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문화가꿔가기 45] 푸에블로호 사건을 다룬 소설 《나포》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8/07/15 [09:38]  최종편집: ⓒ 자주시보

 

북 주민들보다 더 열심히 《노동신문》을 보는 이남 언론인 

 

7월 11일자 북 《노동신문》 사설이 남에서 기사들을 낳았다. 우리글 판본에는 “병진로선”만 표현했는데, 이튿날 발표한 영어판본에서는 ”building of nuclear force”라고 핵이 들어가니, 13일 남의 《동아일보》가 북이 또 핵무력 건설을 거든다고 해석해, 숱한 언론들이 전달했고, 중국에까지 그 해석이 전해져 보도되었다. 

우리 글 원본은 다음과 같다. 

 

“생존을 위협하는 전대미문의 제재와 봉쇄 속에서도 병진로선의 위대한 승리를 위하여 순간의 멈춤도 없이 내달린 그 기세, 그 기백으로 사회주의경제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자력부강의 새 국면을 열어나가야 한다.” 

 

핵무력 건설을 다시 하겠다는 뜻이 아님은 문맥상 분명하다. 그러나 북의 주민과 간부들보다 더 열심히 《노동신문》을 보는 남의 일부 사람들이 여론몰이식 해석을 가해 국제적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몇 달 쯤 지나면 “북 소식통”의 명의로 노동신문사의 영문판 번역자가 처벌을 받았다거나 아예 총살되었다는 소식도 나올 법 하다. 기사거리가 없으면 만들어내서라도 북 이슈를 이어가는 게 한국 일부 언론이 아닌가. 

그처럼 북의 일언일거일동에 신경 쓰면서 갖은 해석을 가하는 한국인들도 종종 놓치는 게 있다. 최근의 사례로는 북의 사이트들 중 남에서 지명도가 제일 높은 “우리민족끼리”의 사소한 이상변화 하나를 기사화하지 않은 것이다. 

 

이남 언론들이 놓친 북의 이상동향 

 

“우리민족끼리”는 여러 해 동안 동영상(북에서는 동화상이라고 부름)과 음성파일, 도서들을 게재해왔다. 그 가운데서 음성파일은 이남 언론들이 별로 신경쓰지 않고, 동영상은 이남 언론들의 대관심사여서, 언젠가 어느 네티즌이 제작했다고 소개된 꿈속의 미국 타격 상상 동영상마저 북 당국의 의도로 한국에서 해석되어 미국 언론들마저 받아썼다. 

도서들에는 이남 언론들이 지금까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고 기억되는데, 사실 흥미로운 정보가 많다. 지난해에 올려진 《거짓과 진실》이란 책자에서는 태영호 전 공사와 그 가족의 상황을 다뤘는바, 남에서 전혀 알려지지 않은 정보들이 풍부해 필자가 글에서 소개한 적 있다. 태씨에게 불리한 내용들인데도 《자주시보》가 명예훼손 고소를 당하지 않았으니 꽤나 의미심장하다. 

 

“우리민족끼리”의 도서는 2가지 형식으로 올려진다. 하나는 PDF파일로 제작되어 책자 전체가 단번에 올려지는 것, 하나는 웹페이지형식으로 연재되다가 연재 완료 후 표지 사진 등이 첨가되어 도서 부분에 올려지는 것. 

 

근년에 “우리민족끼리”는 하루에 소설 2종의 2개 꼭지를 올리는 게 관례였다가 지난 달에던가 1일 1종의 1꼭지 올리기로 바뀌었다. 금년에 연재한 작품들 가운데서 역사주제작품인 장편사화 《동의보감》(한영철, 회흥록, 평양출판사 2018), 통일주제작품 장편소설 《봄의 고향》(신흥섭, 평양출판사 2017) 등은 이미 연재가 끝났고, 연재가 아직 완료되지 않은 장편소설들로는 이승만반대투쟁을 다룬 통일주제작품 《투쟁의 노래》(리정숙)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최후 1년을 다룬 총서 불멸의 향도 중 《야전렬차》(백남룡), 그리고 1968년 푸에블로호 사건을 다룬 장편소설 《나포》(김대성, 문학예술출판사 2015) 등 3부이다. 

