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문화 가꿔가기 47] 문명자 선생으로부터 보는 국적과 정체성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8/08/05 [11:5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괴한 두 명과 난투극을 벌이다 칼에 찔려 숨진 피켜스타 데니스 텐. [사진출처-방송화면 캡쳐]     

 

7월 19일 카자흐스탄의 피겨 영웅 데니스 텐이 자동차 백미러 도적과 실갱이질하다가 피습, 사망했다. 고작 25세로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사람을 애도하는 물결이 인다. 한국에서는 데니스 텐이 “한국계”이고 “의병장의 후손”임을 부각한다. 예전에 한국에 소개된 고려인들은 대개 국적변화를 거쳤는데 데니스 텐은 구소련이 해체되고 카자흐스탄이 독립한 뒤에 태어나 줄곧 하나의 국적을 유지했기에 정체성이 애매했던 적이 없다. 허나 우리 민족의 상당수 성원들은 국적 때문에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문명자 선생의 국적 바꾸기 체험 

 

통일문화 가꿔가기 44편(http://www.jajusibo.com/sub_read.html?uid=40633&section=sc7&section2=)에서 다룬 재미언론인 문명자 선생은 자신이 핍박에 못 이겨 미국국적을 갖게 된 사연을 회고록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1970년대 미국의 수도 워싱턴은 세계 각국의 망명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나 자신부터가 그 중 한사람이었다. 나는 73년 11월 8일 정치 망명을 선언한 후 76년 말까지 무국적 상태의 난민으로 지냈다. 61년 미국에 특파원으로 부임한 후 나는 영주권을 취득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때가 되면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고 미국에서 일할 때도 반드시 한국인으로서 입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백악관 기자회견에 임할 때도 항상 나의 머리를 가장 강박했던 생각은 '결코 미국 기자들에게 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 

미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곳곳에서 인종차별과 부딪치게 된다. 백인 이외의 인종들을 비하해서 부르는 속어까지 있을 정도다 코리언은 '국(Guk)', 중국인은 '칭키(Chinky)', 일본인은 '잽스(Japs)'다. 한번은 택시를 탔더니 백인 운전사가 물었다. 

-"너 잽스냐?"나는 그 말을 들은 척도 안 하고 창밖만 내다보았다. 그러자 운전사놈이 혼자서 중얼중얼 "칭쿤가 보다"하는 것이었다. 목적지에 다 왔을 때 나는 물었다. 

"얼마야?"-"3불25센트. "

택시를 타면 요금의 1할 정도를 팁으로 더 주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 없이 3불 25센트를 내밀었다. 화가 난 운전수는 문을 쾅 닫고 가버렸다. 나는 뒤통수에다 대고 말해 주었다. 

"인종차별한 댓가야"

망명 이후 나의 신변안전을 담당하던 FBI측은 76년 말 국적 문제 때문에 다시 한번 나를 물고늘어졌다. -"쥬리, 당신이 무국적인 한 우리가 더 이상 당신의 신변을 보호해 줄 수가 없다. 부디 시민권을 받기 바란다. "

그 문제로 줄곧 고민하던 나는 77년 카터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 시민권을 신청했다.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법정에서 "미국 시민으로서 헌법을 준수하며 미국의 국익을 위해 일하겠다"고 선서해야 한다. 

나는 마침내 알레산드리아 연방 법정 강당에서 열린, 만국 이종들로 붐비는 선서식에 참여했다. 판사가 내 이름을 부르고 문제의 선서를 마쳤을 때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졌다. 그것을 본 판사가 물었다. 

"당신, 그렇게 기쁘냐?"사실 시민권을 얻고 난 후 기뻐서 우는 사람도 많이 있으니 판사가 그렇게 물은 것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기쁨의 눈물이겠는가.” 

