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국가(Islamic State)의 성장과 미국의 실패

이병진 교수 | 기사입력 2015/03/29 [12:44]

이슬람국가(Islamic State)의 성장과 미국의 실패

이병진 교수 | 입력 : 2015/03/29 [12:44]

[편집자 주: 아래의 글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이병진 교수가 몇 주 전에 자주민보에 보내온 기사인데 폐간되어 이제야 소개합니다.

이번 이병진 교수의 글은 현재 중동의 IS가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미국과의 관계의 본질은 무엇이고 향후 관련 중동사태가 어떻게 전개되어갈 것인지를 아주 많은 자료분석을 통해 깊이있게 분석 전망한 글입니다. 우리나라 주된 석유 공급처이며 세계정세의 한 축인 중동정세를 전망하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글이라고 판단됩니다.]

 

 

 

 

얼마전 이슬람국가 세력이 리비아에서 이집트 기독교인 콥트교도 21명을 참수하였다. 3월 7일에는 나이지리아 이슬람무장단체인 보코하람(Bok Haram)이 이슬람국가에 충성을 맹세하기로 했다. 이 사건들은 이슬람국가세력이 이라크와 시리아를 넘어 아프리카까지 확산되었음을 보여준다.

 

한편, 이라크 정부군은 지난 3월 2일에 이슬람국가가 점령하고 있는 바그다드 북쪽의 티크리트(Tikrit)지역을 재탈환하려고 공격을 하였다. 이곳은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고향이다. 또한 미국은 4월초에 이슬람국가가 지배하는 이라크 제2의 도시인 모슬(Mosul)을 공격한다고 한다. (실제 실행될지 명확하지 않다). 이처럼 현재 중동지역은 이슬람국가 세력의 성장과 이를 저지하려는 미국과 그의 동맹세력들이 벌이는 내전으로 깊이 빠져들고 있다. 이슬람 무장테러단체인 알 카에다는 9.11 테러사건 이후 미국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아 세력이 많이 약화되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알 카에다는 이라크 지부를 2006년에 이라크이슬람국가(ISI)로 조직이름을 바꾸고 이슬람주의 재건에 공을 들였다. 2011년 4월 30이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되고 그 해 12월 18일 미군이 이라크에서 철수하자, 시아파가 중심이 된 누리 알 말리키(Nouri al Maliki) 정부와 과격한 수니파 이슬람주의 사이의 종파분쟁이 이라크 전역을 휩쓸었다. 과격 수니파 반군이 이슬람국가의 주요세력이다.

 

이라크이슬람국가 세력은 2011년에 시라아 내전이 일어나자 ‘누스라전선(Jabhat al-Nusra)'을 만들어 시리아까지 영향력을 키웠다. 누스라전선은 2013년에 이들리브, 알레포 등 시리아 동북부를 지배하였다. 이런 성공을 기반으로 이라크이슬람국가의 지도자 아부바크르 알 바그다디(Abu Bakr al-Baghdadi)는 2013년 4월에 누스라전선은 이라크이슬람국가의 하부조직이라고 발표하고 2014년 6월에는 시리아와 이라크이슬람세력을 통합하여 이슬람국가(IS)를 선포한다.

 

처음 이슬람국가가 등장했을 때에 알 카에다 테러조직의 선동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2014년 6월말 이라크에서 두 번째로 큰 모술이 이슬람국가에 넘어가고 이슬람국가가 수도 바그다드까지 위협을 하자 이슬람국가의 존재는 현실화되었다. 이런 이슬람국가의 갑작스런 등장에 대해서 현재 미국의 여론은 부시정권이 9.11테러에 무지했던 것처럼, 오바마 행정부가 이슬람국가의 성장에 대해서 미처 인식하지 못했다고 본다(Steve Paul, "Confronting the IS requires a new solution, Kansas City Star, The Korea Herald March 5, 2015).

그러나 이와 같은 시각은 이슬람국가가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며 왜, 어떻게 이슬람국가가 등장하게 되었고 아프리카 지역까지 그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지를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더군다나 미국은 2001년 9.11테러 이후부터 현재까지 전세계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며 알 카에다 조직을 괴멸시켰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극단적인 이슬람주의 세력이 계속 확산되는 현상은 이해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왜 오늘날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급진적인 이슬람주의가 번성하고 있으며 어떤 배경과 역사적 과정으로 발전하였는지 살펴보는 일은 오늘날 중동의 현실을 정확히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나는 이슬람국가가 만들어진 직접적인 계기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부정의한 전쟁이었다.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슬람 문명에 대한 서양의 지배와 식민지배가 이슬람의 지하드화를 부추겼고, 그런 토양에서 극단적인 이슬람주의가 형성되었다고 본다. 이 글은 이와 같은 관점에서 극단적인 이슬람주의 성장과정을 살펴보고 그 과정에서 미국의 중동정책이 극단적인 이슬람주의 형성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분석한다.

