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산지석] 한밤중에 중국 난징에서 북 사람들이 뛰어다닌 이유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7/01/07 [04:27]  최종편집: ⓒ 자주시보

 
굵직굵직한 대사건들은 대체로 우선 공식보도가 나온 뒤에 차차 내막이나 뒷이야기들이 알려지게 된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인상적인 첫 대사건이 1976년 1월 8일 저우언라이(주은래)총리의 서거였다. 라디오와 신문으로 소식을 접했을 때에는 뭔가 뭔지 잘 모르는 어린이였는데 뒷날 저우언라이라는 거인의 위대함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 관련자료들을 엄청 많이 모았다. 지난 해 “변절의 추학”이라는 시리즈물을 시작한 것도 뿌리를 캐보면 저우언라이의 경력과 비화들을 모으다나니 바이씬, 꾸순장, 장궈타오 같은 추물들과 비교가 되면서 생각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중국의 인민출판사는 1978년 2월에 세계 각국 정부와 정당, 단체 및 개인들이 저우언라이 총리를 추모한 자료들을 모아 497쪽 짜리 두터운 책 《举世悼念周恩来总理》을 냈는데 첫 편이 3쪽에 실린 조선노동당 중앙과 조선정부가 1976년 1월에 지은 연합결정이고 67~71쪽에는 《노동신문》과 《민주조선》이 애도를 표시하는 사론들을 실었다.

 

물론 당년 조선(북한) 당과 정부의 인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자료들이기는 하지만, 정작 필자를 놀라게 한 건 그런 틀에 박힌 딱딱한 표현이 아니라 1976년 1월 당시 평양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전해 4월에 김일성 주석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마오쩌둥 주석은 김일성 주석이 눈이 나빠졌다는 말을 듣고 자신의 백내장수술을 담당했던 탕유즈(唐由之, 당유지) 등 수술경험이 풍부한 의사들을 평양에 보냈다. 중국의사들이 정밀검사와 연구를 거쳐 수술하기로 예정한 날이 1월 초였다. 그런데 저우언라이 총리 서거소식이 전해지니 김일성 주석은 수술을 미루기로 결정했다. 수술한 뒤에는 한동안 눈물을 흘리지 말아야 하는데, 저우 총리가 서거했으니 내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이 비화를 필자는 우선 탕유즈의 회억에서 중국어로 보고 후에 조선의 수령 일화에서 우리글판본을 보았는데 우리 글로 쓴 내용이 주는 감동이 훨씬 약했다. 사건자체는 그럭저럭 기술했으나 표현이 메마르고 감정색채가 약화되어서였다는 인상이 남아있다. 당사자의 회억이란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스레 느끼게 한 열독경력이었다.

 

결국 수술은 썩 뒤에 진행되었다는데, 그 전에 김일성 주석이 어떻게 눈물을 흘리면서 저우언라이를 추억, 추모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바가 없다. 허나 15년 뒤에 김일성 주석이 저우언라이와 관련하여 어떻게 처사했는지에 대해서는 요즘 새 자료를 보고 알게 되었다.

 

1991년 가을의 중국방문은 김일성 주석의 마지막 중국방문이어서 각별히 중요시되는데, 당시 중국과 조선의 신문과 방송들이 많은 보도를 하였기에 베이징(북경), 타이산(태산), 지난(제남), 취푸(곡부), 난징(남경), 양저우(양주) 등 고장들에서 어떤 활동들이 진행되었느냐는 청년시절의 필자가 익히 안 바이다. 1940년대 중반에 저우언라이가 중국공산당 대표단 단장으로서 중국국민당의 통치중심인 난징에서 거주했던 메이위안신춘(梅园新村, 매원신촌)을 방문한 김일성 주석이 저우언라이 총리 동상에 화환을 진정했다는 소식을 접할 때에는 당연한 일이라고 심상하게 대했었다.

 

헌데 20여 년 뒤에 알고 보니 그건 계획 밖의 행동이었다. 중국 외교부에서 의전(중국어로는 리삔礼宾-예빈이라 하고 의전관과 맞먹는 개념이 리삔관礼宾官-예빈관)을 맡았던 우더광(吴德广, 오덕광, 1938~)이라는 사람의 글모음집 《예빈관 배후의 외교풍운(礼宾官背后的外交风云 스촨인민출판사, 2016년 2월 초판 1쇄, 286쪽)》210~211쪽에 나오는 이야기다. 원문을 그대로 인용한 다음 옮기겠다.