 

소설이 그린 여기자의 국적 바꾸기 

 

문명자 선생을 실제 모델로 삼은 조선(북한)의 장편소설 《녀기자》(조승찬 지음, 문학예술출판사 2016년 3월, 293쪽) 증보판에서 주인공 문명주는 한국비리폭로로 신변위협을 당하여 미국으로의 정치망명을 선언한 다음 몇 해 동안 무국적상태로 지내다가 협박과 위협의 도가 점점 더해지고 남편마저 총격을 당해 석 달이나 입원치료를 하게 되고, 개인경호원 또한 무국적인으로 잇는 한 우리가 더 이상 당신과 당신가족을 보호해줄 수 없다고 밝히니 생각이 많아진다. 

 

▲ 장편소설 《녀기자》 증보판     ©자주시보,중국시민

 

“이런 권고는 오늘에 와서 새삼스레 제기된 것은 아니였다. 그가 미국에 특파원으로 파견되여와서 점차 명성을 떨치게 되자 동료들과 이웃들이 그것을 권고하였다. 하지만 그는 시민권을 취득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때가 되면 고국으로 돌아갈것이고 출세를 해도 반드시 조선 사람으로 일떠서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백악관기자회견에 나설 때도 항상 그의 머리속을 지배한것은 이곳 기자들에게 뒤지지 말아야겠다는 민족적 자각이였다. 

그는 며칠동안 고민하다가 남편과 합의를 보고 시민권을 신청했다. 미국시민권을 얻기 위해서는 법정에서 선서해야 한다. 

문명주는 마침내 련방법정 강당에서 세계 여러 나라 인종들로 붐비는 선서식에 참가하였다. 

판사가 그의 이름을 부르고 문제의 선서식을 하고났을 때 문명주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좀해서는 절대로 눈물을 보이지 않던 그였다. 아들애가 위험고비를 간신히 넘기고 보모가 상처를 입고 쓰러졌을 때도 그리고 남편이 괴한의 총탄에 맞아 병원에 실려갔을 때도 귀축같은 살인마들의 악행에 분노하고 치를 떨며 가슴이 터지는듯 한 아픔을 느꼈을망정 결코 남에게 눈물만은 보이지 않았다. 

그랬던 문명주가 미국시민권을 받고나서 소리없이 울었다.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지는 그를 보며 판사는 물었다. 

《당신, 그렇게도 기쁜가?》 

어이가 없었다. 하긴 미국시민권을 취득하고나서 기쁨에 겨워 우는 사람들이 없지 않아서 판사는 문명주도 그래서 우는가 하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눈물이 어찌 기븜의 눈물이겠는가. 그 눈물은 슬픔의 눈물, 비애의 눈물이였다. 다시는 고국땅에 가볼수 없게 되였다는 생각, 가까운 친지들과 이웃들도 만나보기 어렵게 되였다는 절통한 생각이 그로 하여금 뚝 터진 보물마냥 슬픔의 눈물을 걷잡지 못하게 하였다. 비록 당국자들의 전횡과 악행, 악덕정치에 침을 뱉고 떠나온 고국이였지만 그 고국산천과 그속에서 사귀고 얽히운 가까운 친지들에 대한 사랑의 감정은 그의 가슴속에 고이 간직되여있었고 고국의 시민권을 잃어야 하는 이 시각에 와서는 그 소중하고 깨끗한 감정이 몇배나 더 세차게, 격렬하게 끓어번지고있었다.”(141~ 142쪽)

 

소설이 그린 광복 직후의 정체성 논란 

 

일제강점시기에 나서 자란 주인공이 노예화교육을 받을 때의 생각이 어떠했는지는 소설이 그리지 않았으나 광복 후에는 민족의식이 굉장히 강하다. 각종 사조가 난무하던 광복 직후 외사촌오빠 주영기의 영향으로 학통회(학생통일촉진회)에 가담하고 진보적인 운동에 참가했던 문명주는 오빠의 친구 최성욱과 함께 비밀조직모임에 참가했다가 첫 타격을 받는다. 지도자격으로 온 허 선생이라는 사람이 우선 공산주의운동경력을 자랑한 다음 무산정권을 세우기 위해 몸과 맘 다 바쳐 일해야 된다고 30분 가까이 역설하더니 참가자들의 신상을 알아본다. 노동자들과 자산가 아버지와 결별한 최성욱을 칭찬한 반면에 지짐장사를 하는 어머니의 슬하에서 여고를 다니는 문명주에 대해서는 시답지 않게 여기는 태도로 껄껄 웃더니 아무튼 용타고, 혁명을 해보겠다는 그 열의만은 높이 산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들에게 “투철한 계급적 안목”을 가져야겠다고 강조한다. 문명주는 불안하고 분해 반발심이 일어난다. 

