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산지석] 시리아의 지옥포로부터 보는 북의 무기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7/10/20 [01:19]  최종편집: ⓒ 자주시보

 

시리아의 지옥포 

 

2010년에 튀니지에서 시작된 이른바 “재스민 혁명”이 명목이 번다한 “혁명”들을 이끌어내면서 아시아와 아프리카 여러 나라 정권이 바뀔 때는 시리아의 의 정권교체가 시간문제로 보였다. 허나 아사드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이 잘 버티는 바람에 내전이 장기화되었고, 주변 나라들과 대국들이 개입했으며 지금은 강대국 첨단무기 시험장으로 되었다는 게 정설이다. 

허나 시리아에서 첨단무기들만 오가지는 않았다. 반대파들이 만들어서 곧잘 써먹은 지옥대포(hell canon)이 바로 사제포이다. 

 

▲ 시리아 반정부군의 지옥대포     © 자주시보, 중국시민

 

앞의 가스통을 보고 분사식 무기라고 짐작하는 사람들이 적잖으나 가스통은 포탄일 뿐 지옥대포는 사실 박격포이다. 초기의 40킬로그램 정도 포탄이 후에는 200킬로그램 포탄으로 발전했고, 초기의 간단하던 1관형으로부터 다양한 변종들을 만들어냈는데, 중장비를 활용한 다관형포도 등장했다. 

 

▲ 중국제 ZL30H 적재기를 살사대로 삼은 지옥대포의 일종     © 자주시보, 중국시민

 

보기에 무척 조잡하고 사거리 통제가 어려우며 명중률도 따지기 어렵지만 살상력은 상당해 정부군이 크게 다쳤고 “지옥(hell, 헬)”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다. 

덕분에 생각을 좀 해보게 되었다. 

 

 

중국에서의 육공포 

 

먼저 떠오른 게 중국에서의 박격포였다. 

박격포가 중국에서는 장기간 “류링파오(六零炮, 육공포)”라고 불렸다. 포신 구경이 60밀리미터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독일에서 들여왔고 후에 2차 세계대전(중국에서는 항일전쟁)기간과 그 후에는 미국에서 대량 들여왔으며 국민당의 병기공장이 모방생산도 했다. 

중국공산당의 군대는 국민당군과의 전투에서 60포를 대량 노획하여 활용했고, 자체의 병기공장들에서도 일부 생산했다. 1950~ 1953년의 항미원조전쟁에서도 미국제 60포와 미국에 뿌리를 둔 60포들이 운동전, 진지전에서 맹활약했다. 

 

헌데 1950년대 중반에 60포는 중국인민해방군에서 사라졌다. 소련 붉은 군대의 선진경험을 따라배우는 바람이 세게 불던 시절, 소련군이 60포를 전투서열에서 빼버린 것이 중요한 원인이었다. 

소련군은 2차세계대전의 경험과 자체 실정에 비추어 60밀리 박격포가 위력, 사거리 등 면에서 수요를 만족시키지 못한다고 판단하여, 82밀리와 그 이상 박격포를 선호했고 차량에 의한 신속한 이동을 강조했다. 

 

교조적으로 소련군을 따라배우던 중국인민해방군은 차차 자체실정이 소련군과 다름을 인식하게 되었고 60포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특히 중국 남방에는 길 없는 곳이 많았고 82포는 남방병사들이 나르기 힘들었다. 하여 1960년대 초반에 60포가 다시 중국인민해방군의 무기대열에 들어섰고 변경보위전투를 비롯한 여러 전투에서 훌륭한 전과를 거두었으며 그 성능이 점점 더 좋아졌다. 

 

 

보는 무기냐? 쓰는 무기냐? 