 

▲ 《동의보감》(한영철, 회흥록, 평양출판사 2018)     © 자주시보,중국시민

 

금년에 평양출판사가 출판한 장편사화 《동의보감》 

 

한동안은 이 3부의 소설이 2부씩 엇갈려 연재되다가 1일 1종으로 바뀌었는데, 《나포》는 7월 8일 연재 22회, 소설 22절까지 올린 다음 여러 날 째 더 오르지 않았다. 《야전렬차》와 《투쟁의 노래》만 엇갈아 오르는 상황이다. 

이미 연재된 부분은 소설 247쪽 까지라 전체 381쪽인 작품의 2/3 좀 못 미치는 분량이다. 5월 말부터 연재를 시작한 작품이 이처럼 중단된 건 전례 없는 변화다. 북이 미국과 평화를 위해 교섭하는 상황에서, 6월 말 한국의 한 전문가는 북에 “이제 미국에 푸에블로호 넘겨줘라”고 호소하면서 그 날짜까지 특정 지었다. 

 

“트럼프가 의회의 동의와 여론의 지지를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협정과 북미 수교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11월 6일 중간선거 이전에 푸에블로호를 돌려주기 바란다.” 

 

그런데 7월 9일부터 《나포》가 며칠째 연재가 중단됐으니 얼마나 해석의 폭이 넓은가! 이남 언론들이 주의를 돌렸더라면 얼마나 자극적인 기사들을 양산할 수 있었겠는가! 전문가들도 얼마나 많은 해석을 가할 수 있었겠는가! 필자가 막 아쉬울 지경이다. 

 

북의 해군면모를 보여주는 작품 《나포》 

 

푸에블로호 사건은 수많은 글, 책, 영화를 낳았다. 1년 가까이 지속된 사건이었으므로 어느 한 단계의 어느 한 부분만 뽑아도 긴 글, 두꺼운 책이 나올 수 있다. 자료의 한계 때문에 남에서는 주로 미국의 주장을 베껴쓰거나 판문점에서 진행된 회담 부분을 강조하는 경향이 심하고, 북에서는 필요에 따라 어떤 인물, 어떤 부분들을 강조한다. 발생당시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던 청년 김정일이 1990년대부터 차차 김일성 수상을 보좌하여 사건을 해결한 주요인물로 알려졌고, 예술영화 《대결》(1992)는 부총참모장이 주역으로 나와 주로 나포 이후의 대결을 다루면서 나포과정은 잠깐 지나간다. 

 

지난 2월 초순 통일문화 가꿔가기 특별편 “북, 푸에블로호 소설에 등장하는 비밀 미사일”(http://www.jajusibo.com/sub_read.html?uid=37870&section=sc55&section2=)에서 소개한 총서 불멸의 역사 《존엄》은 1968년의 김일성 수상을 폭넓게 그리다나니 푸에블로호 사건은 일부에 그친다. 나포한 7명 결사대에서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은 2명을 원형으로 그린 인물들은 해군 상위 박인철과 상등병 김현주라고 나온다. 

그와 달리 《나포》는 거의 순전히 푸에블로호를 나포하는 이야기와 관련 인간상을 그렸다. 주인공은 구잠함 정치부함장 박철호이고 영웅으로 되는 다른 인물은 수뢰수 김형길이다. 이 두 인물의 경력, 인간관계 등등은 모두 《존엄》과 다르다. 같은 해 2105년에 나온 두 부의 장편소설을 같은 시기에 읽다보니 필자는 두 인물 때문에 잠깐잠깐 헷갈렸고 게다가 두 사람의 실제모습도 떠올라 상당한 곤욕을 치렀다. 

