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의 치유하는 삶] 16. 자연치유는 없다

황선 | 기사입력 2020/06/18 [07:11]

[황선의 치유하는 삶] 16. 자연치유는 없다

황선 | 입력 : 2020/06/18 [07:11]

아픈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가족들도, 주변 지인들도, 멀리서 들려오는 소식도 기쁜 소식보다 병고나 이별과 관련된 소식이 다반사입니다. 

 

일 년 넘게 세 차례의 단식을 하며 건강 관련 도서나 영상들을 끼고 살다 보니, 건강 부분에서 만큼은 못 말리는 자유주의자였던 저의 관심사도 제법 바뀌어서 사람을 보면 먼저 안색을 살피고, 피부의 변화를 관찰하며, 악수할 땐 손의 온감으로 상대의 건강 상태를 가늠해 보는 짓을 하기도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종종 알던 분들로부터 건강과 관련된 상담 전화도 받는데, 그럴 때 해 줄 수 있는 이야기가 많지는 않습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수련하면 할수록 몸이 보내는 신호는 복잡해도 그 처방은 일맥상통하고 단순하기 때문입니다. 

 

낙천적으로 생각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내 혀가 좋아할 음식이 아니라 세상에 좋은 음식, 정성이 들어간 음식을 먹고, 걸을 수 있는 한 걸으라는 것입니다. 탐욕을 버리고, 잠은 짧게 자더라도 제때 깊이 자라는 것입니다.

 

아플 때는 할 수 있다면 한 끼라도 단식을 하는 것이 좋으며, 감잎차(비타민C)와 효소, 죽염(미네랄)을 단식기간에도 상복하고 평소에도 가까이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세 차례 단식과 보식, 삼 개월의 생채식을 거쳐 요즘은 생선을 포함 현미잡곡밥에 채식을 1일 2식으로 하고 있습니다. 건강 글쓰기뿐 아니라 온라인 활동과 집필 등을 점차 늘려갈 계획이고, 사무실에도 나가며 다시금 사람들을 살살 만나가고 있습니다. 

 

사무실에 다녀오며 가능한 걸으려 애쓰고 주말에는 가족들과 시간을 맞춰 정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등산을 합니다. 아침저녁으로는 풍욕을 진행하고, 냉온욕이나 반신욕을 하루 한 번 꼭 하는 편입니다. 

 

제한된 일이나마 다시 시작하고 보니 건강 관련해 하기로 했던 것을 제 때 하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건강 글쓰기도 최근 요동치는 정치문제 남북문제와 관련한 일에 더 관심이 가다 보니 자꾸 뒤로 밀려버립니다. 

 

슬슬 아무 때, 아무거나 먹게 되고, 원칙에 타협하게 됩니다. 하루 세 번은 하자고 생각했던 풍욕은 이런저런 핑계로 열흘은 떼먹고 나서야 결심을 다시 세워 간신히 하루 두 번 정도를 채우고 있는 형편이기도 합니다. 

 

안 그래도 좋아진다 싶을 때 방심하지 말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기는 했는데, 애써 더 주의하다 보면 유난 떨며 정도를 넘어선 것 같은 양심의 가책에 마음이 불편해지기 일쑤입니다. 

 

‘자연치유’라는 게 그렇습니다. 

 

그 무엇도 자연스러운 것이 없습니다. 모두 극도의 자제력을 발휘해 생활 전반을 조직하고 점검해야 합니다. 

 

저도 식구들의 방조와 일주일에 한 번씩 점검에 나서준 동료의 과한 바가지(?)가 없었다면 단 한 달도 못 했을 일입니다. 

 

‘자연치유’ 말만 들으면 세상 가장 편하게 가장 신선한 것들을 먹으며 한량처럼 지내는 일 같은데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연치유’는 자연히 치유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자연의 상태로 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 일이 있었습니다. ‘자연치유’의 목표는 병의 소멸이 아니라 생활습관의 개선을 통한 치유와 예방이므로 도대체 그 끝이 어딘지 가늠할 수 없다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시작도, 과정도, 끝도, 순전히 당사자의 의지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가장 편한 치료방식은 역시 병원과 의사 그리고 제약회사에 외주를 주는 것입니다. 증상 완화의 효과는 어느 방법보다 빠릅니다. 

