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일화]9.북한군의 전차병무력건설역사를 더듬어 보다 [8]
해금강
기사입력: 2017/06/14 [04:59]  최종편집: ⓒ 자주시보


1980년대 말에 이르러 북한의 내부에서 일련의 부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추구하고 소련과 동구권이 붕괴되면서 북한의 고립이 가속화되어 북한의 과학기술과 경제, 국방공업은 일정한 타격을 받는다. 설상가상 내부적으로는 무식한 간부들의 전횡과 관료가 우심해지고, 거의 400억불 이상의 거액의 자금을 연이어 날리는 엄청난 정책적 오류들을 범하여 경제가 질식직전에 이른다. 게다가 동구권이 붕괴된 후 전 세계 공산주의자들이 평양을 진정한 사회주의로 여기자 미국과 서방이 북한을 압살하기 위해 벌인 비열한 제재와 압박은 최고에 달했다. 그야말로 북한은 생사기로에 처했다.

 

북한은 이런 상황에서 1990년대를 맞이한다. 전후 거의 40년 이상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 행복만을 누려온 북한사람들은 자기들 앞에 어떤 엄청난 불행이 기다리는지 거의나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병진노선을 채택한 1960년대 초부터 이상한 기미를 보이던 북한 경제와 사회생활전반은 1990년대에 들어와 끝내 더는 수습하기 어려운 상황에 도달한다. 북한이 단행한 '고난의 행군'이 바로 이러한 사회경제적 난제를 자체의 힘으로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옛말에 복 속에서 복을 모른다는 말이 있고 어려울 때 진심이 드러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이 1990년대 이후 북한의 상황에 너무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인들이 이 말의 참 뜻을 새기기 바란다.

 

북한군의 전력, 전차병무력건설을 취급하는 이 연재에서 이런 글로 시작하는 것은 군사도 정치와 사회의 한 부분인 것만큼 당시 북한이 처한 사회경제적 형편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실지로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하는 1990년대부터 2010년까지 기간에 북한군의 전력은 한국군과 다른 나라 군대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처지는 추이를 보였고 더욱이 전차병무력건설도 가장 어려운 고비를 겪었다.

 


8. 피눈물의 언덕에서 찾은 교훈

 

1992년 4월 북한은 두 가지 행사를 준비한다. 하나는 대규모 열병식이고 다른 하나는 인공위성발사이다. 그런데 김일성 주석이 위성발사는 시기적으로 아무런 의의도 없다고 하면서 보류시킨다. 훗날 이 위성은 김일성 주석의 서거 후 강행된 '고난의 행군'을 치른 다음 1998년 8월에 발사된다. 이에 대해서는 이 글이 미사일이나 위성관련이 아니므로 더 이상 전개하지 않는다.

 

▲ 천마-1976 전차(땅크)     ©자주시보

 

▲ 천마-92 전차는 바퀴 보호판과 용접식포탑, 발연탄발사기, 반응장갑, 레이저거리측정기 등이 장착되었다.      © 자주시보

 

1992년 4월에 벌인 열병식에서 사람들의 의문을 자아낸 것은 105전차사단이다. (참고: 1980년대 말 북한군은 820훈련소에서 105전차여단을 분리시켜 원래의 105전차사단을 복귀시킨다.) 그날 105전차사단은 누가 보아도 1980년대의 2세대 천마-1976전차와 구별되는 새로운 전차를 몰고 등장했다. 외형적으로 천마-1976전차보다 크고 무한궤도지지바퀴에 스커트가 씌워졌으며 포탑의 모양도 둥글지 않고 각진 형태였다. 첫 순간에 T-72를 연상시키는 이 전차에 대해 북한은 전혀 일언반구하지 않았으며 지어 관용TV에서도 방영을 금지시켰다. 이것이 바로 1991년 쿠웨이트사막에서 몰래 반입한 T-72를 모방하여 만든 천마-92전차이다. 그러나 천마-92는 시범적으로 105전차사단의 한개 여단에만 장비되는 것으로 끝난다.