푸에블로호 나포공로로 공화국영웅이 된 두 사람은 뒷날 모두 대좌로서 대동강에 띄운 푸에블로호에서 해설 강사로 활동했다. 하여 6 · 15시대에는 그 두 분을 만나본 이남 사람들도 많고 사진들도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나이 지긋한 모습을 사진으로 먼저 접했던 탓으로 《나포》와 《존엄》에서의 청년 군관(장교), 청년 병사의 형상이 실감나지 않아 다른 작품들처럼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남에서 얻어 볼 기회가 없거나 드문 책들은 소개할 의욕이 강한데 반해, 이미 사이트에 연재된 작품들은 내용을 구체적으로 전할 필요가 있겠냐는 의문을 낳는다. 한국에서 남북 정상회담 이후 북과의 접촉규제가 여러 모로 완화된다니까, 2/3가까이 공개된 작품을 구체적으로 소개할 흥이 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하면 북의 해군출신 작가가 구잠함을 중심으로 삼아 해군의 모습을 생동하게 그린 작품으로서, 북의 해군과 대조적으로 미국의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의 내력 및 그 함장 부처의 경력, 행동이유 등등을 그려냈다. 북의 해군과 미국의 무장간첩선이 엇갈아 나오면서 쌍끌이처럼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여기서 중점은 인간들의 대비이다. 북의 해군 장병들이 어떤 교육과 어떤 훈련을 거쳐 강철군인으로 자라나느냐와 미국인들이 어떻게 돈에 미쳐 움직이느냐를 대조함으로써 문학은 인간학이라는 북의 지론을 실증한다.  

주선 외에 《수령이시여, 명령만 내리시라》는 유명한 노래가 어떻게 나왔느냐는 일화가 흥미를 끌고, 또 해군 함정과 해안경비포병의 경쟁심리도 생동하게 그려졌다. 

인물들 가운데서 특별히 중요하지 않은데도 인상이 남는 사람이 있다. 기관조장 권중섭이다. 푸에블로호 나포 당시 미군이 시동장치를 파괴해버려 배가 움직이지 못한다. 미군은 나포 소식을 받고 출동조짐을 보인다. 바다에서 머무르면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 아직 연재되지 않은 부분이기에 그 대목을 그대로 전한다. 

 

“김중복이 쉐파트의 잔등을 총신으로 툭 찔러 정치부함장앞에 내세웠다. 박철호는 놈의 두눈을 싸맨 천을 풀어주고 기관장이 누구냐고 물었다. 

쉐파트는 레이시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박철호는 기관장놈의 눈을 싸맨 천을 풀어주었다. 

《빨리 기관을 돌리라.》 

놈은 응할듯말듯 망설이더니 난처한 기색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박철호는 이놈을 기관실에 끌고들어가 강제로 기관수리를 하게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러면 음험하게 생겨먹은 이놈이 기관을 수리할 대신 더 나쁜 장난을 할수 있었다. 

《기관수리가 급선무요. 갑판장과 경리분대장은 빨리 기관실에 들어가 기관조장을 도와줄것. 수뢰분조장과 해남동무는 놈들을 다 병실안에 가두어넣고 지킬것!》  

박철호는 이렇게 명령하고 지휘소에 올라가 보고했다. 

《놈들을 완전히 제압했다!

미제무장간첩선이다. 승무원은 83명, 그중 장교가 6명이다. 우리 함이 총포사격을 할 때 한놈은 즉사하고 세놈이 중상을 입었다. 놈들이 기관시동장치를 파괴했다. 수동으로 기관을 시동할 방도를 찾고있다.》 

이때였다. 

얼음장을 가까스로 헤치고 항만을 벗어난 어뢰정 3척이 물갈기를 날리며 기세좋게 달려왔다. 

김철진은 구잠함의 배머리를 적함의 선수갑판에 바싹 붙이게 하고 뛰여넘어갔다. 그리고는 박철호와 함께 사령탑으로부터 병실에 이르기까지 적함의 격실들과 내외부구간을 다 돌아보고나서 마감으로 기관실에 내려갔다. 거기서는 기관조장이 갑판장, 경리분대장과 함께 파괴된 시동장치를 수리하노라 땀을 철철 흘리며 무진 애를 쓰고있었다. 

