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문화 가꿔가기28] 뒤를 꼬지 못한 《로동심문》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8/03/04 [04:01]  최종편집: ⓒ 자주시보

 

신생아의 무게달기가 보급된 후부터는 부모들 사이에서 출생시 무게비교도 유행되었다. 가벼운 아기의 부모에게 위로 삼아 들여주는 말이 “작게 낳아 크게 키우라”. 

무거운 아이의 부모는 대체로 축하만 받는데, 낳을 때 놀라운 체중을 기록했더라도 뒷날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니까, 크게 낳아 작게 키운 현상도 존재한다. 

하기는 거창하게 시작하여 시시하게 마무리한 일이 세상에 어디 한두 가지던가! 

 

2016년 초가을 인터넷에서 우연히 “로동심문”이라는 단어를 발견해 오타로 여겼다가, 조선(북한)의 신문이름 “로동신문”을 패러디한 웹툰임을 알게 되었을 때 무척 놀랐다. 《로동신문》이 어떤 신문인가? 조선로동당의 기관지이다. 조선에서는 당의 목소리를 내면서 굉장한 권위를 가졌고 신성한 지위를 가졌다. 그런데 패러디하다니! 탈북자 만화가 최성국 씨가 궁리해낸 탈북소재 만화로서 그 자신은 미국의 소리 방송의 인터뷰를 받으면서 자신은 남한 사람들의 시각으로 북한을 만화에 담아내고 있다고 밝혔다 한다. 

5월부터 《로동심문》이 매주 새 이야기를 공개할 때마다 2만 명이 넘는 독자들이 보았다니까 그만하면 인기를 꽤나 끈 셈이고 “꿀잼(아주 재미있다는 뜻)”이라면서 북한에 대해 잘 알게 됐다는 반향들이 나왔단다. 

 

몇 달 연재 분량을 몰밀어 보고 그 후에도 한동안 주목한 필자는 남에 간 북 남자가 친절하게 대해주는 남 여자의 언행을 착각하고 결혼구상까지 비약하나 실패한다는 “결혼합시다”에는 웃음이 자연스레 나왔으나 탈북자들이 남에 도착하여 겪는 일들을 엮은 “국정원 편”에서는 “간첩제조공장”으로 불린 합동신문센터와 하나원 경력자들의 추억과 차이가 너무 나서 고개를 기웃거렸다. 또한 탈북스토리들은 너무 황당하여 특별한 의미의 웃음을 자아냈다. 

 

일정한 량을 본 다음에는 “로동심문”이라는 말을 정말 잘 만들었나 의문이 들었다. 목적한 독자들은 분명 남한사람들이겠는데, “로동심문”은 아무래도 북의 “로동신문”표기에 익숙한 사람들을 겨냥했으니 “노동신문”이란 남한식 표기법에 익숙한 대다수 한국인들은 무의식 중에 배제한 셈이 아닌가. 결국에는 탈북자들과 북에 관심이 있는 한국인들이나 끌어오게 됐으니 작품의 시장을 스스로 협소화했다. “탈북자 3만 명 시대”에 매 기 독자가 2만 명을 넘기는데 그쳤다는 게 방증으로 된다. 

 

그래도 꽤나 뜨거운 반향에 힘을 얻었는지, 2016년 11월에 부제 “탈북남의 좌충우돌 열혈 남한 정착기”가 달린 종이책 《로동심문. 1》(사진)이 출간되었다는데 베스트셀러로는 된 것 같지 않았으나 “1”자가 붙은 만큼 저자와 출판사의 야심을 엿볼 수 있었다. 

 

▲ 탈북 만화 《로동심문 1》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그처럼 거창하게 시작했던 《로동심문》이 2권, 3권은 고사하고 아예 웹툰 연재마저 중지되었다. 

떠도는 설에 의하면 휴재와 더불어 북에 있는 작가가 목숨을 걸고 익명으로 썼다는 소설집 《고발》의 그림을 맡아서 그리게 되었다는데, 연재를 시작했다는 그림을 필자는 보지 못했다. 

 

《고발》이란 한국의 일부 사람들이 노벨상감이라고 떠받들면서 외국어 번역도 추진해 여러 나라에 알리느라고 애를 쓰는 소설집이다. 지금껏 전문을 보지는 못했다만, 찬미론자들이 소개한 줄거리들과 인용한 대목들은 1930년대부터 만들어진 반공문학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러시아어, 중국어 등 언어로 양산되었던 소설들과 본질적으로 같았으며 내용세부들만 북한특색 그것도 반공, 반북 프레임에서의 “북한특색”이 약간 돋보였다.  

