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문화 가꿔가기52] 북에도 표절이 있을까?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8/09/16 [09:56]  최종편집: ⓒ 자주시보

 

지난 7월 11일, 2년 정도 이어진 신경숙 표절논란이 법적으로 결론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5부(부장 최희준)가 "표절이 아니다"라고 판단하여 수필가 오길순(69)씨가 소설가 신경숙(55)씨 등을 상대로 낸 출판금지 청구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모두 기각했다. 

2016년 9월 오길순 씨는 신경숙 씨가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에서 자신의 수필 ‘사모곡’을 표절했다며 신 씨와 출판사 창작과 비평사에 2억 원을 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2001년 출간된 오 씨의 수필은 아버지가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는 과정에서 아내의 젊은 시절과 자식에 대한 마음을 생각하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2008년 출간된 신 씨의 소설도 어머니의 실종 및 가족들의 찾기와 과거 기억 더듬기가 그려진다. 오 씨 측은 “모티브(착안)와 줄거리, 표현 등에 있어서 매우 유사하다”고 주장했고, 신씨 측은 “엄마를 부탁해”는 신 씨가 직접 구상한 내용이며 다른 특정한 작품을 보고 표절한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문장이나 단어 등 형식적인 표현 면에서 두 작품이 비슷하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세부 차이들을 지적했고 신경숙 소설 등장인물이 더 많고 개성도 있으며 이야기 구조도 복잡해 표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일어난 표절소송에서 피해를 봤다는 사람들이 이겨본 사례가 거의 없은데 비춰보면 신경숙 측의 승리는 당연하다고 할 지경이다. 게다가 오래 끌게 될 법정놀음에 지레 겁을 먹고 소송을 포기하는 작가들도 상당히 많다니까 한국의 표절쟁론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경기라고 해야겠다. 기성작가, 유명작가와 대형 출판사에 이로운 구도다. 물론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다 옳은 건 아니고 일부는 유사성을 착각했다지만 어쨌든 기득권이 법정에서 유리한 건 엄연한 현실이다. 

법정에까지 가지 않고 입씨름, 글 싸움으로만 그친 표절논란들도 많다. 그런 경우에도 명성과 재부 소유자들이 유리했는데, 그나마 표절이 인정된 건 국내 작품이 아니라 외국 작품을 베꼈던 경우였다. 

 

한국에서 문학사에 이름이 적힌 쟁쟁한 작가들이 표절논란에 휩싸여 망신하는 것과 달리, 중국 조선족 문단에서는 수십 년 동안 주로 신인들이 표절했다. 1980년대에는 《조선문학》에 실린 단편소설을 “발가치기”하여 잡지에 발표한 무식하여 용감한 사람이 있었고, 중국어 작품들을 적당히 가공해 자기 것으로 만드는 “번역기술자”들도 있었는데, 21세기에는 주로 한국 작품이 표절의 목표로 되었다.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수필을 베낀 사람이 어느 문학상까지 받는 우스운 현상까지 생겨났다. 표절자들이 대개 젊은이들이었기에 주로 문단 내부에서 비판하거나 상을 취소하는 선에서 그쳤다. 

아득한 옛날에는 표절이란 개념이 없었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의 훌륭한 전설, 작품들이 다른 나라, 다른 민족에 의해 살짝 다듬어져서 전해지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로 간주되었다. 고대 중국에서는 옛 시인들의 여러 작품들에서 시구들을 뽑아서 새로운 시를 만드는 게 “집구(集句)”라고 불릴 지경으로 정당한 수법이었고, 우리 민족의 옛 시조나 민요들을 보더라도 중국 시인들의 시구를 그대로 작품에 집어넣은 사례들이 흔해 빠졌다. 그렇게 하는 사람들도 그런 작품을 보고 듣는 사람들도 미를 즐겼을 따름이다. 

