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일침359] 반북보도의 단계별 변화와 허점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7/11/11 [23:16]  최종편집: ⓒ 자주시보
▲ 함북도 북부지구 홍수피해지역 새 살림집 건설을 끝내고 기뻐하는 인민군 건설돌격대, 반북언론들은 짓고 나니 내부 마감이 어저고 저쩌고 또 트집이다.    ©자주시보

 

어쩌다나니 한국과 일본언론을 청소년시절부터 접한 덕에 대북보도 혹은 반북보도의 변화(진화가 아니다!)를 죽 살펴보게 되었고 그 틀도 간파하게 됐으며 나아가서는 허점들도 많이 발견하게 되었다. 

 

19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한국신문들이 조선(북한)관련보도를 낼 때에는 늘 앞에다가 “도쿄에서 청취한 북한 방송에 의하면” 따위 수식어를 붙이곤 했다. 한국에서 조선라디오방송을 듣는 자체가 불법이었으므로 실제로는 서울에 앉아서 방송을 듣고 기사를 썼더라도 사법당국이 트집잡지 못하도록 미리 설치하는 방패다. 또한 1980년대 말에는 북한 소식의 원천지가 일본으로 규정되는 경우도 많았다. 남과 북이 막혔으니 통하지는 못하고 중국, 소련과도 비수교상태라 내왕이 많지 않다다니 일본이 두드러졌던 모양이다. 일본을 거드는 대북보도들이 많았다는 건 오보로 밝혀질 경우 책임지지 않고 발뺌할 여지를 남겨두려는 수단으로도 짐작된다. 

 

2~30년 거쳐 국제판도와 반도의 정세가 많이 바뀐 지금은 한국 언론들이 마음 놓고 “북한 소식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식의 기사들을 쏟아낸다. 소식통이 소식을 전한 지점에 대해서는 중국이라고 찎는 경우들도 있으나 아예 지점을 밝히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그런데 지점을 밝히지 않고 소식통의 성명도 알리지 않다나니 기자가 서울이나 한국의 어느 고장에 앉아서 꾸며내지 않았나는 의혹을 피하기 어렵다. 

 

한편 일본언론들은 조선소식을 전할 때 “서울발”을 선호한다. 함경북도가 어떻소 따위 “카더라”통신이야 중국의 변경지대에서 얻는 게 훨씬 가능하겠는데도, “서울발”을 고집한다. 중국의 어디에서 주어들었다고 밝히면 기자나 언론사가 다시는 중국에서 활동하기 어려울까봐 걱정해서인지 아니면 국제도시인 서울을 언급하면 그들의 주요목표인 일본독자나 시청자들이 보다 신뢰하리라고 가늠해서인지는 단정하지 못한다만, “서울발”을 외치는 바람에 필자 같은 사람들의 신뢰는 얻기 어렵게 된다. 함경북도에서 일어난 비밀스러운 일을 서울에 있는 사람이 남들보다 더 잘 알 이유가 충분하지 못하니 말이다. 

 

위는 대북보도 혹은 반북보도의 시기에 따른 단계별 변화이다. 

 

그밖에 동일 대상물에 대한 보도들도 시기에 따라 단계별로 변화한다. 예를 들어 중국과 조선 접경지대를 가본 사람들이 아주 많은데, 일부 기자들은 중국 쪽의 모습과 조선 쪽의 모습을 찍어서 대조하면서, 강 북쪽에는 층집들이 즐비하지만 강 남쪽에는 단층집들이 초라하다고 쓴다. 이것이 1단계다. 

 

조선이 국경지대에서 층집들을 짓기 시작하면 주민들이 사실은 단층집을 더 선호한다느니, 강변의 집들을 허물고 강변에서 떨어진 곳에다가 층집들을 짓는 건 밀수와 탈북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느니, 주민들이 강제철거로 고통을 겪는다느니 등등 보도가 나온다. 이것이 2단계다. 

층집들이 다 지어지고 조선언론들이 주민들의 입주소식을 보도하면, 그 층집들이 겉보기에 멀쩡할 뿐 사실을 부실공사여서 벽에서 물이 흐르고 어쩌고 하는 보도들이 나온다. 이것이 3단계다. 

층집이 없으면 없다고 깔보고, 층집들을 짓기 시작하면 그 의도와 의의를 비난하고, 층집들이 다 지어지면 그 품질을 비하한다. 조선이 어떻게 하든지 비난과 비하의 건덕지를 찾아내는 게 반북매체들이라, 그 능력 하나는 참으로 탄복해 마지 않을 지경이다. 

