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문화 가꿔가기18] 북에서 모범 검사의 모습이란
-단편소설 《어느 평범한 날들에》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7/10/29 [01:48]  최종편집: ⓒ 자주시보
▲ 1990년대 초 남녘에  '살림터'에서 출판한 북 소설가 백남룡의 '벗'이란 중편소설은 북의 사법부가 북 주민들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한 충격적 사실을 알려주었다. 특히 대학생들 속에서 인기가 많았다. 2011년 중국 동북망에 따르면 프랑스 패트릭 모리스 씨가 프랑스에서도 번역 출간한다고 소개한 바 있다.  


필자가 본 조선(북한)의 문학예술작품들 가운데서 특이한 사례가 하나 있다. 남에서 츨판된 걸 보았을 뿐 아직까지 북에서 나온 원본을 보지 못했으니, 백남룡(1949~)의 중편소설 《벗》이 바로 그것이다. 

1988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1990년대 초반에, 남의 살림터 출판사에서 간행하여 독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으면서 한국대학생들이 가장 즐겨읽는 “대학가 베스트셀러 목록 1위”에 올랐다 한다. 아마도 남의 판사들과 판판 다른 북의 판사를 다뤘기에 이남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나 보다. 

 

어느 도시의 인민재판소 판사 정진우는 이혼청구서를 받는다. 가수 아내가 노동자 남편이 맞지 않는다는 이혼 이유는 충분하다. 이혼판결을 내려도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으나, 정진우는 굳이 갖은 노력을 기울여 청구자 가정의 생활과 사업에 존재하는 문제점들을 해결하여 부부가 어린 아들과 함께 화목하게 살아가도록 만들어준다. 

 

소설은 “사회라는 유기체의 한 세포”, “사회의 세포인 가정”을 언급하면서 그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원문에 워낙 없는지 아니면 남의 출판사가 지웠는지 알 수 없다만, 가정을 사회의 세포로 간주한 건 김일성 주석의 주장이다. 

 

《가정은 부모와 처자, 형제자매를 비롯한 육친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서 생활을 같이하는 우리 사회의 세포입니다. 여기에서 사람들은 어릴때부터 제일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늘 교양을 받을수 있습니다. 가정에서는 학교나 사회에서는 할 수 없는 교양을 잘할 수 있습니다.》(1961년 11월 16일 전국어머니대회에서 한 연설 《자녀교양에서 어머니들의 임무》) 

 

《가정은 사회의 세포이다. 청소년들은 가정에서 생활하는 과정에 교육적영향을 많이 받는다. 가정을 혁명화하고 가정에 사회주의적생활양식을 철저히 확립하여 가정생활자체가 학생들에게 혁명적인 영향을 주도록 하여야 한다. 학부형들은 사회정치생활과 사회주의건설에 모범적으로 참가하며 언제나 검박하게 생활하고 례절바르게 행동함으로써 한마디한마디의 말과 하나하나의 행동이 다 아들딸들에게 교양이 되고 본보기가 되도록 하여야 한다.》(1977년 9월 5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5기 제14차 전원회의에서 발표한 《사회주의교육에 관한 테제》) 

 

《가정교육의 중요성

가정교육조건을 잘 보장하여주어야 하겠습니다.

가정은 사회의 세포이며 가정교육은 사회교육의 한 형태입니다.

그런데 지금 가정교육이 걸렸습니다. 학부형들이 자기 아들딸들을 교양하기 싫어서 교양하지 않는것이 아니라 시간이 없어 그들을 잘 교양하지 못하고있습니다. 지금 학부형들은 밤늦게 퇴근하기때문에 아들딸들을 만나지도 못하고있습니다. 지금 어떤 직장들에서는 가정부인들을 밤 11시까지 붙들고있으며 일요일에도 일을 시키고있습니다. 지어 어떤 직장들에서는 가정 부인들을 사회동원까지 시키고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가정부인들이 아이들을 거두어줄 시간도 없고 집을 거둘 시간도 없습니다.

앞으로 학부형들이 아들딸들을 교양할수 있는 시간과 조건을 잘 보장해주어야 하겠습니다.》(1977년 9월 7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5기 제14차 전원회의 결론 《<사회주의교육에 관한 테제>를 철저히 관철할데 대하여》) 

 

김정일 노작들에도 가정을 사회의 세포로 간주한 대목들이 여럿이다. 