《동갑이, 수고를 하는구만.》 

이를 사려물고 구라치를 분해하는 권중섭은 미처 응답도 못했다. 

그들을 초조히 지켜보던 김철진은 갑판으로 나갔다. 총참모부에 적함나포정형을 보고하러 무전실에 갔던 부처장이 선수갑판에 나와있었다. 김철진은 구잠함의 선수갚반으로 넘어갔다. 

최정식은 성급히 물었다. 

《전대장동무, 기관수리가 어떻게 됐소?》 

《시간이 좀 걸려야 할것 같소.》 

《허, 이러고있을 새가 없는데... 저놈들이 보낸 급보를 받고 일본과 남조선에 주둔한 미군이 비상을 걸었다오. 사세보항을 떠다 윁남으로 가던 항공모함도 방금전에 여기로  배러미를 돌렸다누만.》 

그런즉 예견했던바대로 전면전쟁으로 번져질 위급한 정황이 조성되였다. 

《시간이 없소. 적함의 코를 꿰서 끌고가기요.》 

《알겠소.》 

김철진은 지휘소에 달려올라가 목을 빼들고 적함을 바라다보고있는 함장에게 소리쳤다. 

《예선준비!》 

구잠함은 반원을 그리켜 적함의 배머리쪽으로 꽁무니를 돌리고 저속으로 후진하여 접근했다. 이미 예선준비를 갖추고 기다리던 갑판장은 구잠함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온 련락삭을 날래고 익숙한 솜씨로 받았다. 련락삭끝에 련결한 팔뚝처럼 굵은 예선바줄이 넘어왔다. 

갑판장은 예선바줄의 올가미를 적함의 계선주에 걸었다. 

《미속으로 전진!》 

엄장석함장의 지휘에 따라 구잠함은 자기보다 배수량이 거의 3배에 달하는 적함을 끌려고 안깐힘을 썼다. 적함은 끌려가지 않으려고 마치 도살장에 들어가는 맹수마냥 뻗치기를 했다. 팔뚝처럼 굵은 예선바줄이 물방울을 튕기며 팽팽히 당겨졌다가 축 늘어져 물면에 닿았다. 잠시 전진을 멈추고 힘을 가다듬은 구잠함은 발동소리도 높이 다시 용을 쓰며 적함을 끌었다. 적함은 더 뻗치지 못하고 질질 끌려가기 시작했다. 

어뢰정들은 대형을 짓고 적함을 호송했다. 하늘에서는 추격기들이 동음을 울리며 맴돌았다. 설사 적들이 구출작전을 벌려도 어뢰정대와 비행대는 즉시 반격을 가하여 지원세력까지 소탕해버릴판이였다. 

꾸르릉! 

마침내 적함의 기관이 돌아갔다. 

파악이 없는 미국제기관을 수동으로 시동시키느라 악전고투하여 땀투성이가 된 권중섭은 침착하게 보고했다. 

《지휘소! 기관시동!》 

박철호는 그 정형을 즉시 확성기로 전대장에게 보고했다. 

김철진은 흡족해서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최정식을 돌아보았다. 

《역시 동갑이가 기관엔 귀신이군.》 

최정식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였다. 

《깡솔로 문질러주면 안 돌아가는 기관이 없단 말이요.》 

두 군관은 호탕하게 웃었다. 

《어떻게 할가? 예선을 그만둔다?》 

전대장의 물음에 최정식은 홱 한손을 내저었다. 

《적함을 그냥 끌고가기요. 그게 볼맛이 있지. 나포된 미제무장간첩선의 가련한 몰골을 인민들이 다 볼수 있게 군항이 아니라 해안광장부두로 끌고가기요. 신문, 방송, 통시니자들도 해안광장으로 오게 조치를 취하겠소.》 

김철진은 확성기로 소리쳤다. 

