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육문중학교 도서관은 김일성주석기념관
<만주항일유적 광복60주년기념기행1>길림 육문중학교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05/08/08 [00:24]  최종편집: ⓒ 자주시보

편집자주: 광복 60주년 김념 기획으로 자주민보는 역사학자이자 연변일보 기자로 만주지역 항일투쟁사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연변조선족문화발전추진회 소속 리광인 선생과 함께 강만길 교수의 발언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김일성 유격대의 항일 유적지를 취재하였다. 이번에는 연변지역을 중심으로 취재하였으며 다음 기회에 무송지역을 취재할 계획이다.
취재는 이미 하였지만 모르는 내용이 많아 추가 자료 조사하느라 기사 작성이 좀 늦어진 점 독자여러분들께서 널리 양해를 구한다. 기본 연재계획은 다음과 같다.
 
제1편: 길림시절
제2편: 왕청유격근거지
제3편: 13인의 용사비
제4편: 대마록구전투 및 홍기하전투
제5편: 올기강전투

제6편: 하바롭스크에서의 투쟁
제7편: 항일의 넋이 서린 용정
제8편: 리광인 선생이 말하는 김일성 주석 항일투쟁 총정리

김일성

김일성 주석 기념관으로 만든 길림육문중학교 도서관 정면 풍경

 

김일성 주석과 항일 투사들의 투쟁전적지를 중심으로 연구한 리광인 선생은 김일성 주석이 학생운동을 했던 길림시절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길림에 가면 지금도 김일성 주석이 도서관 서기로 활동하면서 사상을 배우고 깨우쳤던 육문중학교에 김일성 주석의 학생운동 시절의 흔적이 있을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리광인 선생이 길림에서 안내해 줄 사람을 찾아 약속을 잡았는데 그만 당일 날 일이 생겨 나오지 못하게 되어 뜻하지 않게 홀로 취재하게 되었다. 그래서 사진 중심으로 육문중학교를 살펴보겠다.


 

연변에서 기차로 7시간 넘게 가면 돈화를 지나 길림시가 나온다. 철길 옆으로는 가도가도 끝없는 만주의 벌판이 펼쳐졌다. 그 벌판의 중간 중간 높은 산과 밀림이 펼쳐져 있었다. 저 산과 밀림에 의거하여 만주의 우리 민족은 항일의 깃발을 들고 일제와 싸웠으리라!


연신 차창너머로 사진기 셔터를 눌러대고 있을 때 마주보는 앞자리에 앉아 있던 20대 초반의 중국 한족 처녀가 무슨 일을 하러 가는가를 물었다. 통역은 옆에 앉은 조선족 동포가 해주었다.
김일성 주석의 유적지 길림 육문중학교를 간다고 하자. 그녀는 길림 어느 공원에 가면 김일성 주석의 유적지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정확한 장소를 글로 적어달라고 부탁하자. 그 자리에서 오즉춘이라는 자신의 이름과 함께 북산공원을 적어주었다.

그녀는 항일유격근거지가 있었던 왕청에서 산다고 했다. 나는 차 칸에서 만난 중국의 젊은 처녀도 김일성 주석의 유적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데서 자못 놀라웠다.

 

기차칸에서

기차칸에서 만나 중국 처녀가 길림 북산 공원의 김일성 주석 유적지가 있다고 적어준 쪽지, 김일성 주석 활동을 공작이라고 표현한 것이 흥미롭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북산 공원의 약왕묘 지하실은 김일성 주석이 청년학생운동을 하던 시절에 항일 청년조직의 비밀 회합장소로 이용했던 곳이라고 했다.
 
길림역에 내려 겨우겨우 지도에서 육문중학교 위치를 찾아 택시를 탔다. 육문중학교는 길림을 가로지르는 강 바로 앞 경치 좋은 곳에 신식 건물로 자못 웅장하게 서 있었으며 교문 앞에는 파란 운동복을 입은 학생들이 재잘거리고 있었다.