 

이 전차의 등장으로 전 세계는 북한이 3세대 전차의 개발 장비에 착수했다는 것을 알게 되며 많은 관심 속에 주시한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거의 5년나마 북한의 열병식은 도보종대만 등장하고 중무기들이 등장하지 않아 서방과 한국의 비평가들 속에서는 별의별 추정과 억측이 난무해진다.

 

▲  2013년 7월 27일에 진행된 전승절 경축 군사행진에 등장한 조선인민군 핵배낭부대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전시에 조선인민군은 비무장지대콘크리트장벽을 미사일이나 포탄으로 파괴할 수 없으므로, 핵배낭으로 폭파하게 된다. 이런 부대의 열병식이 1995년 당창건 50돌 기념열병식에서도 있었다고 한다. 다만 방사능 마크만 없었다고 한다. ©자주민보

 

1990년대 북한이 거행한 열병식들에 대해 말이 난 김에 몇 가지 공개할 내용이 있다.
우선 1995년 10월 10일 열병식에서 북한이 첫 핵무기를 선보였다고 하면 모두 깜짝 놀랄 것이다. 지금 일부 사람들은 북한이 2012년 4월 열병식부터 핵 마크가 그려진 핵배낭부대를 등장시킨 것을 놓고 큰일이나 난 것처럼 떠들고 있다. 그러나 이 핵배낭부대는 사실 1995년 10월 10일에 처음 공개된 것이다. 원래 북한은 이 핵배낭부대를 1992년과 1993년 열병식 때 공개하려다가 이러저러한 대외적 문제 때문에 취소했다. 김일성 주석이 서거한 다음해에 벌인 북한군 열병식 때 당시 총참모장이었던 최광이 김정일 위원장을 설복함으로써 드디어 처음으로 공개됐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핵마크가 없는 배낭을 메고 나갔기 때문에 전문가가 아닌 일반 사람들은 무심히 대했을 것이다. 만일 이에 대하여 잘 이해 안 되면 1996년에 개봉된 북한영화 '번개와 우뢰'를 보면 가늠이 갈 것이다. 그 후에도 북한군 열병식 때마다 이 핵배낭부대가 여러 번 등장했다.

 

다음으로 북한이 170mm자주평사포(주체포)를 개발한 근본 이유도 전술핵무기 때문이다. 북한군은 1980년대 중엽에 새로 제정한 신규 야전규정에서 연대 이상 급에서 화학무기를, 군단 이상 급에서 전술핵무기를 적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군단 이상 급에서 전술핵무기를 적용하는 기본 수단이 바로 주체포인 것이다.

 

이쯤 되면 북한의 핵무기개발실태와 북한군의 실제 전력에 대하여 독자들이 스스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에서 3세대 전차로 처음 개발한 천마-92전차를 더는 생산하지 않고 다른 부대들에 장비시키지 않은 구체적 이유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천마-92가 북한이 3세대 전차의 기준으로 내세운 다음의 지표들을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 미국 에이브람스 M1 탱크와 러시아 T-72 탱크의 크기 비교 

 

- 40t급의 전차무게
지금까지 68형전차와 천마호전차의 무게는 32~38t정도로서 서방의 주력전차보다 훨씬 가볍다. 과거에 서방은 주력전차의 표준무게를 40t급으로 정했다가 전차무게의 증가를 이기지 못해 끝내 60t급으로 다시 규정했다. 이러한 사례는 M-1과 K-1, K-2흑표, '챌린저'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60t급 주력전차는 사실 북한의 실정에 도저히 맞지 않고 경제적으로도 비효율적이다. 기껏해야 도시와 고속도로에서나 쓸 수 있을 것이다. 이미 60t급 대전차에서 쓰디 쓴 교훈이 있는 북한으로서는 40t급 주력전차를 선택하는 것도 심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영국 챌린저전차에 처음 적용된 다중복합장갑, 초밤장갑(오른쪽)     ©

 

- 다중복합장갑
북한은 그동안 이론적으로만 쵸밤(초밤장갑-영국 초범시에 있는 연구소에서 만든 중층복합장갑)장갑과 반응장갑을 연구했지만 실물을 보지 못했다. T-72는 소련식 복합장갑을 장착했는데 북한의 수준으로서는 이 복합장갑을 연구하면 쵸밤장갑과 반응장갑은 파악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러기에 훗날 개발된 북한식 3세대 전차들의 장갑은 T-72의 복합장갑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영국의 최신 '챌린저'전차의 쵸밤장갑과 비교해야 한다.

