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문화 가꿔가기8] 남의 쇳물, 북의 쇳물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6/10/23 [11:11]  최종편집: ⓒ 자주시보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무슨 작품이 눈길을 끌려면 제목부터 좀 특별한 게 좋다. 얼마 전에 필자는 우연히 “그 쇳물 쓰지 마라”라는 시를 알게 되었다. 이거 좀 특이하네? 찾아보니 가슴 아픈 사연이 깃든 작품이었다.


2010년 9월 충청남도 당진의 어느 철강업체에서 일하던 20대 노동자가 작업 도중 용광로에 빠져 숨졌는데, 시가 5만 원 미만의 안전펜스만 하나 설치됐더라도 막을 수 있었던 사고였다. 뉴스가 보도되면서 숱한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고, “제페토”라는 필명을 쓰는 네티즌이 고인을 애도하는 인터넷에 올렸으니 그 제목이 “그 쇳물 쓰지 마라”였다는 것이다.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는데, 그때 주의를 돌리지 못했던 필자는 요즘에야 시를 보고 감동되었다.

 

 

그 쇳물 쓰지 마라

 

광염(狂焰)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 말 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 적 얼굴 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주게.

 

가끔 엄마 찾아와
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보자, 하게.

 

워낙 고인의 죽음을 알리는 기사의 댓글로 붙인 이 시에 수 백 개의 댓글이 달렸고, 지금까지 이어지는데, 최근 제페토가 쓴 댓글 시를 묶은 시집 《그 쇳물 쓰지 마라》(수오서재 펴냄)가 나왔단다. 그가 쓴 댓글 시 120여 편 가운데 80여 편, 그가 따로 블로그에 쓴 시 47편을 한데 묶은 책이라는 것이다. 인터넷매체 프레시안이 수오서재와 함께 11월 4일 오후 7시 홍대 레드빅스페이스에서 《그 쇳물 쓰지 마라》 낭독회를 열기로 예정했다 한다.

 

시집을 아직 보지 못했으나, “그 쇳물 쓰지 마라” 1수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낭독회에는 “울어도 되는 낭독회”라는 특별한 이름이 붙여졌다. 근년에 수십 명 지어 수백 명이 다치고 숨지는 대형참사가 하도 자주 일어나는 판이라, 6년 전 노동자 1명의 죽음이 상대적으로 사소해보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산재로 목숨을 잃는 노동자가 평균 1일 5명이라니까 1년이면 1800여 명,  만만한 숫자가 아니다. 연상 자체가 좀 죄송스럽다만 한국이 무척 자랑하는 숫자- 1년에 한국에 입국하는 “탈북자”가 2천여 명과 비교된다.

 

사람이 용광로에 들어갔거나 들여보내졌다는 이야기는 옛날 여러 민족 전설에 나온다. 이상적인 쇳물이 나오지 않아서 기술자의 아내나 딸이 용광로에 몸을 던지니 훌륭한 쇳물이 나와 명품을 만들게 됐다는 형식이다. 신라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에밀레종 전설도 종교의 탈을 썼을 뿐 같은 부류 이야기에 속한다. 현대의 어떤 사람들은 인체의 미량원소가 첨가되어 좋은 쇳물이 생겨났다고 해석했던데, 정말 그런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한편 현대 일본에서는 한 사람이 원수를 용광로에 처넣어 죽였는데 금이빨이 녹지 않아 금속(주석이던가?) 주전자에 끼이는 바람에 완벽한 듯한 살인이 결국 들통난다는 추리소설이 나왔다.

 

당진에서 노동자가 빠져 죽은 그 용광로의 쇳물을 폐기했는지는 보도를 보지 못해 알지 못한다. 남에서는 용광로로 1회 끓여낸 쇳물을 어떤 단위로 계산하는지 모르는데, 북에서는 “차지”라는 표현을 쓴다고 기억된다. 한 차지 두 차지 식으로 부르는 것이다. “차지 당 출강량”이라는 말도 있다.

 

요즈음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서로 험한 말들을 내쏟고 있는데, 남에서 대통령이 국민 앞에 나와서 북 최고지도자의 정신상태와 북의 붕괴사태를 언급하는 등에 반해, 북에서는 단체와 주민들의 반영 형식으로 맞불질한다. “박근혜” 뒤에 남에서 인용하기 거북해할 단어들을 붙이면서, 각자의 직업에 맞추어 분노를 표출하는 게 특징이다. 농장원은 두엄더미를 얘기하고, 돼지목장 노동자는 도살장을 말하며, 의사는 쓰레기통을 거든다. 그중에서도 특이한 건 10월 17일 조선(북한)의 대외사이트 “우리민족끼리”가 발표한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 직장장 강철석의 글에서 쓴 표현이었다.

 

“만일 내 앞에 있다면 쇠장대로 ****을 꿰찔러 펄펄 끓는 용광로 안에 처넣고  말겠다.
오늘 자강력제일주의로 승승장구하는 우리 공화국의 쇳물이 얼마나 세차게 부글부글 끓고
있는지 ***이 뒈지는 순간에 제 눈깔로 똑똑히 보게 하겠다.”

 

미워하는 대상을 용광로에 넣겠다는 표현은 강철석의 발명이 아니다.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가 강선제강소로 불리던 시절 1956년 8월 큰 사건을 터뜨린 종파분자들에 대해서 제강소의 노동자들 즉 강철석의 선배들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김일성 주석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총서 “불멸의 역사” 장편소설 《인간의 노래》에서 지배인 리웅천의 생각과 말로 2번 나온다.

