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문화 가꿔가기17] 오해를 많이도 받았던 북의 “처녀어머니”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7/10/15 [10:52]  최종편집: ⓒ 자주시보

 

9월 22일에 《자주시보》가 발표한 “북 영화 '우리집 이야기' 원형 장정화 처녀의 티없는 사랑”(이창기 기자, www.jajusibo.com/sub_read.html?uid=35759) 영화이야기와 원형인물을 대비하면서 인간성에 중점을 둔 글이었다. 

제15차 평양국제영화축전에서 최고상을 받은 예술영화 《우리집 이야기》는 2016년 9월에 제작되었다고 기억되는데, 그보다 3개월 앞서 조선(북한)의 금성청년출판사가 중편실화 《처녀어머니》(류선학 지음, 총 183쪽, 사진)를 출판했다. 

 

▲ 처녀어머니 장정화의 사적을 담은 중편실화 《처녀어머니》     © 자주시보, 중국시민


금성청년출판사는 청소년 전문 출판사로서 소설, 실화, 그림책 등 다양한 책들을 내놓는다. 좀 특수한 경우로 총서 불멸의 역사에 속하는 장편소설들이나 항일빨치산 참가자들의 회상기들 가운데서 일부를 간추려 그림책으로 펴내기도 한다. 조선에서는 유치원 어린이가 당당한 청년에 자라나기까지 제일 쉽게 접하는 게 교과서를 내놓고는 아마 금성청년출판사의 책들일 테니, 조선사람치고 금성청년출판사의 책을 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는 출판사다. 

 

조선에서 어떤 모범인물이 나오면 우선 《노동신문》이 큼직한 보도기사를 내고 방송이 따라 소개하며 뒤이어 소설, 영화 등 문학예술형식으로 보다 전형적인 인간상이 퍼진다. 장정화를 다룬 소설은 아직 보지 못했는데, 중편실화와 예술영화가 단 몇 달 차이를 두고 나왔다는 건 작가와 출판사가 영화촬영소와는 달리 독자적인 방향으로 나아가 책을 만들었음을 시사해준다. 

 

《처녀어머니》의 차례는 다음과 같다. 

 

이야기에 앞서 

1. 18살학부형 

2. 지켜줄 수 없는 비밀 

3. 차려주지 못한 생일상 

4. 잃어버린 《화장품》 

5. 《난 엄마가 아니야》 

6. 무도회날에 있은 일 

7. 경종 

8. 우물에 들어간 룡범이 

9. 은정이는 어디로 갔는가

10. 마음 속에 그려본 어머니 

11. 여섯장의 비판서 

12. 8남매가 부른 노래 

13. 고귀한 호칭 

그후 이야기 

 

영화가 극성을 노린다면 실화는 인위적인 역전을 피해야 하므로 극성이 부족하고 볼 재미가 떨어지는 게 상례다. 《처녀어머니》도 대체로 시간순서대로 사실들을 두루 서술하다나니 감탄을 자아내는 내용이 없고 주인공도 놀라운 업적을 쌓지 못했다. 허나 바로 평범함 속에서 뭔가 감동을 준다. 

 

실화는 2013년 1월의 어느 날 밤 18살 난 처녀 장정화가 어머니 로춘복과 함께 천리마제강연합소에 현장지원을 갔다가 3명의 아이들을 만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남포시 천리마구역 사회급양관리소 노동자로 배치되어 일하는 장정화는 어머니와 함께 몇 해 동안 꾸준히 파철을 수집하여 제강소에 가져가는 한편, 빵과 콩우유 등을 강철직장 현장에 날라다가 노동자들에게 대접하는 현장지원을 시행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의 눈길이 초고전력전기로 쪽에서 멎는다. 이 초고전력전기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극찬한 성과로서 필자가 여러 해 전 “통일문화 만들어가며”에서 예술영화 《생명선》을 다루면서 소개한 바 있다. 

그 유명한 초고전력전기로 쪽에서 세 아이가 걸어오는데 둘은 넥타이를 맨 소년단원이고 얼핏 보아도 형제자매라는 게 알렸다. 노동자들이 그들에게 자기의 빵을 나눠주면서 법석댄다. 웬 아이들인가 의문을 가진 장정화는 이리저리 알아본 끝에 그들의 아버지가 강철직장노동자였는데 병으로 돌아갔고 동료였던 어머니마저도 현장에서 순직했음을 알게 된다. 하여 애들은 강철직장 아버지 어머니들을 다 아버지, 어머니로 간주하면서 쩍하면 직장에 나온다. 

