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문화 가꿔가기31]웃음 끝에 사색 깊어지는 장편소설 《단풍을 낙엽이 아니다》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8/03/26 [16:49]  최종편집: ⓒ 자주시보

 

소설과 영화는 완전히 다른 장르이다. 따라서 소설을 잘 쓴다 해서 시나리오도 잘 쓴다는 법은 없다. 조선(북한)에서 문호로 꼽히는 백인준 선생은 시, 평론, 영화문학 등을 두루 썼으나 소설에는 손을 대지 않은 것 같다. 세계적 범위에서도 소설과 시나리오에서 모두 성공한 사람은 미국의 시드니 셀던이 알려졌을 정도이다. 먼저 시나리오로 이름을 날리다가 40대에 첫 소설 《벌거벗은 얼굴》을 발표했고 후에도 《내일이 오면》, 《천사의 분노》 등 많은 베스트셀러들을 내놓았다. 물론 순문학 관점에서 보면 그의 작품은 모두 통속소설이라 문학사에 끼일 자격은 없을 것이다. 

 

조선에서는 소설과 영화문학을 다 잘 쓴 사람이 있는지 궁금했던 필자는 2017년에야 한 분 알게 되었다. 《단풍은 락엽이 아니다》(문학예술출판사 2016년 5월, 357쪽, 사진)를 접할 때 리희찬이라는 저자 이름이 어딘가 눈에 익었으나 머릿속의 소설가 명단에서 찾아내지 못해 이상스러웠다. 책 뒤의 “편집후기”를 보고서야 유명한 희극영화 《우리 집 문제》의 저자였음을 상기했고, 관련자료들을 찾아본 후 그가 젊은 시절에는 단편소설을 썼음을 알게 되었다. 

 

▲ 줄창 웃음을 선사하는 북의 장편소설 《단풍은 락엽이 아니다》     © 자주시보, 중국시민

 

1938년에 함경남도 홍원군 홍원읍의 평범한 사무원가정에서 태어난 리희찬은 1955년에 고급중학교를 졸업한 후 조선인민군에 입대했다가 제대 후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에서 공부하였고 졸업 한 뒤에는 사회과학원 주체문학연구소 연구사, 조선영화문학창작사 작가, 사장으로 활동했으며 1988년에 김일성상(1988) 계관인으로 되었다. 

대표작으로는 《우리 집 문제》시리즈의 《우리 옆집 문제》(1979), 《우리 아래집 문제》(1980), 《우리 웃집 문제》(1980), 《우리 처가집  문제》(1980), 《우리 큰집 문제》(1981), 《우리 누이집 문제》(1982), 《우리 사돈집 문제》(1982), 《우리 작은집 문제》(1983), 《우리는 모두  한가정》(1983), 《다시 시작된 우리 집 문제》(1986), 《우리 삼촌집  문제》(1988)가 제일 유명하고 전쟁영화로는 《축포가  오른다》’(1978), 《추억의 노래》(1986)가 있으며 현대생활을 묘사한 작품들로는 《우리는 묘향산에서 다시  만났다》(1982), 《금강산으로 가자》(1987), 《대동강에서 만난  사람들》(1993)등이 있다. 그가 시나리오를 쓴 40여 부 영화를 보지 못한 조선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또 일부 작품은 중국에서도 원본이 상영되거나 중국어로 번역제작되었다. 

 

필자도 어릴 적부터 그의 영화를 많이 보았으나 시나리오 저자에 신경 쓰지 않다나니 어렴풋한 인상만 남았고, 지난해에야 경희극 《끝장을 보자》, 《웃으며 가자》, 《축하합니다》도 그의 작품이라기에 새삼스레 놀랐고, 첫 장편소설 《단풍은 락엽이 아니다》는 “소설부문에서도 영화문학 《우리 집 문제》, 《잔치날》과 같은 유형의 작품을 쓸 수 있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을 받들어 80이 가까워 오는 고령에 써낸 작품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 《우리 집 문제》란 어떤 영화인가? 조선의 자료에서는 이렇게 소개한다. 

