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선과 미국의 정치개입
정설교 화백
기사입력: 2017/01/06 [00:54]  최종편집: ⓒ 자주시보

 

▲이승만과 김구는 동지였다.     ©정설교 화백
▲  건국의 주인공은 미국의 명을 받은 이승만과 친일파였다.   ©정설교 화백

▲ 분단고착 이승만은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허락받기 위해 미국을 방문하였다.

단독정부를 환영하는 김구, 김규식,지청천

김구는 후에 단독정부에 반대한다고 했으나

처음부터 이승만과 김구의 정치행적은 같았으며

친일 반북대결 서북청년단 안두희와도 친분이 있었다.

 © 정설교 화백

 

▲  1946.6.5  단독정부 성명발표 이승만   

출처- 서울신문  © 정설교 화백


"8.15
이후 유례없이 조성된 혁명적 정세에서 민족주의 세력이 마주하게 되는 적대세력은 <> 제국주의였다. 즉 우리민족에게 체제 간 모순이란<민족사 전개에 주요한 조건을 규정했지만> 외생적인 문제일 뿐이며 민족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는 자주적 민족국가 건설을 가로막는 제국주의 세력과 민족주체로서의 민중<노동자 농민>의 한판 승부가 있을 따름이다. 따라서 이 시기 사회적 갈등의 중요한 전선은 제국주의 세력과 민족주의 세력 사이에 형성된다." 박형준 논문 < 계급연구의 동향과 쟁점에서>

 

1987년은 한국에서 권력재편기였다. 부정선거로 경찰과 군부를 내몰아 종신대통령을 꿈꾸던 반공독재 이승만, 군부를 주무르며 유신독재로 대통령 선거인단에 의한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던 체육관 대통령을 끝내고 민주화운동으로 대통령은 5년 단임제가 되었다. 정부수반인 대통령의 교체는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대통령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출에 의하여 전두환과 노태우 군부세력은 민정당으로 대통령을 이어 가려고 했지만 그것은 국민 어느 누구에게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따라서 당시 전두환, 노태우도  개헌의 필요성을 인정하게 되었던 것이다.

 

미국은 당시 한국의 상황을 이렇게 진단했다. 정권의 평화적 교체가 이루어질 것이나 김대중 씨는 한국의 군부의 반대로 대통령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야당은 비교적 온건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김대중을 옹호하는 강경노선을 선호하고 있으며 성장일로에 온건세력을 소외시키는 급진적인 학생운동과 선을 긋는 데는  실패했다." <출처- 미 하원 외교위원회 아시아 태평양 담당 위원장 쏠라즈씨>

 

미국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4강체제의 안정과 88 올림픽 성공적인 개최 한반도가 분단체재로 더욱 안정화 되는 것을 원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군사작전권을 가진 미국이 5.18에 군부를 움직였고  광주학살를 자행한  전두환 노태우를 지지하며 남한에서 반미운동이 대중화하는 것을 예방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분단체재가 전재된 가운데 남북한 간의 대화정립, 한국에서의 점차적인 정권교체를 미국이 희망하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미국은 한국의 정치권력과 체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고 정부와 대통령은 바뀔 수 있지만 정치권력은 기존 지배세력 곧 군부와 민정당< 친일친미 기득권 세력 >에서부터 벗어나는 걸 원치 않았다. 미국은 사실상 반통일, 반민족적인 새누리당의 전신인 민정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의  영구집권을 보장하는 것이 자국의 이익이라 생각한 것이다.

 

대통령 직선제인 6.29 선언은 미국이 주도한 가운데 이루어 졌다. 6.29는 권력재편 정부교체에 불과했다. 직선제가 노동자농민 한국의 민주화를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국민대중의 관심은 오로지 직선제냐 아니냐 였다. 4.19,  10.26,  6.29는 한국에서 국민들 삶에  도움이 되지 못했고 모두 실질적으로 미국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한국에서 민주화운동의 진전이 이루어지고 국내정부가 국민적 지지를 잃고 허둥대고 있을 때 미국은 정권교체를 기꺼이 동의할 뿐만 아니라 능동적인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민주화의 힘은 결집된 국민대중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고 이번에 한국의 최순실 게이트도  비정규 실업에 내몰리며 극도의 궁핍한 삶을 이어가는 노동자농민은 정경유착의 박근혜정권에 분노할 수 밖에 없었고  박근혜 지지률은 바닥이었다. 또한  개성공단 폐쇄로 북미대화도 위기에 처하여 남북대결이 가중되고  전쟁직전에 까지 다다르자  미국이 박근혜정권을 일방적으로 버렸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광화문의 100만 분노의 촛불은 정권교체를 가져올 것이지만 실질적인  친일척결, 재벌개혁, 언론개혁, 교육개혁, 검찰개혁 등 한국의 민주화는  대선 뒤에 도사린 미국의 검은 실체를 노동대중이 볼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우리겨레가  한반도 분단의 책임자로 민족주의 세력을 제거하고 친일친미 반민족 주의자들을 요직에 발탁한  미국의 실체를 알고 있어야  정치개혁을 할 수 있으며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정착하여 8000만의 소원 조국통일도 이루어 낼 것이다. 

 

참고서적- 미군정과 분단국가 형성

               역대정권에 대한 미국의 정치적 개입

               '부시행차'와 우리들의 쓸개 <1989년 최일남 한겨레 칼럼>


트위터 페이스북
 
광고
 
개한미gook 인들은 김구의 실체를 모르지요 고양이 17/01/06 [16:35] 수정 삭제
  김구가 조선반도에 입국한후 제일먼저 한일은 김일성 암살이었지요. 이른바 친일경제인의 자금으로 말입니다. 안두희의 김구저격은 김재규의 박정희 저격과 비슷한 측면도 있고요. 박정희와 김재규가 상하 관계였듯이, 김구와 안두희도 상하관계였지요.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