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의 치유하는 삶] 21. ‘의란’ 그리고 각성

황선 | 기사입력 2020/09/04 [20:18]

[황선의 치유하는 삶] 21. ‘의란’ 그리고 각성

황선 | 입력 : 2020/09/04 [20:18]

정부와 의사협회 간 의사 진료 거부와 관련한 합의가 타결됐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진료 거부 사태가 중단된다면 혼란은 일단 수습되는 듯 보이겠지만, 이제부터가 진짜 문제라는 것을 국민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의료 일각의 이번 반란을 보면서 우리는 그동안 병원에 가졌던 찜찜함의 실체를 마주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의사와 의료기관에 의지하면서도 왜 충분히 신뢰할 수 없었는지, 자신의 목숨을 맡기고도 그 사람을 왜 충분히 존경할 수 없었는지 확연해졌습니다. 

예상은 했었지만, 저들의 특권 의식이란 것이 얼마나 견고한지 적나라하게 목격했습니다. 

일부 놀랍도록 이타적이고 건강한 의식을 가진 의사들의 존재도 확인했지만, 더 놀랍게도 최대집이라는 문제적 인물이 왜 의협이라는 이익단체의 수장이 될 수밖에 없는지, 부정선거나 의협회원들의 방심이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다고 믿어왔던 것도 착각에 지나지 않았음을 확인했습니다. 최대집은 이 나라 기득권 적폐의 마스코트로 손색이 없습니다. 

 

의사 검사 판사 목사... 무엇이 그 어떤 직업군보다 자기애를 내려놓고 남의 아픔에 민감해야 하며, 세상의 모순에 주목해야 할 이들을 이토록 특권 의식에 젖어있게 하는  것일까, 이어지는 뉴스를 접하며 내내 생각하게 됩니다. 

이번 의란의 와중 그간 우리 사회에서 법대 출신이나 소위 일류대 출신들이 내놓고 하지 못한 말들을 몇몇 의대생들이 용기있게(!) 내뱉어주었습니다. 

 ‘나에게 희생과 헌신을 강요하지 말라. 나는 직업을 택했을 뿐이다.’

저들이 나름 혁명의 머리띠를 두르고 ‘공정사회’ ‘정의’ ‘공공성’ ‘민주’라는 말을 도용하며 내비치는 속내에는 ‘돈과 권위를 누리기에 나의 자격은 충분하며, 그에 대해 너희 대다수는 왈가왈부할 자격조차 없다’라는 의미가 뚜렷합니다. 

공부에 매진했던 시간이 어찌나 아까웠는지 그 시간을 남은 생 내내 보상받아야 한다는 생각. 그 보상을 자신이 상위 1%가 되기 위해 고생하는 동안 모르긴 몰라도 적어도 나보다는 태만하게 살았던 너희 모두를 비롯해 사회 전체가 보상해야 한다는 생각. 

부자들이 자신이 노력해서 개미처럼 돈을 모으는 동안 나머지 사람들은 베짱이처럼 지냈을 거라 여기듯, 자신과 세계에 대한 자의적 조작이 엿보이는 구석입니다. 

 

공부를 잘하는 것은 중요할 수 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의자에 앉아서 접하는 그 모든 지식과 지혜를 만들고 정리한 사람의 역사를 존경하는 일입니다. 

지적 존재인 사람이 왜 그렇게 탐구하고 스스로 족한 정도를 넘어 지식을 총체화 하고 남기려 애썼는지, 그것을 생각해야 참지식인이 되고 역사적 엘리트가 되는 것입니다. 

역사적 엘리트는, 자신의 공부를 절대화하거나 미화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읽고 외우고 해명하려 노력하고도 다 알지 못하는 다른 지식의 세계를 존중하고, 자신이 접한 극히 일부의 지식에도 깃들어 있는 숱한 이들의 노고와 희생을 미루어 짐작할 줄 압니다.  많은 이들이 당대에 그 노고와 희생에 대한 보답을 받지도 바라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참된 지식인은 자신은 유한한 존재일 지라도 지식만은 무한하게 분화되고 증식되어 후대에 보탬이 되리라 믿었을 누군가를 떠올리며 인간의 역사 앞에 겸손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문헌에 제 손으로 기록하지 못했으나 이름 없이 흔적도 남김없이 세상의 발전을 온몸으로 밀어온 숱한 생명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어마어마한 지식의 총량을 앞에 두고 지녀 야할 기본자세입니다.

지식이 주는 가장 큰 기쁨은 그것이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공부가 단지 출세의 배경이 되는 것일 때, 그 공부에 매진했던 시간은 그저 개인을 희생한 시간일 뿐입니다. 억울하기 짝이 없는 시간이었던 것이지요. 그런 이들은 결국 ‘매문’의 길을 갑니다. 

