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일침306] “사드 보복, 시진핑 물러나야 끝난다”? 꿈 깨!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7/08/02 [20:38]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박승준 전 중국 특파원     © 자주시보

 

살다 나면 어느 사람의 글이나 다른 형식의 작품들을 간만에 접하게 된다. 좋아하던 사람이던 싫어하던 사람이던 익숙한 이름과 우연히 마주치면 일단 반갑다. 내공이 쌓이고 안목이 높아지며 필력도 늘었으면 감탄하게 되고, 예전에 비해 별 변화가 없거나 심지어 퇴보했으면 그 세월을 어떻게 보냈느냐는 원망(?)이 나온다. 

 

1980년대 후반부터 어떤 한국인들이 중국에 무료로 보내주는 《조선일보》덕분에 우선 만화 “고바우 영감”과 “이규태 코너”를 알게 되었는데 한동안 지나 “박승준”이란 이름도 접하게 되었다. 그때 한국의 다른 매체들을 접하지 못해 단언하지 못한다만, 베이징에 특파원으로 파견된 한국언론인으로서는 아마 앞자리에 꼽힐 것이다. 인상은 별로였다. 서늘한 늦가을에 베이징의 호수에서 헤엄치는 사람들을 보고 놀랐다는 것마저 기사감이 되느냐고 웃은 기억이 난다. 중국에서는 헤이룽쟝성 하얼삔 시의 겨울헤엄 정도 돼야 기사거리이기 때문이었다. 

고바우 영감을 보면서 웃거나 이규태 코너를 읽으면서 감탄한 것과 달리 박승준 특파원이 중국이 이렇소 저렇소 하고 써낸 글들에는 필자와 주변 사람들이 “이건 아닌데...” 하고 고개를 저은 경우가 많았다. 

 

얼마 전 우연히 박승준이란 이름을 또 보게 되었다.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중국학술원 연구위원,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는데, 글 제목은 “사드 보복 시진핑 물러나야 끝난다”였다. 

근 30년 만에 다시 보게 되니 은근히 반가워 글을 읽어보다가 “이건 정말...”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동북공정을 시작했다는 리티에잉이라는 사람을 소개한 대목이었다. 

 

[동북공정이 진행되던 기간 중국 지식인들은 묘한 귀띔을 해주었다. “동북공정을 시작한 사회과학원 원장 리티에잉(李鐵映)이란 인물은 중국공산당 혁명 원로 리웨이한(李維漢)과 조선족 여성 김유영(金維映) 사이에 태어난 사람으로, 김유영은 원래 지하공작을 하던 덩샤오핑(鄧小平)의 내연의 처였으나, 중국공산당 최초의 해방구 루이진(瑞金)에서 공작을 하던 리웨이한과 덩샤오핑 사이의 연락업무를 담당하다가 리웨이한의 처가 된 사람이었다.” “조선족 여인의 혈육이었던 리티에잉은 실제로는 덩샤오핑의 아들로, 덩샤오핑 시대에 승승장구 출세를 하다가 사회과학원장의 자리에까지 올라 자신의 출생과 관련된 중국 동북지방의 역사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동북공정을 시작하게 됐다”는 설명이었다.]

 

400자 미만의 글에 오류가 너무 많았다. 

리티에잉은 덩샤오핑의 아들이 아니다. 

리티에잉의 어머니 진웨이잉(金維映)은 조선족이 아니다. 

진웨이잉은 덩샤오핑의 내연의 처도 아니다. 당년에 중국공산당원들이 국민당통치지역에서는 결혼등록을 할 수 없었지만 공산당통치지역과 공산당 조직내부에서는 결혼과 이혼의 수속절차가 분명했다. 

진웨이잉은 리웨이한과 덩샤우핑 사이의 연락업무를 담당하다가 리의 처가 된 게 아니다. 

근거들이 엉터리니 결론도 엉터리일 수밖에 없다. 

 

하기는 리티에잉이 1980년대 초중반 랴오닝성에서 선양시 시위서기, 랴오닝성 성위서기 등 직을 맡으면서 사업할 때 랴오닝성에서 그가 덩샤오핑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자자했고, 뒷날 중앙에 올라간 다음 특히 1989년 톈안먼 사태 전후에 중앙정치국 위원, 국무위원의 신분으로 자주 얼굴을 드러낼 때에는 전국적으로 그가 덩샤오핑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여러 지방의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담하다나면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많음이 알렸던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 시절 젊은 나이였지만 그런 설들을 내돌리는 사람들 앞에서 코웃음치곤 했다. 물론 상대가 어르신이라면 속으로 코웃음친 다음 그럴 수 없는 근거들을 제시했다. 

