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일침346] 북 수산물에 대한 수요가 있는 한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7/10/13 [20:58]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중국 단둥에서 팔리고 있는 서해의 꽃게  


1990년대 초반 밀수로 중국에 들어온 한국물품의 1순위는 승용차였다. 한국에서는 서류상 홍콩 등지로 수출한다고 되었기에 정상적인 수출로 선적되었으나, 목적지까지 가지 않고 중도의 황해(서해) 상에서 차들을 중국 선박에 넘겨주었다 한다. 그런 밀수가 한동안 성행하다가 줄어들고 사라졌는데, 세관의 타격도 한 몫 했지만 그보다는 중국 국산차들의 수량이 늘어나면서 수요를 그럭저럭 만족시킨 게 중요한 원인이었다. 21세기에 들어와서는 중국 경내에서 생산되는 차들의 수량증가와 품질제고로 하여 자동차밀수를 들어보기 어렵게 됐다. 

 

한국산 자동차들이 밀수품목으로 되던 시절 중국산은 뭣이 밀수품목에 끼었을까? 일단 밝혀진 바로는 농산품이었다. 1990년대 초반에 《조선일보》가 중국산 참깨의 기상천외한 밀수방법을 보도했었다. 중국 산둥성(山东省, 산동성)의 배들이 한국 배들과 만나서 물품을 넘기는 게 아니라 어느 수역까지 와서 비닐로 포장한 참깨를 바다에 던지면 해류를 따라 어느 수역에 이르고 거기서 대기하던 한국 선박들이 건져서 한국으로 실어들였다는 것이었다. 

그 기사를 보고 필자의 외삼촌이 거 참 희한하다고 감탄할 때, 필자는 그게 수십 년 전 베트남전쟁에서 써먹었던 방식의 변종이라고 알려드렸다. 

 

베트남전쟁에서 북부 베트남의 군인과 민간인들이 중국과 소련이 지원한 방대한 물자들이 “호치민 루트”를 통해 남부베트남(그 시기 한국에서 이른바 “자유월남”이라고 부르던 곳)으로 들어간 건 잘 알려진 바이고, 라오스를 에도는 그 루트를 차단하기 위해 미군과 남베트남군이 별 짓을 다 해본 것도 숱한 자료들에 나와있으며, 그 루트가 끊어지지 않은 것 또한 전쟁의 결과가 말해주는 터이다. 헌데 그 육지루트로 물자를 나르려면 시일이 너무 오래 걸리고 도중소모도 엄청 나서, 남베트남에서 급히 수요하는 물자들을 제때에 제공하기 어려웠다. 하여 1960년대 중후반에 캄보디아를 통하는 해상루트도 개발, 운용되었었다. 

 

남부베트남에서 싸우는 유격대(한국인들에게는 “베트콩”으로 잘 알려진 존재)와 지하투쟁자들이 어떤 물자가 필요하다고 요구하면, 그 소식을 전달받은 중국은 즉시 물자를 조달하여 남방의 무역선에 실었다. 무역선은 동남아시아쪽으로 항행하다가 규정된 시간에 예정된 수역에 이르러 방수포장한 물자를 바다에 던졌다. 그러면 물자는 해류를 따라 캄보디아의 어느 해안포구로 흘러갔다. 포구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물자를 건져서 남부베트남으로 날라갔다. 해류의 변화를 정확히 계산한 기초에서 진행되는 행동이었다. 물론 물자들이 100% 전달되지는 못했다. 

 

당시 캄보디아의 시아누크 친왕은 중립을 표방했는데, 정부와 민간에 미국을 싫어하다나니 남부베트남으로 들어가는 물자들을 눈감아주는 사람들이 많았으므로 그런 밀수가 가능했고, 거꾸로 그걸 발견하고 불안을 느껴 밀고한 사람들도 나타나게 마련이었다. 

1970년에 미국이 캄보디아 군인들을 사촉하여 쿠데타를 일으켜 시아누크 친왕의 정권을 뒤엎은 배후에는 이런 “정치밀수”도 있었던 것이다. 