 

중동의 원유자원을 독점하려는 미국의 욕심이 오늘날 이슬람주의를 폭력화시키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는 나의 가설이 완벽하게 입증되지 않는다 해도 실타래처럼 얽힌 중동과 아프리카 문제를 이해하는데 작은 실마리가 되길 바란다.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멸망과 아랍민족주의 그리고 이슬람 전사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오스만 튀르크제국은 여러 개의 중동 국가들로 쪼개져 서유럽의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서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도 혁명의 열기가 고조되었는데 1958년에는 이라크 공산당이 주축이 되어 영국이 임명한 이라크 왕을 몰아내는 혁명이 일어났다. 1969년에는 수단 공산당이 이끄는 혁명이 일어났다.

 

이처럼 이슬람 사회주의의 영향력이 커지자 아랍의 부르주아 계급은 위기감을 느꼈다. 원래 ‘아랍 민족주의’ 세력은 반제, 반식민지 노선을 내세우며 노동자, 농민계급과 연대하였지만, 사회주의 세력의 성장으로 부르주아 계급의 이해관계와 충돌하면서 반공주의로 변질되었다. 이집트의 나세르(Gamel Abdul Nasser)는 공화주의를,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은 ‘부흥(Ba'ath;Renaissance)'이라는 이름으로 아랍민족주의를 고취하였다.
이들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이념을 반대하였지만 세속주의라는 공통점에서 아랍민족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아랍 민족주의는 아랍의 봉건왕들과는 대립하였다.

 

이슬람 사회주의와 아랍 민족주의 세력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낡은 봉건 왕의 지배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아랍 봉건 왕들은 바짝 긴장한다. 특히 사우디 봉건 왕은 이슬람주의를 내세워 봉건통치지배를 정당화하였는데, 그는 공산주의와 아랍 민족주의에 대응하려고 1962년 세계무슬림연맹(The World Muslim League)을 조직하였고, 종교경찰을 만들어 이슬람 종교의 이름을 빌려 인민들을 강제로 사우디 왕족에게 순종하게끔 하였다.

또한 사우디 왕은 1976년에 오만의 도파르(Dhofar) 지역에서 봉기가 일어나자 군대를 보내 이를 완전 진압하였다. 남예멘의 사회주의 정권(예멘 인민민주공화국)에서는 ‘지하드(jihad)' 활동을 지원하여 1980년에 예멘을 통일시켜 예멘을 사우디의 세력 아래 두었다.
사우디 왕국이 만든 세계무술림연맹(WML)은 이슬람주의 선교활동의 도구였는데 이를 통해서 교조적인 이슬람주의도 함께 확산되었다.

사우디 봉건왕국은 국제사회에서 입지기반을 만들려고 1969년에 친미국가들인 모로코, 파키스탄과 함께 이슬람협력기구(The Organisation of Islamic Cooperation)를 적극 받아들여 사우디 봉건국가는 교조적인 봉건국가로 만들었는데 이것은 극단적인 지하드주의화가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었다.

 

그런 가운데 1979년 이란에서 봉건 왕이 쫓겨나고 이슬람 종교지도자가 최고지도자가 되면서 대통령을 선거로 선출하는 이란식 공화주의 정권이 세워지자 사우디 봉건 왕은 정통성에 위기감을 느끼며 불안에 떨었다. 또한 이란 혁명의 성공은 침체된 시아파 대중들을 단결시켰고, 헤즈볼라(Hezbollah;신의군대) 운동이 일어났다. 이는 사우디 반도의 시아파들을 흔들어 깨우는 대격변이었다. 사우디 왕의 우려는 현실화되었는데, 1979년 말에 유전지대인 꽈티프(Qatif)에서 이란혁명을 따르는 대중봉기가 일어났다. 이 봉기에는 사회주의 세력도 가세하였다. 또한 1979년 11월에는 극단적 와화비즘 세력이 ‘마흐디(Mahdi;이슬람판 재림예수)’를 주장하며 메카대사원을 점거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이들 무장세력은 미국에 대한 석유수출금지 및 비무슬림 외국인과 외국군대 철수를 요구하였다. 사우디 총정보국의 주도로 무장세력은 소탕되었지만 사우디 왕의 입지는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 크게 흔들렸다.

