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일침337] 북이 견지하는 “하나의 중국원칙”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7/09/29 [02:20]  최종편집: ⓒ 자주시보

 

▲ 2017, 제13차 평양가을철국제상품전람회     © 자주시보

 

제13차 평양가을철국제상품전람회가 9월 25일 3대혁명전시관에서 개막식을 한 다음 28일까지 진행되었다. 여러 나라의 지역의 250여 개 회사들이 참가했다 한다. 

 

10여 년 전 평양가을철국제상품전람회가 생겨날 때 필자가 제일 먼저 연상한 건 중국의 광저우(广州, 광주)교역회였다. 1957년 남방 광둥성(广东省)의 광저우시에서 시작해 해마다 봄과 가을에 한 번씩 열린 광저우교역회는 줄여서 “광쟈오후이(广交会, 광교회)”라고 불렸는데, 20여년 동안 중국의 거의 유일한 대외수출교역창구였다. 외국상인들이 몰려와서 중국제품들을 살펴보면서 주문했고, 중국의 숱한 공장과 회사들이 제품을 갖고 가서 수출을 시도했다. 어느 공장, 어느 회사의 제품이 광쟈오후이에서 금액 얼마 상당의 주문을 따냈다면 명성을 날리게 되었고 지방신문에 큰 성과로 실릴 지경이었으며, 광쟈오후이에 몇 차례 참가해서 몇 해째 연거푸 외국상인들의 주문을 따낸 게 공장과 회사의 자랑거리로서 선전자료들과 연혁사에 기입되었다. 

 

그 시절의 광쟈오후이는 미국을 우두머리로 하는 서방세력의 대중국봉쇄를 깨뜨리는데 기여했을뿐더러, 중국제조의 품질을 높이는 역할도 했다. 

2007년부터 수출만이 아니라 수출입으로 성격이 바뀌면서 이름도 중국진출구상품교역회(中国进出口商品交易会)로 변했으나, 사람들은 여전히 “광쟈오후이”라고 부른다. 

평양의 회의도 혹시 거기에 관련되는 중국인들은 “핑쟈오후이(平交会)”라고 부르지 않겠나 짐작해본다. 

 

이번 제13차 평양가을철국제상품전람회에 대해 조선중앙통신을 비롯한 조선(북한)매체들이 연일 보도를 했는데, 필자가 주목한 건 “여러 나라와 지역”이라는 표현이었다. 

 

“제13차 평양가을철국제상품전람회에 참가할 윁남,이딸리아,중국,중국 대북을 비롯한 여러 나라와 지역의 대표단들이 23일 평양에 도착하였다.”(9월 23일발 조선중앙통신 보도)

 

“개막식이 끝난 다음 참가자들은 조선과 수리아,중국,꾸바,이란,이딸리아,인도네시아,윁남,중국 대북을 비롯한 여러 나라와 지역의 회사들이 출품한 전시품들을 돌아보았다.”(9월 25일발 조선중앙통신 보도)

 

왜 굳이 “지역”을 밝히는가?  “중국 대북”을 제외하고는 모두 나라명칭이니까, 분명 타이완(台湾, 대만) 때문이다. 

지금까지 필자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중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을 제일 잘 지키는 게 조선이다. 체육경기보도에서도 “중화 대북” 혹은 “중국 대북” 식으로 표기한다. 

중국은 다른 나라와 수교할 때 반드시 세계에는 중국이 하나만 있고 타이완은 중국 영토의 일부분이라는 원칙에 찬성할 것을 요구하여 관철시킨다. 중국과 조선이 수교한 1949년 가을에는 타이완 문제가 불거지기 전이지만, 오랜 세월 친선관계를 맺어왔으므로 1950년대부터 조선은 타이완 문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전적으로 지지했다. 그에 상응하여 중국은 “두 개의 조선”을 반대하는 조선의 원칙에 거듭거듭 찬성과 지지를 보냈다. 1990년대 초반에 중국이 한국과 수교하면서 “두 개의 조선”반대원칙이 깨져버렸지만, 조선은 그렇다 해서 “하나의 중국”원칙을 버리지 않고 계속 견지해온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주인공으로 하는 총서 “불멸의 향도”가운데 어느 장편소설에서인지 기억이 분명치는 않은데, 이런 내용이 있다. 조선이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으로 굉장히 어려울 때 아시아 어느 지역의 방문자가 조선지도자와의 만남을 바라면서 함께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백만 달러던가 2백만 달러던가 아무튼 거금을 지불하겠다고 제의한다. 허나 김정일 위원장은 보고를 듣자 대번에 거절한다. 원칙을 갖고 흥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시아에서 조선이 나라로 인정하지 않는 건 이스라엘과 타이완, 홍콩 등 몇 개이다. 분석해보면 이스라엘과 홍콩은 당시 이해관계 때문에 그런 제의를 할 리 없으니, 타이완 사람의 제의였을 것이다. 사실 그즈음 리덩후이(李登辉, 리등휘) 치하의 타이완은 대륙을 약화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타이완의 경제계인사들도 조선과의 경협을 위해 노력했었다. 그에 대해서는 타이완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리던 왕융칭(王永庆, 왕영경, 1917~2008)이 회고한 바 있고, 필자가 언젠가 “타이완이 억센 사나이 조선과 스쳐지나간 사연”이던가 하는 제목의 기사를 번역하여 《자주민보》에 소개한 적 있다. 