 

▲ 다시 시작된 우리 집 문제 

 

“예술영화 《우리 집문제》는 안해를 제대로 교양하지 못할 때 가정혁명화를 옳게 실현할수 없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영화의 주인공 우편국장은 귀족화되여가는 처를 원칙적으로 교양하며 때로는 엄하게 다스리기도 한다. 그러다가 그는 점차 안해에게 말려들어가기 시작한다. 남편을 등대고 출근용뻐스를 식량공급소에 끌고간 안해때문에 사업에 큰 혼란이 일어난 날 우편국장은 안해를 되게 닦아세우다가 안해가 갑자기 《아이구, 심장이야》하면서 침대에 드러눕자 겁을 먹고 기가 꺾인다. 그리하여 안해의 코에 손을 대보고 미음을 쑤어바치며 그의 비위를 맞추어준다. 나중에는 간부사업비밀까지 다 털어놓는다. 안해에게 완전히 말려들어간 우편국장은 안해가 잉어를 먹고싶다고 했을 때 아래일군이 동태를 사다주었다고 그 일군에게 이러쿵저러쿵 시비질까지 하게 되며 인민반회의에서 안해를 비판한 인민반장을 찾아가 안해의 역성까지 들게 된다. 우편국장은 결국 안해의 손에 쥐여서 그가 하라는대로 말하고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되며 안해의 풍에 놀다가 나중에는 과오를 범하고 실직된다. 

예술영화 《우리 집문제》 는 ...... 웃음속에 신랄한 비판이 있고 사람마다 교훈을 찾게 하는 특색있는 영화로 되였으며 가정혁명화주제의 영화창작에서 새로운 출발의 계기로 되었다. 영화는 또한 가정혁명화문제를 사회혁명의 중요한 과제로 내세우고 빛나게 해결함으로써 일군들속에서 커다란 과문을 일으켰으며 온 나라에 가정혁명화의 된 바람을 일으키는데서 큰 역할을 놀았다.” 

 

첫 편이 성공한 후 김정일 지도자의 지시로 1983년까지 만들어진 속편들도 모두 여러 가정에서 생겨난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풀어간다. 리희찬은 약 30년 만에 장편소설 형식으로 사소한 사례들로 사회적 문제점을 파악하여 바로잡는다는 주제를 다뤘다. 책에 첨부된 종이에는 책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부모는 사람들의 첫 스승이다. 

때문에 자식을 가진 부모는 첫 스승으로서의 자기의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성실히 노력해야 한다. 

소설은 어느 한 제약공장 지배인의 가정을 통하여 부모들의 눈먼 사랑은 자식을 《귀동자》로밖에 만들수 없다는 교훈을 생동한 화폭속에 펼쳐보이고있다. 청춘의 아름다운 삶과 보람은 진정 사회와 집단속에서만 꽃펴날수 있다는 사상을 기본줄거리로 하고있는 소설은 그 교양적가치로 하여 사회주의문명국건설에로 나아가고있는 우리 근로자들과 청년들에게 적극 이바지하게 될것이다.” 

 

솔직히 이런 소개를 보고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주요인물표를 봐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 

 

홍유철 제약공장 지배인 

진순영 홍유철의 안해 

홍경식 홍유철의 아들 

최국락 제약공장 운전사 

오  순 최국락의 안해 

최기옥 최국락의 딸 

최기호 최국락의 아들 

강명국 돌격대정치지도원 

 

저자의 명성 때문에 호기심을 갖고 책을 펼쳐들면서도 어떤 내용을 읽게 될지 몰랐던 필자는 고작 몇 페이지만에 웃음을 짓기 시작하여 단숨에 다 읽을 때까지 한 100번 쯤은 웃은 것 같다. 가끔 눈물까지 찔끔찔끔 나왔다. 

 

간단히 말하면 홍유철과 진순영이란 인물이 늦둥이 아들 홍경식을 너무 곱게 키워 조선사회에 필요한 강한 사람으로 되지 못했는데, 돌격대에서의 생활과 여러 지인들의 감화를 거쳐 사람이 된다는 얘기다. 