 

이와같은 통치위기에 직면한 사우디 왕은 1980년 8월 5일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을 급히 만나 이란 봉쇄작전을 협의한다. 사담 후세인은 사우디로부터 전쟁자금(전쟁초기 매달 10억 달러)과 영공 사용 승인을 받고 9월에 국경분쟁을 빌미로 이란과 전쟁을 일으켰다. 이 때 사우디는 페르시아만을 초계비행하면서 바레인, 쿠웨이트, 오만, 카타르, 아랍에미리트를 압박하여 1981년 2월에 걸프협력협의회(The Gulf Cooperation Council)를 만들어 중동 산유국들 사이에서 패권국가가 된다. 미국이 그 배후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원유에 대한 수요가 사우디와 걸프 산유국가들에 몰리면서 사우디 봉건왕국은 돈벼락을 맞았다. 그러나 원유 판매에 따른 처문학적인 부가 소수의 사우디 왕족에게 돌아가면서 사우디 사회의 불평등은 심화되었다. 인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그런 사회분위기에서 극단적인 이슬람주의 운동이 더욱 고무되고 확산되었다.

 

교조적인 이슬람주의가 통치명분이었던 사우디 봉건정권은 나날이 성장하는 극단적인 이슬람주의 운동을 통제할 만한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사우디 반도의 골치 아픈 이슬람주의 세력을 아프가니스탄에 보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파키스탄 정보부의 정보력과 사우디의 재정 미국의 무기지원이 결합되면서 아리비아 반도의 이슬람 전사들은 막강한 무장조직으로 성장하였다. 이런 조건에서 사우디 왕실의 재정도움을 받은 건설업자 오사마 빈 라덴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알 카에다 조직을 만들어 이슬람 전사들의 후예들을 키웠던 것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과 이슬람 전사들의 지하드(성전)

 

현재 극단적인 이슬람주의 큰 문제가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는 폭력과 테러인데, 그런 폭력과 테러들을 종교적 신념으로 포장하고 선전할 수 있게 구실을 준 게 미국의 이라크 침략이다. 먼저 1991년에 일어난 1차 이라크 전쟁은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지속된 이란-이라크 전쟁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원유공급에 차질이 생기고 사우디의 유전이 위험해지자, 1982년에 미국은 비밀리에 사우디-미국 군사위원회(The Saudi-American Military Committee)를 만들어 걸프지역의 원유를 안전하게 보호하였다.

그래서 이란-이라크 전쟁을 하는 동안에 이라크의 경제는 처참해진 반면에 사우디와 걸프 아랍 국가들은 원유를 팔아 돈방석에 앉았다. 그러자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전쟁자금 지원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사우디 왕에게 불만을 갖게 되었고 쿠웨이트 유전의 이익배분 문제로 다투다가 1990년 여름에 쿠웨이트를 기습 침략했다.

 

이란과 적대관계인 미국은 후세인 정권에게 무기도 공급하였지만, 정작 후세인 정권이 걸프지역 유전을 위협하자 미국은 1990년 8월에 사우디에 미군을 파병하였다. 그러나 이슬람의 성지 메카가 있는 사우디에 미군을 파병한 일은 무슬림들의 분노와 과격 극단 무슬림들의 격분을 일으켰다.

이 때 오사마 빈 라덴도 미군을 끌어들인 사우디 왕가를 비판하면서 미군철수를 요구하였다. 그는 미군 대신 아프가니스탄에서 단련된 이슬람 전사들을 보내 이라크와 지하드(성전)를 하자고 제안한다(정의길, 「이슬람 전사의 탄생」, 한겨레출판, 2015년, 200~300쪽).

 

그러나 사우디왕은 오사마 빈 라덴의 제안을 거절했고 오사마 빈 라덴은 수단으로 쫓겨났다. 이 일을 계기로 사우디 왕실의 재정과 후원을 받으며 성장한 알 카에다는 사우디 왕실과 등을 지고 극단적인 이슬람 테러조직으로 변모한다. 이들은 서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에서 아랍 세속주의 정권들과 무장투쟁을 벌이며 이슬람주의화를 추구하였다.