《기관을 꺼버리라! 적함을 그냥 끌고 해안광장부두에 들어가겠다.》”(342~ 345쪽)

 

결과적으로는 기관을 끄지만, 위험한 시각에 기관을 시동하느냐 마느냐가 갖는 중요한 의의는 두말이면 잔소리다. 권중섭의 능력이 놀랍다. 

이 대목에서 주목할 건 전대장과 기관조장의 대화다. 직위로는 아득히 차이나지만 두 사람은 동갑으로서 평등하다. 이런 인간관계가 인민군의 숨겨진 힘을 만들어준다.  

처음에 나올 때 10년 나마 상사견장을 달았다고 간단히 소개된 권중섭은 6절에서 비교적 상세하게 알려진다. 

 

“전쟁참가자이며 초기복무사관인 권중섭은 김철진전대장과 동갑이다. 군사복무년한도 같았다. 그런데 한사람은 상좌요, 다른 사람은 상사다. 권중섭은 십년이 넘게 상사령장을 달고있지만 기관조장인 자기의 직무를 사랑했으며 겸손하고 근면하며 례절이 밝아 비단 구잠함 103호만이 아니라 온 군항의 존경을 받고있었다.”(72쪽)

 

“박철호는 형길이를 제 친동생처럼 여기며 끔찍이도 위해주는 기관조장을 만나 의논을 해보고싶어 기관실에 갔다.

갑판엔 찬바람이 쌩쌩 부는데 기관실은 후끈후끈했다. 배기름냄새가 짙게 풍겼다. 이곳은 전투초소라기보다 기계공장이나 발전기실같았다.

기관수들은 아래우가 맞달린 검은 정비복을 입고 작업모를 쓰고서 주기관과 보조기관, 압축기, 전동발전기, 윤활유탕크, 청수탕크, 고압탕크 등 비좁게 설치된 설비들사이에 들어박혀 뭔가 직심스레 닦아내거나 분해하기도 하고 기운차게 뽐프질도 하고있었다.

기관정비작업은 고되고 품이 많이 든다. 온몸에 시꺼먼 기름칠을 해야 한다. 기관수들에 비하면 탐지수나 항해수, 무전수와 같이 약전기재를 다루는 해병들은 신선놀음을 하는셈이다. 그들은 정비를 해도 옷에 기름찌끼 한점 묻지 않는다.

항해를 할 때도 다찬가지다.

기관수들은 출항한 함선이 항해임무를 수행하고 입항할 때까지 귀고막이 터질 지경으로 그칠새 없이 퉁탕거리는 주기관이나 보조기 옆에 붙어있어야 한다.

박철호가 찾는 기관조장은 열어제낀 선저안에 들어가서 배밑창에 고인 걸쭉한 기름찌끼를 퍼내고있었다. 이게 함선정비에서 제일 어렵고 구접스러운 일이다. 이 기름찌끼를 《비류지》라고 부른다. 기관실의 배밑창에 비류지가 더 많이 생기기때문에 기관수들이 남보다 더 고생하게 된다.

박철호는 서슴없이 선저안에 들어가 기관조장을 도와 비류지를 퍼내기 시작했다.

노상 기관실에 붙어있는 기관조장은 배기름에 절어서인지 얼굴과 두손이 거무틱틱하고 번질번질했다. 눈섭은 시꺼멓고 광대뼈는 주먹처럼 두드러졌다. 억센 턱엔 수염터가 유표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무뚝뚝하고 험상궂게 생겼다. 이마에 가로찍힌 상처자리가 더욱 그런 인상을 자아냈다.

권중섭은 뒤늦게야 인기척을 느끼고 일손을 멈추며 고개를 돌렸다.

《아, 정치부함장동지군요. 여긴 어지럽습니다. 그만두십시오.》

권중섭은 매우 미안하고 송구스러워하면서 만류했다.

험상궂은 그 얼굴에서 따뜻한 정이 풍기는데 신기할 지경이였다. 박철호는 헌신성과 성실성, 근면성과 솔직성으로 빚은 조각상과도 같은 이 전쟁로병에 대한 존경심을 새삼스레 가지며 더 부지런히 일손을 놀렸다.