얼마 후 나라가 나아갈 길에 대해 특별강연회가 있다는 통지를 받고 문명주가 공화당에 가보니 사람들이 꽉 찼는데 위에서 특별히 파견한 사람이라는 연사가 저번의 그 허 선생이다. 허 선생은 광복 직후 생겨났던 인민위원회들이 미군정이 들어선 후 간판들이 떨어져나가고 수많은 참가자들이 체포되어 고생하는데 대하여 역설한 다음 질문을 던져 대답을 이끌어내고는 자신의 결론을 공포하는 기법을 쓴다. 

 

“《이런 엄혹한 정세하에서 조선이 나아갈 길은 과연 어데 있는가? 어떤 사람들은 봉건왕조를 되살리자고 하는데 과연 이 주장이 옳은가?》 

《아니요. 우리는 옛 봉건국가로 되돌아갈수 없습니다》 

관중속에서 누군가 앉은자리에서 목청을 높여 부르짖었다. 

《옳습니다. 우리는 옛 세상으로 되돌아갈수는 없습니다.》 

연사는 일단 관중석의 호응자를 긍정해주고나서 다시금 묻는듯이 연설을 계속했다. 

《그럼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미국과 같은 부르죠아공화국을 세워야 하겠는가? 

아니요, 그것은 몇몇 잘사는 놈들만이 더 잘살게 하는 지주, 자본가의 세상이지 우리 무산자의 세상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해방된 조선이 나아갈 길은 오직 하나 그것은 저 공산로씨야와 같은 무산자가 주인된 세상으로 되는 쏘베트국가를 세워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 공산로씨야는 우리 무산자의 조국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응? 이게 무슨 소리야?) 

귀가 솔깃해 듣고있었던 문명주는 아연해졌다. 공산로씨야가 무산자의 조국이라니? 어떻게 되여 로씨야가 우리 무산자의 조국이 되는가? 거의 동시에 장내가 웅성대며 어수선해졌다. 웅성대는 군중의 분위기로 보아 분명히 연사의 돌발적인 방향각탈선에 놀라거나 의분을 참지 못하는듯 했다. 

《조용하시오. 조용하시오!》 

박씨가 손을 저으며 장내의 분위기를 정돈시키려 했다. 

그때 그는 불쑥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더는 참을수가 없었다. 장내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 쏠려왔다. 

《한가지 질문이 있어요.》 

그의 목소리는 야멸차게 울리였다. 허선생도 그를 인차 알아보았는듯 어서 말하라며 너그러운 미소를 짓고 흔쾌히 받아들였다. 

《선생은 방금전에 공산로씨야가 우리 무산자의 조국이라고 말할수 있다고 하였는데 로씨야가 어떻게 우리의 조국으로 되는지 그 근거를 밝혀주세요.》 

목소리는 높지 않았으나 또랑또랑 울리는것이 제법 쇠소리가 났다. 그 어조에는 연사의 주장에 도전하려는 문명주의 옭맺힌 마음과 결단이 그대로 슴배여있었다. 

그의 질문이 끝나기 바쁘게 여기저기서 청년들이 들고일어났다. 

《옳소. 그 근거를 밝히라!》 

《밝히라!》 

장내는 혼잡속에 빠지였다. 

그러자 연사를 지지하는 축들이 조용하라고 목청을 높여 분위기를 수습하려 했다. 그러나 관중석의 흥분은 좀체로 가라앉지 않았다. 장내를 수습하려는 사람들의 흥분과 격분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로 혼잡을 이루는 가운데 허선생이 떠듬떠듬 그 리유를 설명하였다. 그의 주장인즉 공산로씨야는 무산자대중을 위한 쏘베트정권이기때문에 무산혁명을 지지하는 조선사람에게 있어서도 공산로씨야는 곧 조국으로 될수 있다는것이였다. 

