사이에 박혔다. 미국팀 감독이 환호를 올렸다. 자기 선수가 1등은 문제 없다는 것이다. 리호준은 9점 하나, 9점과 10점 사이에 둘이고 미국 선수는 9점이 둘이었다. 때문에 리호준의 2발 성적을 어떻게 평하느냐에 따라 1, 2등이 갈라지게 되었다. 

 

사격경기가 끝난 다음 1, 2등 성적기록만은 게시되지 않았다. 허나 미국선수가 감독과 부둥켜안고 기뻐 날뛰고 미국기자들은 금메달 수상 소식을 보도했다. 

 

당시 독일의 올림픽경기조직위원회는 현미경으로 100분의 1밀리미터까지 확인하도록 정확성을 기했다 한다. 3명의 심판원이 리호준의 과녁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서 세심히 검사하다가 한참 만에 결론을 발표했다. 

1등은 조선의 리호준 599점, 2등은 미국의 빅토르 아우에르 598점. 

 

그러자 미국팀 감독이 손을 내저으며 오심이라고 소리쳤으나 소용 없었다. 올림픽 및 세계 신시록을 세운 리호준에게 기자들이 몰려들었고 어떻게 그런 놀라운 기록을 거뒀느냐는 독일기자의 질문에 리호준은 서슴없이 대답했다. 

 

“저는 과녁을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인 미국놈의 털가슴으로 보고 쏘았습니다.” 

 

기자들이 취재수첩에 써넣을 때 미국 유피아이 기자만은 재확인하려는 듯 통역에게 방금 뭐라고 말했느냐 물었고, 현지 통역은 대답을 적당히 피했다. 미국기자의 낯색이 달라지더니 기자센터에서 빠져나갔다. 

사격장에서 미국 감독과 선수의 끈질긴 요구로 과녁판 현미경 검사가 다시 진행될 때, 미국 기자는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인 미국인 브란데지에게로 달려가 직접 고발했다. 브란데지는 화가 치밀어 미국올림픽선수단 단장에게 미국사격연맹의 명의로 항의문을 작성해 국제올림픽위원회와 국제사격연맹에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얼마 후 항의문을 받은 브란데지는 국제사격연맹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올림픽헌장과 이념에 심히 도발되는 행동을 한 조선 선수의 금메달을 박탈하고 북조선사격선수들을 당장 추방시키라고 강박했다. 국제사격연맹 위원장은 중립성이 강한 스위스인으로서 알아본 다음 결정하겠다고 대답했다. 

 

한편 사격장에서는 리호준이 아직도 질문공세를 받고, 배구경기장에 있다가 금메달 수상 소식을 듣고 달려온 조선올림픽 선수단 최영식 부단장이 별로 이상한 모양을 보고 조선 통역에게 사연을 물었다. 통역이 불안스레 사연을 전하니, 최영식은 곧장 선수단 지휘부로 가서 오현주 단장에게 리호준의 성과를 전하고 풍파도 알리고는 손길천 서기장을 빨리 사격장에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 손길천의 조선식 논리와 해결책 

 

“오랜 대외일군이며 우리 나라 민족올림픽위원회 서기장은 손길천은 올림픽경기대회가 개막되기 6개월전부터 이곳에 와서 조선올림픽위원회를 대표하여 사업하였고 사격종목에도 파악이 있어 이번에 우리 나라 사격협회 대변인역할을 하고있었다.”(13쪽) 

 

손길천이 사격경기장 기자센터에 가보니 아직도 기자들이 리호준과 선우기만 감독을 둘러싸고 질문을 들이대고 있었다. 둘에게서 간단한 전후사연을 들은 손길천은 곧 국제사격연명 위원장을 만나려고 떠나갔다. 

 

한편 사격연맹위원장은 브란데지의 전화 외에 미국 올림픽위원회의 항의문도 받으니, 이제 10시부 열릴 사격연맹 총회에서 리호준의 금메달박탈문제를 토의하려 생각하며 사격경기장에 전화를 걸었다. 