가슴아파 고민하던 장정화는 아흐레 뒤 퇴근한 후 또 현장지원을 나갔다가 애들이 보이지 않기에 허전해난다. 어머니가 노동자들에게 물어보더니 딸에게 알려준다. 

 

“그애들 셋중에서 누가 좀 앓는다더라. 더우기 오늘은 새해 강철생산 때문에 우에서 일군들이 내려와서 현장에 내보내지 않았을거야.”(7쪽) 

 

애들이 제집 뜨락(마당)처럼 여기는 강철직장에서도 이따금 불편을 느낀다고 생각한 장정화는 문득 그애들을 집에 데려오면 어떨까는 생각이 들어 어머니에게 말을 꺼낸다. 노춘복은 어이없어 한다. 손아래 동생이 둘 있는데 은정이네 형제 셋을 더 데려오면 직장일도 숨차하는 네가 어떻게 뒷시중을 해내겠느냐고. 허나 장정화는 그애들을 친동생처럼 여기고 언니구실을 잘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장정화는 중학교동창생이며 딱친구여서 “쌍둥이”로 불리는 선향이는 자기를 이해해주려고 믿는데, 강선금속전문학교로 진학한 선향은 정화의 생각을 웃음거리로 간주한다. 

 

고민 끝에 장정화는 끝내 결심을 굳힌다. 워낙 그는 노춘복의 친딸이 아니었다. 노춘복이  10달 난 정화를 안아다가 남부럽지 않게 키워준 터였다. 이러한 특수한 관계와 사연이 부모없는 애들을 거두기로 하는 결정에 도움이 되었다.

 

일단 시작하니 판이 커져서 곧 애 넷이 더 늘어난다. 12살 난 룡범, 10살 미만의 경희와 은설, 그리고 두 살 잡이 자명이다. 18살 난 정화는 한 달 사이에 7명 어린이의 가장이 된다. 파철을 수집하여 애들과 같이 제강소에 날라가는 일은 그래도 쉽다. 그런데 학교에 가서 학부형노릇을 하기는 힘에 부친다. 그 많은 생일을 챙기기도 만만치 않다. 

 

그즈음 사회급양관리소의 청년동맹위원장 이창현이 장정화를 특류영예군인결혼식 축하공연에 참가시키려고 그녀가 새로 이사한 아파트에 갔다가 실정을 알게 된다. 저자는 이창현의 시선을 통해 독자들을 특정된 환경으로 끌어들인다. 방이 수라장인데 애들은 교과서나 학습장에 눈길을 박은 채 머리를 쳐들지도 않는다. 세면장에 타일은 고사하고 미장칼자리가 그대로 남았고 부엌의 밥상에는 강냉이밥알들이 아직도 널려있다. 장정화는 집에 없다. 세면장의 물탱크로는 숱한 애들의 빨래를 할 수 없어서 대동강에 나갔단다. 추운 날씨에 강물로 빨래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손이 빠져 달아나는 것 같다. 선향이 무척 동정하면서 애들을 절반으로 줄이라고, 연약한 너에겐 그 애들이 너무도 힘에 부친 큰 부담이라고 말한다. 허나 정화는 거절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 집에서 나간 아이들은 어떻게 되니? 난 그렇게 할수 없어. 

우리 강선에 부모없는 설음으로 그늘진 아이들의 모습이 있으면 안되지 뭐.》

정화는 다시 힘차게 방치질을 했다. 

선향이가 정화에게서 다시 방치를 빼앗았다. 

《정화야, 계속 고생할수야 없지 않니. 제기만 하면 사회적으로 응당 관심을 돌릴텐데.》

《아니야. 내 량심이 허락지 않아. 어떻게 해서나 내 손으로 키우겠어.》 

정화는 빨래에 비누칠을 하며 계속했다. 

《선향아, 제발 소문내지 말아줘. 내가 언니, 누나구실 잘해서 그애들과 친형제처럼 될 때까지 말이야.》”(40쪽) 

 

강변에 나가서 그 대화를 들은 이창현은 어리고 순진하다고 생각했던 정화가 한없이 돋보이고 그 비밀을 지켜줄 수 없다고, 저 소행이 서로 돕고 이끄는 우리 사회에서 절대로 비밀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여 이창현은 내색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정화를 도와준다. 남이 준 건데 자기는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당과류가 담긴 주머니를 정화에게 주는 등등. 