《그만두시라는데두요.》

《괜찮습니다, 함께 합시다. 비류지를 꺼리면 배사람이 아니지요.》

《하긴 그렇지요.》

권중섭은 미더운 눈길로 정치부함장을 바라보며 동감을 표시했다.

함선승무원들은 자기를 가리켜 배사람이라고 즐겨부른다. 자신을 스스로 비하하는듯 한 그 말속엔 함선승무원이라는 자랑과 긍지가 담겨있었다. 아울러 나는 어떤 구질고 험한 일도 가리지 않는다는 의미도 포함되여있었다.

얼굴에 피가 몰리도록 고개를 수그리고 땀을 철철 흘리며 미끈거리는 비류지를 다 퍼내고나서 맑은 물로 배밑창을 깨끗이 닦는다. 물걸레로 배밑창과 주기관의 고정틀을 빡빡 문질러주노라면 거물인 구잠함이 발가숭이처럼 여겨진다. 해병들의 가슴속에서 모성애가 생겨난것이다.

오냐, 이녀석아, 뭘 그리 부끄러워하느냐? 그까짓 배밑창이 좀 어지러워진게 대수냐? 내가 씻어주지, 어때? 시원하지? 음, 워낙 잘생긴 녀석이라 목욕을 하니 멀끔한게 보기 좋구나. 넌 보기엔 요란해도 코흘리개나 같아서 늘쌍 보살펴주고 어루만져주어야 해. 그래야 임의의 시각에 기운차게 동음을 울릴수 있지.

무정한 함선이지만 유정하게 여겨져서 이렇게 다정히 속삭이노라면 힘든 생각은 씻은듯이 사라지고 흥이 난다. 즐거워진다. 코노래가 절로 흘러나온다. 이처럼 정비작업은 함선과 해병들을 육친의 정으로 살틀하게 련결시켜준다.”(81~ 82쪽)

 

이러한 묘사는 해군경력을 가진 작가만이 써낼 수 있다. 이래저래 읽을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푸에블로호는 어떻게 될 것인가? 

 

6월 말 한국 전문가의 푸에블로호 반환 제의를 접할 때 필자가 떠올린 단어는 “오지랖”이었다. 남에는 북이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고 훈시하는 분들이 참 많다. 북이 어떤 조치를 취하면 자기 말을 들었노라고 좋아하는 분들도 더러 있다. 분단 상황이 낳은 기이한 현상이다. 

푸에블로호가 나포 수십 년 동안 줄곧 미군 현역함정명단에 들어있음은 여러 해 전 필자가 푸에블로호를 다룬 연속 글에서 언급한 적 있다. 미 해군의 최대 수치인 푸에블로호를 되찾아가려는 미국의 의욕은 굉장히 강하다. 

반면에 북에서는 오랜 세월 영원한 전리품이라 이야기했고 특히 청년 김정일의 결정임을 강조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관련도서들에 여러 번 나왔거니와 장편소설 《존엄》에서도 예술적으로 그려졌다. 

 

“수령님께서는 고개를 끄덕여 김정일동지의 견해에 공감하시며 《그래, 쏘련지도부는 지금 우리와 미국사이에서 중재군 노릇을 하고있으니까 의사라고 해야 그것밖에 없지.》라고 하신 뒤 좀전에 읽어보신 총참모부의 정세보고내용을 요약하여 설명하시였다.

《…한마디로 미국은 배와 선원들을 찾아가기 위해 안깐힘을 쓰고있소. 윁남에 발목을 잡혀있는 놈들이 조선에서 또 전쟁판을 펴겠는가 하는건 좀 더 두고봐야 할 일이지만 죤슨으로서는 배와 선원들을 돌려받아 대통령재선의 명분을 세우자는게 기본목적이요.