 

소설은 조선사회에 존재하는 뒷거래, 특권누리기 등 부정현상들도 거리낌없이 그려내면서 순수하고 훌륭한 사람들의 언행과 대조를 이룸으로써, 교양효과를 자연스레 얻어낸다. 최국락의 경우 인민군대에서 제대되면서 대학에 추천받았으나 화학과 외국어 공부가 힘들어 쩔쩔 매다가 동생벌 여동창생 오순의 도움을 받았어도 크게 개선되지 않는다. 고급중학교에서 직접 대학에 붙은 학생들은 조선에서 “직통생”이라고 부르니, 제대군인 출신 학생들보다 어리다. 재미있는 건 제대군인이 공부를 잘하지 못하면, 방조책임을 진 직통생이 회의에서 강한 비판을 받는다는 것. 고민 끝에 최국락은 아예 중퇴하여 한낱 운전사로 수십 년 일한다. 전우들의 기대를 어겼다고 부끄러워하지만, 인간적으로는 자신이 앉히고 다니는 지배인 홍유철보다 더 훌륭하고 자식들도 잘 키웠으며 나중에는 군대시절의 부하였던 돌격대정치지도원 강명국에게 이렇게 말한다. 

 

“전우들의 기대에는 참 미안한 일이였지만 그러나 어찌겠나? 나라의 돈만 축내면서 대학을 다녔댔자 크게 성공할 재목이 못되는 걸... 사람이 제자신까지 속이면서 살수야 없지 않나?”(301쪽) 

 

최국락이 대학추천을 받아 중대를 떠날 때 굉장히 기뻐했던 전우들이 중퇴소식을 듣고 뒤에서 욕을 했다고 말했던 강명국은 “하긴 그게 우리 최국락동지지요!...”(같은 쪽)라고 말하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로써 어떤 사람들의 눈에는 출세하지 못한 실패자로 인식되던 최국락의 형상이 우뚝 솟는다. 따라서 입으로는 우리가 평등하다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은근히 최국락을 얕보았던 지배인 홍유철의 이미지와 선명한 대조를 이루고, 홍유철과 진순영이 최국락 일가의 언행과 성품을 통해 인간적으로 개조된다는 결론이 자연스러워진다. 

 

책장을 덮자마자 통일문화 가꿔가기에서 다루려고 마음먹었으나, 어떻게 다뤄야 할지 정할 수 없어서 해를 넘겼다. 이제 와서야 작품 내용을 가급적으로 상세히 소개하던 통일문화 계열의 틀을 깨고 작품을 보는 재미를 이후에 원본들 접할 분들에게 남겨두기로 결정했다.저마다 다른 작중인물들의 특징과 그들의 인식변화, 수많은 역전을 일일이 밝히기도 어렵거니와 밝히면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이다. 하여 다부작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장면전환이 빠르고 생동한 세부들이 많은  《단풍은 락엽이 아니다》에서 필자가 웃었거나 사색에 잠겼던 내용들을 일부 뽑아 소개한다. 

 

홍유철의 아버지 홍수일은 검정시험을 거쳐 자격을 받은 준의(의사보다 아래등급)에 불과했지만 이 진료소에서 일하면서 어촌에서는 손으로 한두 번 꾹꾹 만져보기만 해도 어디에 무슨 병이 생겼는지 어김없이 정확히 진단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대단한 명의로 떠받들렸는데, 스스로 장암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종양의 크기변화를 밀리미터 단위로 매일같이 머릿속에서 계산하면서 큰 병원에 가자는 아내의 권고를 거부한다. 현대의학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 밥술도 들지 못하고 불면증으로 밤을 새우던 그는 피골이 상접해져서 일어나지도 못한다. 당시 고등중학교 졸업반이던 홍유철에게 추석이면 조부모 묘소를 꼭 찾고 어머니를 잘 돌보라는 눈물겨운 유언까지 남겼다. 