반공문학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전혀 새로울 것도 없는 3, 4류 “소설”들인데 굉장히 떠받드는 사람들이 있으니 필자로서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 글쎄 조선 체제와 사회를 뿌리부터 전반적으로 격렬하게 비난했고 지도자들에 대한 악감토로가 많으니, 어떤 사람들에게는 볼거리로 되어 가치가 높다고 여길 지도 모르겠는데, 전반적으로 문학적 가치는 따질 나위조차 없었다. 서양의 문학연구자들이 무식하지 않은 만큼 반소련, 반중국 반공작품들의 아류쯤인 “소설”을 높이 평가할까 의문이 든다. 

한국식 밀어붙이기로 인권 따위 수식어가 붙은 무슨 상을 따낼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그러나 노벨상은 아무리 대단한 작가라도 사망한 이에게는 주지 않는다는 나름 규정이 있는데, 익명작가에게 상을 줄 수 있을까? 일부 한국인들의 《고발》노벨상수상 프로젝트는 야무진 꿈에 그치겠다. 

탈북이 굉장히 어렵다는 장백 루트를 냅다 달리기로 빠져나온다고 묘사하여 내용에 대한 불신을 자아냈던 최성국 씨가 소설을 만화화하면서 어느 정도 변형과 윤색이 이뤄졌는지, 보는 사람들의 공감과 믿음을 자아내겠는지 궁금하다. 

 

소설을 그린다는 게 휴재의 이유라고 알려지기는 했으나, 전력투구해야 할 정도이겠느냐가 의문스러웠던 필자는 “로동심문”의 중지원인을 다른 방면에서 추측해보았다. 

자기 이야기를 다 쓰려면 장편소설 몇 권도 모자랄 것이라는 사람들이 많다. 헌데 정작 이야기를 들어보면 별거 아니어서 단편소설 한 편도 만들지 못할 수준이다. 학자나 전문가들도 어떤 주제로 글을 쓰면 무한히 나올 수 있으리라 여겼다가 몇 십 편 쓴 다음 더 쓸 게 없어서 당황해나곤 한다. 

이는 이성적으로 정리해보기 전에는 검불 같이 엉킨 인물, 사건, 사연들이 개개 특색 있고 놀랍고 극적으로 느껴지지만, 일단 문자로나 그림으로 정리하면 어느 수준의 인물, 사건, 사연들은 한두 번 표현으로 바깥부터 속까지 완전히 재생되므로 다시 아무리 수식해보았자 낮은 수준의 중복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자신은 이 사회에서 살면서 굉장히 대단하고 놀라운 일들을 했다고 여기더라도 저 사회의 대중들에게는 시시한 일일 수도 있다. 1980년대에 중국에서 서부독일로 망명한 여류작가가 “세 번 이혼한 여인”이라고 과시했으니, 이는 당시 중국에서 이혼 한 번 하려면 직장의 지도자들부터 이웃들에 이르기까지 재삼 권고하고, 민정국에서도 화해를 권하면서 엔간해서는 이혼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여 그녀로서는 가장 극적이고 자랑거리인 이혼을 내세웠는데, 서독사람들의 반향은 시큰둥했다. 이혼 네댓 번 한 사람들이 수두룩하거늘 세 번이 뭐냐고. 참고로 20세기 말 21세기 초에 독일 총리로 있은 슈로더가 네 번 결혼하였다 하여 아우디의 고리 4개 표식이 상징으로 되었다. 최대 자랑이 독일에서 먹혀들지 않았던 여류작가는 그저 썩어갔다. 

이런 사례들이 있고 《로동심문》에 연재될 때에도 뒤에 가서 황당개그로 명목을 유지했으므로, 필자는 혹시 이후에 《로동심문》이 다시 연재되거나 책 2권, 3권이 만들어지더라도 인기를 모아서 유지하기는 역부족이라고 추측한다. 

 

좀 튀는 탈북자들은 자신이 원래 북한에서 잘 나갔다고 자랑한다. 젊은 시절 범을 잡아보지 못한 사내가 없다는 격으로서 사회주의권에서 자본주의권으로 넘어간 사람들이 난민지위를 얻기 위해 불상한 모습을 부풀리지 않는 한, 자랑은 보편적이라 탈북자들에게만 제한되지 않는다. 

