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그림] 3. 인민군대를 그린 북녘 그림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7/07/20 [16:19]  최종편집: ⓒ 자주시보

[필자 주: 최근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북의 화가들이 그린 그림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통일의 초석이 될 남북의 동질감 회복과 동포애 함양을 위해 소재별로 연재합니다.]

 

▲ 북녘 그림, [유화] 전우의 깃발     © 자주시보, 해금강

 

다소 상투적인 내용의 인민군 전투를 형상화한 그림인데 쓰러진 전우의 깃발을 대신 움켜 쥐고 돌격하는 인민군 전사의 표정과 불끈 총을 쥔 팔뚝 등 세부묘사가 생동하여 상투성을 충분히 덮을만 하다. 따바리를 보니 한국전쟁 때로 보인다.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과 미군의 무장장비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미군 탱크를 저지하기 위해 그 흔한 대전차포도 없어 방망이 슈류탄을 들고 육탄전을 벌이지 않을 수 없었음에도 미군이 북을 점령하지 못한 것은 저런 인민군의 무비의 용맹과 포탄을 머리에 이고 날라다준 북녘의 키 작은 아주머니 등 주민들의 단결력 때문이었다고 미군에서도 평가하고 있다.

지금 인민군대는 미군 못지 않은 현대적 무장장비로 중무장하고 있다. 다시 전쟁이 발발한다면 미군의 피해도 한국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심대한 것으로 전망된다.

 

 

▲ 북녘 그림, [유화] 전사들     © 자주시보, 해금강

 

한국 전쟁 당시 따바리를 들고 전투 휴식을 취하는 인민군 전사가 하모니카를 불고 있다. 인민군대는 포탄 장약통 등을 잘라 별별 악기를 만들어 화선연주회를 여는 등 시종일관 낙천적 웃음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공포에 떠는 병사와 낙천적 웃음을 터트리는 전사의 전투력은 비교 불가임은 너무나 명백한 일이다.

 

 

▲ 북녘 그림, [유화] 중대취사원아바이     © 자주시보, 해금강

 

북 영화, '월미도'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그림이다. 한국전 당시 나이든 사람들도 전장에 탄원하여 취사원을 하며 목숨걸고 인민군 전사들을 도왔다고 한다. 당연히 희생도 많았다.

 

 

▲북녘 그림  [유화] 전투를 앞두고     © 자주시보

 

미군 기관총을 메고 있는 것을 보니 적후에 침투하여 목표물을 소멸하는 전투작전계획을 논의하는 회의 같다. 미리 짜 놓은 작전계획을 알려주면서 할 수 있겠는지 묻는 지휘관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뒤에는 길 안내를 위해 대기 중인지, 지원물자를 가지고 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주민들이 회의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 북녘 그림 [유화] 꼬마항공감시원     © 자주시보, 해금강

 

한국전쟁 당시 소학교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그대로 그림으로 옮긴 것 같다. 교실 안에서 카메라를 신기한 듯 내다보는 개구쟁이가 귀엽다. 꼬마항공감시원은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이다. 자신도 한 몫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굳게 틀어쥔 혁대의 손에서 느껴진다. 한국 전쟁 때 너무나 많은 이런 귀여운 아이들이 남과 북 전역에서 미군기의 폭격에 희생되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 다시는...

 

 

▲ 북녘 그림 [유화] 폭풍전야     © 자주시보, 해금강

 

북녘 영화 '종군기자의 수기'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한국전쟁 다이 북에게 가장 약했던 장비가 군함이었다. 이상하게 중국이나 소련에서도 작은 어뢰정조차 거의 지원해주지 않았다. 전쟁 초기 인민군들이 소형 어뢰정으로 미 중순양함 볼티모어호 등을 격침시키자 놀란 미국이 중국과 소련에게 강력히 요청한 것 때문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당시엔 중국도 소련도 미국이 자국까지 공격하는 일에 대해서는 무척 두려워했던 것 같다. 어쨌든 최근 밝혀진 정보에 따르면 중국도 러시아도 미군에게 치명적인 장비 이를테면 휴대용 대전차포와 같은 무기마저 북에 지원해주지 않았다는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다.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군사장비를 왜 자체로 개발하기 위해 이를 악물었는지 짐작케 하는 배경들이다.