 

본인이 무엇을 느끼느냐와 상관없이 수치와 덩어리의 유무로 시작은 몰라도 끝은 정확한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물론 몇 개월 전 검사에서는 멀쩡했던 몸이 어느 날 갑자기 말기 암 상태가 되는 이상한 일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어떤 선택이든 다 좋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어떤 치료법이든 환자나 가족들이 완벽하게 동의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조언 역시 매우 신중해야 하며 나의 경험과 판단을 일반화한다거나, 강요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다음의 경우에 해당한다면 고되지만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매우 가치 있는 자연치유 건강생활에 도전해 보시라고 권해드립니다. 

 

우선, 거동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를 쓰고 일어나 걸을 수 있는 의지와 체력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자연치유라는 것이 사실은 생활습관을 고치는 일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생활습관을 고치고 그것을 습관으로 만들 정도의 힘과 여력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건강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명백하고 삶의 목표가 뚜렷한 사람일수록 잘 맞습니다. 자신의 삶을 하찮게 여기고 목표 역시 명백하지 않은 사람은 나와 사회, 그리고 여타 생명을 귀하게 여길 수 없으니, 당장 병 때문에 단식이나 채식에 도전한다고 해도 완강하게 실천해 소기의 성과를 내기 어렵습니다. 

 

심리적인 측면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남에 대한 의심이나 원망과 억울함이 적은 사람일수록 남의 진심 어린 충고를 가려 볼 수 있으니, 치료법에서도 전부는 아니더라도 곡해 없이 자기에게 맞는 부분을 취하고 응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병은 심리에 상당히 영향을 받기 때문에 아픈 사람 대부분은 보통 이상의 억울함과 타인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러나 적어도 치유를 하려면 억울함과 원망이라는 감정에 대한 집착조차 내려놓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 저는 매우 난감한 사람이었습니다. 저의 경우 단식과정에서 그동안 가장 속상했던 기록들을 모조리 불태웠습니다. 그러고도 가끔씩 괜히 없앴다고 후회될 때가 있습니다. 사실 그것들은 나와 우리 민족 전체를 괴롭히는 진짜 큰 적을 향한 감정이 아니라 아주 사적인 관계에서 오는 것들이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가끔씩 그로 인해 세상을 미워하거나 낙관하지 못하는 감정에 휩싸이곤 합니다. 어쩌면 상처를 헤집어 확인하는 습성이 생긴 것처럼, 상처투성이 말과 경험에 스스로 집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미련까지 초월하지 못한다면 건강은 요원한 일입니다. 남 탓이 많은 사람은 건강할 수 없습니다. 남 탓이 많은 사람은 치유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자책이 늘어지는 경우도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많은 경우 과한 자책은 엄청나게 큰 ‘남 탓’이 제대로 정리가 안 되거나, 남 탓의 다른 표현이기 십상입니다. 자기 성찰에 능한 사람은 남을 용서하고 이해하는 것에 빠르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자책은 짧은 대신 자기혁신에 집중합니다. 자기혁신에 철저한 사람이 자연치유 수련에도 빨리 적응하고 효과 역시 빠릅니다. 

 

‘세상에 못 고칠 병은 없다. 못 고칠 환자가 있을 뿐이다.’

 

극단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많은 경우 병 자체보다 환자 자신 때문에 병이 더 깊어지고 난치의 상황으로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치유에 있어서도 스스로 공부하고 탐구하고 자신을 납득시키는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사회 변혁 운동과 마찬가지로 인생의 생로병사를 대하는 것에서도 앎은 중요합니다. 남을 설득시키기에 앞서서 자신이 충분히 납득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위에 고백했듯 심리적으로 취약한 감정 상태에 있던 저는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학습 부분에 상당히 집중해야 했습니다. 

 

결국 건강법과 관련해 남의 경험은 하나의 참고사항일 뿐입니다. 아무리 단식이 좋고 그것을 아끼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고 해도 단식과 보식, 그리고 건강식으로의 전환 및 그를 받침 할 운동이나 풍욕 등 그 긴 과정들을 모두 제대로 하도록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자신이 세상을 더 이롭게 할 존재로서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 깨우치고 건강실천 역시 원칙적으로 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점검을 해주고 옆에서 응원을 해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책임은 온전히 스스로 지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예외는 없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건강해지는 몸도, 사회도 없습니다. 

 

사실 노력을 해도 본전도 못 찾는 경우는 우리 인생사에 허다합니다. 건강도 그렇습니다. 

 

현상유지나 하자고 생각하는 순간 뒷걸음질 칩니다. 

 

한반도 평화도, 우리들 몸도, 저절로 치유되는 법은 없습니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