《궤변이다!》 

누군가 소리치자 그에 화답하는 호응의 목소리들이 장내가 떠나갈듯이 들썩해졌다. 

연사는 끝내 강연을 끝마치지 못했다. 

연사가 쫓기듯 내려가자 문명주는 연단에 뛰쳐나갔다. 

《여러분! 우리는 공산로씨야가 우리 무산자의 조국이라는 연사의 망언에 절대로 찬성할수 없습니다. 유산자든 무산자든 우리의 조국은 오직 하나, 조선입니다. 

그 누구든 내앞에서 두번다시 공산로씨야를 자기 조국이라고 주장하는 미친 자식이 있다면 절대로 용서치 않겠습니다.》 

《옳소! 옳소!》 

《우리는 조선청년들이다!》 

《공산로씨야의 앞잡이들을 타도하라!》 

장내에서 환성이 터져올랐다. 시뻘건 주먹들이 수풀처럼 오르내리고 사대매국노들을 타매규탄하는 불같은 구호들이 울려퍼졌다. 그러나 상대편도 만만치 않았다. 처럭처럭 박수를 치며 연사의 연설을 지지했던 몇몇 사나이들이 문명주를 향해 삿대질하며 악다구니를 퍼부었다. 

《저 계집애는 장사군의 딸년이요. 저 모리간상배를 타도하라!》 

《타도하라!》 

《타도하라!》 

량측에서 서로 상대방을 타도하라며 규탄하는 목소리들이 터져오르고 밀고당기는 몸싸움이 벌어지다가 나중에는 치고 받는 란투장으로 번져졌다. 그 혼잡속에서 누군가 그를 끌고 장내를 급히 빠져나갔다. 최성욱이였다. 

《명주씨, 아주 잘했습니다. 난 명주씨가 그처럼 대담하게 연사를 답새겨댈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내 마음까지도 후련해지더군요.》 

얼마간 혼잡속에서 빠져나왔을 때 최성욱은 흥분을 걷잡지 못한채 이렇게 중얼거렸다. 

문명주는 아직도 악몽속에 든듯싶었다. 자기가 어떻게 되여 허선생과 정면에서 도전할 결심을 내렸는지 알수 없었다. 전번날에 당한 모욕과 무시, 랭대에 대한 보복심리는 아니였던지... 

《그 사람이 공산주의자이겠지요?》 

《그렇겠지. 우에서 특별강연회가 있다기에 련락을 띄웠던것인데 연사라는게 그 사람일줄은 나도 몰랐소. 저 사람은 아무래도 색갈이 다른 사람이요.》 

《그런 사람이 공산주의자라면 난 절대로 공산주의를 따르지 않겠어요!》 

《나도 동감이요.》”(34~ 36쪽)

 

문명주가 공산주의에 대하여 결정적으로 환멸을 느낀 것은 1948년 이승만의 “5. 10단선”을 반대하는 투쟁이 벌어지고 많은 조직들이 파괴되며 숱한 사람들이 체포된 뒤였다. 어느 날 낯선 사나이가 찾아와 문명주를 학통회로 이끌어들였던 마진숙이 보내서 왔다면서 마진숙이 출옥하여 문명주를 만나고 싶어한다고 말한다. 사나이를 따라가던 문명주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는 사나이들에게 잡혀서 어느 음침한 지하실로 끌려간다. 어둠속의 심문자는은 문명주를 변절자라고 욕하면서 그녀가 조직의 비밀을 적들에게 다 넘겨주었다고, 마진숙이 그렇게 보고했다고 주장한다. 단호히 부정하던 문명주는 자기를 혁명대오에 끼어든 “우연분자”로 묘사하면서 “네년은 프로레타리아혁명의 모국인 공산로씨야도 부정했었지?”(40쪽)이라는 말에 문득 깨달아 상대방이 그 허 선생임을 알아본다. 당신 같은 공산당하고는 할 말이 없다고 선언한 문명주는 심한 구타에 정신을 잃었다가 “빨갱이가 있다”는 제보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구원된다. 