 

《동은 우리 사회의 세포인 가정들로 이루어져있기때문에 사회를 강화하는가 못하는가 하는것은 동사업을 어떻게 하는가 하는데 적지 않게 달려있습니다.》(1972년 7월 11일 평양시 서성구역 하신동 일꾼들과 한 담화 《동, 인민반 사업을 개선강화하자》)

 

《가정은 사회의 세포이며 당과 수령을 중심으로 하는 온 사회의 단결은 가정의 화목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화목한 가정을 떠나서 사회의 화목을 이룩할수 없습니다.》(1982년 4월 10일 당중앙위원회, 정무원 책임일꾼들과 한 담화 《혁명적동지애의 전통적 미풍을 높이 발양하자》) 

 

《가정은 사회의 세포이며 사람들의 기층생활단위입니다. 가정생활을 문화위생적으로 알뜰히 꾸려나가야 사람들이 언제나 깨끗한 환경속에서 사는 습성을 키울수 있고 온 사회에 건전하고 문화정서적인 생활기풍을 세울수 있습니다. 모든 가정들에서 자기가 쓰고사는 집 안팎을 소박하면서도 알뜰하게 꾸려야 하겠습니다. 가정들에서 금붕어도 기르고 화분도 놓아 가정에 문화정서적인 생활환경을 조성해놓아야 합니다.》(1989년 1월 5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과 한 담화 《온 사회에 문화정서생활기풍을 세울데 대하여》) 

 

이와 같이 영도자들이 가정을 사회의 세포로 간주했으므로, 세포의 비정상분열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전 사회에 형성된 모양이고, 백남룡의 작품에서도 법조인이 이남의 법조인들과 전혀 다른 선택을 한 것 같다. 

 

조선에서는 법조인을 다룬 작품들이 노동자, 농민, 과학자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들보다 훨씬 적은 바, 탁숙본의 단편소설 《어느 평범한 날들에》는 그야말로 간만에 본 법조인 주제 작품이다. 

 

2013년에 김일성 주석을 주인공으로 하는 총서 불멸의 역사 중 장편소설 《명맥》을 내놓은 탁숙본은 그 장편소설이 전시 군수공업부문을 다뤘을 뿐더러 단편소설들도 거개 군수공업부문을 무대로 삼았다. 개인 문학작품집 《군자리처녀》(문학예술출판사 2017년 4월, 도합 311쪽)는 제목부터 군자리에 자리잡은 군수공장을 가리킨다. 그런데 책에 수록되고 2015년에 내놓았다고 밝혀진 《어느 평범한 날들에》는 예외에 속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검사 최광철이다. 평양에 신설된 문수물놀이장에서 한때를 즐긴 다음 돌아오는 길에 최광철 검사는 만수대예술극장 앞에서 사진을 찍는 여러 쌍의 신혼부부들을 발견한다. 헌데 들러리로 선 한 젊은 부인이 몇 해 전 결혼식을 앞두고 고민하던 처녀다. 하여 집에 돌아온 최광철은 여러 해 전의 일을 되새긴다. 

 

동료인 리정수 검사가 심장마비로 급사하여 결속하지 못한 화재사건을 남기는 바람에 최광철 검사가 맡게 된다. 어느 달 25일에 최 검사에게 사건을 맡긴 책임검사는 다음 달에 다른 과업이 있기에 반드시 이달 중에 사건을 결속해야 된다고 강조하면서 “화재사건이니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을상 싶소., 자료를 잘 결속하기 바라오.”(264)라고 말한다. 

 

확실히 사건자체는 간단하다. 상두정밀기계종합공장의 창고가 화재로 사라져 막대한 손실이 생겼고 책임져야 할 사람도 밝혀졌다. 그런데 책임을 어떻게 보아야겠느냐는 복잡하다. 

탁숙본의 작품들은 기복과 역전이 별로 없으나, 《어느 평범한 날들에》는 이야기자체가 뒤집기를 거듭한다. 