 

덩샤오핑이 상하이에서 첫 아내를 잃은 다음 당시 노동운동을 하던 진웨이잉과 함께 쟝시성의 루이진으로 대표되는 중앙소베트구역으로 들어갔는데 거기서 결혼해서 2년 쯤 보내다가 마오쩌둥 일파로 몰려서 비판받고 철직되었다. 당시 교조주의자들은 마오쩌둥을 까고 싶었으나 그의 성망이 하도 높았기 때문에 직접 공격하지 못하고 우선 지방에서 일하는 사람 몇을 과녁으로 삼았으니 중국공산당 혁명사에서 거들어지는 “덩(鄧), 마오(毛), 쎄(謝), 구(古) 사건”이다. 그때 비판과 타격에 앞장서 활약한 사람이 뤄마이(罗迈)라는 가명을 쓰던 리웨이한이었다. 상당히 잔혹한 당내투쟁에서 진웨이잉은 덩샤오핑과 이혼하고 한창 잘 나가던 뤄마이에게 시집갔다. 이 일은 미국기자 솔츠베리가 중국에 와서 숱한 노혁명가들을 취재하고 대장정코스를 답사한 다음 펴낸 책 《장정,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에 나온다.  중국에서도 굉장히 인기를 끈 책이다. 이혼이 1933년 5월의 일이라는데 리티에잉은 1936년 9월생이다. 리티에잉이 덩샤오핑의 아들로 되자면 어머니 배에서 2년 있어야 가능한데 그래 신화 속 인물 나타(哪吒)라는 말인가? 

 

필자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듣는 사람들이 “와~” 웃곤 했다. 나타가 엄마 배에서 3년 6개월 머무르다가 뒤늦게 태어났다는 건 중국인들이 잘 아는 전설이기 때문이다. 

진웨이잉이 리웨이한과 1934년에 결혼했다는 설이 맞더라도 리티에잉이 덩의 아들로 되려면 2년 너머 어머니 배에 있어야 한다. 말이 되는가? 게다가 그동안 진웨이잉은 1934년 10월~1935년 10월 2만5천리 대장정에 참가했다. 

 

1904년 저쟝성(浙江省) 저우산군도(舟山群岛)에서 태어난 진웨이잉의 경력은 상당히 분명하고 대장정에서는 끝까지 걸어간 중앙홍군의 30명 여투사 중의 하나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뒷날 소련에 병치료하러 갔다가 1941년 독일의 소련 침공으로 혼란하던 시기에 실종되었는데, 일설에는 어느 병원에서 독일군의 폭격에 사망했다 한다. 

 

▲ 리티에잉과 부모     © 자주시보, 중국시민

 

진웨이잉과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상당히 많았으나 그녀를 조선사람이라고 추억한 기록은 없다. 적어도 필자는 보지 못했다. 그리고 중국 조선족 역사학자들은 조선민족혁명투사들의 경력을 밝히는데 엄청 노력을 기울였는데, 진웨이잉은 그 어떤 조선민족투사 사료나 책들에서 나오지 않는다. 대장정을 진웨이잉과 같은 중대에서 마쳤고 뒷날 동북지구에서 활동했기에 동만(东满)일대(지금의 연변조선족자치주를 포함) 혁명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찾아가 만났던 웨이쓔잉(危秀英)은 말을 많이 했으나 진웨이잉이 조선사람이라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리티에잉의 어머니가 덩샤오핑의 전처였다 해서 리티에잉이 덩의 아들이라면 말이 되는가? 기어이 우기는 사람들은 누가 바람 썼다 따위 추측을 하겠다만, 당년 중국공산당의 풍기와는 거리가 멀다. 

 

1896년에 태어나 1984년에 서거한 리웨이한이 오랜 기간 통일전선, 민족사업, 종교사업을 맡았고 특히 1951년 5월 중앙인민정부 수석전권대표로서 《서장(티베트)평화해방협의(关于和平解放西藏办法的协议)》에 서명하는 등 민족문제를 많이 다뤄왔으니, 리티에엥이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민족문제에 나름 관심했다면 말이 된다. 

 

그러나 실증되지 못한 소문들을 근거로 논리를 전개하면 웃음거리로나 되기 마련이다. 인터넷 시대에 검색 몇 번만 해도 수두룩한 정보들을 보면서 진실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왜 그런 품을 좀 들이지 않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근 30년 지났으나 박승준 교수의 글솜씨나 안목이 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퇴행했다는 느낌이 들어 아쉬워하면서 글을 계속 읽다가 뿜고 말았다. 