 

“国宾访华是否向人民英雄纪念碑献花圈视国宾意愿而定。除首都外,国宾前往省市访问,如有伟人铜像或塑像的地方,也可献花圈表示敬意。例如,金日成主席连夜向周恩来总理铜像献花圈一事,作为礼宾官的我难于忘怀。1991年10月金日成主席生前最后一次访华。除北京外,还访问了济南、南京和扬州。抵达南京的当日下午,金主席瞻仰了原中共代表团办事处旧址——梅园。在南京,欢迎宴会后朝鲜同志找到外交部礼宾司司长江康,说金主席刚才发了脾气,狠狠批评了他们。金主席下午看到梅园有周恩来总理铜像,他本人应当向周恩来总理铜像敬献花圈,但他事先不知道,先遣组也没有向他报告。金主席让他们立即准备花圈,当晚由朝方主要陪同人员代表他向周恩来总理铜像献花圈。
礼宾司司长江康带着他们马上找到江苏省外办工作人员,工作人员答允立刻办,协助他们找花店。当时已经晚上9时多,大多花店已经关门,几经查找,幸好有一家没关门。朝鲜同志喜出望外,与花店联系上了,购买了花圈。近午夜时分,金主席实现了向周恩来总理铜像补献花圈的心愿。此事见证了金主席对周恩来总理的深厚感情。”

 

“국빈이 중국을 방문하면서 인민영웅기념비에 화환을 진정하느냐 마느냐는 국빈의 의사에 따라 결정한다. 수도를 내놓고 국빈이 지방을 방문할 때에 위인의 동상이나 조각상이 있는 고장에서도 화환을 진정하여 경의를 표시할 수 있다. 예컨대 김일성 주석이 깊은 밤에 저우언라이 총리 동상에 화환을 진정한 일은 예빈관으로서의 내가 잊을 수 없는 바이다. 1991년 10월에 김일성 주석이 생전 최후로 중국을 방문했는데 베이징을 내놓고 지난, 난징과 양저우를 방문했다. 난징에 도착한 그날 오후, 김일성 주석은 중공대표단 판사처가 자리잡았던 메이위안을 참관했다. 난징에서 환영연회가 끝난 다음 조선동지들이 외교부 예빈사 사장 쟝캉(江康)을 찾아서 방금 김주석이 화를 내면서 그들을 호되게 비판했다고 말했다. 김주석은 오후에 메이위안에 저우언라이 총리의 동상이 있는 걸 보고 본인이 응당 저우언라이 총리 동상에 화환을 진정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사전에 동상의 존재를 몰랐고 선발조도 그에게 보고하지 않았던 것이다. 김주석은 그들에게 즉시 화환을 준비하여 그날 밤으로 조선 측의 주요 수행인원이 자신을 대표하여 저우언라이 총리 동상에 화환을 진정하라고 지시했다.
예빈사 사장 쟝캉은 즉시 그들을 데리고 쟝수성 외사판공청의 사무일꾼들을 찾았다. 일꾼들은 즉시 해결하겠다고 대답하고 그들을 협조하여 꽃상점을 찾아다녔다. 당시 이미 저녁 9시가 넘어 대다수 꽃상점들이 문을 닫았다. 이리저리 찾은 끝에 다행히도 문을 닫지 않은 꽃상점이 하나 있었다. 조선동지들은 너무 기뻐 상점과 연계하여 화환을 샀다. 자정이 거의 되었을 때 김주석은 저우언라이 총리 동상에 화환을 진정하는 의식을 보충하는 소원을 실현했다. 이 일은 저우언라이 총리에 대한 김주석의 깊고 두터운 감정을 증명한다.”

