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의 치유하는 삶] 35. 봄의 보약 ‘쓴 나물’

황선 | 기사입력 2022/05/07 [11:01]

[황선의 치유하는 삶] 35. 봄의 보약 ‘쓴 나물’

황선 | 입력 : 2022/05/07 [11:01]

돌이 지난 후부터 내내 서울에서 자라고 생활해 온 내가 땅에서 직접 나물을 캐 먹어 본 것은 서울구치소에서 감옥살이할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물론 어릴 때 할아버지 댁에 가서 희한한 맛의 칡을 캐어 질겅질겅 씹어본 추억은 있지만, 일삼아 나름 절박한 마음으로 먹을만한 것을 가려보고 뽑아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구치소의 운동시간은 하루 30분, 그나마 목욕이 있는 날은 15분이었습니다. 정치사범으로 단독계호 대상이었던 나는 목욕도 운동도 접견실을 오가는 일도 단독으로만 해야 했습니다.

 

운동장은 황량한 편이었지만, 봄이 오면 그 황량한 곳에도 활력이 돌았습니다. 밖에서라면 관심도 없었을 보잘 것 없는 풀들이 솟았는데, 역시 외롭기 때문인지 대번에 그 이름이며 맛이며 효능을 익혀, 보고 느끼고 맛보며 한때를 보냈습니다. 이름처럼 아무 곳에서나 쑥쑥 자라는 쑥, 그리고 냉이, 민들레, 여전히 구분하기 어렵지만 씀바귀와 고들빼기 등이 저의 채집 대상이었습니다. 

 

그것들을 몇 잎 뜯어다가 흙을 털고 씻고 식수로 넣어준 더운물에 담가 쓴물을 좀 우려낸 후 고추장에 버무려 찬으로 먹습니다. 쑥이나 민들레잎은 더운물에 담가 두고 차로 마시기도 했습니다. 

 

생활이 단순해지니 오감이 발달하는지, 몸이 붓고 수분대사에 이상이 생기면 별 계산 없이 민들레가 당기고 이상하게 한기가 드는 날엔 쑥차가 그리웠습니다. 제 몸을 치유할 약초나 샘물을 가려 먹는 동물처럼 그랬습니다. 

 

기결수가 되어 대구교도소에 갔을 땐 역시 정치수는 노역을 보내지 않는 통에 혼자 교도소 뒤뜰에 마련한 텃밭을 돌보는 일을 했는데 그 덕에 여름 내내 상추며 쑥갓이며 케일 등을 몇 잎씩 얻어먹을 수 있었습니다. 

 

구치소 교도소의 밥은 유독 찰기도 없고 영양가도 달리는 편인데 그나마 몇 차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끌려가 그 생활을 하면서도 나름 명랑하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었던 건, 밖의 옥바라지 외에도 제한적이나마 햇살을 받고 땅에서 자란 건강한 것들을 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건강한 식생활의 기본 중 기본은 제철에, 제 땅에서 난 음식을 먹는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자연은 시의적절한 먹거리를 그 땅의 생명에게 제공합니다. 

 

단오에는 단오의 먹거리와 풍습이, 삼복더위에는 더위를 이길 수 있는 음식이, 동짓날이며 정월대보름엔 그 시기 긴 어둠과 추위를 이겨낼 세시풍속이 잘 정리되어 우리를 인도합니다. 

 

그 계절에 인간에게 필요한 양분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봄에는 봄에 흔한 새싹 나물을, 여름엔 수분이 많고 시원한 과일을, 가을엔 무르익은 오곡백과 덕분에 말뿐 아니라 사람도 열량을 비축하는데, 이는 또한 겨울 추위를 이겨내기 위한 자연스러운 준비였습니다. 겨울엔 말린 나물과 소금에 절인 식량으로 부족한 영양분과 미네랄을 보충하며 살아냈습니다.