이 일이 있은 다음 문명주는 좌익이든 우익이든 일체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다가 여러 해 지나서야 기자의 신분으로 정치비리들을 파헤치게 된다. 

 

성조기 부대의 정신적 뿌리 

 

허 선생은 소설에서 소속이 밝혀지지 않았는데 저자는 조선공산당시기부터 활동했던 남로당계열의 인물들을 염두에 두고 쓴 것 같다. 고전명제들을 입에 달고 다니면서 종파놀음에 미쳐 돌아가는 사이비 공산주의자 모습은 조선의 문학예술작품에서 드물지 않다. 

예전에 공산주의를 신봉한다고 자처한 사람들 가운데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선언》에 나오는 《노동자는 조국이 없다》는 말을 교리화하면서 자신을 철저한 국제주의자라고 정의하고 국제혁명만 하겠다면서 “중국혁명”, “조선혁명”에 끼이지 않겠다던 특이한 인물들이 있었다. 또한 소련을 “프로레타리아(무산계급)의 조국”이라고 간주하면서 소련을 기준과 중심으로 삼고 모든 것을 가늠했던 인물들도 있었다. 특히 우리 민족은 강도적인 “한일합방”으로 망국한 뒤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이 세우려 한 독립국가의 모습이 각자 나름이었고 일제 치하에서 산 사람들 또한 자신에 대한 정의가 제각각이었다. 친일파들은 당연히 철저한 “천황의 신민”으로 자처했고 식민지교육을 받은 사람들도 자신을 “대일본제국”의 국민으로 여기는 경우가 흔했다. 그러다가 일제가 패망하고 식민통치가 종결되니 사람들의 의식에 거대한 공백이 생겼는데 그 자리를 어떤 개념이 차지했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운명과 입장이 바뀐 것이다. 가장 나쁜 게 머릿속의 “대일본”을 “미국”으로 바꾼 경우이니 지금 걸핏하면 시위에서 태극기와 함께 성조기를 들고 흔드는 사람들의 정신적 뿌리는 70여 년 전 일장기를 들고 흔들던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다. 

 

조선족들의 정체성 변화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 및 《녀기자》를 보면서 필자는 중국의 조선족을 생각해보았다. 조상이 중국에서 살아온 시기에 따라 청나라 때 들어와 불법주민이나 청나라 국민으로 됐던 가정으로부터 그 뒤의 중화민국시기 국민대우를 가졌던 가정, 일제 치하의 조선 땅에서 일제가 세운 괴뢰 “만주국”으로 이민하여 “만주국 국민”이 됐던 가정, 러시아나 소련에서 넘어온 가정 등등이 있다. 한 사람의 국적이 여러 번 바뀐 게 흔한 일이었기에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초기에 동북의 조선인들을 통일적으로 중국국적으로, 관내(산하이관山海关산해관 이내)의 조선인들을 통일적으로 조선국적으로 정해 조선교민으로 대우하고, 동북에서는 그 뒤에(주로 전쟁기간에) 들어온 조선인들을 조선교민으로 정한데 대해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다수였지만 거부감을 느낀 사람들도 적잖았다. 한국에서 잘 알려진 정수일 선생이 바로 중국 국적에 거부감을 가졌기에 10년 뒤 정식수속을 밟아 중국 국적을 포기한 후 조선으로 나갔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공식적으로 조선으로 나간 사람들도 꽤나 되지만 비공식적으로 슬그머니 간 사람들이 훨씬 많다. 중국이 어려울 때 넘어갔다가 형편이 나아지니 되돌아온 사람들도 많았다. 이런 이동의 원인을 이민전통에서 찾아볼 수도 있지만, 보다 중요한 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애매했던 점이다. 