 

- 유압식 운행제어시스템
68형전차나 천마호전차는 지레대식 운행제어시스템을 활용한다. 북한의 기계기술에서 취약한 측면의 하나가 바로 유압기술인데 그동안 외국에서 수입하여 제한된 범위에서 운용했다. 신형전차의 기동성을 높이고 안정성을 보장하려면 당연히 유압식 운행제어시스템을 개발도입하여야 한다.

 

- 고출력고속디젤엔진
이에 대해서는 이전의 연재에서 설명되었으므로 그만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즉 북한이 3세대 전차개발과정에 한 가지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3세대 전차들은 모두 첨단전자기술에 기반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2세대 전차까지는 손으로 공작기계를 돌리면서 목측과 손기능, 경험으로 적당히 만들 수 있었지만 3세대 전차는 반드시 로봇이나 컴퓨터제어기술로 만들어야 하였고 전차의 내부장비도 모두 컴퓨터제어식이어야 하였다. 전차뿐만 아니라 다른 신형무기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때부터 북한은 더 큰 난관에 부닥친다. 1993년 3월 미사일발사와 뒤이은 핵위기를 기화로 그전까지 첨단기술을 수입하던 나라들과의 과학기술교류가 완전히 차단된다. 게다가 1980년대 말부터 경제가 질식직전에 이른 상태에서 설상가상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자연재해까지 겹쳐 사회경제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의 상태에 직면한다. 오죽하면 그때까지의 체면을 다 던져버리고 국제사회에 인도주의 지원을 요청했겠는가? 그것뿐이 아니다. 그때까지 북한을 영도해 온 김일성 주석이 1994년 7월 8일에 뜻밖에 서거한 것은 북한의 사회정치상황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끝내 북한은 1995년 초부터 '고난의 행군'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로 하여 북한의 국방공업도 위기에 처한다. 이 영향으로 3세대 전차개발도 1990년대 중엽부터 침체상태에 빠진다. 이에 대해서는 당시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인 김정일 위원장이 자강도를 지도하는 여러 동영상들에서 나오는 어수선한 북한 군수공장들의 상황을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되어 이 지경이 되었는가 하며 가슴을 쥐어뜯으며 피눈물을 흘리던 그때의 상황을 북한 사람들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 cnc 자동화를 다그쳐가는 공장을 현지지도하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자주민보
▲ 북의 희천련하기계의 CNC공작기계 제작소는 축구장 5배 크기로 지열 설비를 이용해 온도를 최적화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주시보

 

수백만의 국민이 굶주리고 에너지와 원료부족으로 북한 경제가 파탄직전에 이르렀을 때 김정일 위원장은 독특한 선군정치로 북한의 정치상황을 유지하는 한편 부닥친 경제난과 민생난을 돌파하는 기본 고리가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짧은 기간에 자체의 첨단과학기술을 개발하는데 있다고 보고 운명적인 '도박'을 한다. 즉 얼마 안 남은 북한의 모든 밑천을 몽땅 첨단기술개발에 투입하는 것이다. 이것을 북한말로는 'CNC기술개발'이라고 하는데 필자의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표현이 좀 부족한 감이 난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가장 표현력이 풍부한 언어로도 그 정도밖에 표현 안 된다니 정말 서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북의 입장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의 이 역사적 공적을 좀 더 진실하게 서술할 단어가 없음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도박'이 결국 성공하여 1990년대 말에 이르러 북한은 가장 어려운 고비를 극복하며 특히 국방공업이 짧은 기간 내에 일정한 첨단수준에 올라선다. 특히 컴퓨터와 로봇을 비롯한 첨단정보기술이 놀라울 정도로 상당히 발전한다.
아직 전반적인 북한의 사회경제상황은 펴지지 않았지만 국방공업을 활성화하고 완전한 북한식 첨단기술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데는 별 무리가 없다고 판단한 김정일 위원장은 1990년대 말에 이르러 거의 5년 나마 침체상태에 있던 첨단무기들의 개발을 다시 활성화할 것을 지시한다. 그리하여 이때부터 북한은 경제난과 생활난을 뒤로 미루고 국방의 현대화사업에 강행돌입하며 3세대 전차개발도 다시 자기 궤도에 올라선다.