 

건물을 보면 본래 창고로 쓰려고 만든 게 아니라 공장기능공학교 실습장으로 쓰던 것이었는데, 공장에서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실습장을 새로 꾸려주고는 그 건물을 자재과에서 부족되는 창고로 쓰게 했다. 하여 건물에는 전기조명장치가 원래대로 남아있었다. 하룻밤 사이에 창고가 불타버리니, 처음에는 전기사고로 인정되어 창고장이 막다른 골목에 들어가버렸다. 창고에는 조명을 할 수 없는데 왜 조명선을 철수하지 않았는가? 창고장이 규정위반으로 연대적인 책임을 지게 되었을 때, 자재과장 장원철이 부정한다. 

 

《전기선은 화재발생 이틀전에 내가 전공에게 지시하여 절단했습니다. 창고장은 그걸 모르고있기 때문에 변명을 못했을것입니다. 때문에 전기사고에 의한 화재발생요인은 성립될수 없습니다. 

그날에 창고지붕에 올라간 사람이 있는데 그건 바로 나자신입니다. 저는 바람에 날리는 지붕을 수리하면서 그우에서 담배를 피웠습니다. 창고에 의도적으로 불을 지른 사람이 없다면 담뱃불에 의한 화재사고로 보는것이 옳을것입니다. 화재는 제가 창고지붕우를 내린지 여러 시간이 지난 뒤에 일어났습니다. 창고천정에 톱밥이 깔려있는 조건에서 모의시험을 해보면 그 진실여부를 증명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264~265쪽)  

 

관계부문 일꾼들은 놀랐고 그 말대로 톱밥에 담뱃불씨를 넣고 시험해보니 과연 6시간 만에 불이 일었다. 장원철은 법적제재를 물론 각오했다고, 죄 없는 창고장이 법적책임을 지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고, 정말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하여 장원철이 화재사건 주범으로서 법 앞에 나서게 되었다. 

 

최광철은 이런 사연을 서류상으로 요해한 다음 곧 일에 착수하여 공장으로 찾아간다. 지배인이 그날의 정황을 알려준다. 강풍 속에서 퇴근길에 올랐던 장원철은 정문 지붕에 씌웠던 아연도철판이 바람에 날려 굴러가는 걸 보고 창고들이 걱정되어 되돌아 달려갔다. 여러 동의 창고건물들은 이상 없었으나 동 떨어진 전 실습장은 아연도철판들이 귀가 들려 당장 어디로 날아갈 판이었다. 장원철은 사무실로 달려가 망치와 못을 찾아 쥐고 되돌아와 창고 위에 올라갔다. 강풍을 무릅쓰고 귀가 들린 철판들을 골라 아귀를 맞춰 못질을 한 그는 바람이 잦아드니 담배생각이 나서 불을 붙여 물었다. 일을 거의 마무리할 즈음 바람이 다시 세차지면서 물주리가 날려갔다. 담뱃불찌들이 흩날렸다. 일을 마친 다음 바람은 잦아들었다. 지붕을 내려온 장원철은 애용하던 물주리를 잃은 게 아쉬워 달빛 속에서 한동안 신고를 하여 찾아쥐었다. 딸이 등산기념으로 선물한 생당쑥 물주리를 되찾아 기분이 좋아진 장원철은 그 자리에서 담배 두 대를 연거푸 피운 다음 흡족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헌데 지붕 위에서 피운 담배가 화재를 일으켰다. 

 

《…그는 스스로 본의아니게 화재사건의 장본인이 되고말았습니다. 그냥 퇴근했더라면 무슨 일이 있었겠습니까. 창고가 걱정되여 세찬 바람속에서 잘한다고 한 일이 그만에야 이런 결과가 생겼으니 말입니다. 그런 일이 생기리라고 꿈엔들 생각했겠습니가. 참 생각할수록 유감스럽습니다. 법에서 이 점을 꼭 고려해주기 바랍니다. 그는 량심적이며 진실한 일군입니다.》(266쪽) 

 

지배인의 말을 듣고 최광철은 이야기를 잘 들었다고, 고맙다고 말한 다음 예절 있게 말을 이어간다. 

