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문화 가꿔가기51] 라면과 즉석국수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8/09/09 [11:55]  최종편집: ⓒ 자주시보

 

▲ 2018 대한민국 라면 박람회     © 자주시보,중국시민

 

지난 6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2018 대한민국 라면박람회”가 열렸는데 “북한음식관”에서 북한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한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회의(민화협)가 중국을 통해 공수해온 북한 라면이 일반에 공개되는 건 처음이라는데 포장지엔 “즉석국수” 혹은 “속성국수”라고 적혀있었고, 민화협에 따르면 북한에서 기름에 튀긴 면을 가공해 먹는 형태의 라면이 등장한 것은 1970년대 말. 일본 조총련계 사업가가 평양에 밀가루 공장을 세운 뒤 라면도 생산하기 시작했다는 게 정설이란다. 필자가 본 조선(북한) 자료에서는 평양 밀가루가공공장이 1978년 11월 10일에 가동되었으니 1970년대 말이란 비슷해 보인다. 

기사에 의하면 북에서 라면이 처음엔 “꼬부랑 국수”라고 불렸고 건더기나 수프 없이 면만 포장해 팔았는데, 한국처럼 봉지라면이나 컵라면 안에 건더기와 수프까지 들어간 일체형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이후라고 한다. 

기사에 의하면 한 탈북자는 "북에서 라면 한 봉지는 쌀 1kg에 맞먹는 사치품"이라며 "평양에 사는 사람이나 맛볼 수 있는 물건"이라고 말했다 한다. 

라면 1봉지의 영양가와 칼로리가 쌀 1킬로그램과 비교가 되는지 모르겠고 값이 비슷한지도 알 수 없다만, 중국의 서북지방에서 한때 달걀로 라면(중국어로는 팡볜몐方便面편이국수)을 바꿔 애들에게 먹이는 처사가 영양학적으로 잘못되었다는 비판을 받았으나 꽤나 성행했던데 비춰보면 북에서 라면이 사치품이었던 때도 있었을 법하다. 단 지금도 사치품이라거나 평양에 사는 사람이나 먹을 수 있는 물건이라고는 믿어주기 어렵다. 필자가 언젠가 본 조선 잡지에는 군인들이 라면을 공급받고 좋아하는 사진들이 실렸으니 평양사람이나 운운은 워낙 맞지 않다. 

 

필자가 모은 자료들을 검색해보니 라면에 대해서는 잡지 《오늘의 조선》 중문판 2005년 3기에 평양 밀가루 가공공장을 소개한 기사가 유일했다. 

기사에 의하면 평양의 서쪽 교외에 자리 잡은 공장은 부지 17만 제곱미터를 차지하고 연건평은 5. 3만 제곱미터이며 자랑거리는 수림화와 원림화 실현이었다. 

공장에는 밀가루직장, 빵직장, 과자직장 등 8개 직장이 설치되었는바, 해마다 빵, 과자와 국수를 수만 톤 생산한다. 현대화 수준이 비교적 높아 생산라인을 실현했고 밀이 벨트로 직장에 실려 들어가 밀가루로 들어가는 과정을 1명의 노동자가 종합 통제대에서 수십 대 기계를 다루면서 조절한단다.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추어 부단히 기술개조를 진행한 공장은 당시의 최근 건효모생산설비와 라면생산설비를 갱신했다고 밝혔다. 관련원문은 “最近,更新了干酵母生产设备和方便面生产设备,还新建了有几吨生产能力的包装用纸生产基地。” 

공장이 생산한 “청수냉면”은 언제나 어디서나 간단하게 만들어먹을 수 있어 시민들의 대환영을 받는다 한다.(该厂生产的“清水冷面”可以随时随地简便地调制,大受市民欢迎。) 이 청수냉면 생산기지는 바로 가장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 강행군 시기에 세웠다는 것이다. 

아동용 영양과자는 전국의 탁아소와 유치원에 공급되고, 당면과 라면은 러시아 극동지구와 중국 동북지역으로 수출한다(儿童营养饼干供应全国的托儿所和幼儿园。粉条和方便面还向俄罗斯的远东地区和中国东北地区出口). 

기사는 지배인 박영철이 2001년 8월에 노력영웅 칭호를 수여받았다는 말로 끝난다. 

필자는 아직 조선산 라면을 먹어보지 못했는데, 남측의 기사에서는 이렇게 소개되었다. 

 

“북한에서 가장 인기 있다는 '소고기 맛 즉석국수' 컵라면을 집어 들었다. 용기 옆면엔 생산지가 '평양 만경대구역 칠골 2동'이라고 적혀 있었다. 만경대구역은 도심에선 떨어진 외곽의 공장지대라고 한다. 공장 전화번호도 적혀 있는데, 지역 번호가 '02'로 시작한다. 평양 지역번호가 서울과 똑같기 때문이다. 원료로는 밀가루, 농마(녹말)가루, 정제소금, 식용기름, 소고기 복합양념을 썼다고 적혀 있다. 한국 신라면의 경우 원재료에 칠리맛풍미분, 야채조미추출분 등 약 50가지 성분을 밝힌 것에 비하면 단출했다.