 

표절은 자본주의사회의 출현과 더불어 사회적 문제로 부상했다. 작품의 상품화로 하여 작품은 개인의 명성 및 재부, 출판사의 이익과 직결되면서 표절이 굉장히 나쁜 행위로 간주되었고 종종 소송을 불러왔다. 소송 자체가 이른바 “노이즈 마케팅”수단으로 쓰이는 경우도 적잖았다.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는 표절이 우선 비도덕적인 행위로 간주되었으니 공개되면 인간적으로 말살될 수 있는 위험을 감안하여 문단 내부에서의 처리와 경계로 끝나곤 했다. 

표절이란 아무렇게나 해서 되는 게 아니다. 동양인이 서양 작품을 인명, 지명만 바꾸어 표절한다면 독자들이 대번에 알아차린다. 전날 한국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드라마들이 일본 것을 베껴서 히트치고, 한국 작가들이 일본 작품들을 표절해서 성공(?)했다는 건 한국과 일본이 상당히 유사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중국 조선족 문인들이 전날 조선과 중국의 작품을, 후에 한국 작품을 표절한 것도 사회적인 유사성이 존재하기에 엔간한 사람들은 쉬이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 소설 표절보다 한국 수필 표절이 더 많은 것도 바로 한국 소설 속의 사회 환경, 인간관계, 인간심리 등등은 중국에서 재생하기 어려우나, 한국 수필들이 그린 들놀이 경력, 비 맞은 경험이나 개인적 감수 등은 중국과 비슷한 면이 적잖기 때문이다. 

 

조선에서도 표절현상이 전혀 없지는 않겠으나 지금까지는 필자가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조선의 문학예술 환경에 비춰보면 표절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기성작가들의 작품을 발가치기 하기가 어렵거니와 조선의 사회 환경 또한 한국, 중국과 너무나도 다르기에 그대로 베껴 쓰면 곧장 뽀록나겠다. 어떤 의미에서 조선은 “표절청정국”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표절을 뿌리 뽑으려면 기성작품들을 전체로 전자화해서 편집부나 작품응모 위원회가 수시로 검색, 대조할 수 있어야겠는데,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개인 및 출판사의 이익과 직결되기에 전부 전자화가 불가능하다. 조선에서는 작품들의 전자화가 활발히 진행되니까, 표절 입지가 점점 좁아진다. 

표절이 성행하더라도 문학예술 시장이 커지는 게 나은지 아니면 표절을 원천 차단하는 게 나은지, 일시 판단이 내려지지 않는다. 《자주시보》 독자 분들의 생각은 어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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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통 18/09/16 [21:35]
관점을 달리 봐야할 것 같습니다. 표절의 성행으로 양적확대가 되거나 또는 원천차단한다거나 해서 뭐가 더 이점이 있겠느냐라고 볼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는 사상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예를 들어, 문학예술... 문예의 핵심으로 꼽는 것 중 하나가 창작성입니다. 유사한 것을 베꼈다면 사상적으로 불순한 것으로 됩니다. 해당 작가는 잡사상에 물든 체제에 해학을 끼칠 소지가 다분해진 불순분자가 됩니다. 북한은 특별히 관료주의, 교조주의 등의 잡사상을 경계합니다. 현장성, 시대성 등이 가미되지 않는다면 창의성은 퇴보할 것이고, 북한은 아마 이미 무너졌겠지요. 물론, 표절이 없진 않겠지만.. 이미 일반화 과정을 거쳐 보편화 된 것이 아닐까 사료됩니다. 암튼, 무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수정 삭제
자민통 18/09/16 [21:39]
모범의 전파라고, 모범이 되는 사례를 여러 곳에 전파하는 경우에도 현장성, 시대성이 가미되어 창의성을 발현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수정 삭제
사회주의는 18/09/17 [23:51]
사회주의, 공산주의 중국을 예로 들자 1.민영기업이야 돈을 벌려고 표절한다고 치자. 남의 제품 디자인, 기술, 라이센스없이 그대로 베낀게 표절이다. 도대체 사회주의 중국 기업은 표절을 얼마나 하고 있는가. 필자는 중국에 자주 가봐 잘 안다.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고 표절한다 2.공기업, 정부기관은 짜고서 핵킹해서 표절한다. 이래도 자본주의의 출현과 더불어 표절이 등장했다고 할 것인가. 중국이나 똑바로 분석하고 할말 있으면 하라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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