 

사연을 알고 진정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돕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다. 이웃들 사이에 크고 작은 오해와 모순이 생기는가 하면, 직장에서 1.4분기우수종업원으로 평가받아 받은 상품- 고급화장품 “봄향기”를 학용품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했다가 동료들에게 제 얼굴이 환하니까 화장품에 별로 흥미가 없는 모양이라느니, 대학공부를 하려는 모양이라느니 따위 오해를 받는다. 

 

오해 중에서도 가장 큰 오해는 2013년 7월 27일 오후 “전승 60돌”에 즈음하여 진행되는 경축무도회 현장에서 생겨난다. 

워낙 예전부터 명절 때마다 선향이와 정화가 춤판에서 단짝으로 되어 남녀역을 갈라 맡으면서 인기를 끌곤 했는데, 정화가 애들을 데려온 후부터 시간이 없어 함께 춤을 출 수 없었다. 이날에는 마음먹고 춤출 조건을 마련하기로 정한 두 처녀는 춤추는 동안에 두 살 먹은 자명이를 선향이 어머니에게 맡기기로 약정한다. 큰 애들은 시험공부준비로 몸을 뺄 수 없기 때문이다. 

헌데 백화점 앞에서 만나기로 되어있던 선향이 어머니가 웬 일인지 나타나지 않아 정화는 자명을 업고 춤판을 구경하기만 한다. 

 

“흥겨운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는 청년들의 모습은 정화의 온넋을 다 빼앗아갔다. 흥겨운 춤가락에 정화의 어깨가 다 들썩거렸다. 전문학교학생들속에서 춤추는 선향이의 춤동작은 이전보다 더 세련되여보였다. 한곡조가 끝나자 선향이가 정화에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정화는 그에게 방긋이 웃음을 지어보였다. 

문득 그의 뒤에서 이런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저 처녀가 우리에게 손을 흔드는구만. 아는 사이요?》 

《누구말입니까?》 

《저-기 처녀끼리 추는중에 남자역을 하는...》 

《아니, 저게 선향동무구나. 히야, 전문학교에 갔다더니 동작이 더 멋있는데.》 

정화는 그 목소리가 어쩐지 귀에 익었다. 

그는 슬그머니 뒤를 돌아보았다. 

소좌령장을 단 군관옆에 병사령장을 단 은혁이와 돌격대제복을 입은 국성이가 있었다.

정화는 일순 반가왔으나 선뜻 그들을 찾을수 없었다. 

그때 은혁이의 눈길이 정화한테서 멎었다. 

《아니, 정화동무!》 

황급히 고개를 돌리는 정화에게 반가운 인상을 한 은혁이와 국성이가 다가왔다. 

문득 자명이가 꼼지락거리며 《엄마, 엄마.》했다. 

순간 은혁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정화는 몸둘바를 몰라하며 기여드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오래간만입니다.》 

은혁은 입가에 랭소를 담으며 물었다. 

《아니, 벌써 아이엄마가 되셨소?》 

《발전이 꽤 빠른데. 학교때부터 별로 곱게 하구 다닌다 했더니.》 

은혁이와 국성이의 말에 정화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는 눈길을 어디에 둘지 몰라 허둥거렸다. 

동창생들에게 아이를 업은 모습을 보인것이 창피했던것이였다. 

은혁은 정화의 주위를 빙- 돌며 격분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 동창들은 조국보위초소에서, 백두전역에서 청춘의 피와 땀을 뿌리고있는데 동문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시집을 가다니... 부끄럽지 않소?》 

《저... 은혁동무!》 

당황해진 정화가 사연을 말하려는데 국성이가 한마디 끼웠다. 

《동무를 다시 보게 되누만. 정말 뜻밖이요.》 

순간 정화는 눈앞이 뿌잇해졌다. 

그들을 보던 군관이 다가와 은혁이와 국성이를 나무라는 어조로 말했다. 

《동무들, 그만하오. 이 동무에게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겠지. 제강소에 빨리 가자구. 철근받을 시간이 되였소.》 

《알았습니다.》 

그들은 정화를 흘겨보고나서 군관을 따라갔다. 

정화는 눈물어린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저쯤 가던 은혁이가 급히 되돌아왔다. 

그는 말마디들에 힘을 주며 말했다. 

《이제 보니 난 중학시절 동무의 초급단체위원장구실을 정말 잘하지 못했소. 그러나 병사시절만은 후회가 없도록 살겠소. 

부탁하건대 이 아이만은 훌륭하게 잘 키워주길 바라오.》 

《예?!》 

은혁이는 정화가 어쩔새없이 냅다 달려갔다. 