 

“그러나 그것이 종양이기는 하지만 악성이 아니라는 확진을 받은 그날부터 밥사발도 푹푹 자리를 냈고 밤을 꼬박 새우던 불면증은 무슨 불면증, 그새 밀렸던 잠을 봉창하는지 아침에도 안해가 흔들어깨워서야 겨우 일어났다.”(17쪽) 

 

아내가 비꼬아도 할 말이 없게 되었으나, “그때부터 홍수일은 환자의 심리적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고 같이 아파하는 의사로, 아무리 어마어마한 진단이라도 다시한번 머리를 흔들어보고 마지막확진까지 심사숙고하는 명의로 이 바다가마을에 소문이 자자하게 퍼지였다.”(18쪽) 

홍유철이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집을 떠나기 전에 홍수일은 아들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의학과 함께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법도 동시에 배워야 한다. 내가 겪어보니 성한 사람도 고치지 못할 병에 걸렸다고 하면 진짜로 죽을수가 있고 설사 죽을 병에 걸린 사람도 생에 대한 희망을 안겨주면 오래 살수가 있다. 약재와 의술로만은 사람의 탈을 고치지 못한다.》 

그래서 의학자는 그 어떤 난치의 병일지라도 죽음에 대한 선고를 내리기 전에 이렇게 혹은 저렇게 의진을 해보는 습관을 키워야 한다는것이다. 단번에 인차 확진을 서두르면서 거기에만 매달리는것도 의사로서는 일종의 교만성이고 자고자대의 표현이다. 꼭 명심해라...”(18쪽) 

 

이리하여 홍유철은 늘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습관을 길렀다. 박사원의 여동창생 진순영의 어머니가 불치의 병을 확진받은 뒤, 홍유철은 중증환자실에 찾아가서 우스개와 이야기로 침울하던 병실 분위기를 일신시켜 여성환자들의 깔깔 웃음을 자아낸다. 

 

“진순영은 그때마다 미소어린 눈길로 홍유철을 한번씩 슬쩍 흘기고는 말없이 마른명태를 찢어 그의 앞에 놓아주었다. 

원래 무표정한 인상인 홍유철은 좌중에 이렇게 즐거운 웃음을 마련해주고는 라이터를 켜서 명태껍데기를 열심히 구워먹고있었다. 

드디여 진순영의 입이 처음으로 열리였다. 

《홍동무는 참 고약한데가 있군요. 찢어놓은건 들지 않고 굳이 껍데기만 골라서...》 

《그래서 사람들이 명태들한테 모진 욕을 먹는게 아니겠소?》

갑자기 왕청같은 소리에 녀인들은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아니, 명태들이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 모진 욕을 한답니까?》

《물고기들이 회의를 하는대 갑자기 명태가 일어나더니 사람들을 욕한다는데...》 

홍유철은 마치 그 물고기들의 회의에 제가 참석해보기라도 한듯이 정색해서 이야기를 펼치였다. 

사람들은 자기네를 그물로 말끔히 건져서 땅에다 아무렇게다 부리워놓고는 녀자들이 달려들어 빼또칼로 배를 째더니 알은 뽑아서 명란젖을 만들고 밸은 뽑아서 창난젓을 담그고 까불까불한 고지는 국을 끓여먹고 애를 짜서는 간유를 뽑고 그담에는 코를 꿰서 높은데 매달아놓고 눈비를 실컷 맞힌다는것이였다. 

그러자 다른 한놈의 명태가 재차 뒤따라 일어나더니 이자 그것만이라면 또 모르겠는데 실컷 눈비를 맞힌 다음에 눈깔을 뽑아서 간염약을 만들고 망치로 두들겨서 껍데기를 벗겨먹다가 나중에는 그 껍데기마저 불에 태워 구워먹든가 튀겨먹어버린다면서 기염을 토하더라는겁니다. 

그때 마침 순영은 명태눈깔을 뽑다가 《어마나...》하며 얼른 도로 놓아버렸다. 

어머니는 큰소리로 웃기에는 기력이 딸렸던지 두손을 들어 가볍게 손벽까지 마주쳤다. 

홍유철은 시침을 뚝 따며 이렇게 이야기를 결속하였다. 

