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일침425] 법정에서 박근혜 딸이라던 여성 어디갔을까!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8/03/13 [21:09]  최종편집: ⓒ 자주시보

[필자 주: 이 글은 무슨 의미를 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이런 일도 있었다며 한 번 웃자고 써 본 것입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고 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지난해 7월 3일, 탄핵으로 물러난 첫 한국 대통령 박근혜 재판에서 뜻밖의 소동이 벌어졌다. 재판 막바지에 방청석에 앉았던 한 40대 초반의 여성이 일어나 발언권을 요청했다가 재판부가 방청석에서는 말할 권한이 없다며 퇴정을 명령하니, 그 여성은 “제가 박 전 대통령의 딸입니다”라고 외쳤다. 주위의 방호원들이 발언을 저지하려 하자 그 여성은 거듭 “박 전 대통령의 딸”이라고 외치며 피고인을 향해 “엄마”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방호원에게 이끌려 법정을 나가면서도 그 여성은 “김모씨가 제 아들이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사생아 소문은 여러 해 파다하게 돌았으나, 스스로 자식이라고 나선 경우는 처음인 것 같다. 소동을 죽 지켜본 박 전 대통령은 황당하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고 그 여성이 퇴정한 뒤에도 웃음을 머금고 변호인단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한다. 그런 대화에서도 “박근혜 화법”을 썼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본인은 조용한데 비해, 현장에 있던 박근혜 지지자들이 그 여성을  욕설하는 등 소란을 일으켰고 재판부가 거듭 정숙유지를 요구하면서 그날 재판을 마무리했다.

언론들은 해프닝 정도로 대하면서 후속보도를 하지 않았는데, 그 여성의 생김새와 그 후의 생활이 궁금하다. 

 

같은 날 중국에서는 아르헨티나의 128살 노인이 스스로 히틀러라고 주장한 사건이 비교, 대조용 사진들까지 곁들여 보도되었다. 

 

▲ 히틀러의 사진과 히틀러라고 자칭하는 노인의 사진     © 자주시보, 중국시민


그 독일계 노인은 게슈타포가 만든 가짜 여권을 갖고 1945년에 헤르만 군스베르그(Herman Guntherberg)라는 가명으로 아르헨티나에 와서 70여 년 숨어살았는데 이제는 공중이미지를 회복해야겠다면서 9월에 자서전을 내겠노라고 예고했다. 세상에 나온 이유는 이스라엘의 모사드가 2016년에 나치스 전쟁범 추적을 그친다고 공식선포한 것. 

현지 언론들이 보도를 해줬으나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한다. 그와 함께 55년 산 아내 안젤리아 마티네스(Angela Martinez)는 남편이 노인치매로 헛소리를 한다고 설명했다. 2015년에 알츠하이머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는 히틀러나 나치스를 거든 적도 없었다면서, 남편이 기껏해야 과거에 마음빚을 진 나치스 성원일 뿐이라고 추측했다. 

 

126살에야 치매가 왔다면 그것도 꽤나 놀라운 일이고, 자서전 예고도 흥미로웠으나, 후속보도가 없는 걸 보면 나오지 않은 모양이라 쬐금 유감스럽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 같으면 귀가 비슷하다, 전혀 다르다 따위 논란이 몇 해 쯤 지속될 텐데 그런 비교와 논란도 일어나지 않아 유감이다. 

 

20여 년 전인 1994년에 《아버지라 부르기엔 너무나도 무거워(叫父亲太沉重)》라는 책이 타이완(대만)에서 나왔다. 저자 아이페이(艾蓓)는 저우언라이(주은래) 총리의 사생아라고 주장하면서 상, 하권으로 길게 썼다. 믿고 싶은 사람들은 믿었으나 허점을 발견한 사람들도 많았다. 예를 들어 저자가 상하이에서 저우 총리를 만났다고 주장한 날에, 저우총리는 베이징에서 외국손님들을 접견했다는 신문보도 기록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왜 하필이면 중공 지도자들 가운데서 대외활동과 공식보도가 제일 많은 저우언라이를 아버지라고 주장하느냐고, 중공 원로 중 몸이 약해 늘 휴양하던 천윈(陈云진운, 1905~ 1995)을 아버지라고 우겼더라면 날짜의 허점이 드러나지 않았을 텐데 과녁을 잘못 겨눴다고 풍자했다. 

 

그 사람은 논리적으로 분석했는데 아이페이가 천윈을 아버지라고 했더라면 더욱 큰 허점이 생긴다. 바로 생김새다. 

 

▲ 만년에 덩샤오핑(등소평)과 지위가 조금 낮았던 천윈     © 자주시보, 중국시민

 

천윈 하고는 비슷한 데가 전혀 없었던 아이페이는 저우언라이 총리와는 약간 비슷한 점이 있었다. 특히 눈썹이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는데,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성형수술이 드물었으니까 비슷하다고 사생아설을 믿어준 사람들도 참 순진했다.

 

 

▲ 아이페이와 그의 남편     © 자주시보, 중국시민

 

 

▲ 만년의 저우언라이 총리     © 자주시보, 중국시민

 

그러니 원래 이름이 장아이페이(张爱培)로서 안후이성의 한 농민가정에서 나서 자랐고 중국에 있을 때는 작가 반열에 끼이지 못하던 아이페이는 미국에 가서 살다가 저우언라이와 용모가 좀 비슷한 점을 이용해 돈을 벌려고 했던 것 같다. 그녀의 경력을 아는 사람들이 그 주장의 허구성을 까밝히기도 했지만 아무튼 반공바람의 덕에 책이 꽤나 팔리기는 했단다.
논란이 커지니 저우언라이의 전 경호원들은 책의 황당함을 낱낱이 까밝혔는데, 그중에서 특별히 지적한 1964년 12월 26일 저자의 8살 생일 날에 저우 총리와 부인 덩잉차오(등영초)가 전문 상하이에 가서 축하해주었다는 주장의 문제였다. 그날 저우 총리는 베이징에서 열린 제3차 전국인민대표대회 제1차 회의에 참석했고, 또 마침 마오저둥(모택동) 주석의 71돌 생일이라 저녁에 마오 주석의 집에서 같이 식사했고 식사 후에는 국가주석 류사오치(유소기)와 함께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들을 만나 담화했다. 그날에 상하이에 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논란이 커지니 아이페이는 자기가 쓴 게 소설이라고 발뺌했으나 망신을 면하지 못했고 책도 웃음거리로 된지 오래다.


2017년 미국에서 일어난 “미투”바람이 일본에서는 지금까지 별 영향력이 없는데 한국에서는 굉장한 운동으로 발전했다. 미국인들이던 한국인들이던 여러 해 전의 추행, 폭행 등이 폭로되면 순순히 시인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아 필자는 놀라곤 했다. 잘 생각해보니 할리우드의 어느 유명 노배우 같은 경우 2, 30년 전에 어느 특정인물의 엉덩이를 만졌다 따위를 확실히 기억한다기 보다는 그런 짓을 하도 많이 했기에 굳이 어느 한 건을 부인하기보다는 시인하는 게 훨씬 현명해서였을 것 같다. 한국에서 지목당한 문화예술계 명사들이 예전의 분위기, 예전의 문화를 들먹이면서 빠져나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곤 한 것보다는 나아보인다.


요즘 미투 운동에서 열점은 정봉주 전 의원의 성추행 논란이다. 7년 전 특정날짜 심지어 특정시간대의 활동이 따져지는 걸 보면서 기록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된다. 필자는 지난 주 어느 요일에 무슨 일들을 했는지도 설명하지 못한다. 이제부터라도 일기를 열심히 상세히 써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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