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인사] 잘루목을 지키던 항일투사들처럼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3/12/31 [15:45]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무송시 동쪽 산으로 뻗어 있는 잘루목     © 자주민보

 

▲ 길림성 무송시 지도     © 자주민보



리송덕 전 연변박물관 항일역사부 주임과 함께 2011년 장백지역 유적지 취재에 나섰었다.

그 중 항일무장투쟁의 중요한 거점이었던 만주 무송현성을 타격했던 김일성부대의 무송현성전투 유적지를 취재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가 바로 잘루목이었다.

리송덕 역사가의 연구에 따르면 1936년 8월 김일성항일무장부대와 중국반일부대 연합군 1800여명은 장백지역으로 진출을 위한 교두보 확보 차원에서 일제의 장백지역 중요 거점도시인 무송현성을 공격하였는데 중국 반일부대병사들이 아편을 빨지 못해 행군 속도를 내지 못해 늦게 도착했고 또 일부 중국 반일부대는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공격 포기 퇴각하는 바람에 연합군이 성시에 진입했다가 오히려 포위에 빠져 매우 위급한 상황에 처했었다고 한다.

오직 출로는 동산의 작은 오솔길 잘루목을 누가 차지하느냐에 달려있었다. 영민한 일제 관동군 지휘관들도 잘루목을 먼저 차지하여 막아버리면 조-중 항일연합군을 그대로 완전 포위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교전 중 일부 역량을 잘루목을 차지하기 위해 급파했다.

그 잘루목에는 김정숙, 김확실 등 여대원 7-8명이 아침식사 준비를 위해 남아있었다고 한다.
그 여대원들이 비상 상황을 파악하고 김일성사령관에게 목숨으로 기어이 잘루목을 사수하겠다는 의지를 알려왔고 실제 잘루목으로 접근하는 일제 관동군을 향해 기관총 몰사격을 퍼부으며 기어이 잘루목을 사수해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잘루목을 통해 포위를 뚫고 나온 조-중연합군이 먼저 잘루목 능선에 올라 역포위진을 칠 수 있었고 짙은 안개 속에서 추격하던 일제 관동군은 좁디 좁은 잘루목 깊숙이 추격해 들어왔다가 그대로 전멸하고 말았다.
특히 사람들의 목을 칼로 내리쳐 학살하는 시참을 일삼아 악명을 떨쳤던 다카하시 부대가 여지없이 맨 선두에서 거의 전멸의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위 사진의 좁은 오솔길 언덕길이 바로 잘루목이다.
실제 걸어 올라가보면 오르면 오를수록 경사가 급해지고 마주오는 두 사람이 비켜가기도 어려울 정도로 좁은 길인데다가 양쪽 산기슭은 거의 경사가 70-80도가 넘어 쉽게 옆으로 피하기도 힘든 지형이었으며 바위 등 엄페물도 거의 없어 포위 공격을 받으면 퇴각도 못하고 그자리에서 모조리 황천행 특급열차를 타지 않을 수 없는 지형이었다.

나라를 망치는 일은 약속을 어기는 일이며 나라를 지키는 일은 결국 자기가 맡은 작은 초소라 할지라도 끝까지 지키는 것임을 잘루목의 역사가 똑똑히 일깨워주고 있다.


2014년 새해를 맞이하는 자주민보 기자들도 잘루목을 지키던 항일선혈들의 그 마음으로 위기에 빠진 민주주의를 구하고 평화적 통일과 민족의 자주권 회복을 위해 묵묵히 또 한 해 앞만 보고 뚜벅뚜벅 걸어갈 결심이다.


애독자들과 국민들, 특히 나라일을 책임지고 있는 공무원들도 중요한 지자체 선거가 있는 2014년 새해 한반도 전쟁위기와 경제위기 그리고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자기 초소에서 책임을 다하는 2014년을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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