하여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대가 미 해군의 진입을 막는 길은 바다의 지뢰인 기뢰 설치 밖에 없었다. 그 기뢰를 설치하기 위해 폭풍이 몰아쳐도 쪽배를 타고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북의 영화나 전쟁기록을 보면 그 기뢰 설치 과정에 적지 않은 끌끌한 인민군 해군 전사들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북이 한국전 이후 잠수함과 어뢰 및 대함미사일 개발에 그렇게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도 모른다. 

 

 

▲ 북녘 그림 [유화] 최후돌격을 앞두고     © 자주시보, 해금강

 

고지에서 방어전을 치르다 때가 되면 인민군대는 돌격 앞으로를 외치며 참호에서 뛰어나와 육박전으로 올라오는 미군을 소멸하는 전투를 자주 조직했다. 고지 등 목표물을 공격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은밀한 배밀이 기동으로 철조망을 뚫고 목표물에 접근한 후 벼락처럼 기관총과 슈류탄 등으로 공격을 퍼 부은 후 칼을 총에 꽂고 돌격앞으로 구령에 따라 상대 목표 진지로 내달려가 육박전으로 최종 소멸하였다.

그 돌격 신호를 기다리며 총구에 칼을 꽂으며 각오 다지는 인민군 전사의 표정을 생동하게 그려낸 그림이다. 

이미 전투 과정에 얼굴과 온 몸은 피투성이가 되었고 얼굴엔 땀이 비오듯 흐른다. 미처 아물지 않은 상처에서 흘러나온 핏방울이 땀과 섞여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민군 전사의 표정과 눈빛에는 그런 상처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오직 침략자 미제국주의자를 기어이 쓸어버리겠다"는(한국과 미국에서는 북이 남침했다고 주장하고 북은 한국 전쟁을 미국이 북한 전 지역을 점령하고 더 나아가서는 중장기적으로는 만주와 우랄산맥 동쪽 시베리아까지 차지하려는 미국의 전략적 목표에 의해 일으킨 전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불굴의 의지만 빛나고 있다.

그렇다고 인상 쓰는 과장도 없다. 어찌보면 덤덤함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약간의 눈물기 어린 눈빛에서 누군가의 복수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부모형제가 전쟁 중에 희생되었건 전우가 희생되었건 소중한 사람을 빼앗긴 분노가 어린 표정이다. 그래서인지 더욱 단호한 의지가 느껴져 보고만 있어서 소름이 돋는 그림이다.

 

▲ 북녘 그림, [유화] 351고지전투, 1953년 6월 2일에 벌여 진 고성근방의 351고지전투를 형상한 유화. 김일성 최고사령관의 명령대로 15분동안 고지를 점령한 인민군 군인들의 투쟁모습을 형상화 함     © 자주시보, 해금강

 

15분 안에 점령해야 승리할 수 있다는 김일성 주석의 명령에 따라 진행된 351고지점령 전투를 형상화한 그림, 여러 전투 장면을 한 화폭에 집중 배치하여 한 눈에 당시 육박전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한 그림이다.

덩치가 크고 힘이 쎈 미군이 육박전에 강할 것 같지만 인민군대의 육박전이 훨씬 위력적이었다고 한다. 육박전의 생명은 용감성이다. 특히 인민군대 총에 꼿는 칼은 매우 길었다. 거기다가 체구가 작은 인민군대의 움직임이 훨씬 빨랐기 때문에 그런 긴 날창을 꼿고 용맹스럽게 총을 휘두르는 인민군대에게 미군들이 수없이 당했던 것 같다. 북 인민군대는 고향을 지킨다는 절박감이 있었지만 미군에게는 그런 절박감이 있을리 없기에 용감성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이천 참전용사 묘역에 안장된 필자의 아버지의 증언에 따르면 미군은 낮은 포복도 잘 하지 않았다. 구부정 자세로 진격하다가 인민군 총에 퍽퍽 쓰러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인민군대는 땅에 딱 붙어 은밀히 바로 앞까지 침입하여 불의에 공격을 가했으며 마지막 육박전에서도 날쌘 인민군대에게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당하는 경우가 흔했다고 말했다.

이 육박전 때문에 공격 전투에 동원된 아버지 전우들과 미군들은 매번 거의 대부분 살아돌아오지 못했다고 했다. 거의 전멸을 당한 것이다. 총포탄으로는 전멸시키기가 매우 힘들다. 아버지의 증언에 따르면 이상하게 전장에서는 바로 앞에 있는 적에게 총을 쏘아도 잘 맞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 손이 떨려서 명중율이 퍽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총격전은 아무리 해도 거의 전멸은 없는데 육박전에서는 거의 전멸을 당하기 일쑤라는 것이다. 그런 치열한 전투가 휴전 직전에는 거의 매일 벌어졌다고 한다. 아버지도 다음날 그런 공격조에 차출 되었는데 그날 밤 휴전이 체결되었다고 말했다. 