경기장 역원이 10시 30분에 있게 될 뮌헨 텔레비전방송국의 보도를 들으면 정확한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해, 연맹 위원들은 회의도중 티브이보도를 시청했다. 뒤이어 브란데지가 전화를 걸어 사태가 명백하니 조선선수들에게 제재를 가해야 된다고, 금메달을 박탈하고 국제사격연맹에서 조선사격협회를 제명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답하지 않고 전화기를 내려놓은 위원장이 손길천을 전화로 찾았으나, 길에 있는 손길천이 응답할 리 없었다. 브득이 위원장은 연맹총회에 항의문을 상정시켰고, 영국 등 미국 추종국가들은 한결같이 제재조치를 가해야 된다는 공식발언들을 했다. 

 

손길천이 급급히 회의장에 들어섰을 때는 리호준 발언관련 문제심의가 마지막 단게에 이르렀다. 총회 의장은 제기된 의견들을 종합하여 리호준의 금메달과 세게신기록을 취소하고 금메달을 미국선수에게 주는 문제를 토의에 붙이자고 하였다. 손길천은 급히 회의참가자들 사이로 위원장에게 다가가 언권을 제기한다, 가결은 중지돼야 한다, 미국사격연맹 대표의 통보는 정확하지 않다, 부당한 항의다, 조선사격위원회 위원장의 명의로 상소한다고 단호히 말했다. 

 

위원장과 간단히 말을 주고 받은 손길천은 조선 선수단이 이 항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문제가 일방적으로 제기되었다고, 당사자들의 의견도 들어보지 않고 부당하게 총회일정에 상정되었다고, 이 문제는 취소되든지 아니면 다시 논의되어야 한다고 본다고 강경하게 밀어붙였다. 그러자 위원장은 상소된 이상 오후 연맹총회에서 다시 토론하고 가결은 미루자고 했다. 자신도 다시 알아보려고 했는데 시상식이 11시에 있게 돼서 시간이 촉박했단다. 손길천은 리호준에게 금메달을 11시에 줘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위원장은 총회에 항의가 제기된 이상 그렇게는 하지 못한다고, 브란데지의 통보와 미국사격연맹 대표단의 항의서를 받았다고, 유피아이 기자가 그 발언을 재확인했다더라고 말했다. 

그러자 조선식 논리가 전개된다. 

 

“손길천은 물러설 수 없었다. 

《나도 알아보았는데 UPI통신사 기자는 본인이 아니라 통역원에게서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때문에 나는 그 사실자체를 인정할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선수는 호전적 의미에서 말한것도 아니고 조선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말을 했을뿐이라고 했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리해가 안됩니다. 뮨헨TV방송으로도 방금 10시 30분에 그 선수의 발언내용이 그대로 방영되지 않았습니까?》 

손길천이 론거를 들이대기 시작하였다. 

《위원장선생, 그건 기자의 말이지 본인의 말이 아닙니다. 문제는 누구의 말이든 우리 선수의 말이 하나도 잘못된것이 없다는것입니다. 

당신도 아다싶이 올림픽경기에야 아마츄어선수들이 참가하는데 우리 나라 선수는 군인입니다. 

그는 군대에서 사격훈련을 하다보니 항상 과녁을 적의 심장으로, 원쑤의 가슴팍으로 보고 총을 쏩니다. 군대가 사격목표판을 적으로, 사람으로 가상하고 쏘지 짐승이나 비둘기로 보고 쏘는 련습을 하는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거야 그렇지요. 군인이 과녁을 적이라고 생각하고 쏘는거야 사실이지요.》

국제사격련맹 위원장도 손길천의 그 말에는 동감을 표시하였다. 

손길천은 계속 들이댔다. 

《우리 선수는 조선사람들이 흔히 원쑤나 적은 미국놈이라고 하기때문에 그 말을 했을 뿐입니다... 게다가 그 선수의 아버지는 미국놈들이 기관총으로 쏘아죽였습니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그렇소? 그렇다면 리해할수 있소. 자기 아버지를 죽은 원쑤를 과녁으로 보고 쏘았다는 그 말은 정말 타당합니다.》 

국제사격련맹 위원장은 이렇게 말하며 머리를 끄덕이였다.”(15~ 16쪽) 

 

그러자 손길천은 리호준의 기자회견 재개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고, 위원장은 허락하면서 자신도 참가해 선수의 말을 직접 듣겠다면서 이제 그 30분 후에 기자들을 모이게 하겠으니 선수를 데려오라고 요구한 다음 오전회의를 끝냈다. 