《그러나 다른 물고기들이 그 명태를 가만히 놔두었을게 뭡니까. 저마다 앞을 다투어 일어나서 명태를 공격했지요. 이놈들아, 그래 세상에서 제일 으뜸가는 사람들이 너희들을 껍데기까지 통채로 다 먹구 건강들 해서 잘살면 긍지스럽게 생각할 대신에 뭐 어쩌구어째? 돼먹지들 않게...》 

두 녀인은 호호 소리내여 웃으며 맞장구까지 쳤다. 

《맞아요. 명태의 말이 맞기야 맞지 뭐. 명태는 마지막에 뼈다구 남은거랑 다 두부장에 넣고 끓여먹어도 구수한게 우리 주인은 그 이상 더 맛있는 장이 없다지 않아요. 

모두들 벅적 떠들어대는데 유독 홍유철이만 혼자서 안경을 추켜올리며 부지런히 빵을 먹고있다. 

홍유철은 무슨 이야기든지 상대방이 충분히 납득이 되도록 례증도 들고 유모아나 지어 옛적의 패설까지 섞어가며 구수하고 재미나게 말을 해서 모인 자리를 즐겁게 해주고는 제꺽 눈을 내리깔고 입을 꼭 다물어버리군 하였다.》”(27~ 28쪽) 

 

진순영의 어머니는 결국 사망했으나 병실에서 활약한 덕에 홍유철은 진순영과 결혼하게 되고, 여러 해 지나서 아들을 얻게 된다. 그 아들을 너무 곱게 기르다나니 꿈이 많은 한 편 실속이 없는 “귀동자”로 돼버린다. 

홍경식과 대조적인 인물들로는 약초 캐는 노인의 후대로서 “산신령”의 손자라고 자처하는 산골청년 차동근이다. 조선사회에서 흔히 “걸작”으로 불리는 인물로서 엉뚱한 언행으로 남들을 웃기거나 놀래킨다. 

홍유철이 20살 나는 차동근과 함께 약초를 찾아 산발을 타고 돌아본 다음 최국락이 운전하는 차에 앉아 공장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전조등에 노루가 비친다. 최국락이 속도를 높였으나 막 쳐죽일 순간에 홍유철이 세우라고 급한 소리를 지른다. 

 

“최국락은 제동을 밟으며 히죽이 웃었다. 

《지배인동지때문에 불고기감 한마리를 허양 놓쳤습니다.》

《알게 뭐요? 저 노루가 이제 최동무에게 저를 살려준 신세갚음을 하겠는지.》 

《저 노루가 무슨 강남갔던 제비라고 신세갚음을 다...》 

지배인은 허허 웃고나서 다시 이었다. 

《이자 그 불고기이야기가 났으니 말이지 최동무는 고기를 좋아하는 체질이지?》 

《그러게 말입니다. 사람의 몸에는 남새가 좋다는데 나는 어쩐지...》 

《남새가 좋은건 사실이지.》 

지배인은 뒤자리에 말없이 앉아있는 《산신령》손자를 돌아보았다. 

《차동근의 생각에는 어때? 사람의 몸에 남새가 더 좋나, 아니면 고기가 더 좋나?》 

《글쎄 남새도 필요하겠지만 풀만 먹어가지고야 어떻게 앞으로 냅다 달려나갑니까?》 

지배인은 의아해서 다시 물었다. 

《달려나간다는건?》 

《할아버지를 따라서 산속에 들어가볼 때면 토끼, 노루, 사슴 같은 풀먹는 짐승들은 다 도망치구 날고기를 먹는 승냥이, 여우, 범 같은 짐승들은 다 쫓아가더군요. 

초식동물들은 눈부터가 벌써 잔뜩 옆에 붙어가지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먼저 도망칠 생각부터 하는데 육식동물들은 두눈이 앞에 모아붙어가지구 쫓아갈 생각부터 하더란 말입니다. 이 자동차도 눈이 이마에 딱 붙어있으니까 이렇게 앞으로 냅다 달리지 않습니까?》 

홍유철은 하하 큰소리를 내여 웃었다. 이 웃음속에는 제 마음속의 생각과 차동근의 말이 어딘가 일치되는 점이 있었기대문이기도 하였다. 