말하자면 죤슨은 〈푸에블로〉호사건에 자기의 정치적생명을 걸었소. 쏘련지도부는 그 심부름군역을 맡고… 그러니 자신을 최고사령관으로 생각하고 한번 결심을 채택해보오. 저 〈푸에블로〉호를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겠소?》

그것은 《푸에블로》호사건이 발생한이래 김일성동지께서 생각을 많이 하시면서도 전면전쟁까지 예견하지 않으면 안되는 너무도 심중한 문제인 까닭에 결심을 서두르지 않고계시던, 그야말로 나라와 인민의 운명이 실려있는 물음이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도 수령님의 물으심속에 담겨있는 그런 심중한 의미를 잘 아시기에 잠시 동안을 끌며 생각을 깊이 해보시고야 결심을 피력하시였다.

《수령님, 저는 미국이 항복서를 내기 전에는 절대로 〈푸에블로〉호 선원들을 석방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놈들이 설사 항복서를 낸다 해도 배는 돌려주지 않겠습니다.

〈푸에블로〉호는 우리의 전리품입니다. 선원, 포로병들 같은건 항복조건으로 돌려보낼수도 있겠지만 전투전리품이야 왜 돌려주겠습니까?

저는 우리 해병들이 나포한 미제무장간첩선을 잘 건사했다가 후날 박물관에 전시해놓고 후대들에게 이것은 우리가 수령님시대에 잡은 미국의 간첩선이라고 말해주겠습니다.》

수령님께서는 또 한번 새삼스러운 눈길로 김정일동지를 바라보시였다. 통이 커도 보통 크지 않고 담대하기 또한 여간 아닌 그이의 비범출중한 성격을 모르시는바 아닌 수령님이시지만 미국이라는 《초대국》의 체면쯤을 발바닥아래로 굽어보시는 그 배짱이 진정 마음에 푹 드시였다. 미국이 《보복》만이 아니라 전면전쟁을 강요한다 해도 결코 나라의 존엄과 자주권을 추호도 양보하지 않으리라 결심을 굳히신바이지만 전란속에 인민들이 피흘리며 고생할 생각, 또 한창 상승일로를 달리는 경제건설과 국방건설 그리고 인민들의 복리증진이 중단되는것때문에 마음속 괴로움이 많으시던 수령님이시였다. 하지만 이 시각 미국의 머리우에 철추를 내리시는것 같은 김정일동지의 배짱에 접하여 그 괴로움과 걱정이 커다란 힘과 고무로 환원되는듯 마음속이 후련해지는 감을 금할수 없으시였다.”(138~ 139쪽)

 

이러하므로 이남 전문가의 제의대로 북이 푸에블로호를 돌려주고 그것도 중기선거 전에 돌려준다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뜻을 어기는 행위로 된다. 물론 해석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방식으로 조미(북미)관계를 처리하야 되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남긴 유훈에 조미관계가 개선되면 푸에블로호를 돌려줘도 된다, 허나 대가는 충분히 받아내야 된다는 내용이 있었노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만 번 양보해서 조선이 푸에블로호를 미국에 돌려준다면, 미국이 지불해야 할 대가가 엄청날 것이다. 말이나 성명, 협정 따위가 아니라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그 무엇들이 있어야 하겠다.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필자는 푸에블로호의 반환을 바라지 않는다. 역사는 어디까지나 역사다. 결과를 존중하는 게 기본원칙이다. 상당수 나라들에서 정치환경의 변화에 따라 역사관련 물품들을 처분했는데, 바람직하지 않은 처사이다. 영국의 박물관에 가보면 지난 세월의 침략전쟁자료와 물품들도 버젓이 전시해놓았다. 영국의 침략을 받았던 나라와 민족들에게는 열불 터지는 노릇이지만,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지난 수백 년 역사에 대한 객관적인 기록을 보존한 셈이다. 

조선이 푸에블로호를 미국에 돌려준다면 자체 역사의 한 부분을 떼어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의미에서 필자는 푸에블로호의 반환을 반대한다. 역시 오지랖이 넓다. 

남과 북의 주민들은 물론, 필자와 필자의 후대들도 언제든 평양에 가면 푸에블로호를 구경할 수 있는 게 자그마한 소망이다. 역사는 역시 실물로 봐야 실감이 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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