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문화가꿔가기 39] 진실을 밝히는 통일문화 가꿔가기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8/05/27 [14:51]  최종편집: ⓒ 자주시보

 

 

한국 《중앙일보》가 연재한 “인민무력부장전”에서 “특히 조명록은 해방 이후 김정일을 등에 업고 귀국했던 사람으로 김정일과 깊은 인연이 있다.”고 주장했기에, 필자는 지난 해 6월 초에 정문일침 273편 “어, 중앙일보 대북정보력 확 달라졌네”(http://www.jajusibo.com/sub_read.html?uid=34218&section=sc51&section2=)에서 그 문제점을 지적했다.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조명록-김정일 설은 한국에서 꽤나 오래 꽤나 넓게 퍼진 설이었는데, 근원은 조선노동당 고위간부로서 1960년대 후반부터 청년 김정일과 인연을 맺었고 한동안 같은 부서에서 근무했다는 신경완(본명이 박병엽이라는 설이 있음)인 모양이다. 

1922년에 태어나 노동당 중앙당에서 30년 이상 근무했고 1980년대 초 제3국으로 망명했다가 1998년에 사망했다는 신경완은 한 시기 한국에서 북한 문제 권위자로 인정받은 것 같은데, 이 분의 주장을 받아 쓴 책이나 글들을 보면 직접 보고 느낀 부분들 예컨대 청년 김정일의 독서열, 사무처리방식 등은 다른 자료들을 통해 신빙성을 검증받을 수 있으나, 현장에 있지 않고 그저 들은 소문을 전한 부분들에는 오류가 수두룩했다. 조명록 설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해야겠다. 

신경완은 나름대로의 원칙을 지키면서 누군가의 구미에 맞추는 결론을 앞세운 괴상망측한 설들을 퍼뜨리지 않으려고 애썼으니 “혁명의 2세대”인 조명록과 어느 항일투사의 이름을 그 본인이 헷갈렸거나 아니면 그에게 그 설을 얘기한 사람이 헷갈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인다. 

 

헌데 유감스럽게도 귀순자, 탈북자들 중에는 혀 돌아가는 대로 떠든 사람이 너무나도 많으니, 한때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면서 명성을 얻었다가 조선(북한)의 폭로로 크게 망신하고 인기가 식어버린 신동혁, 박연미 같은 인물들이 대표적이다. 

신, 박처럼 조선의 지적으로 영향을 받지는 않았으나 인터뷰, 글, 책들에서 사실과 다른 주장들을 편 탈북자들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지경이다. 필자가 신기하게 생각되는 건, 걸핏하면 별거 아닌 일을 놓고도 진실공방이 일어나는 한국에서 탈북자의 주장검증, 특히 책에 대한 검증은 드문 현상이다. 혹시 탈북자들의 책들이 인기를 끌지 못하고 많이 팔리지도 않았다는 반증으로 되나? 

탈북자들 가운데서는 최대 소문을 냈던 황장엽- 김덕홍 콤비에서 스타는 당연히 황장엽 전 비서로서 글과 책들을 꽤나 내놓았고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는 중국의 한 친구가 중국어판을 필자에게 보내주기도 했다. 중국어판으로 황 전 비서가 돈을 벌었는지는 모르겠다만 아무튼 영향력은 상당했음을 보여준다. 

몇 해는 참으로 친하게 보내던 황장엽, 김덕홍 콤비가 결렬했다는 소식이 나온 뒤 또 몇 해 지나 총리급 경호를 받는다는 황 전 비서가 욕조에서 죽은 뒤 오랜 시간이 지나 발견되었다는 기이한 보도가 나왔고, 또 몇 해 지나 김덕홍 씨가 뒤늦게 회고록을 출간했다. 제목은 《나는 자유주의자이다》. 

 

▲ 2015년에 출간된 《나는 자유주의자이다》[출처-인터넷]     

 

“자유주의”와 “자유주의자”가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는데, 김덕홍 씨가 자유주의자임을 강조한 깊은 뜻을 제대로 이해한 한국 독자들이 몇이나 되겠는지 의문이다. 

근 400쪽에 이르는 책은 여러 번 웃음을 자아냈다. 예컨대 김정일 조직비서가 대미협상전술들을 내놓았다고 주장했는데 1993년 초의 “연막전술”은 그런가보다 했지만, 1994년의 “저팔개 전술”은 너무 잘못 아는 말이다. 중국고전소설 《서유기》나 관련된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을 좀이라도 안다면 인물이름이 “저팔계”임을 알 텐데, “저팔개”로 쓰이고 그거도 “연막전술, 저팔개 외교로 핵도 사수하고 실리도 챙겨라”라는 꼭지에 버젓이 들어갔으며, 책으로 인쇄되어 나왔으니, 김 씨도 출판사도 무식함을 세상에 자랑한 꼴이 되었다. 

김 씨는 이른바 김정일 주장을 이렇게 전했다. 

 

“중국 서유기에 나오는 저팔개가 솔직한 척, 어리석은 척, 억울한 척, 미련한 척하면서 어딜 가나 얻어먹을 것은 다 얻어먹은 것처럼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저팔개 식 외교를 해서 미국 놈들로부터 핵도 지키고 받아낼 것도 다 받아내야 된다는 말입니다.”(234쪽) 

 

필자가 익숙한 《서유기》 저팔계 형상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그런 수준의 말을 김정일 조직비서가 했는지 의심스럽다. 이러루한 웃음제조기와는 달리 분명히 이건 아니다라고 단정할 수 있는 대목들도 많았다. 