 

《화제사건은 일반형사사건들중에서 가장 중히 처리되는 항목중의 하나입니다. 지배인동지도 아시겠지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에 따르는 법적제재에는 에누리가 없지 않습니까. 내용을 좀더 파보겠습니다.》(위와 같은 쪽)  

 

지배인은 더 말하지 못하고 최광철은 가슴이 무거워진다. 지배인의 말이 추처럼 마음속에 매달렸고, 장원철의 나이 55살, 군사복무를 하는 아들, 이과대학을 졸업하고 연구사로 일하면서 같은 연구사인 청년과 당장 결혼하게 된 딸 등이 머릿속에 엉킨다. 

 

그런데 새로운 의문이 생겨난다. 이튿날 출근 길에 최광철은 정문 앞에서 자기를 기다리는 보안원과 만난다. 보안원은 창고화재사건을 다시 요해한데 의하면 창고 크기와 내용물 적재량에 비하면 화력이 굉장히 셌다면서, 경비원이 말하기를 한창 불붙을 때 뭐가 펑 하고 터지는 소리까지 나면서 불길이 더 세차졌다고, 그 창고 안에 다른 발화물질이 더 있지 않았는가 의심된다고 얘기한다. 

 

최광철은 심중해지지 않을 수 없다. 다른 발화물질이 있었다면 결국 장원철이 뭔가 숨긴다는 결론이 나온다. 헌데 지배인은 장원철을 보증하지 않았는가. 보안원을 보낸 다음 최광철은 잠시 후 당사자 장원철과 마주 앉는다. 장원철은 고개를 수그리고 묻는 말에 공손히 대답하는데, 약간 갈린 목소리기는 했으나 비교적 논리가 명백하고 간결하다. 

 

화재원인이 담뱃불이라는데 대해서는 이의가 없으나, 뭔가 숨기는 게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장원철이 흠칫 놀라다가 부인한다. 이렇던 저렇든 내 담뱃불에 의해 화재가 일어났고 그 책임을 내가 지겠다는데 뭘 숨기고 물 또 캐겠다는 건가고, 자기는 법적처벌을 받을 준비가 다 되어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뻣뻣한 어조에 최광철은 몹시 실망한다. 

 

《원철동무! 명심하시오. 우리 법일군들은 사람들에게 처벌이나 주고 판결이나 내리는 기계같은 사람들이 아니요. 시간을 줄테니 잘 생각해보고 정확히 대답하기 바라오.》(268쪽) 

 

최광철은 장원철을 내보내고 생각에 잠긴다. 

 

《장원철은 지금 모든 책임을 자기가 지면 그만인데 하는 생각으로 태도가 뻣뻣한것 같은데 그에게는 사회주의법에 대한 준법의식이 매우 미약하다. 그에게 우리 나라 사회주의법의 본질과 우월성을 자기의것으로 체득시키기 위해서라도 창고화재사건을 실무적으로, 현상적으로 처리하면 안되겠다고 광철은 생각을 굳히였다.》(위와 같은 쪽) 

 

“준법의식”을 조선의 문학예술작품에서는 처음 접하는데 자본주의사회의 준법의식과는 개념이 다르다고 보인다. 

 

이튿날 최광철은 승용차를 타고 300여 리 길을 달려 장원철의 아들 장룡은이 복무하는 부대에 도착한다. 아버지의 친구로서 철원지방에 출장가는 길에 들렸노라고 둘러댄 최 검사는 초소근무가 힘들지 않은가, 아픈 데는 없는가, 집생각이 나지 않는가 등 법과 상관 없는 질문을 한다. 장룡은은 솔직히 말해 집생각이 나곤 한다더니 어머니가 제일 그립다고 회정을 터친다. 친어머니가 아닌데도 어머니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오르느냐고 최광철이 물으니, 장룡은은 장원철의 후처가 전처의 자식들에게 사랑을 기울인 이야기를 한다. 

 

다음날 최 검사는 다시 장원철과 마주 앉아 장룡은을 만난 사실을 이야기한 다음 묻는다. 두 어린 자식에게 친어머니의 정을 그대로 안겨준 그 여인으로 하여 꽃펴난 가정의 행복이 깨지는 게 두렵지 않는가고, 그런데도 법 앞에 할 말이 그렇게도 없느냐고. 장원철이 대답하지 못하니, 최 검사는 정신을 차리라고, 나에겐 시간이 없다고 강조한 다음 말을 잇는다. 