 

10월 말부터 일본언론이 앞서고 한국언론들이 뒤따라 보도한 양강도 혜산시의 국경지대 층집건설보도는 지금 2단계에 처해있으니, 이제 연속보도가 3단계로 발전하리라는 건 불 보듯 뻔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2단계에서 조금 특이한 주장이 나왔으니, 혜산시의 주민철거 계획에 정통한 취재협력자 모 씨가 ”탈북과 밀수로 유명한 지역이니 안전지대를 만들어 여기 국경선을 ‘2번째 38선(휴전선 DMZ)’으로 만들라는 지시가 있었다”라고 당시를 회고했다는 설이다. 

 

일부 언론들이 38선을 기사 제목에도 집어넣었는데 필자로서는 믿어주기가 좀 어려운 설이다. 38선이 반도의 남북을 가르는 선으로서의 기능을 잃은 뒤  60여 년이 지나갔고 조선에서는 남북을 가르는 선을 거들 때 군사분계선(휴전선)을 언급하는 게 관례다. “원한의 군사분계선”이라는 식으로 한스럽게 여기는 존재이고 따라서 하루 빨리 없애야 할 대상으로 간주된다. 게다가 군사분계선은 너비 4킬로미터나 되고 지뢰를 비롯한 각종 장애물들이 설치되었으니 국경의 강변 일대를 어떻게 꾸미든지 분계선과는 비스므레하기도 어렵다. 압록강과 두반강의 길이를 합치면 수천 리인데 혜산 일대에서만 뭘 만든다고 해서 “2번째 38선”이 되겠는지도 의문이다. 

기자나 편집이 38선 뒤에다가 괄호를 치고 “휴전선 DMZ”를 넣어주어 보다 자연스럽게 보이려고 애를 쓰기는 했다만, 오히려 마사지했다는 느낌을 주면서 신뢰도를 떨어트린다.  

38선 언급은 분명한 허점이나 한국 일부 세력들의 구미에 맞으므로 널리 퍼진 모양이다. 

 

집 문제보다 더 오래 그리고 더 자주 반북보도들에 등장한 건 식량문제다. 거기서도 군인들의 배고픔과 약탈은 그야말로 단골이다. 한두 번 들으면 조선군인들과 백성들을 동정하면서 조선 지도층을 증오할 수도 있겠다만, 어슷비슷한 말들과 글들을 10년 이상 접하면 둔감해지면서 주장 자체를 의심하게 된다. 

10여 년 전 김정일 시대에 필자는 중국의 국경부근 도시에서 조선인민군이 드러내놓고 물건들을 빼앗는다는 소문을 들었다. “장군님 군대”라고 우쭐대면서 차를 타는 질서를 지키지 않고 물건들도 막 빼앗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빼앗고 빼앗긴다는 나라가 요란스러온 소동이나 폭동과는 인연이 없이 그 뒤에도 위성(한미일은 장거리 로켓이라고 고집)들을 쏘고 신형 미사일들을 잇달아 선보이며 핵시험들도 진행한다는 거야말로 불가사의하지 않은가! 

 

대북보도 혹은 반북보도 30년 관람(?) 경험에 의하면 기사들이 조금씩 구체화되면서 정교함으로 신뢰를 얻으려 노력함이 알린다. 헌데 바로 그런 노력 때문에 기사 전반의 신뢰도를 떨어트리는 경우들도 있다. 

최근의 예를 하나 들어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표창을 받았다는 43여단 군인들이 양강도에서 주민들을 약탈한다고 찍은 다음 북한 전역에서 군인들의 약탈행위가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전한 기사가 나왔다. 예전에 몰밀어 인민군이 배고파서 싸울 능력도 의지도 없다는 식의 기사들보다는 훨씬 정교하다. 그런데 “주민들은 군인들을 ‘토벌대’, ‘마적대’, ‘마흐노 부대’로 부르며 경계를 한지 오래다. 북한 당국이 인민군을 ‘인민의 군대, 정의의 군대’라고 선전하고 있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고 주장하고 글의 맨 뒤에 설명을 붙인 것은 사족이다. 

 

“한편, 마흐노 부대는 1917년 10월 혁명 이전 ‘차르 러시아’ 시대에 주민들을 약탈하던 악명 높은 부대로 알려져 있다.”

 

“마흐노 부대”라는 개념을 한국인들이 모르리라 짐작하여 친절하게 설명을 해줬지만, 기본사실이 틀렸다. 