 

 

▲ [유화] 승리의 봄     ©자주시보

 

북은 한국전쟁을 미군의 침략을 막아낸 승리한 전투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미군 폭격으로 평양과 원산, 함흥 등 전 도시는 폐허로 변했다. 그런 승리도 쉽게 얻어낸 것이 아니라 수많은 주민들과 끌끌한 청년들의 희생으로 얻어낸 것이다. 

 

 

▲ 북녘 그림, 제목 모름     © 자주시보, 해금강

 

우리들도 어렸을 때 '전우'라는 드라마를 보며 나시찬 배우를 영웅으로 따르며 참 전쟁놀이를 많이 했다. 북은 지금 아이들도 그런 전쟁 놀이를 하며 자라고 있나보다.

 

 

▲ 북녘 그림, [유화] 등대와 함께     © 자주시보, 해금강

 

북은 어디나 군대식이 많은 나라다. 그 인기많은 모란봉악단도 거수경례를 붙이는 것을 보니 인민군 소속으로 들어간 모양이다. 등대지기도 계급장이 달린 관복을 입고 있다. 등대를 자신의 평생초소로 여기고 지켜온 긍지와 감회가 표정에 잘 어려있다.

 

 

▲ 북녘 그림, [유화] 우리 중대 덕수터에서     © 자주시보, 해금강

 

인민군대를 모든 사업의 모범으로 전면에 내세운 선군정치를 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참 많은 군부대 현지지도를 이어갔다. 가장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힘들게 한 것 중에 하나가 더위였다고 한다. 그래서 인민군대가 더위에 고생하지 않도록 덕수터를 잘 가꾸어놓은 모 중대의 소행을 높이 평가하고 전 군으로 일반화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덕수터란 군부대 상류 계곡물을 목욕하기 좋은 장소로 돌려 물을 폭포처럼 떨어지게 한 야외시설이다. 그 지시을 집행하기 위해 한 부대에서는 계곡이 없어 고심고심하다가 샘물을 파서라도 물을 흐르게 하여 덕수터를 만들기도 했다는 북의 영화가 소개된 바 있다.

 

 

▲ 북녘 그림, [유화] 단숨에     © 자주시보, 해금강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군부대 현지지도의 핵심 특징은 '백두산 훈련열풍'이다. 멋이나 부리는 훈련이 아니라 실제 명중탄을 날리고 맡겨진 임무를 언제 어디서건 능숙하게 수행할 수 실전능력 중심의 훈련열풍을 강조해오고 있다.

 

 

▲ 북녘 그림, [유화] 가을날에     © 자주시보, 해금강

 

황금들판을 지나 표적판을 들고 사격훈련을 가는 인민군대의 모습을 형상화한 그림이다. 황금들판도 강한 군대가 있어야 지킬 수 있다는 주제의식을 담은 그림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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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음악]백두산총대는 대답하리라(youtube 에서 본 음악) 자민통 17/07/20 [21:18] 수정 삭제
  백두의 눈보라에 서리발 섯고
전화의 불길속에 다져진 총대
사나운 폭풍에도 흔들림 없이
백두산총대는 대답하리라
누구도 내 조국은 다칠수 없다

조국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철벽의 방선우에 서있는 총대
그 누가 이 땅에 불질한다면
백두산총대는 대답하리라
이 행성 어데 있건 용서가 없다.

령장의 손탁에 굳게 쥐여져
조국의 강성부흥 펼치는 총대
그 누가 내 나라를 없애려 하면
백두산총대는 대답하리라
조선이 없다면 지구도 없다.

아 백두산총대 대답하리라
인민군은 사회주의 독립군이 조직한 군대 항국만쇠 17/07/21 [13:35] 수정 삭제
  항국군은 점령십자군 미군이(독일계 유대인, 하우스만) 황군잔당으로 조직한 군대 그래서 민족문제연구소 자료에 의하면 군경의 70%이상이 민족반역자
그림들 너무 좋습니다 하.... 17/07/23 [15:17] 수정 삭제
  보고있노라니 왠지 눈물이 나올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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