작가 천세봉이 김일성 장군의 부인 김정숙 항일투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장편소설 《충성의 한길에서》 1, 2부를 썼는데 아들에게 “유명한 말”을 했단다. 그 대목을 인용한다. 

 

“《글을 지어내기가 이렇게 힘든 줄은 몰랐다. 소설 <고난의 역사>를 쓸 때에는 토굴에 들어가서 종일 무릎을 반쯤 꺽고 앉아서 하루에 원고지 50페이지 이상도 써나갔었는데, 이 글은 하루에 원고지 3장도 써지지 않더라. 

그런데도 수령님(김일성)은 ‘지금까지 쓴 초고를 봐야겠다.’면서 자꾸 찾으시지. 이것을 쓰면서 다시는 글을 쓰지 않아야겠다는 생각까지도 했었다.”

이 말은 천세봉작가의 아들이 내게 직접 전해준 것이다. 그 후 천세봉은 정말로 김정숙 우상화 소설을 끝으로 다른 소설을 더 이상 내놓지 않았다. 

장편소설 <석개울의 새봄>, <고난의 역사>, <안개 흐르는 새 언덕>, <대하는 흐른다> 등으로 북한인민의 무한한 사랑을 받았던 작가 천세봉 선생은 1986년 4월 18일에 서거했다.》”(116쪽)

 

공식보도나 선전은 모두 가짜이고 아무개가 나에게만 해준 말만이 진실이라는 수법은 이른바 “진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 써먹은 바이다. 단 둘이 있은 자리에서 한 말이라니까 제3자가 진실여부를 가리기도 어려워서인지, 1930년대에 퍼지기 시작한 반공, 반소련, 반중국 회고록들에서 수없이 나타난다. 물론 반조선 회고록들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조선의 책이나 영화 CD를 소장해도 잡혀서 감옥에 갈 수 있다는 한국이라, “북한정보”들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직접 들은 말”과 잇따른 결론들이 먹혀들 수도 있다. 하지만 천세봉 관련 김덕홍 씨 주장은 “북한 문학”연구자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김정숙 소설 뒤에도 내놓은 소설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이트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시피, 천세봉 선생의 장편소설들로는 3부작 장편소설 《석개울의 새봄》(1957~60), 《대하는 흐른다》 1부(1962),· 《고난의 역사》1부(1964),  《안개 흐르는 새 언덕》(1966),《축원》(1980), 그리고 “불멸의 역사” 총서 가운데 《혁명의 여명》(1973), 《은하수》(1982),《조선의 봄》(1991)과 김정숙 항일활동을 그린 《충성의 한길에서》중 1부 《유격구의 기수》(1975)와 2부 《사령부로 가는 길》(1979)이다. 

《축원》(1980), 《은하수》(1982)와 유고작 《조선의 봄》(1991)이 모두 김정숙 소설보다 뒤에 출판되었다. 《은하수》는 표지에 출판연도가 찍히지 않았지만, 조선에서 유명한 “태성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삼은 《축원》은 표지에 1980년이라는 연도가 또렷이 찍혀있으니 천세봉 선생이 “다른 소설을 더 이상 내놓지 않았다”는 김덕홍 씨의 주장은 표지사진 하나만으로도 설 자릴 잃는다. 혹자가 천 선생이 미리 써놓았다가 후에 발표했다고 우긴다면 그런 지식과 지적능력의 소유자와는 쟁론할 필요가 없겠다.  

 

▲ 1980년에 출판된 장편소설 《축원》과 1982년에 출판된 장편소설 《은하수》     © 자주시보,중국시민

 

천세봉(1915.2.10~ 1986.4.18) 선생의 사망일을 정확히 기록하고 작품들도 여러 권 거든 김덕홍 씨가 축원, 은하수조선의 봄을 몰랐다면 1980년대 초반부터 소설책을 읽지 않고 관심도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세 소설의 존재를 번연히 알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누락했다면 다른 성격의 문제지만, 그렇게까지 추측하고 싶지는 않다.

개인의 기억이란 어디까지나 불확실하기에 서류, 자료들과의 대조와 비교는 역사기록과 평가에서 필수이다. 허나 김덕홍 씨는 생각나는 대로 휘갈겼거나 키보드를 두드렸고, 출판사도 특별한 검증 없이 출간했으니, 허점투성이인 책들은 북한에 대해 무식한 사람들이나 속여 넘길 뿐, 조선을 좀이라도 아는 사람들을 설득하기는 역부족이다.

사실과 어긋나는 허점들은 오히려 반북선전을 믿던 사람들마저 김덕홍 씨 같은 사람들의 다른 주장들마저 의심하게 만들 수 있으니, 그런 책들을 쓰고 출판하는 사람들과 출판사들이 도대체 반북인지 친북인지 종북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김덕홍 씨의 정체성을 의심하는 한국인들은 꽤나 된다. 19805월에 북의 특수부대만이 아니라 명사들까지 떼를 지어 광주로 가서 활약했다는 이른바 광수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김덕홍 씨도 제 몇 번 광수로 지목했다. 쌍방이 명예훼손 따위로 법정놀음을 하지 않는 게 이상할 따름이다.

살펴보면 귀순자”, “탈북자들은 자신의 기억오류 혹은 누군가의 구미 맞추기 때문에 낭설을 내놓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한국과 일본, 미국의 전문가, 연구자, 정치인들이 합세하여 낭설을 퍼뜨리기도 한다. 분명히 그릇된 설들을 구별해내고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건 여러 모로 필요한 작업이고, 통일문화 가꿔가기의 일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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