 

손길천은 총회장소를 급히 떠나 발언내용을 구상하면서 승용차를 타고 기자센터라 가서 리호준과 선우기만 감독을 만나 리호준에게 이제 국제사격연맹 위원장이 오면 기자들 앞에서 경기를 마치고 한 말을 기자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조리있게 다시 해주어야 한다고, 미국기자가 도발을 걸었다고 말했다. 리호준은 알았다고 대답했고 잠시 후 위원장과 몇 명의 집행위원들이 센터에 와서 시작하자고 말했다. 책에서는 새 기자회견을 이렇게 묘사했다. 

 

 “손길천이 먼저 발언하였다. 

《여러분, 기자제씨들, 나는 우선 올림픽사격경기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운 조선선수의 발언을 놓고 도발을 일으키려는 미국올림픽위원회의 온당치 못한 처사에 유감을 표시하는바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나라 리호준 선수의 발언내용을 주의깊게 다시 듣고 공정한 리해와 평가를 해주기 바랍니다.》 

리호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걸음 앞으로 나서며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기자선생들, 나는 사격경기를 끝내고 서도이췰란드기자의 질문에 나의 심정을 그대로 말하였습니다. 나의 원쑤이자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인 미국놈의 털가슴을 쏘는 심정으로 쏘았다고 말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누구든지 적이나 원쑤라고 하면 의례히 미국놈이라고 합니다. 우린 미국놈이라는 말을 적이나 원쑤의 대명사로 쓴단 말입니다. 군인이 과녁판을 적이나 원쑤로 보고 쏘는것이 응당하듯이 제가 우리의 적이자 원쑤인 미국놈의 털가슴을 쏘는 심정으로 쏘았다는데 이 말에 문제될게 무엇이 있습니까?!》 

《옳소.》 

열정적인 리호준의 말에 대다수의 다른 나라 기자들이 호응하며 박수를 쳤다. 

《당신들도 아는바와 같이 지난 조국해방전쟁때 얼마나 많은 우리 조선사람들이 미제침략자들에 의해 무참히 학살당했습니까?》 

손길천서기장이 일어나 리호준을 대신하여 말을 이었다. 

《그거야 세상사람들이 다 알지요. 여기 모인 기자들도 역시.》 

따스통신사(당시)기자가 손길천의 말을 긍정하였다. 

손길천서기장이 말을 계속하였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미국놈들은 우리 나라의 수도인 평양시에만도 42만 8천여개의 폭탄을 퍼부었습니다. 그 수자는 당시 평양시인구와 맞먹는 수자로서 인구 한사람당 한개씩에 해당한 폭탄을 떨군셈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미국놈들은 자그마한 농촌군인 신천땅에서만도 무고한 조선사람들을 3만 5천여명이나 야수적으로 학살하였습니다. 

미국놈들은 우리 나라 도처에서 잔인하고 야수적인 방법으로 조선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습니다. 그놈들의 구두발이 가닿는 곳마다에서는 조선사람들의 피가 흘렀습니다. 

그러니 조선사람들은 남녀로소 할것없이 미국놈들을 철천지원쑤로, 불구대천의 원쑤로 보고있단 말입니다.》 

그러자 참가자들은 호응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조선선수인 경우에 충분히  그런 발언을 할수 있다고 본다.》 

《기자의 질문에 그것도 기자쎈터에서 자기의 심정을 말하는건 언론의 자유로서 경기와 별개의 문제이다.》 

국제사격련맹 위원장도 리해가 되는듯싶었다. 

《손선생의 말을 듣고보니 납득이 됩니다. 다시 토론하고 심중히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시상식은 아무래도 미루어야 하겠습니다. 그럼 기자회견을 이만합시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손길천은 국제사격련맹 위원장에게 다시 강조하였다. 