마흐노(1889~ 1934)는 무정부주의자로서 1908년에 경찰 살해사건으로 감금되었다가 1917년 2월의 자산계급혁명으로 차르 러시아 정부가 전복된 다음 석방되어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해 11월 7일에 레닌이 영도한 볼쉐비크의 10월 혁명(러시아 옛날 역법으로 10월이었음)이 일어났고, 뒤이어 신생 소베트정권을 반대하여 미국, 영국, 일본 등 여러 자본주의국가들이 무장간섭을 하였으며 러시아 내부의 반공분자들도 소베트 정권을 뒤집으려고 하여, 국내전쟁이 몇 해 진행되다가 소련공산당이 영도하는 붉은 군대(적군)의 승리로 끝났다.  

소련 내전 하면 적군과 자산계급 및 차르옹호자들의 군대--백군의 대립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꽤나 되지만, 실은 훨씬 복잡했으니 푸른 색 군복을 입어 녹군으로 불린 군대 등 각종 사조와 주의주장을 내건 군대들이 뒤엉켜 싸웠다. 그 가운데서 마흐노가 거느린 부대는 최대 몇 만 명까지 이르렀는데 백군에 붙어 적군과 싸우다가는 적군에 들어가 백군과 싸우고 자신의 독립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하여 적군도 백군도 마흐노 부대를 미워하다가는 끌어당기기도 하였으니, 이는 마흐노 부대의 성원 구조가 복잡하여 무정부주의, 우크라이나 독립, 군벌할거 등 사상들의 집합체였기 때문이다. 볼쉐비크들은 마흐노 부대를 “부농무장”, “비적무리”라고 단정했는데, 백군과의 싸움에서는 한때 마흐노와 합의를 맺고 적군의 독립사단으로 인정했다가 백군소멸 뒤 마흐노부대를 소멸했다. 마흐노 본인은 1921년 8월에 외국으로 도망갔다가 1934년에 쓸쓸히 죽었다. 

 

이 인물은 “마흐노 운동”, “마흐노 비적무리”라는 단어들을 만들어 냈고 소련에서는 악당으로 간주되었다. 소련 해체 뒤 우크라이나의가 탈소련화를 다그치면서 소련을 반대한 사람들은 모두 영웅으로 올리추다나니 근년에는 우크라이나에서 영웅시된다. 허나 그의 부대가 오합지졸의 무리였고 군기가 형편 없었다는 건 수많은 역사자료와 문학예술작품들이 보여준다. 알렉산드르 톨스토이의 3부작 장편소설 《고난의 길》에 마흐노 비적무리가 직접 등장하고 니콜라이 오스트롭스키의 장편소설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에서도 마흐노 비적들이 언급된다. 일부 소련영화들에도 나온다. 소련 소설들이나 영화들을 본 사람들이 약탈자들을 가리켜 “마흐노 부대”라고 욕한다는 설정 자체는 나름 합리성을 갖는다. 허나 마흐노 부대가 존재하고 활약한 건 1918년 여름부터 3년 쯤 되는 기간으로서 그 무슨 “차르 러시아 시대”가 아니라 차르 정권이 붕괴된 후의 내전 시기이다. 

 

소련 소설들이나 영화들을 제대로 본 조선사람들은 절대로 그런 해석을 할 리 없다. 가능성은 2가지다. 하나는 소련소설들이나 영화들을 보기는 했으나 제대로 보지 않은 조선사람 이나 탈북자가 설명했을 가능성이다. 다른 하나는 소련소설들과 영화들을 전혀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러시아와 소련의 역사도 모르는 한국사람이 들은 풍월로 설명했을 가능성이다. 

어느 경우든 거친 솜씨로 웃음거리를 만들어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한때 중국에서는 기독교문화에서 나온 말이 유행되었다. 

“人类一思考,上帝就发笑。(인류가 사색하기만 하면 하느님이 웃는다)”

반북매체들이 보도를 내놓기만 하면 조선사람들이 웃는다고 말해도 되겠다. 필자 같은 해외인사마저 허점들을 간파하고 웃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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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시민=일제시대 일본놈 논리 11111 17/11/12 [01:40] 수정 삭제
  중국-사람,국민,시민,인민,백성- 다 지도자 뽑은 권한이 없다, 청나라, 시대 정치 권력이다. 즉 , 똥통(정치 현상)에 빠져서ㅡ 똥묻은 한국의 상황를 비판하는것이다, 중국민은, 똥통에 빠져서, 내 구데기가 크다고 자랑하는것이다, 그냥 우선 똥통에서 나오고 이야기 하기를 바람, 옆에서 똥묻은 사람(한국의 정치 부정)욕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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