홍유철은 혼자 마음속으로 늘 이런 생각을 하고있었다. 축산에서 고기생산을 부쩍 늘이는것과 함께 우리 제약공장들에서도 고기성분과 꼭 같은 보약강장제를 더 많이 개발해낸다면 얼마나 좋을가. 그래서 홍유철에게는 차동근의 이야기가 그저 우스개소리로만 들려오지 않았다.”(73쪽) 

 

주로 육식을 하던 서양인들이 수십 년 전부터 채식바람을 불러일으키면서 채식주의가 극단화되어가는데, 차동근의 관찰과 홍유철의 생각은 그 특별한 시각으로 하여 반도 북부 이외의 사람들에게 참고가치가 다분하다.  

 

조선소설에는 일기가 심심찮게 등장하지만, 《단풍은 락엽이 아니다》에서처럼 일기를 감명깊게 읽은 기억은 없다. 있어도 없어도 좋거나 생각이 너무 많아 일기답지 않은 내용이 아니라, 소설이야기의 발전과 인간들의 성장에 꼭 필요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돌격대에서 홍경식을 도우는 임무를 받았으나 효과가 시원치 않아 고민이 많던 최국락의 딸 최기옥은 오빠 최기호의 일기를 보고 많이 배우고 부모 앞에서 읽기까지 한다. 어느 해 4월 1일 고등중학교에 입학한 날에 쓴 일기로서 첫 스승이었던 부모에게서 배운 바를 적은 내용이다. 

 

언젠가 기호가 학습반 동무들과 함께 집에서 숙제를 하는데, 최국락이 아파트 앞에 잠시 차를 세우고 급히 들어와서 자루에 든 사과를 커다란 소랭이(대야)에 쏟아놓았다. 애들이 좋아하며 학습장을 밀어놓고 사과를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최국락은 집에 돌아와서 기호를 불러앉혔다. 

 

“《기호야. 아까 낮에 동무들하고 같이 사과를 나누어먹을 때 네 손에 들었던 그 사과가 어떻게 생겼던지 생각나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 사과가 어떻게 생겼던지 통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가 어처구니없는걸 묻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생각날게 뭐나? 다 똑같이 생긴 사과들이였는데..》

《아니다. 어떤건 크고 어떤건 작고, 다 똑같은 사과는 아니였다. 그리고 어떤 사과는 빨갛게 잘 익었구 어떤 사과는 시퍼렇게 덜 익었구... 네 손은 다른 동무들의 손보다 먼저 제일 큰 사과를 골라쥐더라. 그게 아무리 컸댔자 한입차이밖에 안돼. 그 한입차이때문에 사람들에게 제 속을 들여다보게 하구 이담에 어른이 돼서도 저 하나밖에 모르는 사람으로까지 돼...》 

그때도 나는 어쩐지 아버지앞에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후로는 사과를 먹을 일이 생겼을 때마다 손이 먼저 나가다가도 어김없이 꼭 아버지의 그 말이 생각나군 해서 남보다 작은 사과를 골라쥐게 되였다. 그런 때이면 내가 스스로 남보다 별스럽게도 높아보이는것 같아서 저절로 기분이 좋았다.”(143~ 144쪽)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냐 이타적이냐를 놓고 적어도 수천 년 쟁론이 이어진다. 대체로 사회주의사회는 집단성을 강조하면서 이타를 내세우고 자본주의사회는 개인의 자유를 부각하면서 이기를 본질로 간주한다. 헌데 자본주의사회에도 자원봉사나 기부 등등 이타를 숭상하는 활동이 있고, 이타성이 인간진화의 중요한 원인이라는 주장도 연구결과로 발표되었다. 

 

자식들 앞에서 부모가 작은 걸, 못한 걸 고르는 건 본능적인 내리사랑으로 이뤄지지만, 어린이가 친구들 앞에서 작고 못한 걸 고르는 건 교육의 결과이다. 가정과 유치원, 학교에서 이타교육을 제대로 받은 최기호는 해군에 갔다온 다음 화물선 선장으로서 먼 바다를 오간다. 즉 미국을 우두머리로 하는 반조선세력이 굉장히 미워하고 제재를 거는 대상으로 된 것이다. 그의 연락단절과 회복 등 경력은 소설에서 홍경식이 성장하는 계기의 하나로 된다. 