 

《동무는 담배 한 대로 앞날을 포기한것 같은데 그러면 안되오. 나는 동무가 대바르고 하고싶은 말도 못하는 그런 우유부단한 남자가 아니라고 생각되오. 나와 처음 만났을 때 동무는 이 검사가 놀랄 정도로 당당했던것 같은데 지금은 왜 주눅이 들어 모든걸 포기해버린 사람같소? 나는 동무가 법앞에 하고싶은 말이 반드시 있을것이라고 생각하오. 사람은 과오를 범할수 있소. 그래서 법도 있고 법일군도 있는거요. 그들을 교양하기 위해서 말이요.》(270쪽)  

 

그래도 장원철이 말이 없기에 최 검사는 진지하게 힘을 주어 말한다. 

 

《원철동무, 정말 법앞에 할 말이 없소? 좋소. 그러면 법적제재를 받게 되는 동무에게 한가지만 똑똑히 말해주겠소. 화재사건으로 형사책임을 지게 되는것은 명백하지만 나는 동무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전에는 재판장에 세울수 없다는거요.》(위와 같은 쪽)  

 

장원철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최광철 검사는 답답해나 또다시 출장길에 올라 이틀 동안 현지요해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가방이 불룩하도록 자료를 모아온다. 

생산과의 지령원, 자재과의 계획원, 운수과의 운전사 등은 1996년부터 2013년에 이르기까지 장원철이 얼마나 일을 열심히 잘했느냐를 이야기한다. 

 

《화재사건을 파고들수록 최광철검사는 이 사건은 진상이 명백하므로 사건을 빨리 결속할수 있을것이라고 타산했던 자신의 애초의 생각이 경솔했다고 여겨졌다. 그것은 장원철의 첫 대면에서 받았던, 사람이 몹시 뻣뻣하고 까다롭고 지어 거만하게까지 느꼈던 인상이 지금에 와선 매우 고지식하고 진실한 언행으로 안겨왔던 것이다. 

하지만 최광철검사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법일군으로서 주견과 립장이 확고했다.》(273쪽) 

 

밤늦도록 자료를 정리하고 자리를 뜨려던 최 검사는 현기증으로 비칠거리다가 꼬박 이틀 동안 낟알 하나 입에 넣지 않고 일에만 몰두한 자신을 느낀다. 그런데 새벽에 장원철의 아내 신금순이 찾아와 장원철의 편지를 전한다. 내용인즉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으니 꼭 만나달라는 것. 

 

심장병이 심한 신금순을 보내고 장원철을 호출하니 얼마 후 장원철이 터벅터벅 검사 사무실에 들어선다. 자기 때문에 수고할 필요가 없다고, 이제 제 말을 듣고 빨리 재판에 넘겨주기 바란다더니, 지금까지 말하지 않던 죄행을 털어놓겠단다. 공장에 휘발유절약장치를 도입하여 절약한 기름을 50킬로그램짜리 비닐통 2개에 넣어 창고에 보관했었는데 그게 화재를 키웠다는 것이다. 뭣 때문에 건재창고에 그걸 보관했느냐고 최 검사가 물으니 장원철은 비상용으로 가지고 있으려고 했다고 실토한다. 최광철은 대뜸 이해한다.  

 

《최근에 휘발유사정이 긴장해지면서 공장에서는 휘발유를 요구하는 단위가 많았다. 일군들도 그렇고 여러 생산직장들에서 이런저런 항목으로 때없이 자재과장에서 제기해오는것이 휘발유였던것이다. 그러니 장원철이 휘발유여유를 조성해놓고 그런 대목에 쓰려고 했을것은 불보듯 명백했다. 

그런데 그 휘발유가 창고화재를 가속화하는 불미스러운 촉매제로 리용되리라고 꿈엔들 생각했겠는가.》(274쪽) 

 

왜 그 사실을 지금까지 숨겼느냐는 질문에 장원철이 대답하지 못하니 최 검사는 정통을 찌른다. 