 

박격포는 조선(북한)에서도 유명한 무기다. 1951년 1211고지 전투에서 미군은 박격포를 대량 동원하여 공격서열 30미터 앞에까지 포탄을 떨어뜨려 제 편도 잡으면서 고지에 올라갔는데, 인민군은 가장 위급한 상황에서 노태진 포장을 비롯한 포수들이 박격포를 거의 수직으로 세워서 사격했다. 그러면 포탄들이 막 머리 위에 떨어질 듯한 착각을 주면서 바싹 다가든 적군무리에 떨어져 고지방어승리에 기여했다 한다. 

 

그 시절 조선이 박격포를 자체로 만들어냈을 때 김일성 최고사령관이 직접 메여보고 전사들이 나르고 다루기는 무겁겠다면서 무게를 줄이라고 지시한 것도 유명한 일화다. 

그 일화에 비춰보면 조선에서는 소련식으로 무겁고 큰 박격포를 실전배치하지 않은 것 같다. 위력과 실용가능성 사이의 선택에서 전사들의 요소가 중요하지 않은가. 

 

지옥대포의 조잡한 외모는 조선에서 무기 겉모양 때문에 벌어진 쟁론을 연상시켰다. 

조선 총리 신분으로 한국에 잘 알려진 연형묵(1931~ 2005)은 항일혁명투사의 후대로서 유학을 마치고 사업에 참가한 후 연형묵은 오랫동안 군수산업에 종사했다. 

그런데 1960년대 중반에 군수공업공장들에서 생산하는 제품들이 대부분 “오작품”으로 판명되어 검열을 통과하지 못하는 현상이 생겨났다. 그보다 앞서 김일성 수상이 여러 차례 군수생산을 수입자재로가 아니라 국내산자재로 전환하라고 강조했는데, 기술자들과 노동자들이 이악하게 노력하여 모든 무기를 국내산자재로 만들어냈으나, 군수부문의 일부 사람들이 트집을 잡은 것이다. 무기의 표면에 보일락말락하는 작은 흠집을 큰 것으로 과정하여 “떠들면서 ”오작품“이라는 딱지를 붙였고, 지어는 이 사건을 조사하고 책임 있는 공장의 간부들을 군사재판에 회부해야 한다고 을러멨다. 

 

하여 기술자, 노동자들의 열의가 식어졌고 전반적인 공장들이 하나둘 생산을 멈추었다. 

이러한 시기에 1966년 9월 초 김일성 수상이 자강도 군수공업기업소 지도일꾼 협의회를 열었다. 연형묵은 자기네 공장에서 “오작품”으로 몰린 몇 개의 무기를 갖고 회의에 참가하여 실태를 보고했다. 김일성 수상은 보고를 주의깊게 끝까지 들은 다음 그렇다면 우선 문제의 그 “오작품”들을 한 번 보고 회의를 계속하자고 말했다. 뒤이어 아무런 말도 없이 몸소 무기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더니 연형묵에게 이 무기가 제대로 동작하는가고 물었다. 연형묵은 모든 것이 정상이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왜 오작인가고 김일성 수상이 의아해하기에, 연형묵은 표면이 그리 곱지 못하여 불합격이 되었다고 대답했다. 

“국내산자재로 하면서 표면이 곱지 못하다?!” 

김일성 수상은 거듭 되뇌이면서 한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무기가 제대로 동작하여 적을 소멸할 수 있으면 합격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기뻐하는 생산자들을 둘러보던 김일성 수상은 그 자리에 있던 “시비꾼”들에게 엄하게 말했다. 

“규정을 교조주의적으로 적용할 것이 아니라 우리 실정에 맞는 규정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는 그들이 보란 듯이 연형묵 등 사람들 앞에 무기를 높이 쳐들면서 제대로 동작하는 이 무기들은 자신이 다 합격으로 승인한다고 “합격!”하고 외쳤다. 