 

오늘날 봄나물이 움틀 흙이 점차 사라지고 과채 역시 하우스 재배를 통해 제철을 잊었지만, 그래도 우리 몸은 살아온 세월보다 훨씬 긴 지구와 인류의 역사를 그 유전자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겨우내 푸른 채소를 못 먹고 묵나물만 먹었던 것도 아닌데, 봄이라고 밥상에 오르는 새순과 풋풋한 봄나물들이 참 반갑습니다.

 

냉이나 달래, 쑥처럼 친숙한 봄나물들도 그렇지만, 머위, 씀바귀, 엉겅퀴며 지칭개, 민들레, 엄나무 순 등도 첫맛이 쌉쌀하거나 매움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반가운 봄의 찬이었습니다. 

 

지금은 과학의 발달로 나물의 쓴맛이 노화를 방지하고 항산화에 좋은 ‘플라보노이드’라거나 인삼에 많은 ‘사포닌’이라거나 당뇨에 특효약인 천연 인슐린인 ‘이눌린’이라거나 하는 식으로 정체를 밝히고 있는데, 꼭 그런 이름이 아니더라도 ‘봄 쓴 나물을 좋아하는 사람을 일 년 농사에 머슴으로 써야 한다.’ ‘봄에 쓴 나물을 먹어야 여름 더위를 견딘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쓴 나물의 약효는 당연합니다. 

 

신기한 것은 봄이 되기 직전이면 공기도 건조하고 겨우내 우리 몸도 건조해지고 전반 체액이 탁해지는 상태가 되어 공연히 산에도 원인 모를 불이 나는 것처럼 사람들도 안구건조증이 심해지거나 입이 마르는 등 모지름을 쓰며 겨울을 견딘 후유증에 시달리게 되는데, 겨울을 견디고 언 땅을 뚫고 나온 봄나물을 먹는 순간 그 쌉쌀한 맛에 침이 돌고 소화액이 나오고 심지어 열이 내리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온갖 식물의 뿌리가 언 땅을 파고들어 땅을 보드랍게 만들고 제 잎과 줄기에 수분을 촉촉이 돌게 하는 것처럼, 우리도 밥상에 봄나물을 올리는 순간 팍팍한 겨울이 끝났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쓴맛과 매콤 잡쪼롬한 양념의 조화, 달큼하고 풋풋한 향기, 봄나물의 다양한 매력과 효능이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며 깨웁니다.

 

관광지의 비싼 산채밥상에서 만나는 숱한 나물들은 사실 우리 주변에 지천으로 있어 온 것들입니다.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고 나서야 찾아보는 건강식들을 보면 진시황이 찾아 헤맸다는 불로초가 아니라 이 산 저 산골짜기마다 피어있던 흔해 빠진 풀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항암에 그렇게 좋다는 머위나물도 그렇고, 산과 들에 지천인 씀바귀, 지칭개 같은 나물들도 항염, 항암, 특히 간염이나 간경화, 암에까지 효과가 있다고 이름이 높습니다. 숙취 해소와 간경화에 좋다고 알려져 대유행인 밀크씨슬이 엉겅퀴에서 추출한 것이고 유방암 치료제를 대신할 만한 효능이 칡에 있다는 연구보고가 있다는 것도 이미 유명한 일입니다. 엄나무나 가시오가피 순이 들어간 숙취해소음료도 편의점 매대에서 자주 마주하는데, 그 고맙고 흔하던 엄나무와 오가피 잎을 가려보기 힘든 눈썰미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약효가 좋은 봄나물을 만끽할 수 있는 계절은 짧습니다. 이미 냉이는 꽃을 분수처럼 달고 있고 단오가 지나면 쑥도 잎이 세서 쑥버무리를 하기엔 적당치 않습니다. 봄날엔 하룻밤만 자고 일어나도 녹음이 무성해집니다. 점차 여름에 어울리는 잎이 넓고 수분이 많은 열매가 우리를 찾아올 것입니다. 

 

혹여 봄나물 반찬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면 어서 서둘러봅시다. 땅과 계절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을 고맙게 여기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몸과 마음은 한결 건강해질 것입니다.

 

▲ 눈개승마.  © 황선

 

▲ 머위 순.  © 황선

 

▲ 취나물.  © 황선

 

▲ 쑥.  © 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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