정화는 오열을 참으며 사람들의 눈길을 피하여 무도장밖으로 달려나갔다. 저쯤에 가는 은혁이와 국성이의 뒤모습이 보였다. 정화는 자기의 마음도 모르는 그들이 야속했다. 그는 그들에게 사실을 말해주고싶은 충동에 저도모르게 발걸음을 내짚었다. 

다음순간 그는 주춤 멈춰섰다. 

(아니야, 그건 날 알아달라는것과 같애. 내가 무슨 큰일이나 한다구.) 

좀전에 은혁이가 던지고간 말이 귀전에 고패쳤다. 

《부탁하건대 이 아이만은 훌륭하게 잘 키워주길 바라오.》 

흥겨운 춤판이 눈앞에 다가왔다. 

정화는 자명이를 추스르고 천천히 돌아섰다. 

그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무도회장을 떠났다. 

(내가 잘못했어. 자명아, 너희들을 더 잘 키우기 위해 애쓸 생각은 하지 않고 춤출 생각이나 하다니... 

이런 잡생각을 가지고서야 어떻게 나라의 걱정을 덜겠는가. 오히려 나라의 덧짐이 될지도 몰라. 

은혁동무의 말이 옳아. 내 아이들을 꼭 나라의 기둥감으로 훌륭히 키울테야.) 

정화는 잠시나마 흐트러졌던 자기를 질책하며 집으로 걸었다.”(86~ 90쪽) 

 

훌륭한 결심이 자연스레 훌륭한 결과들을 낳지는 못한다. 애들 사이에 충돌이 벌어지는가 하면 어떤 애는 사고를 치고 어떤 애는 실종된다. 

정화는 당조직과 좋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가면서 난관을 하나하나 돌파해나간다. 어느 날 강변에서 빨래를 하는 그에게로 이창현이 달려와서 빨리 가자고 무작정 손을 잡고 이끈다. 제2차 전국청년미풍선구자 대회 대표로 뽑혀 평양에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화는 제귀를 의심하며 눈을 크게 뜬채 미소를 머금었다.  

《위원장동지두 참. 잘못 들었겠지요 뭐. 이 강선땅에 정화라는 이름이 제 하난가요?》 

그는 창현의 말이 곧이 들리지 않았다. 

창현은 목메인 소리로 말했다. 

《사실이요. 어머니당에서는 남포시 천리마구역 사회급양관리소 로동자 장정화동무가 부모없는 7명의 아이들을 데려다가 소문없이 잘 키우고있다는 소행자료를 보고받고 이번 대회에 참가하도록 하는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었소. 아까 구역청년동맹에서...》”(172쪽)

 

장정화는 자기가 무슨 한 일이 있느냐고, 2년 동안 아이들을 키웠으면 얼마나 잘 키웠다고 영광에 대회장에 부르느냐고 감격한다. 대회장에서 토론문을 들고 연단으로 천천히 나가면서도 생각이 많아진다. 

 

“나는 공장과 탄광, 광산들에서 선군시대 청년전위의 본때를 보여준 이름난 로력혁신자도 아니고 당의 웅대한 구상을 꽃피우는 백두전역이나 중요대상건설장들에서 빛나는 위훈의 창조자로 소문낸 청년도 아니다. 

내가 한 일이란 우리 사회에서는 누구나 발휘할수 있는 평범한, 눈에 잘 뜨이지도 않는 자그마한 소행에 불과할뿐이였다.”(174~ 175쪽) 

 

정정화는 앞서 토론한 위훈자, 혁신자들의 토론과는 양상이 전혀 다르고 평범한 소행만이 적힌 토론문을 보면서 발언하여 대회장이 떠나갈 듯한 박수갈채를 받는다. 

 

그날 김정은 위원장이 대회참가자들을 찾아와 기념촬영을 하는데, 촬영에 앞서 모범청년들을 하나하나 만나주다가, 제일 어리고 애티나는 그의 소행을 소개받은 다음 “처녀어머니”라는 말은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생겨날 수 있다고, 다른 나라들에서는 이런 아름다운 소행을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라고 높이 평가한다. 

장정화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아이들을 **** ***께 끝없이 충직한 일당백의 총폭탄용사로 키우겠다고 다짐한다. 

 

대회가 끝나가 곧 《노동신문》의 여기자가 장정화의 집에 찾아와 취재하고 2015년 5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장정화에게 김정일청년영예상을 수여한다는 정령을 빨표한다. 