 

수십 년 교육과 생활을 거쳐 지금은 다수 조선족들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조국이라고 간주한다. 허나 민족의 범위에서는 전 세계 어디에 사는 성원이든지 모두 동족으로 간주하면서 조선이나 한국이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절대다수고 조선이나 한국에 대해 “고국”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인다. 여기서 국적과 민족성은 결코 모순되고 대립되는 존재가 아니다. 

살아가다가 국적을 바꾼 조선족 출신들이 꽤나 된다. 미국 국적이나 일본 국적, 한국 국적을 갖고 열심히 사는 조선족 출신들이 다수지만 튀는 언행을 일삼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도 조선족 출신임을 내세우는 건 필자로서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이 중국이나 조선을 적대시하면서 내놓는 처방들은 더구나 이해되지 않는다. 또한 조선족 출신의 외국  국적자들이 아무리 교수 따위 타이틀을 갖고 무척 활약해도 중국 정부와 언론들은 물론 네티즌들마저 신경 쓰지 않는 건 신기할 지경이다. 

그런 사람들도 나름대로는 민족을 위해 생각하고 일한다고 주장하던데, 철학의 부재 혹은 차이로 하여 필자와는 정반대의 주장을 펼 때가 많다. 어느 편이 옳으냐는 입 아픈 쟁론이 아니라 세월이 판단해줄 테니 기다려봐야 안다.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접하는 외국적 동포들이 조선족인데 가장 많이 욕하는 외국적 동포들도 조선족이다. 미국, 일본,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 나라들에서 한국에 간 동포들에 대해서는 국적을 트집잡지 않으면서 중국에서 간 사람들에 대해서는 중국국적자임을 인정하는 걸 굉장한 잘못쯤으로 치부한다. 지난 해 개봉초기의 인기에 비해서는 뒤를 꼬지 못한 영화 《강철비》에 나오는 조선족 리선생이 자신을 중국인이라고 말하는 대사마저 평론과 댓글들에서 부정적으로 언급되었다. 

워낙 국적부여규정에는 통일된 국제기준이 없다. 아버지의 혈통을 기준으로 삼는 나라들이 있나 하면 어머니 혈통을 기준으로 삼는 나라들도 있다. 한편 출생지역을 기준으로 삼는 나라들도 있으니 미국이 전형적이고 따라서 미국으로 원정출산을 가는 사람들도 많은바, 한국에서도 문제로 된지 오래다. 한국의 원정출산은 한국적자가 받을 불이익을 피하려는 요소가 다분하니 병역기피가 항상 논란의 앞자리를 차지한다. 한편 미국의 국적법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들도 많다. 둬 달 전에 미국의 세금고지서를 받은 영국인들이 곤혹스러워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부모가 미국에 가서 거주할 때 낳은 아이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으로 돌아가 생활했는데, 수십 년 뒤 난데 없이 세금을 내라기에 황당하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때 미국이 정말 돈이 없기는 없는 모양이라고 웃었다. 

국적부여규정 차이로 하여 흥미로운 현상들이 생겨난다. 아버지 혈통을 인정하는 국가의 남자가 어머니 혈통을 인정하는 국가의 여자와 결혼하여 출생지역을 인정하는 나라의 비행기를 타고가다가 낳은 아이가 단번에 3개 국적을 갖는다는 등이다. 이는 민간항공기 내부가 국토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국적이 애매한 사람들도 생겨난다. 위에서 거든 일제 강점기 조선민족성원들이 전형적인 사례다. 또한 한국에 간 외국인 불법체류자가 낳은 아이가 뒷날 추방되어서도 스스로 한국인이라고 여긴다는 건 좀 특별한 사례지만, 요즘처럼 제주도가 국제적으로 인기를 끓어 난민신청자들이 늘어나면 태생적인 한국적 보유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늘어날 것 같다. 