신식건물을 돌아 뒤로 가니 거기에는 고색창연한 기와를 얹은 고풍스런 오래된 가옥이 나왔고 그 마당 한 가운데 커다란 동상이 우뚝 서 있었다.


육문중학교

육문중학교 도서관의 정면의 김일성 주석 동상, 자못 그 크기가 웅장하다.


 


설마 저 동상이 김일성 주석 동상이랴 싶었는데 가까이 가보았던 청년 김일성 주석이 유격대 군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그대로 형상화되어 있었다.


중국내 조선족과 김일성 주석과 관련된 항일 유적지들이 사실 거의 방치 되다시피 하고 있는 현실을 취재를 통해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육문중학교 도서관 앞에 서있는 동상이 잘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기념관 사무실은 중국 처녀가 홀로 지키고 있었다. 사전으로 겨우 대화를 주고받아 관람료를 내고 도서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도서관은 완전히 기념관으로 꾸며져 있었다. 방이 네 개 있는데 하나는 김일성 주석이 도서관 서기로 일하던 교실 기념관이고 다른 두 개는 북한에서 육문중학교에 보낸 선물을 모아놓은 선물 기념관이었으며 나머지 하나가 접견실이었다.


 

육문중학교

육문중학교 도서관에 놓여있는 김일성 주석의 소년 시절 반신상과 사진


육문중학교<사진: 김일성 주석이 일했다는 도서관 기념관>


도서관 기념실에는 옛날 책상이 그대로 놓여 있으며 동으로 만든 김일성 주석의 소년시절의 상반신 조각상 놓여 있고 그 뒤 벽에는 소년시절의 사진이 걸려있다.
그리고 제일 앞에 있는 책상에는 김일성 주석이 서기로 일하던 책상이라는 푯말과 함께 꽃바구니가 놓여있었다.
그리고 작은 유리함에는 육문이라는 글씨가 선명한 학교 뺏지와 교복단추가 놓여있었다. 아마 당시에 사용하던 것인 모양이다. 


중국말을 할 수 없으니 안내원에게 김일성 주석이 여기서 무슨 활동을 했는지를 물어볼 수 없어 참으로 가슴이 답답하였다.
선물을 전시해놓은 선물 기념관에는 북한에서 육문중학교에 보낸 정성어린 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으며 벽에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관련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김일성 주석의 유격대원이자 아내였던 김정숙 대원과 함께 찍은 사진 등 유격투쟁을 담고 있는 사진이 많았다.


 

선물

선물 기념관2


선물은 주로 학습교재로 쓸 수 있는 피아노, 가야금과 같은 악기에서부터 수달과 사슴, 매 등의 동물 표본도 있었으며 북한의 문화적 재능이 담긴 도자기와 여러 예술품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특히 김일성 주석의 세기와 더불어 전권이 정면에 전시되어 있는 것도 특징적이었다.


그리고 선물들에 담긴 글에는 조·중 친선과 관련된 내용이 많았다.
이 대대적인 기념관은 육문중학교에서 개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중국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조성한 것으로 입구의 돌비석에는 적혀있다.
따라서 중국 정부는 김일성 주석의 육문중학교 시절의 항일운동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되었다. 육문중학교 기념관은 정말 상상을 훨씬 초월할 정도로 잘 갖추어져 있었다.
 


 

육문중학교

육문중학교 김일성 주석 선물 기념관1


 

선물과

선물과 관련된 설명글

 



북한에서진열된
도자기와 사슴박제 등 북한에서 육문중학교에 보낸 선물육문중학교

육문중학교 김일성주석기념관에 걸려있는 중국 만주에서 항일 투쟁을 하던 당시의 청년 김일성의 사진
 


 

육문중학교

육문중학교 김일성 주석 기념관의 청년시절의 사진


 

김일성

김일성 주석의 유격대 군복을 입은 모습과 그의 아내 김정숙 대원


 

김일성

김일성 주석은 해방 후 조국에 돌아와 당 건설 등으로 바빠서 고향집에 한달이나 지나 찾아갔다고 한다. 사진에는 김주석의 리보익 할머니와 김보현 할아버지도 보인다.