 

[중국인들의 사드 배치 반대가 확산된 데는 다분히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 시진핑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 중국 지식인들의 말이다. 일반적으로 당과 국가의 전략적인 문제나 거시적인 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것이 관례였던 시진핑 당 총서기가 사드라는 특정 무기에 대한 반대 발언을 함으로써 사드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중국인들도 덩달아 사드 반대를 외치는 흐름을 형성하게 됐다는 것이다.

중국의 사드 반대는 과연 언제까지 가야 사라지거나 흐지부지될 수 있을까. 중국 지식인들의 예상은 “중국 정치의 현실상 시진핑 주석이 사드 반대를 철회하거나 더 이상 언급하지 않을 때까지 계속 확산될 것”이라는 진단이다. 이들의 말이 맞다면 중국의 사드 반대는 올해 말 5년의 재임 기간을 새로 시작하는 시진핑 당 총서기의 임기 시간표에 따를 수밖에 없다. 결국 시진핑의 임기가 끝나는 2022년 말 제20차 당 대회 무렵에 가서야 사드에 대한 반대가 중국에서 사라질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들이다.]

 

사드반대가 강력해진 게 시진핑 주석 때문인 건 맞다. 그러나 문맥상 나쁜 뉘앙스를 풍기는 “책임”이 큰 건 아니다. 또한 시진핑 주석이 반대하니까 “사드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중국인들도 덩달아 사드 반대를 외치는 흐름을 형성”하였다는 건 사드를 반대하는 수많은 중국인들에 대한 모욕이다. 필자는 지난해 사드가 중국과 러시아에 무해한데 중국과 러시아가 잘 몰라서 반대한다는 일부 한국인들의 주장이 중, 러 군사전문가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지적했었다. 사드의 사용목적과 성능에 대해 중국에서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지식들이 보급되었다. 어떤 군사전문가는 텔레비전프로에 나와 사드의 미사일방어기능은 제한되었으나(대량의 미사일을 막아낼 리 없으니까) 감시기능은 정말 강하고 중국으로서는 굉장히 귀찮다고 구체적으로 설명도 했었다. 사드의 기능상 한국으로 날아가는 조선(북한) 미사일들을 감시하거나 막아낼 수 없음은 신문과 잡지, 방송, 인터넷을 통해 널리 알려진 바이다. 사드반대를 외치는 사람들 가운데 사드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당연히 있을 테지만, 강력히 반대하는 사람들 치고 사드가 뭔지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미국이 미국을 지키기 위하여 배치하고 미군이 운영하는 감시체계 및 방어체계로서 글로벌 미사일방어체계의 일환으로서 중국 안방까지 훔쳐본다고. 

 

오히려 한국에서야말로 사드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사드찬성을 외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지 않은가. “북한의 미사일을 방어”하여 한국을 지켜주기 위해서 한국에 배치되는 무기라고 믿는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정객들의 선동에 따라 사드 찬성과 반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중국의 군인들, 군사전문가들이 사드를 대하는 태도는 분명하다. 첫째로 사드의 한국배치를 반대한다, 둘째로 결코 무서워하지 않는다. 유사시에 사드를 파괴할 타격수단들이 많기 때문에 그런 자신감을 갖는 바이고, 사드 배치의 진척정도에 따라 반격수단들을 선보이면서, 공군, 로케트군의 훌륭한 훈련목표로 삼을 것이다. 중국의 사드반대는 중국에 대한 사드의 위협자체와 미국의 대중국견제정책에 뿌리를 두기 때문에 지도자의 임기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 누군가 시진핑 주석의 임기가 끝나는 2022년 말에 사드반대가 사라지기를 바라다가는 반드시 실망한다고 필자는 단언한다. 중국 최고지도자가 바뀌더라도 반도 남반부에 사드가 존재하는 한 군대와 국가가 반대하지 않을 수 없고, 게다가 시진핑 주석이 연임할 가능성도 점쳐지는 상황이 아닌가. 시진핑 주석의 퇴임과 더불어 사드반대가 끝나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그때 가면 어쩌겠는가? 

 

물론 필자가 지적한 문제점들을 박승준 교수 본인이 만들어낸 건 아니다. 이른바 “중국 지식인들”에게서 주어들은 소리다. 허나 소문을 검증 없이 그대로 글에 써넣고 일부 사람들의 주장을 중국의 민의처럼 포장한 건 박승준 교수의 책임이다. 한 사람을 알려면 그 사람의 친구를 보라는 게 서방격언이던가? 박 교수가 30년 쯤 중국에서 쌓았을 인맥이 얼마나 넓은지는 알지 못한다만 그 질, 혹은 차원은 별로다.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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