요란하고 극적인 탈출기를 내놓고 자랑들을 분석해보면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자기가 얼마나 똑똑하고 유능했는데 체제의 결함 때문에 불이익을 당했다는 것과, 자기가 얼마나 똑똑하고 유능하고 돈을 쓸 줄 알아서 밀수, 뇌물 등으로 체제의 허점을 잘 이용하다가 위험에 부딪치니 영리하게 빠져나왔다는 것. 

2010년에 탈북했다는 최성국 씨도 자기가 재능이 얼마나 뛰어났고 그림을 얼마나 잘 그렸으며 북에서 “꿈의 직장”이라는 조선4.26만화영화촬영소에서 어떤 영화들의 창작에 참여했는데 불공평한 대우를 받았다는 등등 자랑과 컴퓨터 장사와 한국 영화, 드라마 복제, 판매로 돈을 벌다가 걸려서 처벌받았다는 불만을 자기 입으로 털어놓았다. 

영화촬영소의 불만사유는 조선이 외국과 합작하여 그림영화를 제작할 때(《사자왕》같은 할리우드 만화영화들에 조선기술이 들어갔음은 널리 알려진 바이다) 같이 일하는 외국인들이 자신보다 훨씬 좋은 대우와 급여를 받는다는 것이라는데, 한국 회사나 다국적 회사에서 일해 본 한국인들에게 그런 말을 하면 공감하면서 최 씨를 동정할까? 아니면 웃기는 놈이라고 비웃을까? 

 

최 씨는 탈북 몇 해 만에 《로동심문》이라는 아이디어로 나름 인기를 끌다가 반북소설 그리기로 넘어갔다니까, 이리 돌고 저리 구르다가 결국 북을 소재로 밥벌이를 하는 셈이다. 

어떤 이유, 어떤 경로로든지 이 고장에서 저 고장으로 간 사람들은 현지에 녹아들어 사회 엘리트로 성장하든가, 떠나온 고장으로 되돌아가서 벌어먹든가, 떠난 고장을 뒤돌아보면서 욕설로 밥을 벌어먹던가 이 몇 갈래 길을 걷게 된다. 

중국에서 정당한 수속을 밟았거나 비정상방식으로 서방에 간 사람들 가운데서 예술인들은 기량으로 설자리를 찾은 경우가 꽤나 되는데, 문학인들이나 정치애호가들은 대개 현지적응과 현지에서의 성공에 실패했다. 특히 1989년에 서방으로 달아난 중국의 “민주투사”들 치고 잘 된 사람은 하나도 없다. 중국을 욕하기도 한때 인기를 끌어 돈을 끌어다가 쓸 수 있었으나 대중국정책의 변화에 따라 돈도 얻기 어려운 게 망명객들의 신세다. 

사실 정치적으로 중국을 반대하더라도 제 재간으로 명성과 지위, 재부를 얻으면 중국인들도 내심 존중하기 마련인데, 현지에서 별 볼 일 없으니까 중국 매도에 매달리는 사람들은 누구도 거들떠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한때 국제 뉴스들을 만들어냈던 중국의 맹인 변호사 천광청(陈光诚)은 미국의 개입 덕에 미국으로 간 다음 미국인마저 개도 음식을 주는 손을 물지 말아야 된다고 비꼬았으니 인기가 얼마나 낮아졌는지 더 거들 필요가 있겠는가. 

 

세 갈래 길 가운데서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게 뒤돌아보면서 욕하기로 특정세력의 호감을 사서 돈을 받아 혹은 벌어 쓰는 길이다. 자꾸만 과거에 연연하면서 욕설만 하면 건강에도 불리하다. 글쎄 지난 해 4월이던가 5월이던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면 외국으로 망명하겠다고 선언했다는 3천 여명 탈북자들이 태연하게 한국에서 살고 있다니까, 그런 사람들의 정신구조는 특이하여 엔간한 욕설로 건강이 파괴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만, 욕 특히 부풀렸거나 꾸며낸 데 기초한 욕은 보기도 듣기도 좋지 않고 심신에도 불리함은 분명하니, 진정 통일을 바라는 사람들은 삼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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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통 18/03/04 [23:22]
그런 웹툰도 있었군요.
탈북자들이 어찌 살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는데 조금이나마 궁금증을 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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