 

▲ 천마-98전차, 천마-92와 큰 차이가 없다. 레이저거리측정기, 발연탄발사기의 모습이 좀 다르다.     © 자주시보

 

피눈물의 언덕을 넘으며 간고하게 개발하고 마련한 CNC기계들과 로봇, 컴퓨터들이 도입되면서 북한의 3세대 전차개발에서는 변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새로운 3세대 전차인 천마-98이 개발되어 105전차사단의 한개 여단에 시범장비되었다.


천마-92로부터 천마-98을 개발하는 과정에 북한은 3세대 전차의 디자인기준을 전차무게 40t급, 3중 정면장갑 (방어력 1,000mm), 디젤엔진출력 1,200HP, 125mm활강포(사거리 4km), 유압식자동운행제어시스템, 자동화된 사격제어시스템, 자동장탄시스템으로 정한다. 이미 68형 전차와 2세대 천마호전차들에 도입되었던 다른 장비들과 기술들에 대한 소개는 생략한다.

 

▲ 천마-216전차, 발연탄발사기 모습이 새로워졌고 대공미사일 화승총과 2연장 대전차미사일(열압력로켓)이 장착되어 있다.     © 자주시보

 

드디어 2000년대 초에 천마-216전차가 개발된다. 이것은 시범개발로 이어진 3세대 천마호전차계열의 마지막 기종이다.
천마-216전차에서 특징적인 것은 3중장갑이다. 이것은 고성능일반장갑우에 특수쵸밤(초밤)장갑을 덧대고 그 위에 반응장갑을 추가부착가능하게 만든 북한식의 장갑이다. 전차무게를 줄이기 위해 쵸밤장갑과 반응장갑은 정면방향의 하단부와 포탑에만 덧댄다. 아마 이에 대해서는 최근의 북한열병식에 등장하는 전차들의 장갑구조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옆면과 뒷면은 고성능일반장갑이다. 장갑방어력의 관점에서 정면은 거의 1,000mm의 표준장갑에 비교할 정도로 매우 우수하지만 측면과 뒷면의 방어력은 그리 좋지 못하다. 그러나 북한의 지형상 반전차미사일이 거의 대부분 정면으로만 몰입하게 되었으므로 이렇게 한 것이다.

 

천마-216이 개발된 후 북한은 이것을 105전차사단에 우선 공급하고 점차 다른 부대들에도 공급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105전차사단에서 한개 여단에만 시범장비되는 것으로 끝난다.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된 천마호계열의 3세대 전차개발은 어려운 고비를 넘으면서 여러 번 개발도입시험을 거듭하다가 최종적으로는 대량생산, 실전배치에는 이르지 못하고 105전차사단의 몇 개 여단들에만 시범장비되는 것으로써 2000년대 초에 막을 내린다.

 

▲ 북의 천마계열전차와 선군호전차, 앞에서부터 천마-98, 천마-214, 천마-215, 천마-216 마지막이 선군-915전차     © 자주시보, 한호석소장

 

이처럼 북한이 1990년대에 개발하여 105전차사단에만 시범적으로 장비한 신형전차들은 5종(천마-92, 천마-98, 천마-214, 천마-215, 천마-216)이다. 2000년대에 들어와 거의 해마다 벌여 진 북한군의 열병식에서 신형전차의 형태가 매번 바뀌고 105전차사단을 제외한 다른 전차부대들에는 도입되지 못한 현실의 의미를 이제는 독자들도 어지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서방과 한국의 사람들은 똑똑히 알아야 한다. 북한말로 '고난의 행군'시기에 최악의 경제난과 생활난 속에서 피눈물을 삼키며 세계최정상전차를 개발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친 북한의 국방부문 사람들은 북한 입장에서는 역사에 길이 남을 영웅들이다. 높은 정신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을 해 낸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3세대 최첨단 전차는 여전히 부족점을 드러내고 있었다.

 

과연 3세대 전차를 개발하려는 북한의 노력은 이렇게 시범개발장비로 끝나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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