《미국선수에게 금메달을 주어야 한다는 주장은 부당합니다. 절대 안됩니다. 올림픽경기대회 조직위원회도 이 문제는 받아들이지 않을것입니다. 나도 이제 조직위원회 위원장선생을 만나려고 합니다.》 

《그럼 빨리 그렇게 하십시오. 나는 어느 정도 리해가 되는데 다오메박사선생의 의견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시상식은 제기된 문제를 해명한 다음 오후에 진행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위원장선생, 저의 말을 주의깊에 들어주고 리해해주어서....》(16~ 18쪽) 

 

손길천은 사의를 표한 다음 달리다 시피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은 조직위원회 청사로 가서 국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 중의 하나이며 뮌헨 올림픽 조직위원회 위원장인 독일인 다오메 박사를 만났다. 상대방은 유명한 역사학 박사로서 전날 조선 올림픽위원회의 요청으로 평양을 방문할 때 손길천도 만나봤던 사람이다. 다오메가 브란데지와 국제사격연맹 위원장의 전화를 받은 다음 사격장에서 오는 독일인들의 말을 꼭 듣고 주견을 세우자고 했다고, 조선대표들이 꼭 찾아오리라 예견했다고 말하기에, 친분을 활용한 손길천은 외교관례를 벗어나 터놓고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취한 조치들을 설명했다. 다오메는 납득했고 또 조선에 갔던 사람으로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면서 자기는 뮌헨에서 서독에서 세계신기록이 세워진데 대해 매우 만족스럽게 생각한다고, 이번 대회의 경사라고, 그런 문제를 호전적이며 정치적인 문제로 보는 것은 우선 올림픽 정신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다오메는 손길천에게 이제 문제를 국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인 소련인 스미르노브에게 잘 해설하여 납득시키면 더 좋겠다면서, 부위원장들을 비롯해 조선의 입장을 지지하게 만들자고 말했다. 

 

손길천이 선수단 숙소로 돌아오니 스미르노브가 전화를 걸어와 다오메에게서 전화로 얘기를 들었다고, 다오메의 입장을 따르겠다고 알렸다. 

오후에 계속된 국제사격연맹 총회에서 미국 대표가 “미국인 증오사상”선동, “호전적인 전쟁분위기 고취”, “올림픽에 정치개입” 등으로 걸고들었으나 다수 대표들의 동감을 얻어내지 못해 표결결과 90%이상이 미국사격연맹의 항의문 취소에 찬성했다. 지자 88표, 반대 2표, 기권 4표였다. 

이리하여 시상식이 1시간 뒤에 진행되었으니 원래 예정된 11시보다 5시간 늦은 오후 4시에 진행되었다. 

 

이리하여 올림픽 대회에서 처음으로 조선의 《애국가》가 주악되고 국기가 게양되었다. 

귀국한 리호준은 세계신기록수립과 금메달 쟁취 소식을 들은 김일성 주석이 “그날이 제일 기쁜 날이였다”고 말했음을 알게 되었다. 

 

 

♦ 리호준의 성장과정, 그리고 현재와 미래 

 

둘째 꼭지 “불타는 정열, 강의한 의지로”에서는 리호준의 출신과 성장과정을 소개했다. 평범한 농민이었던 리호준의 아버지는 전쟁발발과 더불어 입대한 다음 1950년 가을 원산동쪽계선 방어전투에서 사흘 동안 싸우다가 머리에 심한 부상을 입고 후방병원으로 후송되었는데, “나흘만에 의식을 겨우 회복하였으나 다시 후송하던 도중 미국놈비행기의 기총사격에 맞아 아버지는 그만 숨을 거두었다.”(25쪽)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가슴이 복수심으로 충만되어 자라난 리호준은 중학교 졸업 후 대학에 가기를 내다보던 어머니의 바람과 달리 곧장 군대에 들어갔다. 중학교 때 수학과 기하에 취미가 있었던 그는 사격요령을 남보다 빨리 파악했고 이악하게 조준훈련을 하여 2년 만에 중대의 우등사수로, 후에는 대대, 연대, 사단의 사격선수로 자라나 전인민군적인 군사3종경기에 참가했다. 

그즈음 2. 8국방체육단이 세계급 사격선수선발을 목적으로 부대들을 돌아보다가  사격에서만 1위를 한 리호준의 장단점을 파악했고 3개월 뒤 국방체육단으로 소환했다. 

노장들과의 차이를 절감하면서 리호준이 열심히 훈련했고 국제경기에 나가 우수한 성적을 쟁취한 선배들을 부러워했다는 게 둘째 꼭지의 골자다. 

 

셋째 꼭지 “위대한 령장의 슬하에서”는 청년 김정일의 사격운동 관심이 소개되었다. 1971년 5월 30일의 2. 8국방체육단시찰은 김정일 일화에도 나오는 바, 헛방 없는 사격솜씨를 보여주고 또 김일성 장군이 항일무장투쟁시기 쓰던 권총을 선수와 감독들에게 당분간 빌려주어 그 총에 깃든 깊은 사연을 가슴 깊이 새기고 사격을 잘해야겠다고 이야기했다 한다. 