특히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알 카에다는 2001년 9월 1일 미국 본토에서 대규모 항공기 테러를 벌여 전 세계를 경악시켰다. 미국은 곧바로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엉뚱한 곳에 화풀이하듯 이라크를 재침략하였다. 사실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은 9.11테러와 직접 관련도 없었다. 그런데도 부시 정권은 이라크에 존재하지도 않는 화학무기와 대량살살무기가 있다며 침략 구실을 거짓으로 지어내어 2003년에 다시 이라크를 침공하였다. 제2차 이라크 전쟁에서 후세인 대통령은 살해되었고 이라크는 박살났다. 그 때 이라크 사회는 완전히 붕괴되었고 수많은 부족과 종파로 분열되고 쪼개졌다.

 

바로 이런 배경에서 극단 이슬람주의가 대중들 사이에 퍼지게 되었고 이슬람국가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동안 미국은 무인폭격기(드론)을 이용하여 거물급 극단주의 이슬람전사들을 죽이고 테러조직을 소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막지 못하는 데는 이와 같은 두 차례의 미국의 침략으로 이라크 사회에서는 반미적개심이 나타났고, 극단적인 이슬람 전사들은 그것을 이용하였다.

 


이슬람국가의 성장과 미국의 실패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략으로 후세인 정권은 붕괴되었고 그의 정치적 지지기반인 바트(Ba’ath)당도 와해되었다. 이라크는 남부의 시아파, 중부내륙의 수니파, 북부의 쿠르드족으로 분열되었다. 이라크 전체 인구의 54%를 차지하는 시아파와 24%를 차지하는 쿠르드족은 미국에 우호적이었다. 반면에 후세인 정권의 주축이었던 수니파는 티그리스강 유역에 있는 모슬과 티그리트를 중심으로 반미항전으로 저항하였다.

사담 후세인의 대리인이었던 알 듀리(Izzat Ibrahim al-Duri)는 모슬에서 이라크군에서 쫓겨난 군인들과 바트당 지지자들을 모아 ‘낙시반디’군을 조직하였다. (반군의 이름은 ‘the Army of the Men of the Order of the Naqshbandi’다) 이 반군은 수니파 세력을 기반으로 하는 지하드 조직이다. 이것은 중요한 변화인데, 세속적인 바트주의자들이 알 카에다의 영향을 받아 이슬람 바트주의자로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미국이 2004년 팔루자에서 수천 명을 학살하고 감옥에 수감된 무슬림들이 학대받는 모습이 언론에 공개되자, 수니파와 시아파 구별없이 이라크에서는 반미감정으로 들끓었다. 시아파 이슬람주의 성직자인 무크타다 알 사드르(Muqtada al-Sadr)는 반미의 기치를 내걸고 시아 마흐디 민병대(Shia Mahdi Army)를 조직하고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결국 미군과 이라크 임시 정부군은 2004년 4월에 팔루자 전투에서 패배하여 그곳에서 쫓겨났다.

 

이 일은 이라크의 민족주의를 자극하였으며 이라크 내의 반미감정을 고조시켰다. 이런 모습에 크게 당황한 미국은 회유와 압박으로 이라크를 종파분쟁의 소용돌이로 밀어넣었다. 먼저 미국은 2006년에 알 카에다의 지도자인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Abu Mussab al-Zarqawi)를 죽이고 알 카에다 조직을 직접 공격하였다. 다른 한 편에서는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에게 독립을 미끼로 회유하였다.

수니파의 일부 유력 족장들을 돈으로 매수하여 시아파와 종파갈등과 분열을 조장하였다(Vijay Prashad, “Anatomy of the Islamic State”, in 「The Marxist」, July-September 2014, 33쪽). 미국이 후원하는 수니파 부족세력 연대체인 ‘각성(The Awakening)’의 지도자들은 최근에 미국을 방문하여 자신들의 친미행적을 자랑질하며 더 많은 재정 지원과 무기들을 달라고 떼까지 쓸 정도이다(Eli Lake “Waking Iraq’s Sunnis to crush Islamic State”, Bloomberg, The Korea Herald, February 24, 2015).

이처럼 미국은 이라크의 종파분열과 부족간의 갈등을 부채질하여 반미 이라크 민족주의 성장을 억제하는데 성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이라크 내부의 균열이 이슬람 국가를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되어 지금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자업자득’인 것이다.