 

 

▲ 북 장편소설 '인간의 노래'     © 자주시보, 중국시민

 

“아, 종파놈들. 그놈들을 분괴압연기에 밀어넣고 뼈와 가죽도 남지 않게 해치웠으면! 그런데 그 종파놈들이 더러는 외국으로 달아나고 남아있는 놈들도 아직 《뽀베다》를 타고 다닌다고 한다. ***수령님께 말씀드려 그놈들을 여기 강선에 보내달라고 해야 하겠다. 분괴압연기나 전기로에 처넣겠다고…”(49쪽)

 

《그자들을 왜 가만 놔둡니까?》 리웅천이 얼굴이 뻘개지며 흥분했다. 《우리 제강소에 보내십시오. 전기로에 처넣던가 분괴압연기로 밀어버리겠습니다. 이것은 우리 로동계급의 심정입니다.》(115쪽)

 
《뽀베다》란 러시아어로 “승리”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그 이름이 붙여진 소련제 승용차를 가리킨다. 몇 해 전에 “포페다”던가 큰 경제프로젝트가 한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언급되었다고 기억되는데 같은 단어의 한국식 표기였을 것이다.

 

1956년 당시는 “8월 종파사건” 후 소련의 미꼬얀과 중국의 펑더화이(팽덕회)가 조선을 방문하여 종파분자로 찍힌 사람들이 한동안 높은 지위와 처우를 유지했다 한다. 나중에는 하나둘 다 떨어져나갔고 최후를 어떻게 마쳤느냐에 대해서도 이견이 분분하다. 헌데 강선제강소의 전기용광로에 넣었다는 설은 본 적 없다. 소설의 묘사는 당시 노동자들의 발언에 기초한 일종 심정토로라고 보는 게 맞겠다. 실제로 1957년 강선제강소는 공칭능력 6만 톤인 분괴압연기로 12만 톤의 강재를 밀어내느라고 엄청 바빴고 용광로들도 분초를 다투었다니까 무슨 딴 노릇을 할 짬이 있었겠는가.

 

남에서는 한때 대통령이 “강철은 국력이다”는 글을 썼다는데, 북에서 그런 말은 나오지 않았으나 전쟁을 통해 철, 강부족의 위험성을 통감했으므로 나라를 받치는 기둥을 만드는 철과 강의 어머니격인 쇳물에 아주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20세기 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발기로 수십 부 촬영된 다부작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에서 제일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게 노동계급편이다. 25~32부, 42~44부로서 11부나 된다.

 

고향이 이남이나 포로교환 때 기어이 북으로 가서 “귀환병”으로 불리던 진응산(원형은 진응원이니 한때 직장장이라 강철석의 선배이다)과 경력이 각이한 사람들이 강선제강소에서 모이고 부딪치면서 차차 한 가정을 이뤄가면서 하나로 뭉치는 게 골자다. 형식상 진응산의 아들이 쓴 장편실화소설에 따라 이야기가 전개된다. 

 

북의 문예작품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종자론에 따라 종자를 굉장히 중시하는바,  《민족과 운명- 노동계급편》의 종자는 44부의 마지막 부분에서 울리는 설화(나레이션)라고 볼 수 있겠다.

 

《쇠물집인간들의 운명과 더불어 긴 려행을 함께 하여 준 독자 여러 분, 그 어떤 파철이든지 전기로에 들어가면 하나의 붉은 쇠물 외에 다르게 될 수 없다는 쇠물철학을 종자로 하여 쓴 나의 장편실화소설 <쇠물과 인간>을 나는 여기에서 전부 마감 지으면서…》

 

경력이 복잡한 사람들이 한 집안 식솔로 된다는 이야기를 통해 나온 게 영화의 주제가 《장군님 식솔》이요, 영화가 상영된 다음 조선의 숱한 가정들에 “장군님 식솔”이라는 족자가 걸렸음이 사진자료와 영상자료들을 통해 알려졌다. 몇 해 전 “미녀간첩”으로 불렸던 원정화란 “탈북자”의 간첩증거 가운데 하나가 종잇장에 휘갈겨 쓴 이 노래 가사여서 필자가 증거 치고는 빈약하다는 뜻으로 짧은 글을 쓴 적 있다.

 

어떤 파철이든지 용광로에 들어가면 붉은 쇳물로 되고 만다는 게 북에서 말하는 “쇳물철학”인데, 파철이 아닌 무엇을 넣으면 그저 타버리거나 불순물로 남지 않을까? 암만 따져봐도 누구를 용광로에 처넣겠다는 건 격분을 토로하는 형식이라고 판단된다. 그런데 이런 표현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나타나지 않을까?

 

언젠가 어느 탈북자가 조선에서 쇳물을 사람 입에 넣어서 죽인다고 말했다가 반론에 밀려 망신했었다. 공개적으로 증언하다나니 반론들이 나왔는데, 요즘 신설되었다는 북한인권기록센터에 누군가 가서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에서 사람을 용광로에 넣어서 죽였노라고 증언하면 검증을 거칠 사이도 없이 기록될 가능성이 있다.

 

조선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사태를 낱낱이 기록함으로써 압박을 가하는 게 북한인권기록센터의 설립취지라던가. 아직까지 그 운영상황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는데, 미르재단이나 K-스포츠 재단처럼 설립부터 해체결정까지 가만가만 처리되는 방식으로 움직이면 어떻게 되겠는가? 통일과는 거리가 먼 거짓말기록센터로 되기 십상이다. 적어도 어떤 검증체계를 갖춰야 하겠는데, 비리의혹들이 난무하나 제대로 밝혀진 게 없는 한국의 현황에 비춰볼 때 전망이 밝지 않다. 

 

정부차원에서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때에는 민간차원에서 헛소리를 믿지 않는 슬기를 발휘하는 게 바람직하겠다. 필자가 북에서 쇳물이 갖는 의의를 좀이나마 소개하는 것도 그걸 바라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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