 

미국TV방송 CNN이 현지시간 11일에 지난 8월 유엔 안보리가 조선(북한) 수산물 수출을 전면 금지한다는 제재결의를 채택한 뒤에도 중국의 조선 접경(接境) 지역에선 꽃게 등 조선산 수산물을 여전히 팔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다.[자주민보 기사 “중국에 북 수산물 공공연히 팔려”(www.jajusibo.com/sub_read.html?uid=36056)를 참조]

 

지난 달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의 훈춘시에 찾아간 CNN은 조선산 꽃게들이 시장과 해산물 식당에서 팔리는 걸 확인했고, 어느 상인은 “북한산 꽃게를 담은 플라스틱 자루를 두만강에 띄워 이쪽으로 보내온다”며 구체적 밀수 방법까지 공개했다 한다. 

 

방송을 직접 보지 못해 발음을 듣지 못했는데, 플라스틱으로는 자루를 만들 수 없으니까 아마도 중국어 “쑤랴오따이(塑料袋)“의 오역이 아닐까 싶다. 중국어에서는 딱딱한 플라스틱과 말랑한 비닐을 몰밀어 ”쑤랴오(塑料)“라고 부르는 바, ”쑤랴오따이(塑料袋)“는 비닐주머니이다. 

그리고 이른바 구체적 방법은 사실 구체적이 되지 못했다. 바다의 어느 수역에서 해류가 어느 수역이나 어느 포구로 흘러간다는 걸 계산하여 바다에 물자를 던지는 건 얼마든지 이해가 되지만, 강물은 아래로 흐르기 마련이고 훈춘 일대의 두만강 하류수역은 꽤나 넓은데 플라스틱 자루를 두만강에 띄워서 어떻게 강을 넘는지 밝혀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단 훈춘에 꽃게들이 유통되는 건 엄연한 사실이라 강을 넘는 어떤 수가 있음은 분명하다. 

 

1960년대의 물자들은 특수한 원인으로 돈과 연결되지 않았으나, 1990년대의 깨나 2010년대의 수산물은 경제적 밀수라 대금지불과 수납이 중요하다. 1990년대에는 운반자들이 직접 만나지 않았으니 제3의 지점에서 쌍방의 실제 결정권자들이 현금으로 결제했거나 지정된 계좌로 송금하는 방식을 취했으리라 짐작된다. 2010년대에는 어떤 방식을 취하는지 전혀 가늠이 되지 않는다만, 정말 훈춘 어느 상인의 말대로 플라스틱 자루를 이용한다면 쌍방이 만나지 않고, 물량 인계인수율이 애매한 상황에서 얼마만한 물량의 얼마만한 대금을 주고받아야 할지 물음표가 많아진다. 허나 돈독한 신임관계가 없이는 그런 장사자체가 불가능하리라는 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중국산 농산물 밀수는 뒷날 정상적인 수출입경로가 생겨나면서 사라져버렸다. 조선산 수산물 밀수는 정상적인 수출입경로가 갑자기 막히면서 생겨났는데, 중국에 수요자들이 있고 거기에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들이 있는 한 정부의 단속으로 두절될 리 없다. 미국이 멕시코 와의 국경에서 이뤄지는 밀수를 근절하지 못하는 판에 중국 정부를 원망할 자격이 있겠는가! 허나 필자의 눈에는 조선산 수산물 밀수의 필요성이 사라지고 정상을 되찾을 날이 보인다. 《자주시보》 독자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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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싱싱한 해산물을 언제 많이 먹어보나? 모금 활동 17/10/14 [13:16] 수정 삭제
  중국의 해산물 업자들이 들고 일어나서 데모도 하고 미국을 빨리 치워 달라는 북한 지원 모금 행사도 벌이고 하면 다른 업자나 교회, 학교, 동창회, 동호회, 반상회, 연합회 등 단체들도 따라하고 그 붐이 세계적으로 일어나면 미국은 그대로 골로 가는 건데 그런 움직임이 없어 아쉽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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