 

이날 국내산자재로 만든 어느 한 장비도 자그마한 흠집으로 불합격이 되었다는 보고를 받은 김일성 수상은 우리는 산에서 일제놈들과 싸울 때 이런 장비를 쓰고 싸운 것이 아니라고, 우리 인민군대 역시 조국해방전쟁때 이런 장비가 부족해서 다 이용하지 못하였다고, 그때는 우리 손으로 이런 장비를 만들지 못하고 남의 나라에서 가져다 써야 했기 때문에 돈이 없어 우리의 귀중한 전사들에게 이런 장비도 제대로 갖추어주지 못한 채 싸우게 하였다고, 그래서 전선시찰을 할 때마다 못내 가슴이 아팠다고, 그런데 지금은 우리 강재로 우리 노동계급이 이런 훌륭한 장비를 제손으로 생산해내고있다고 이야기했다. 

 

“이게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그런데 우리 나라 노동계급이 자기 나라 강재로 그것도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인데 왜 남의 규정에 맞게 검사를 합니까. 그 나라에서 20년을 쓸것이면 우리는 한 10년 쓰고 또 만들면 되지 않습니까. 

강재도 우리의 것이고 기술도 우리의 것인데 질이 좀 떨어지면 뭐랍니까. 

앞으로 게속 만드는 과정을 통해 질을 더 높이면 됩니다. 지금상태에서 그런 정도이면 다 합격입니다.“ 

 

김일성 주석 덕성실화집 《인민들속에서》 75권(조선노동당출판사 2008년 7월)에 “빛나는 유산”이라는 제목으로 회상기(2003년 9월에 씀)를 발표한 연형묵은 위의 발언 뒤에 이렇게 썼다. 

 

“*** ***께서 하신 이날의 강령적 가르치심은 자위적국방공업의 위력을 온 세상에 알리는 장엄한 선언이였다. 

이때로부터 우리의 국방공업은 자기의 든든한 원천에 의거하여 우리 식의 독특한 현대적무기들을 마음먹은대로 꽝꽝 만들어낼수 있는 강력한 물질기술적토대를 더욱 튼튼히 쌓게 되었다.“(223쪽) 

 

정문일침 335편 “필요한 건 다 갖춘 북”(www.jajusibo.com/sub_read.html?uid=35773)에서 필자는 자재와 기술, 구조, 제도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50여 년 전 조선이 국산자재로 무기들을 만들 때는 어떤 원소의 부족이나 어떤 기술의 차이로 소련의 높은 기준에 맞는 무기를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표면공예수준이 낮으면 무기가 빨리 녹이 쓸고 수명이 짧아진다.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완전히 잘못한 건 아니지만, 내일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그런 고집이 유해하다. 

김일성 수상의 말에서 두 가지가 중요하다. 하나는 일단 만들어서 써야 한다, 하나는 질을 높여야 한다. 

조선이 대량 무기 보유와 축적은 완성한지 오래고, 품질제고는 김정은 시대에 특별히 강조된다.(정문일침 210편 “고질을 뿌리뽑아가는 김정은위원장”을 참조하시라. www.jajusibo.com/sub_read.html?uid=32484)

 

만에 하나 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전면화, 장기화되는 경우 어느 일대의 조선사람들이 가진 무기들을 다 써버리면 어떻게 할까? 지옥대포는 비길 나위가 없는 기발한 무기들이 도시에서, 농촌에서 잇달아 생겨나서 적수들을 강타하지 않을까? 보기는 우습더라도 위력이 엄청 놀라운 무기들 말이다. 


트위터 페이스북
 
광고
 
이 글의 참 의미를 몇이나 이해할까 정상인 17/10/20 [03:28] 수정 삭제
  이 글의 참 의미는 군대의 조직편제와 무장장비, 작전전술이 미국이나 러시아가 절대적 기준이 아니며 해당 나라와 군대의 상황에 맞으면 된다는 의미이다. 미국과 러시아제 무기이거나 그것을 모방한 것이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허무주의, 사대주의가 범람하는 세상에서 사는 세뇌된 민초들은 이 의미를 절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상용무기뿐만 아니라 핵, 미사일도 같다. 과거에 미국과 러시아가 벌인 핵과 미사일개발프로세스가 절대적 잣대가 아니다. 자기의 상황에 따라 그와는 전혀 상반되는 로드나 차이나는 타임을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