정령이 실린 신문의 3면에는 여기자가 쓴 기사 《노동당의 딸- 강선땅의 <처녀어머니>》가 게재된다. 《청년전위》신문사, 금성청년출판사, 조선중앙방송위원회 등 출판보도부문의 기자, 촬영가들이 장정화를 찾아와 아이들을 키우르나 남달리 크고 거칠어진 그의 손을 잡아보며 취재하고 널리 소개한다. 나라의 방방곡곡에서 수많은 축하전화, 축하전보, 축하편지들이 날아오는데, 그중에는 특별한 편지 한 통이 있다. 

 

“《정화동무, 동무에 대한 기사를 잃으면서 나는 내 가슴을 사정없이 쳤습니다. 동무의 그 아름다운 마음도 모르고, 어린 자명이를 업고있는 동무를 사정없이 모욕했으니 동무에게 어떻게 사과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난 독보시간에 제기하였습니다. <사관장동지, 장정화동무는 우리 학급동무였습니다. 그 기사를 제가... 독보하게 해주십시오.>... 

그 기사를 읽는 나도, 우리 병사들도 모두 감동되였습니다. 20살 꽃나이에 7명의 아이들을 위해 바친 동무의 혁신과 희생정신앞에, 그 높은 정신세계앞에 우리는 머리를 숙였습니다. 

정화동무, 우리 병사들에게 더 아름다워질 조국의 래일을 그려보게 해준 동무를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181쪽)

 

그러니 근 2년 동안 이어진 오해가 드디어 풀렸다. 바른 길로 걷노라면 남들이 알 때가 있다는 말이 실감난다. 

 

책은 뒤이어 2015년 조선을 방문한 미국 씨엔엔방송 기자단이 불의에 강선에 나타난 경과를 간단히 적었다. 

 

“정화의 집에 온 그들은 믿어지지 않는 눈길로 집안을 돌아보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중 한 기자가 정화에게 그 어떤 의미가 깔린 어조로 물었다.  

《본래 식구들과 데려온 아이들이 어쩌면 이렇게 한집안으로 뭉칠수 있는가요?》 

우리의 장한 《처녀어머니》는 당당한 어조로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나라는 한가정입니다. 그러니 부모없는 아이들이 있을수 없지요. 우린 그래서 뭉쳤어요. **** ***과 인민이 사랑과 정으로 굳게 뭉쳐있어 우리 나라는 온 세상이 부러워하는 사회주의락원입니다.》 

미국기자들은 저도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온갖 사회악이 판을 치고 패륜패덕의 악취만을 아는 그들이 자기의 아픔보다 동지의 아픔을 먼저 알고 제 집일보다 나라의 일을 먼저 걱정하는 미덕의 화원에서 넘치는 향기의 진미를 어찌 알수 있으랴. 

미덕의 향기는 언제나 아름답고 영원한것이다.”(182쪽) 

 

장정화가 7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백두산으로 오르고 저자가 밝은 미래를 내다보는 말로 실화는 끝난다. 

 

저자는 당연히 미거를 찬양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허나 보는 사람들의 입장과 눈에 따라 이 중편실화가 북 폄하에 활용될 여지도 가득하다. 예컨대 강변에 가서 빨래하는 현상도 가전제품의 부족을 말해준다면서 “북한의 열악한” 무엇을 드러내는 근거로 쓰일 수 있다. 거꾸로 가전제품제조상들의 입장에서는 북 가전제품 시장의 거대한 잠재력을 발견할 수도 있다. 

 

뭘 만들지 않고 누군가를 비하해야 하는 고약한 직장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실화를 통해 북 인간상을 요해하는 게 맞겠다. 나이를 따져보면 2013년에 18살 난 장정화가 10달 때 노춘복의 품으로 옮겨졌다면 바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1995년이나 그 이듬해에 양딸로 되었음을 말해준다. 구체적으로 묘사되진 않았으나 부모를 잃었을 가능성이 높다. 나라가 가장 어렵던 시절 노춘복이 보여준 사랑, 그리고 장정화가 여러 해 동안 친어머니로 여길 지경으로 기울인 모성애 등이 나라살림이 차차 펴나는 시대에 여러 아이를 키워주는 “처녀어머니”의 산생에 큰 영향을 끼쳤으리라 짐작된다. 

 

사랑을 심으면 선한 열매가 달리는 법이고, 증오를 심으면 악한 열매가 생기는 법이다. “탈북”이 미화되고 심지어 유일한 해결책으로 부풀려지면 이남사람들이 이북사람들을 제대로 알기조차 어렵다. 생생히 살아있는 이북사람들을 그대로 볼 필요가 있기에 여기서 원문을 대량 인용했다. 누군가에게 좀이라도 도움이 되면 기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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