 

그러고 보면 워낙 중국 측에서 화환진정을 요구하거나 제의하지 않았고, 조선의 선발대도 동상을 무심히 대했는데, 김일성 주석은 심각한 결례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지난 해 말에 우더광의 책을 본 다음 김일성 주석 방문자료들을 찾아보니, 김일성 주석은 10월 10일에 난징에 도착했다가 11일 저녁에 쟝저민(강택민) 중국공산당 총서기의 고향인 양저우에 도착했다. 1박 2일이었다. 4일에 베이징에서 쟝저민 총서기와 만나고 회담했는데, 쟝 총서기가 특별히 난징에 와서 다시 만나 조선노동당 창건 46돌을 축하하였고 김일성 주석과 함께 난징에서의 활동들을 함께 마친 다음 자신의 고향으로 안내하여 참관했던 것이다. 여러 해 뒤에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양저우를 방문하였으니 김일성 주석의 방문과 갈라놓을 수 없다.

 

오전에 축하와 담화를 진행한 뒤, 오후에 메이위안신춘 기념관을 참관했으며 저녁에는 는데 쟝수성의 당위원회와 정부가 당시 최고급인 금릉반점에서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다. 김일성 주석과 쟝저민 총서기는 만찬이 끝난 다음 금릉반점 최고층에 올라가 난징야경을 부감했다.

 

▲ 김일성 주석(오른쪽)이 1991년 10월 생애 마지막 중국 방문에서 당시 장쩌민 당시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환영을 받고 있다.

 

이 연회가 끝난 뒤에 오후 9시가 넘어서야 조선사람들이 중국 외교부 예빈사 사장을 찾아서 김일성 주석의 의향을 전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김일성 주석은 메이위안신춘에서 동상을 보고도 화환을 진정하지 못해 굉장히 불쾌해났으나, 방문록에 저우언라이에게 경의를 쓰고 기념관이 드리는 선물을 받고, 연회에 참가하고 쟝 총서기와 함께 야경을 부감하기까지 여러 시간 동안 전혀 내색을 내지 않았다. 사진과 영화에 나오지만 줄곧 웃는 모습이었으니 아마 수행원들도 모든 일이 다 순조롭게 잘 돼간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다가 급작스레 벼락이 떨어지니 얼마나 혼났겠는가. 그나마 자정을 넘기지 않고 꽃을 진정한 게 다행이었으리라.

 

자료사진을 보면 우더광의 회억에 약간 하자가 있음이 알린다. 우더광은 화환이라고 표현했는데 실제는 꽃바구니였다. 추모에 사용되는 화환을 얻기 어려워서 일단 꽃상점에서 꽃바구니를 구입했다는 게 알린다. 화환에 부착한 띠에는 “주은래 동지를 추모하여, 김일성”이라는 글이 씌어졌는데, 그 자료사진과 기록영화만 보면 김일성 주석이 메이위안신춘 방문에서 꽃바구니를 진정했다고 알기 쉬운데, 사실 그렇지 않음은 위에서 소개한 바이다. 그리고 또 그 사진과 기록영화를 통해, 한밤중에 조선의 의전담당만이 아니라 촬영사를 비롯한 사람들도 움직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중국 측도 조선의 수행인원들도 심상하게 대했으나 김일성 주석만이 남다른 결정을 짓는 바람에 조선 사람들은 물론 중국 외교부, 쟝수성 외사판공청의 여러 사람들이 깊은 밤에 이리 뛰고 저리 뛰게 되었고, 낮에만 개방하는 메이위안신춘기념관도 한밤중에 다시 문을 열게 되었으니 거기서도 잠을 설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들볶인 사람들이 불만을 가졌을까? 아마 우더광처럼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우더광처럼 글로 쓰지 않더라도 식구들이나 동료들에게 이야기할 가능성이 높고 그런 이야기들은 상당한 영향력을 갖기 마련이다.

 

중국과 조선의 관계를 제대로 알려면 이러루한 일화들도 알아야 된다는 게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중국의 사이트들에는 조선의 지도자들을 뚱보 따위로 표현하는 글들이 떠돌고, 한국에서도 그런 현상을 중국의 민심근거로 삼는 언론인이나 연구자들이 제법 있지만, 유치한 글들이나 주장들은 실질적인 영향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우더광처럼 중국의 당과 정부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후배들에게 모종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거야말로 상식이 아니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필자는 이후에도 한국에서 보기 드문 소재들을 가끔 소개할 생각이다. 무턱대고 달려들어서 누구를 찬양한다는 식으로 매도하는 사람들이 헛수고를 하지 말기를 바란다고 미리 얘기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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