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상승과 논두렁시계, 절묘한 타이밍 그 이유는?
육근성
기사입력: 2015/03/04 [09:14]  최종편집: ⓒ 자주시보

 

정치는 타이밍의 승부다. 타자가 안타를 치기 위해서는 날아오는 공에 배트를 맞히는 타이밍을 잘 잡아야 하는 것처럼 정치도 그렇다. 조금 늦거나 빠르면 파울이 되거나 헛스윙이 되듯 정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웬만한 정치인들은 시점을 저울질하는데 능숙하다.


왜 설 연휴 직후였나?

설 연휴 직후인 지난달 24일 민감한 과거 얘기가 다시 세간에 회자됐다. 노무현 대통령을 조사했던 이인규 전 중수부장이 갑자기 6년 전 얘기를 꺼낸 것이다. 일간지 기자를 만나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내용을 과장해 언론에 흘린 건 국가정보원”이라고 주장했다. ‘논두렁 시계’ 사건이 조작된 것은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의 공작에 의해서였다는 얘기다.

노 전 대통령이 원망스럽다던 이인규가 갑자기 6년 전 일의 배후를 폭로한 이유가 뭘까. 시점에 담긴 정치적 의미와 노림수는 뭘까.

이인규 또한 ‘시점의 사람’이었다. 2009년 초 그가 중수부장으로 발탁될 당시 검찰은 ‘박연차 수사’를 대충 마무리한 뒤 새로운 ‘지시’를 기다리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 시점에서 MB정부는 그를 중수부장으로 끌어올린다. 이인규는 ‘박연차-노무현 수사’의 단초를 제공했던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미국행 비행기에 안전하게 오르는 것을 확인하고는 검찰 수사를 즉각 ‘노무현 수사’로 전환한다.

노무현 대통령을 검찰로 소환했던 2009년 당시 이인규는 정치검찰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 표징이었다. 실시간 중계하듯 수사상황을 언론에 흘리며 퇴임한지 1년밖에 안 된 전직 대통령의 명예를 난도질했다. ‘정치인 노무현’이라는 그릇을 산산 조각내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인간 노무현’의 이미지까지 풀뿌리 뽑듯 그렇게 뽑아 다시는 땅 위로 잎을 내지 못하게 만들려는 것이 저들의 목표였다.


문재인 급상승… 이인규의 ‘저울질’

이런 이인규가 시점에 대한 노림수도 없이 ‘국정원 공작설’을 폭로했 리 없다. 언론들은 ‘노무현 서거 책임’이라는 주홍글씨를 지우고 싶어 그랬을 수도 있고, 명예회복을 꾀해 정치권에 진출하려는 의도일 거라고 주장한다. 이 외에도 다양한 분석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왜 하필 이 시점인가’에 대해 방점을 찍은 분석은 별반 없다.

‘정치는 타이밍의 승부’라는 걸 잘 알 만한 그다. ‘설 연휴 직후’를 ‘폭로 거사일’로 택한 것도 시점에 대한 저울질의 결과라고 봐야 한다. 왜 그는 지난달 20일 경을 최적의 타이밍이라고 판단했을까. ‘이인규의 저울질’이 정치적 상황과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 이유를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다. 설 연휴 직전 정치권의 최대 이슈는 새정치연합 전당대회였다. 이것과 ‘이인규의 저울질’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어 보인다.

10% 대에 머물던 문재인 의원 지지율은 2월 8일 당대표에 선출된 직후 수직 상승한다. 2월 2주차 여론조사(리얼미터)에서는 25%를 넘어서며 2,3위와의 격차를 크게 벌렸다. 설 연휴 직전(16~17일) 문 의원의 지지율은 27.5%까지 올랐고, 덩달아 새정치연합의 지지율 또한 수직상승해 33.8%를 기록했다. 전당대회 컨벤션효과와 이완구 총리후보자 후폭풍 때문에 문 대표의 지지율이 일시 상승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지만, 야당대표와 야당의 지지율 고공행진이 계속될 거라는 전망도 있었다. 박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과 비판이 확산되는 추세였기 때문이다.


다급했을 민정수석, 옛 상관과 손잡았나?

추락하는 여당과 상승하는 야당, 실망감만 안겨주는 대통령과 기대가치가 높아진 야당대표.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박 정권의 몰락은 앞당겨 지게 된다. 청와대의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또 설 연휴를 통해 이런 민심도 파악한 상태였을 것이다.

청와대로서는 문 대표와 야당의 상승세를 조기에 꺾는 게 절실했을 것이다. 다급한 쪽은 국민여론과 민심을 동향을 살펴야 할 우병우 민정수석이었을 것이다. 우 수석이라면 이인규와 통할 구석이 있다. ‘노무현 죽이기’에 깊이 관여한 공통분모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 수석은 당시 이인규 중수부장 밑에서 주임검사(중수1과장)을 맡아 수사의 실무를 담당했던 인물이다. 두 사람의 스타일이 매우 비슷하다는 게 주변의 평이다.

‘노무현 상처내기’는 문 대표의 지지율 상승을 막는데 효과적일 수 있다. 이인규-우병우 진영이 ‘노무현 1억 시계’를 다시 세간의 화제에 올린 건 노 전 대통령의 이미지에 먹칠을 함으로써 문 대표의 상승세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노림수일 가능성이 높다. 맞다면 두 사람은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 게 된다. ‘논두렁 시계’ 공작이 MB 정부의 국정원’ 소행이라는 쪽으로 몰아간다면 현 정권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두 사람 모두 ‘노무현 서거’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일정부분 벗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문재인 상승 꺾을 홈런, 보수 시선 끌 안타… 이런 게 필요했나

새정치연합의 속내는 복잡해 보인다. ‘논두렁 시계 공작’을 중대범죄로 규정하고 국정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반면 노 전 대통령을 다시 여론의 전면에 등장시키는 게 혹여 역풍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새누리당은 ‘논두렁 시계’ 관련 조사가 이뤄져도 손해 볼 것 없다는 태도다. 여당 의원 일각에서는 “진상 파악을 위해 새누리당이 나서야 한다”는 주장과 “야당은 국정조사 등 그런 소리 못할 것”이라며 ‘그냥 넘어가자’는 얘기가 동시에 나온다.

서거한 대통령 관련 사건이 다시 정치권 전면에 등장하는 게 여야 모두에게 부담인 모양이다. 하지만 인터넷 공간의 분위기가 다르다. MB 정권을 비판하는 목소리와 함께 ‘노무현 향수’가 다시 고개를 드는 반면, ‘명품시계’ 존재 여부에 대해 끝까지 수사해야 한다며 노 전 대통령을 비난하는 이들도 상당수다.

‘이인규 폭로’는 파장이 크지 않았다. 그렇다고 청와대가 취한 소득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문 대표와 야당의 지지율을 현저하게 떨어뜨리는 결과는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노무현을 반대하는 보수층’이 모일 수 있는 작은 멍석 역할은 했다. ‘이인규 폭로’의 정치적 노림수도 이런 것일 거다.

‘설 연휴 직후’라는 타이밍에 맞춰 배트를 휘두르면 안타가 될 줄 알았나 보다. ‘문재인과 야당 지지율’ 상승세를 꺾을 수 있는 홈런은 안 될지언정 박 대통령을 떠나는 보수층의 시선이라도 다시 모을 수 있는 안타는 될 거라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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