 

평양가을철국제상품전람회가 예전부터 “중국 대북”이라고 표기했음에도 이번에도 참석한 타이완인들이 있다는 건 뭘 말해주는가? 돈이 되는 일이면 어디든지 찾아가는 게 경영인들의 속성임을 드러낸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어떤 회사들이 갔는지 모르지만, “중국 대북”이라는 표현을 보고 들은 사람들이 조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런 사람들이 귀국한 후 퍼진 소문을 통해 민간에서 끼칠 영향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조선과 반대로 다른 나라들에서는 타이완이나 홍콩을 나라로 표현하는 현상이 기수부지다. 이른바 “언론자유”를 구실로 삼아 언론사들이 타이완과 홍콩을 국가로 묘사하는 걸 금지할 수 없다는 게 정부당국의 해석이다. 물론 중국이 외국언론들의 표현에는 일일이 대응하지 않으나, 정부나 정치인들의 언행에는 무척 민감하고 대응하는 경우가 적잖다. 

 

타이완이나 홍콩을 나라로 등장하는 비율로 따지면 한국이 단연 첫 자리를 차지한다. 언론사들은 물론이요, 유력 정치인들도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중국은 언젠가 김영삼 전 대통령을 겨냥해 비꼰 등 대응회수는 많지 않으나, 중국의 처사방식에 비춰보면 정객들의 언행을 일일이 기록해두고 정치능력과 정치기준을 가늠해서 언젠가는 써먹을 것이다. 또한 민간인들도 한국신문과 방송을 접하면서 한국의 “2개 중국” 지어 “3개 중국”논조에 불만을 품지 않겠는가. 미군 사드의 한국배치에 대한 중국인들의 거센 반발이 결코 정부의 조종 때문만은 아님을 필자가 누누이 강조해왔는데, 한국을 방문했거나 한국에 체류했던 민간인들의 불쾌한 느낌도 사드반대와 한국비판열조에 한 몫 하게 마련이다. 

 

따져보면 중국에 조선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다시피 조선에도 중국을 싫어하고 원망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허나 높은 차원의 결정은 차원이 높은 사람들이 다방면의 이해관계와 원리원칙을 따지면서 내리게 되고, 누군가 내키는 대로 떠들고 행동하는 게 금지된다. 그게 정치다. 

만에 하나 어느 부문의 실무자가 “대만”이라고 썼다면 그거야말로 커다란 국제풍파를 일으키지 않겠는가! 

 

조선중앙통신의 25일발 보도는 원론적 내용을 담았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북한고사”를 목적으로 하는 대북제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 시점에서 다시 음미할 필요가 있겠다. 

 

“연설자들은 이번 전람회가 나라들사이의 친선과 협조를 도모하고 다방면적인 교류와 지역경제발전에 기여하는 좋은 계기로 될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들은 앞으로도 평등과 호혜의 원칙에서 여러 나라와 지역들과의 대외경제관계를 확대하면서 쌍무적 및 다무적협조를 계속 발전시켜나갈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이런 의지는 한 차례의 전람회 교역량이 얼마냐보다 훨씬 중요하다. 제재가 파탄난 경우가 제재가 굴복을 낳은 경우보다 많음은 역사가 증명해주었고, 또 증명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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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이 17/09/29 [10:28]
썩은 천민자본주의사회는 미래가 없다. 식상하는 얘기지만 돈만능주의의 인간들이 어찌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냐는 거다. 사람중심이어야 사람다움 삶이 되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안다. 중국이 아직 버티고 있는 건 그래도 모택동의 영향이 크다고 보여진다. 이미 중국도 황금만능의 혼돈의 사회로 진입했다고 보여진다.....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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