 

현재 이슬람 국가가 쉽게 격퇴되지 않는 이유는 시아파 중심의 누르 말리키 정부에 대한 수니파 세력의 반발이 중요한 요인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이스람 국가를 바라보는 시리아, 터키, 요르단, 사우디, 카타르의 이해관계가 제 각각이다보니 반이슬람국가 전쟁이 효과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터키는 미군의 군사지원을 받으며 독립국가를 지향하는 쿠르드족에 대해서 우려하고 있다. 그래서 겉으로는 이슬람국가를 비난하면서도 뒤에서는 시리아와의 국경을 개방하여 이슬람국가 전사들의 충원과 의료지원을 모른 체하고 있다.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이 망하기를 바라는 미국은 시리아 정부군과 자유시리아군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보니 시리아에서 이슬람국가 억제 활동을 못하고 있다.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도 미국과 서방세력이 지원하는 자유아시아군이 정권을 위협하자 라까(Raqqa), 데이레 즈르(Deires-Zor)지역을 점령한 이슬람 국가와 싸울 엄두조차 못내고 있다.

이란과 등을 지고 있는 사우디왕도 이란-시리아-헤즈볼라로 연결되는 시아파 세력의 연대를 막기 위해서 시리아 이슬람 전사들에게 자금을 지원하고 있는데, 이를 위축시킬까봐 이슬람국가 소탕작전에 소극적이다.

요르단 국왕도 미국의 요구에 따라 마지못해 반이슬람 국가를 표명하고는 있지만 반이스라엘 정서가 강한 자국 내의 민심 때문에 이슬람주의를 내세우는 이슬람 국가를 적극 공격하지는 못하고 요르단에 이슬람 국가 세력이 침투하지 못하게끔 국경을 봉쇄하는 일에 더 치중하고 있다. 이런 지정학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이슬람국가가 주변 국가들의 저항 없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슬람국가를 격퇴시키는 일은 이라크 정부군의 몫인데, 과거 후세인 정권에서 복무하던 군, 관료들은 대거 이슬람 국가에 흡수되었기 때문에 시아파 민병대가 주축인 이라크 정부군은 전투력이 미미하다. 게다가 미국과 적대관계인 이란이 시아파 민병대를 돕고 있기 때문에, 이라크 정부군을 돕고 있는 시아파 민병대에 대한 미국의 속내는 복잡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미국은 고작 쿠르드족 용병에 기대어 이슬람 국가와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은 쿠르드족이 부정부패가 심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쿠르드족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David Ignatius, “The Defense of Kirkuk”, The Korea Herald, February 17, 2015). 이것은 터키에게 치명적인 일이다.

 

현재 미국의 서아시아 정책은 총체적인 위기에 빠져있다. 미국은 알 카에다 조직을 박멸시켰다고 말하였지만, 오히려 이슬람 국가로 성장에서 보듯이 미국의 대 터레전쟁은 실패하였다. 얼마 전인 1월 23일에 예멘에서는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Houthis)와 아라비아 반도 알카에다 세력이 연합하여 수도인 사나(Sanaa)를 함락하고 미국이 지지하는 하디(Hadi) 정권을 무너뜨렸다.

현재 미국의 핵심적인 중동정책인 이란 핵협상은 협상타결을 앞두고 미국내 강경파와 이스라엘의 반발로 핵협상 타결도 순탄치 않아 보인다. 중동지역에서 미국이 점점 패권을 잃어가자 위기감을 느끼고 강력한 군사력으로 중동에 개입하자는 주장이 미국내에서 일어나고 있다(Eli Lake, “Obama’s Middle East fantasy”, Bloomberg, The Korea Herald, February 10, 2015).

또한 내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중동정책의 실패와 그 책임을 두고 현 집권세력과 과거 부시 집권세력이 서로 물고 뜯고 있다(Trudy Rubin, “Jeb Bush, Iraq and the rise of the Islamic State”, The Korea Herald, March 3).

 

현재 미국은 바레인 근처 제5함대에 항공모함과 20여대의 구축함, 핵잠수함, 103대의 전투기 그리고 2만 명의 해병대 병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에 5개의 미군기지를 갖고 있다.
미국은 아시아, 태평양에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으므로 이라크 내전에 전투병을 파병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런 상황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이슬람 국가를 격퇴시키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우리는 이 글에서 미국의 이라크 침략이 9.11테러와 이슬람 국가가 등장하게 된 근본원인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했던 이유도 중동의 원유를 안정적으로 차지하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이와 같은 근본적인 모순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극단적인 이슬람주의 세력이 비합리적이고 잔인한 폭력을 사용할지라도, 아랍 인민들은 그것을 정당한 저항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극단적인 이슬람주의 확산을 억제하고 격퇴시키려면 그들의 지도자를 처형하고 무력으로 제압하기 보다는 먼저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부터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오늘날 실패한 중동정책에서 역사적 교훈을 깊이 되새겨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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