 

“예멘 난민”문제가 이슬람교 및 이슬람교도들에 대한 혐오와 공포를 유발하여 큰 화제로 되었는데, 그에 앞서 일부 한국인들이 씹어온 건 조선족이었다. 일부 한국인들의 시각에서 조선족들은 범죄확률이 높은 위험한 존재이고 깔보기 좋은 만만한 존재일 텐데, 한국을 진정 위협하는 건 “뼛속까지 친미”라고 공개적으로 떠드는 한국인들이나 드러내놓고 말은 하지 못하지만 뼛속까지 친일인 한국인들이다. 그런 사람들의 정체성이야말로 의심스럽다. 

 

 


광고

트위터 페이스북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말이 어렵다 18/08/05 [16:54]
세계 어느나라에 살든 한민족의 유전자를 받았는데도 민족적 정체성을 상실했거나 스스로 부정한 자들은 한민족의 일원이라 보기 힘들다. 무슨 이유에서든지 간에.. 필자가 보기에 남한국민들의 대 조선족 혐오증의 진정한 이유를 잘 모르는가? 스스로를 냉정하게 돌아보고 자기비판할 능력과 자질이 없는 자는 제대로된 지식인이라 할수없다. 비록 한글과 조선어를 쓰고 말한다 해도 지금 중국내 조선족처럼 스스로의 한민족으로서의 민족적 정체성을 상실한 정도가 극심한 경우는 심각히 연구해야 한다. 이는 바로 중국이라는 나라의 사상적 역사적 정치적 대한반도 대한민족 정책과 사상정신적 태도와 밀접히 연관돼 있다. 스스로 중국국적이 돼 있더라도 한민족의 사상적 역사적 공동체적 맥을 갖지 못하거나 가지려고 노력하지 않는 족속은 국적불명 민족불명의 자아상실 미아에 불과하다. 그래서 스스로 정체성이 없다보니 행실이 무뢰배 뗏놈들의 그것을 능가한다. 스스로가 누군지 모르고 스스로가 지켜야할 그 어떤 주체적 존엄과 자손심이 집단적으로 상실되다보니 무슨 짓거리를 하더라도 당장 눈앞의 자신의 안위와 안락 돈벌이와 권력만 쫓으면 그만이라는 인간망종적 자질이 길러지는 것이다. 중국공산당의 상당히 치밀하고 교활한 조선민족 한민족 해체 억압정책과 관련이 있음은 당연하다. 향후 민족통일시대 전세계에 흩어진 이민 동포들에 대한 대우와 정책이 대단히 민감하고 중요해 질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반드시 근현대 중세 고대역사를 똑바로 배워야한다. 아울러 민족정기로 상징되는 한민족 전통 정통 사상이념에 대한 올바르고 자주적인 정립이 필수다. 이를 능력이 안되거나 스스로가 거부하는 종자들은 민족의 이름으로 배제해야 한다 수정 삭제
너무 알기쉬운 좋은 글이다 18/08/05 [17:59]
“예멘 난민”문제가 이슬람교 및 이슬람교도들에 대한 혐오와 공포를 유발하여 큰 화제로 되었는데, 그에 앞서 일부 한국인들이 씹어온 건 조선족이었다. 일부 한국인들의 시각에서 조선족들은 범죄확률이 높은 위험한 존재이고 깔보기 좋은 만만한 존재일 텐데, 한국을 진정 위협하는 건 “뼛속까지 친미”라고 공개적으로 떠드는 한국인들이나 드러내놓고 말은 하지 못하지만 뼛속까지 친일인 한국인들이다. 그런 사람들의 정체성이야말로 의심스럽다. 수정 삭제
말이 어렵다 / 18/08/07 [11:26]
남한에 살면서 네넘이 이야기하는 내용을 다 섭렵하고 사는 사람이 몇 명 되는지 좀 알려다오.
네넘 말에 따르면 대다수 국민이 미아인 줄도 모르고 사는 거 같다.
할 일 없으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 만나서 네넘이 이야기하는 걸 제대로 알고 있는지 확인하고 모르면 미아 신고를 하거라. 우리는 모두 미아수용소로 들어갈 테니 너 혼자 남아서 잘 먹고 잘살 거라.

수정 삭제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 용
연재소개

더보기

연재이미지
사랑방
최근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