 

《자재취급에서 규정과 질서를 어기고 그 휘발유로 하여 창고화재 피해가 확대되였으니 겁이 나서 그랬겠지.》(275쪽) 

 

뒤이어 최 검사가 그게 다인가고 물으니 장원철은 조금 사이를 두었다가 또 있다고 말한다. 그 말에 최광철은 귀를 의심하며 쪼프렸던 눈을 크게 뜬다. 장원철은 자기가 정말 나쁜 사람이라면서 10년도 썩 이전에 있었던 일을 털어놓는다. 지난 고난의 행군시기 노동자들의 식량을 해결하기 위해 사장되어있던 통나무를 넘겨주고 많은 돈을 받았다는 것과 그중에서 적지 않은 금액을 사취했다는 사실이었다. 

 

최광철은 아연해났다가 책상을 탁 내리치면서 그걸 왜 오늘에 와서 말하는가고 소리친다. 

 

“《화재사건을 취급당하면서 저는 한생을 돌이켜보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 지금까지 감추고있던 흑점이 시종 자신을 괴롭혔습니다. 저는 죄의식을 느낄수록 참기 힘든 괴로움에 시달렸습니다.》

이윽고 최광철은 훙분을 눅잦히며 조용히 물었다. 

《세월이 흘러 누구도 모르는 사실을 하필 화재사건으로 형사책임을 지게 된 마당에서 긁어부스럼 만들듯 끄집어내면……》 

광철의 말끝이 흐리마리해졌다. 

《검사동지, 량심에는 시효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깊은 심연속에서 흘러나오는 장원철의 말이였다. 

이때 그는 울고 있었다. 

사정없이 볼을 타고 내리는 원철의 눈물을 보는 순간 광철의 마음은 몹시 여리여지는것만 같았다. 그래서는 안되겠지만 동정심은 괴로움으로 바뀌여 그의 마음은 진정으로 쓰리고 아팠다. 

아, 어찌하여 량심적으로 일한다는 사람이 이렇게 되였는지, 창고지붕수리, 휘발유사건, 통나무불법처리,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은 얼마나 아릅답고 깨끗했던가. 

규정된 질서와 제도, 원칙, 정녕 이것만이 법일군들의 무기인가. 

광철검사의 마음은 이 시각 점차 원철의 량심으로 쏠리고있었다. 

장원철이 휘발유문제와 통나무를 가지고 불법행위를 한 자백을 받은 최검사는 다음날 장원철의 집으로 갔다.“(275~ 276쪽)

 

유도심문이나 고문이 아니라 양심적인 언행으로 뜻밖의 자백을 받아낸 최광철이 만난 사람은 장원철의 딸 장영숙과 그의 약혼자 철우였다. 어려서 한 마을에서 자라며 신동으로 소문났던 그들은 중학교 시절에 묘향산으로 등산야영을 갔었는데, 철우가 기념품이라면서 생당쑥물주리를 영숙에게 선사했고, 영숙은 그 물주리를 아버지게에 드렸다. 이제 와서 국가과학원의 연구소에서 동료로 일하는 그들은 가을에 결혼식을 하기로 약속했는데, 철우의 부모들이 해외에 장기간 파견근무를 하게 되어 신랑 측에서 결혼식을 앞당기자고 제의했다. 하지만 신부의 아버지가 법정에 나서게 되는 바람에 결혼식이 쉽게 이뤄지지 못한다. 의향을 청취하는 최 검사 앞에서 영숙과 철우는 모두 죄의식을 느끼면서 한스러워한다. 화재사건의 원인은 담배인데 물주리가 없었더라면 장원철이 담배를 많이 피우지 않았을 테고 운명도 달라지지 않았겠냐고 말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젊은이들과 신금순을 생각할 수록 최 검사의 마음은 납덩이마냥 무거워난다. 장원철의 형사문제는 결혼식 문제로 잇닿아져 최광철을 괴롭힌다. 

책상 위에 놓여있는 재판에 기소할 장원철의 문건이 최 검사의 눈에 안겨온다. 기소장의 검사 수표란은 아직도 공백이다. 사건결속마감날까지는 하루 밖에 없다. 수표를 해서 재판에 넘겨야 한다. 

 

“사실 재판에 기소할 장원철의 문건을 공식적으로 넘겨주면 그것으로 검사의 일은 일단락지었다고 할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최광철검사는 좀더 생각해보고싶었다. 결혼식문제를 놓고 그의 딸 영숙이와 철우가 하던 말이 귀가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이때 광철은 원철이를 재판장에 세우기 앞서 법일군으로서 놓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것은 원철에게 래일에 대한 신심을 안겨주고싶은것이였고 가족들에게 앞날에 대한 믿음을 새겨주고 싶은것이였다. 