 

역시 최기호의 일기에는 오래 전 조선에서 존재하던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도 나온다. 고등중학교에 입학한 해 7월 1일의 일기에서 추억한 어린 시절 이야기에서다. 

 

“그리고 나의 첫 스승이였던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나는 돈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배웠다. 

우리 아빠트의 량옆에는 에스키모매대가 두군데 있었다. 

우리 반에 종호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그의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사랑이 정말 끔찍하였다. 종호의 어머니는 에스키모매대들에 미리 돈을 푼푼히 맡겨놓고 자기 아들이 아무때나 와서 에스키모를 달라고 하면 주게 하였다. 

종호는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그 에스키모매대앞에 저와 친한 아이들을 한줄로 쭉 세워놓고 차례차례 하나식 나누어주었다. 좀 냠냠하면 그다음에는 다른 매대에 가서 또 한줄로 세워놓았다. 아이들은 그것을 하나씩 받아먹는 재미가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나도 그 줄에 끼워섰다. 그런데 종호가 나의 팔을 잡아챘다. 

《너는 안돼! 학급반장이면 다가? 오늘도 내 좀 지각했다구 너 나한테 까불었지?》 

《지각하지 말라고 말한것도 까분거야?》

《까분거 아니문...》 

《좋아, 네건 안 먹어....》 

나는 그길로 집에 달려가서 돈을 꺼내가지고 마당으로 달려나왔다. 어머니가 돈을 건사하는데를 나는 알고있었던것이다. 어머니가 부엌의 찬장빼람에서 돈을 꺼내가지고 두부랑 콩나물이랑 사러 식료상점에 나가는걸 나는 늘 보군 하였다. 

나는 눈에 띄우는 몇아이들과 함께 에스키모에 빵까지 받쳐서 맛있게 먹었다. 종호를 좀 골탕먹이려 했는데 그새 제 친한 동무들과 같이 어데 또 놀라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날 저녁 일이 끝내 터지고야말았다. 어머니가 퇴근해서 반찬거리를 사려고 찬장빼람을 열어보니 돈이 없어졌던것이다. 

어머니가 처음에 조용히 물었을 때까지는 모른다고 딱 잡아뗐다. 그랬더니 어머니는 종이로 내 손을 꽁꽁 싸기 시작하였다. 

《솔직히 말하지 않는건 몰래 챈거다. 돈을 몰래 챈 손은 불에 태워 없애버려야 한다.》 

그때서야 나는 엉엉 울면서 돈을 어머니의 승낙도 받지 않고 꺼냈던 자초지종을 솔직히 다 말하였다. 어머니는 무엇인가 자꾸 말하려다가 끝내 입을 열지 못하였다. 그 목메인 소리가 자기의 엄한 표정을 지워버리게 될가봐 어머니가 애써 참았다는것을 나는 썩 후날에야 알게 되였다.”(151~ 152쪽) 

 

그러고보면 조선에서 이른바 “돈주”라는 사람들이 생겨나지 썩 전에도 생활비(월급)를 좀 많이 받는 사람들 가운데는 종호의 어머니처럼 지각 없이 행동하는 어른들이 있었고, 종호처럼 어릴 적부터 돈맛에 취해 우쭐댄 아이들도 있었다. 단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현상으로 지적될 따름이다. 

최기호가 어머니의 말에 꺾이지 않아 어머니 오순이 성냥까지 내보여서야 실토했다면, 책을 본 일부 한국인들이 “북한의 끔찍한 아동학대”라고 크게 떠들지도 모른다. 

장편소설 《단풍은 락엽이 아니다》는 정치적인 설교가 거의 없으면서도 생활에 대한 생동하고 재미나는 묘사로 옳고 그름을 분명히 가르면서 조선의 최고지도자들이 바라는 인간상, 생활상, 사회상이 어떠하냐를 그려냈다. 북을 바로 알고 싶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읽으면서 많이 깨우칠 수 있는 작품이라,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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