《조국을 빛내인 올림픽우승자들(1)》은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낀 리호준의 시각에서 그 사건을 재구성했으므로 “장군님 일화”와는 다른 감명을 안겨준다. 

 

리호준은 한결 열심히 훈련했고, 이듬해 1월에는 체육단 정치부장의 인솔 하에 20여 명 동료들과 함께 판문점으로 나갔다. 선수들은 정치부장의 선창에 따라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인 미제침략자들을 소멸하자!”, “미제침략자들은 조선에서 물러가라!” 등 구호를 외쳤고 또 전연부대에 가서 이틀동안 잠복근무도 하면서 각오를 다졌다. 

그때 분계선 남쪽에서 찍은 사진이 없을 리 없는데, 그해 8월 말 리호준이 뮌헨에서 소문낸 다음 미국인들이 사진을 찾아내 확인했는지 궁금해난다. 

 

리호준이 뮌헨에서 성공한 뒤 국내, 국제경기들에서도 우수한 성적으로 메달들을 따낸 뒤인 1975년 3월 9일 김정일 지도자가 또다시 체육단을 찾아와 리호준의 사격훈련을 보아주고, 그가 하루에 50~ 60발을 쏜다는 말에,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니 사격선수들이 하루 평균 100발정도 쏘는 것이 좋겠다고, 2.8 체육단에서는 모든 선수들이 하루에 100발을 쏴서 1000점을 따는 운동을 벌려야 하겠다고 말했다. 

리호준은 그해 8월 아시아사격선수권대회에서 6개의 금메달을 따내면서 아시아기록을 4번 갱신했고 1978년 12월 태국 방코크에서 진행된 제8차 아시안게임에서는 소구경보총사격 1등을 했다. 

 

 “호준은 그후에도 비록 사격선수로서의 생활을 끝마치였지만 우리 과녁은 오늘도 래일도 영원히 미제라는 변함없는 신념을 안고 복무의 길에서 참된 삶을 빛니여가고있다. 

지금도 40여년전 제20차 뮨헨올림픽경기대회 사격종목경기가 진행된 곳에 세워진 실내사격경기장 정문홀 중심의 넓은 화강석벽체에 든든히 고정되여있는 너비 2m, 높이 3m의 시누런 동판우에는 큰 라틴문자가 새겨진 다음과 같은 글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1972년 제20차 올림픽경기대회 소구경보총엎드려 60발 올림픽 및 세계신기록보유자 리호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52쪽) 

 

글은 이로써 끝난다. 

문득 떠오르는 의문. 당시 독일에는 한국에서 간 “파독광부”, “파독간호사”들이 꽤나 많았는데 그들 가운데 리호준의 금메달 획득장면을 본 사람들이 있는지, 리호준의 성적에 즐거워하다가 “빨갱이” 혐의로 불이익을 당한 사람은 없는지? 

 

40여 년 뒤의 지금, 한국의 누군가 조선의 어느 선수나 어느 선수단, 대표단을 놓고 부정적인 언사를 늘여놓으면 웃음거리로 된다. 헌데 선수와 선수단이 대표하는 국가가 불편해서 별의별 수법으로 비하하는 세력들은 아직도 존재한다. 사상 가장 초라할지도 모를 평창올림픽 전야에 지나간 역사를 돌이켜보면 심정이 착잡해진다. 유럽시인의 명구로 마음을 달래보자. 

 

“겨울이 왔거늘 봄이 멀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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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111 18/01/29 [08:02]

앞으로는 강제로 북한으로 보내지 수정 삭제
111은 구더기 밥 18/01/29 [09:29]
도쿄, 나고야와 오사카 일대는 수소탄 장착 중거리 미사일, 그 외 도시는 모조리 원폭 수준의 미사일 공격을 받고 지난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처럼 전 도시가 완전히 잿더미가 되어 간신히 살아남은 들쥐는 북한에 숨어들 예정이나 생으로 잡혀 훈제된 뒤 똥통에 던져져 구더기 밥이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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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이 좋으면 북한으로 가야 하지 111 18/01/29 [08:02]
앞으로는 강제로 북한으로 보내지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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