그러면 무엇을? 

어떻게?!“(277~ 278쪽) 

 

최 검사는 집으로 돌아와서도 마음이 가볍지 않다. 장원철이 재판에 회부되면 공민으로서의 신성한 권리와 의무를 잃게 될뿐더러 협심증이 심한 그의 처에게 누가 끼치고, 당장 결혼식을 해야 할 딸이 어려워지며, 신랑이 될 철우와 결혼식을 해주지 못하고 해외로 파견되는 부모들의 심중이 무거워진다. 수표란에 정녕 최광철의 이름을 써넣어야 하는가? 정말 다른 길은 없는가? 이런 생각으로 모대기는데, 아랫방에서 아내와 딸의 대화가 문사이로 들려온다. 대학에서 공부하는 딸이 아버지가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 식사도 하지 않은 채 침대에 누운 걸 보면 꼭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고 하니, 아내는 검사의 일이 워낙 신경 많이 쓰니까 그럴거라고 응대한다. 딸은 아버지의 직업을 거론한다. 세상엔 사람들을 기쁘고 즐겁게 하여 존경을 받는 직업들이 많고 많은데, 아버지의 검사직업은 사람들에게 벌을 주는 일이라고, 벌을 받은 사람들이야 제가 아무리 나쁜 짓을 했다 해도 아버지를 좋게 보겠는가고, 훗날 길가에서 만나도 인사는 고사하고 뒤에 대고 주먹질하지 않으면 다행일 거라고 주장한다. 아내가 쓸데 없는 소리라고 나무리니, 딸은 나름 주장을 편다. 

 

《보세요, 어머니. 학교선생님들이나 의사선생님들은 <우리 선생님>하며 누구나 존경하지 않나요. 또 당일군들은 그들대로 <우리 비서동지>, 인민반장까지도 <우리 인민반장>이라고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있지 않나요. 그런데 아버지 하시는 검사일은……》(279쪽) 

 

최광철은 생각이 많아져 자신을 거울 앞에 세워놓고 문답을 거듭한다. 

 

《장원철이가 자기자신이거나 영숙이가 당신의 딸이라면 그때에도 형사소송법의 칼을 날카롭게 들것인가? 

물론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형법은 범죄에 대한 형사책임 및 형벌제도를 바로세워 사회주의제도를 보위하고 인민들의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을 보장하는것이 사명이다. 때문에 법앞에서 뒤걸음칠수 없다! 

그러나 법죄를 저지른자라고 하더라도 자기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자수한자에 대해서는 용서할수 있다고 형법에 성문화되여있지 않는가. 

범죄자를 적발하고 처벌하는것만이 아닌 군중을 당의 두리에 묶어세우는것이 숭고한 의미에서 우리 법일군들의 사업실적이 아닌가.》(279~ 280쪽)

 

극과 극에서 오락가락하면서 몸부림치던 최광철 검사는 자정을 넘기고 새날이 시작되는 새벽 2시에야 결심을 내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찬물에 얼굴을 씻고는 책상에 마주 앉는다. 그는 백지를 꺼내 일사천리로 펜을 달린다. 글을 다 썼을 때 방송에서는 개시곡 《애국가》의 선율이 울려나온다. 

 

며칠 후 도당 회의실에서 최광철 검사는 검찰소 일꾼들과 함께 김정은 최고영도자의 말을 전달받는다. 도당 책임일군이 연탁에 나와 서서 말한다. 

 

《**** ***께서는 화재사건으로 창고가 불타버린 손실도 큰데 거기에 량심적인 일군까지 형사책임을 지우는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당조직에 보고한 법일군의 립장을 당중앙은 지지한다고, 병든 자식, 상처입은 자식을 탓하지 않고 사랑과 정으로 품어주고 또다시 일으켜세워주는것이 우리 당의 품이라고 하시면서 99프로의 나쁜 점에 단 1프로의 좋은 점, 량심이 있다면 대담하게 믿어주고 포섭하여 재생의 길로 이끌어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그러시면서 상두정밀기계공장 화재사건을 심의한 일군과 같은 법일군들이 있기에 우리 조국이 강위력한 일심단결의 조국으로 세상에 빛나고있다고 뜨겁게 말씁하시였습니다.》(280~ 281쪽) 