 

해방

김일성 주석이 해방 후 조국으로 돌아가 고향집 리보익 할머니와 포옹하는 장면, 리보익 할머니는 이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디 두고 너만 홀로 왔느냐며 눈물을 지었다고 한다. 북한에서 김주석의 김형직 아버지와 강반석 어머니는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희생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정일

김정일 위원장과 중국의 등소평이 환담을 나누고 있는 사진도 기념관에 걸려있다.

 

김일성

1970년대의 김일성 주석과 주은래 총리. 주은래 총리는 김주석과 사이가 아주 가까웠는데 북조선에 동상이 세워진 유일한 외국인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일성

김일성 주석이 앉아서 도서관 서기 일을 보았다는 책상


 

김일성

김일성 주석이 활동하던 시절의 육문중학교 뺏


 


 

필자와

육문중학교 김일성 주석 기념관앞에서 필자


 


 

중국정부가

길림성 인민정부가 직접 만든 기념관이라는 글이 선명한 육문중학교 김일성주석 기념관 표식비


 

북한에서

북한에서 보낸 조`중친선의 문구가 적혀있는 기념품
 
 


 

육문중학교에

육문중학교에 보낸 김일성 주석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찬양한 한시가 적혀있는 기념품


 

김일성

육문중학교 기념관의 김일성 주석 평양 생가 만경대를 형상화한 수예 기념품


 


*김일성 주석의 육문중학교 시절 독립운동 관련 참고자료*
와다하루끼 지음 이종석 옮김,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 (창작과 비평사 1992)
김일성은 1912년 4월 15일 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 남리(현재의 만경대)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김형직金亨稷이고 그의 어머니는 강반석姜盤石이었다. 김일성의 어린 시절의 이름은 김성주金成柱였다. 아버지 김형직은 김일성이 태어났을 때 평양의 미션스쿨인 숭실중학 학생이었고 나중에 기독교계통인 명신학교의 교사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김일성의 외할아버지인 강돈욱은 교회 장로로서 김일성의 어머니가 되는 딸 강반석의 이름을 12사도의 첫째인 베드로의 이름을 따서 지어 주었다. 김일성은 그의 자서전 {세기와 더불어}(평양: 로동당출판사, 1992)에서 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을 잡고 교회에 가던 것을 회상하기도 하였다.

김형직의 가족은 1919년 만주로 이주하였다. 김일성은 1923년 홀로 평양으로 돌아와 외가가 있는 용산면 하리의 창덕학교를 다녔으며 1925년 만주로 돌아가 이후 1926년 3월 천도교도인 민족주의자 최동오가 운영하였던 만주의 화전현 소재 정의부 소속의 화성의숙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6월 아버지의 죽음과 더불어 화성의숙을 그만 두었다.(북한 문헌들은 26년 가을까지 화성의숙에 재학하였으며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하였다고 주장한다.)
1927년 길림의 육문(毓文)중학에 입학하였다. 바로 여기서 김일성은 공산주의 사상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되었고 조선공산청년회라는 조직에 가입하였다.
1929년 가을에 김일성은 반일활동협의로 중국군벌당국에 체포되어 수개월 동안 가옥살이를 하였고 퇴학처분을 받았다.

1930년 봄 출옥후 길림성 소재 카륜 고유수 지방에서 이종락이 이끄는 국민부 계통의 조선혁명군 길강 지휘부 대원으로 활동하였다. 이 때 김일성은 당시의 항일운동가들이 그러하듯 다른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김일성金日成이었다.
1931년 초 조선혁명군이 붕괴되자 간도지방으로 이동하여 공산청년동맹 요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일국일당주의의 원칙에 따라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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