우리 사회 가장 총명한 인간 부류라는 사람들이 실상, 오직 부귀영화를 위해 얼마나 억지로 책상 앞에 붙들려 있었던 것인가, 하는 측면에서 우리의 교육 현실 역시 뼈아픈 반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개정안이 모두 옳다고 여기는 국민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원격진료가 불가피하고 환자에 따라 당장이라도 원격진료가 필요한 분들이 있다고 하지만, 현재 수준에서 원격진료 도입이 낳을 부작용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의대 정원 확대나 공공 의대 설립 및 지원도 그렇습니다. 적잖은 대학이 의대 유무로 격이 달라진다고 여기고 있으며, 그 격은 학교 이미지뿐 아니라 돈과 직결되니 우려대로 지방 토호의 사립재단만 좋은 일을 시킬 수도 있고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인과 공공의료기관이 더 많이 필요한 것은 현실입니다. 

이번 의란 때 숱한 전공의들이 모순되게도 본인들의 격무를 애타게 하소연한 것처럼, 원격진료 시스템을 준비해야 하는 것과는 별개로 여전히 우리 사회 의사와 간호사, 기타의사들은 너무 드물고 먼 존재들입니다. 

이번 상황을 겪고 보니 우리 사회가 의료인을 더 엄격한 기준에 근거해 더 많이 키워내기 위해 공동의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학교나 지금의 교수진들에만 미래 의료인 양성을 맡겨둘 수 없다는 것 역시 자명해졌습니다. 

의란을 통해 확인된 의사양성기관의 수준, 의사들의 소명 의식 부족 등을 제도적으로 교정해 나가지 않는다면, 제아무리 좋은 의료정책이 제출되어도 그 과정은 또 다른 모순을 낳을 수밖에 없습니다. 의대 설립 지원, 원격진료 그 모든 것이 사학재단과 의료민영화, 강남성형외과의 기업화라는 결과로 귀착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것은 철학의 문제이며, 국가란 무엇이며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에 답을 내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 대한 즉답을 내놓고 실행하기에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시장화되어있습니다. 이번에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를 최우선으로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과제가 확인됐지만, 그 길이 만만치 않을 것 역시 확인했습니다. 

의사와 전공의들이 진료 거부를 풀고 현장에 복귀한다고 해도, 생명이 아니라 돈과 권위를 지키는 것에 혈안인 수준, 관성이 된 제약회사와 병원의 리베이트, 견고한 엘리트주의 등, 병원의 주 고객인 서민들은 더 큰 불안을 안고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툭하면 병원을 찾았고, 남은 생의 대부분 역시 언제 병원에 의탁할지 모르는 상황을 대비하는 것으로 보내야 하는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역시 답은 환자 스스로 자기 몸과 치유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환자이자 의사가 되는 것이지요. 

자본주의 시장에서 병원과 의사는 치유의 담당자가 아닙니다. 제약회사와 병원재단의 영업이 맞닿은 자리에 환자가 있을 뿐, 장사를 위해 적합한 약과 치료법을 고안해내긴 하겠지만, 이윤이 되지 않는다면 있는 약도 외면하거나 만들 수 있는 약도 굳이 손대지 않습니다. 진짜 심각한 병의 신묘한 치료 약은 엄두도 낼 수 없도록 비쌉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의료시장에서 어디부터 손을 댈 것인지 난감할 것이고, 젊은 의료인들 역시 병원재단의 영업사원이자, 권위주의와 무한경쟁의 희생양으로 내몰릴 미래가 미치도록 불안한 것이 사실입니다. 

병원이 제자리를 찾을 때까지 주인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가장 먼저 절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환자 자신입니다. 

가장 좋은 예방법을 알고 실천하는 것이 기본이고, 원인이 해명되지 않은 증상을 억제하는 것에 약을 남용하지 않는 것, 노력 없이 이룰 수 있는 성과는 없으며 그것은 건강도 마찬가지라는 당연한 생각을 하는 것, 자신을 바꾸지 않으며 병원 출입만 능사로 아는 행위를 끝내는 것, 그리고 나쁜 의사와 좋은 의사, 탐욕스러운 병원과 선의의 병원을 구분하는 것 등입니다. 

 

훗날 한국 역사는 한국의 기득권들이 이렇게 떼로 협업하고 궐기한 오늘을 전 사회가 치유를 향한 복판에서 심한 명현현상을 겪었다고 기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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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범 2020/09/05 [12:54] 수정 | 삭제
  • 난맥상에 빠져 옳고그름을 분별키어려운 오늘의 한국의료 투쟁의 모습을 이토록 선명하고 명쾌히 그리고 가야할길을 제시한 황선님의 놀라운 주장을 접한것은 행운입니다. 건투기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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