 

모임장에서는 만세소리가 터져나온다. 장영숙은 신금순의 품에 안겨 이게 꿈인가면서 울고 신금순도 딸을 껴안고 흐느낀다. 모임에 참가한 사람 치고 울지 않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 

얼마 후 장원철이 최광철 검사에게 장영숙의 결혼식 날짜를 알리면서 꼭 참가해달라고 부탁한다. 검사동지가 안 오시면 결혼식상을 신랑신부가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허나 최 검사는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렇게 하자면서 트렁크를 하나 내주고 이걸 가져가면 제가 참가하는 것으로 될 것이라고, 집에 가서 열어보라고 말한다. 

 

《트렁크안에는 장원철이 재판을 받게 되는 경우 영숙이의 결혼식을 자신이 차려줄 결심으로 마련했던 신부에게 줄 례단품들이 가득 들어있었던것이다.》(282쪽)  

 

다음날 결혼식을 한 영숙의 부부가 검찰소로 찾아와 거듭거듭 인사를 한 다음 깨끗하게 만든 봉투 하나를 책상 위에 놓고 간다. 무엇일까? 최 검사는 물론 방안에 같이 있던 책임검사와 동료들의 눈길이 일시에 봉투에 쏠린다. 고개를 기웃거리며 봉투를 뜯어본 광철의 눈길이 번쩍하고, 동시에 곁사람들도 약속이나 한듯이 입을 하 벌린다. 

봉투 안에는 기쁨과 행복 속에 밝게 웃는 신랑신부의 사진이 들어있고 사진 뒷등에는 또박또박 정성들여 쓴 글이 있다. 

 

《이 사진을 우리 검사동지에게 드립니다.》(위와 같은 쪽) 

 

부서의 동료들이 사진을 돌려보면서 정말 이번에 광철 검사가 좋은 일을 했다고 감탄을 아끼지 않을 때, 최 검사는 전날 딸이 하던 말을 떠올리면서 오늘 내가 “우리 검사라는 이 고귀한 부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자기 직무를 두고 이때처럼 가슴흐뭇하게 생각해본 때는 일찍이 없었다. 

 

1년이 지나 최광철 검사는 장원철이 상두정밀기계종합공장 지배인으로 사업한다는 신문기사를 읽으면서 다시금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한다. 김정은 영도자의 믿음과 신념의 철학을 더더욱 심장으로 체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회상을 마친 최광철이 마침 방송에서 나오는 김정은 송가를 들으면서 영도자 덕에 인민 모두가 행복하고 복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소설이 끝난다.

이북 소식 하면 아무개의 숙청, 죽음 따위가 약국의 감초처럼 끼이는 게 이남의 현주소라 원인이 분명한 화재사건을 놓고 숱한 사람들이 고민하고 최고영도자까지 놀래킨다는 소설이 실감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법조인이 당조직에 보고를 올리고 최고영도자가 최종판단을 내리는 설정(?)도 사법독립원칙에 위배되는 사법간섭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또한 북에서 뭔가를 선전하면 그런 현상이 드물다는 걸 반증하므로 실제로는 유도질문과 고문, 학대가 흔해빠졌다고 주장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설가 치고는 허구와 과장능력이 돌출하지 않은 70대 작가가 품을 들여 그려낸 이북 법조인의 모습과 고뇌를 있는 그대로 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10월은 자주시보 후원확대의 달입니다.

기자는 퍽 늘었는데 점점 정기후원이 줄어들어 후원히 절실한 상황입니다.

애독자 여러분들의 따뜻한 후원격려부탁합니다.

관련 기사 바로 가기 : www.jajusibo.com/sub_read.html?uid=35885


트위터 페이스북
 
광고
 
남과 북의 판 검사 김삿갓 17/10/29 [09:12] 수정 삭제
  남쪽의 검새놈들은 힘없는 낙오자,푸른옷의 죄수들앞에서는 큰소리치고 욱박지르고 돈많고 힘샌 범법자들에게는 솜방망이 휘두르며 권력의 개노릇하는놈들인데 북녘의 법일꾼들은 다르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