가장 중요한 맛. 조리 방법은 한국 라면과 다를 것 없었다. 수프 넣고 뜨거운 물을 붓고 5분쯤 기다리면 완성이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에서 고수 비슷한 향신료 냄새가 났다. 국물 한 모금 들이켜고, 면을 한입 후루룩 먹었다. 제법 그럴듯한 소고기 맛이 느껴졌다. 한국 라면과 달리 느끼한 맛 중심이었다. 북한 라면을 처음 먹는 기자와 탈북자들 모두 "중국 라면 같다"는 평을 내놓았다. 소고기 맛 라면 외에 김치 맛 라면이나 토장(된장)맛 라면도 모두 국물은 소고기 양념수프가 기본이었다. 2000년대 전후로 북한에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강해진 것이 라면 맛에도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 북의 김치맛 라면     © 자주시보, 중국시민

 

맛을 운운하고 그 원인을 평가하는 대목에 당혹스러웠다. 중국에는 라면 종류가 엄청 많다. 전국적으로 잘 나가는 건 우선 타이완에서 들어온 캉스푸(康师傅)와 퉁이(统一) 시리즈가 꼽히는데 같은 회사의 제품들이라도 품종이 여러 가지도 맛도 각각이다. 또한 각 지방에서 수많은 라면들이 생산되고 성분과 맛들도 다르다. 필자는 중국산 라면을 줄잡아 100여 종 먹어보았으나 어떤 것이 중국라면 맛이라고 찍지 못한다. 어느 한국인이 중국 옌볜(연변)에 왔다가 사진 찍어 한국 사이트에 올려 화제로 되었던 “개고기라면”만 해도 캉스푸나 퉁이와는 전혀 다르나 엄연히 중국 라면이다. 

 

탈북자들과 기자들이 혹시 중국 동북지방에서 생산되는 라면들을 좀 먹어보고 “중국 라면”을 운운한다면 썩 정확한 표현이 아니고, 라면 맛을 통해 조선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강화를 운운하는 건 더구나 심한 비약이다. 

중국 경제적 영향력의 강화를 거드는 배후에는 남의 영향력 전무에 대한 불만이 있다. 남의 라면들이 나름 특색을 갖는 건 맞으나 일부 실패작들이 나왔던 걸 감안하면 남의 라면이 북에 들어간다 해서 꼭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물론 이남 사람들이 쓴 글들에서는 이북 사람들이 한국 라면을 먹어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느니 감탄해마지 않았다느니 따위 반향이 많이 나온다. 화학조미료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이 조미료를 접할 때 감동되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다. 허나 잠깐 먹어보기와 오래 먹기는 전혀 다르다. 

 

1990년대 중반 한국 라면회사들이 중국에서 생산하기 전에 중국 동북의 식당에서 신라면 1그릇 값이 15위안이었다. 당시 환율로는 한화 1500원에 상당했는데, 중국 서부에서 나온 쇠고기라몐(牛肉拉面) 1사발에 3~ 5위안 하던데 비기면 엄청 비쌌다. 그래도 그걸 전문 주문하는 사람들이 꽤나 되었다. 후에 중국에서 신라면 등이 생산되어 마트, 슈퍼마켓과 상점들에 진열되면서 식당에서는 한국식 라면이 퇴출되었는데, 지금까지 같은 한국 라면이라도 중국산과 한국산은 값이 다르다. 아무래도 수입품은 관세 때문에라도 더 비싸니까. 순수한 한국산 라면은 시장이 중국에서 생산된 한국회사 라면보다 좁다고 안다. 

 

남북 경협이 잘 되어 한국 라면회사들이 조선에 진출하더라도 조선 사람들의 입맛을 맞출지 가격을 조선 사람들이 감당할 수 있을지는 누구도 모른다. 한국 라면 가격은 엔간한 중국인들도 조금 버거워하는데 조선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의심스럽다. 

오래 지속된 분열로 인한 남북 이질화를 안타까워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은 라면의 통일을 바랄지도 모르겠다. 중국의 라몐(拉面)으로부터 일본의 “라멘(ラーメン)”이 나왔다가 한국의 라면이 생겨났는데, 널리 쓰이는 개념이기는 하다만 꼭 그것으로 “즉석국수”나 “속성국수”를 삼켜야 할지는 의문이다. 뭇사람의 의견을 널리 수용하여 명칭을 통일하거나 여러 가지 명칭의 병존을 허용하는 게 현명하겠다. 

 

첨부자료: 《오늘의 조선》 2005년 3호 기사 

 

记平壤面粉加工厂

 

平壤面粉加工厂坐落在首都平壤西郊。

厂计划科长柳成熙说:“我们厂是综合性面粉加工基地,于主体67年(1978年)11月10日投产。我们厂每年生产数万吨面包、饼干和面条。”

工厂的占地面积约17万平方米,总建筑面积5.3万多平方米,设有面粉车间、面包车间、饼干车间等8个车间,厂区已实现了树林化和园林化。

厂的现代化水平较高,实现了生产流水线。小麦被胶带输送机输送到面粉车间,制成面粉,由一名工人在综合控制台看管数十台机器。

在饼干车间,和面、成型、焙烧、包装等都实现了流水线。

该厂为适应现实发展的要求,不断地进行技术改造。最近,更新了干酵母生产设备和方便面生产设备,还新建了有几吨生产能力的包装用纸生产基地。

该厂重视提高产品质量,大量生产味美、营养价值又高的平壤饼干、儿童营养饼干、花样饼干、面包和朝鲜人祖传的民族食品面条。

该厂生产的“清水冷面”可以随时随地简便地调制,大受市民欢迎。

儿童营养饼干供应全国的托儿所和幼儿园。粉条和方便面还向俄罗斯的远东地区和中国东北地区出口。

国家对该厂的关心很大。金日成主席亲自出席开工典礼,此后又视察了一次。金正日同志建厂的时候说,为人民的事不能计较收支,还采取措施拨出巨款,增设新的生产工序。

在“艰难的行军”、强行军时期,他还采取措施建立了粉条和“清水冷面”生产基地。

厂长朴永哲说:“我们为了报答党的信任,今后在保证实利的原则下,搞好生产管理和设备现代化,为首都市民供应更多更好的食品。”

主体90年(2001年)8月,被授予劳动英雄称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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