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일침371] 김정남 관련 책 쓴 일본언론인, 또 거짓투성이 책 출간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7/12/02 [01:04]  최종편집: ⓒ 자주시보

 

 

일본기자 고미요지 씨는 한때 “김정남 단독 인터뷰”로 이름을 날렸고, 김정남과 주고받은 이메일들을 모아서 책도 내놓았으니, 한국에서는 《안녕하세요, 김정남입니다》라는 제목으로 번역출판되었다. 금년 2월 말레이시아 공항 사망사건 발생 후, 일본인들에게서 당신의 책 때문에 김정남이 죽었다는 비난을 받았다는 고미요지 씨는 김정은 위원장을 논하는 신작을 내놓는다는데, 한국어로 번역출판예정이고, 특별허락을 받은 모 언론사가 미리 일부 내용을 “日 언론인 고미요지, 北 김정은을 말하다”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다. 필자는 호기심을 갖고 몇 편 보다가 거듭거듭 웃음 끝에 더 읽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김정은의 이복 누이 설송은 정은보다 열 살 정도 많다. 설송의 이름은 일찍이 알려졌는데 김일성 주석이 지어주었고 그가 인정한 유일한 손녀였기 때문.” 

 

필자가 지난 10월 초에 정문일침 338편 ”김일성주석, 김평일의 손녀도 사랑으로 직접 키워“(http://www.jajusibo.com/sub_read.html?uid=35899)에서 밝혔듯이, 중국에서 2002년 4월에 출판된 책 《김일성과 장울화(金日成和张蔚华)》에 벌써 김일성 주석이 그 누구를 유일한 손녀로 인정하지 않았음이 공개되었다. 헌데 반도관련보도를 오래 했고 중국에서도 몇 해 상주근무했다는 고미요지 씨가 2017년에도 어디서 나왔는지도 불명한 설을 버젓이 책에 써넣으니 우습지 않을소냐! 중국 근무기간에 소식통들이나 찾아다니다나니 실체서점들과 인터넷서점에서 쉬이 찾아볼 수 있는 조선(북한)관련 자료들을 무시했기 때문일까? 

다른 예를 들어보자. 

 

“북한 공식 전기에는 김일성 장군이 1932~45년 일본군과 10만 번 전투를 벌여 모두 이겼다고 돼 있다. 하루 약 20회 꼴인데 이것은 후세의 지나친 각색이 아닐수 없다.” 

 

필자는 조선에서 나온 전기들과 빨치산 역사책들을 많이 보았으나 “10만 번”에 대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단 그런 수치가 기록되더라도 김일성 장군의 지휘와 영향 아래 중국 동북(만주)과 조선 북부에서 일어난 전투들을 다 합쳤으리라고 추측된다. 그 광대한 지역에서의 전투를 모두 김일성 장군과 결부시킬 수 있느냐에는 의문을 던질 수 있겠지만, 조선의 책들이 김일성 장군 본인 혹은 직접 거느린 부대(조선에서는 “친솔부대”라고 표현한다)가 10민 번 전투를 벌였다고는 하지 않았다. 적어도 필자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그러하다. 김일성 혁명역사관련 연구서적들과 회상기들이 수두룩하지만 10여 년 간 “하루에 약 20회 꼴”로 싸웠다는 주장은 어디에도 없다. 가장 어려웠던 100여일 “고난의 행군”기간에 하루에도 크고작은 전투들이 여러 번 벌어졌다는 회고담은 있어도. 고미요지 씨의 “각색”설은 계산에 하도 밝은 일본인이 나뭇잎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한 결과라고 해야겠다. 

 

가장 황당한 내용은 김정은 위원장의 어머니 고영희(고용희라고도 표기됨)와 관련된 부분이었다. 

 

“고용희는 세번째 국모가 되는 셈. 고용희가 제주도 출신이기 때문에 북한 내부에서도 제주도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일종의 ‘성지’로 여겨졌던 것이다. 

……

북한 TV에서 12부작 드라마 ‘한라의 메아리’가 2003년 방송된 적이 있다. 제주 해녀가 반일•반미 투쟁을 벌여 마지막엔 평양에 간다는 줄거리. 주인공은 고지니로 고용희와 아주 닮았다.

극성을 보여준 우상화 작업은 2004년에 고용희가 죽은 뒤 김정일의 지시로 중단됐다.”  

 

《한라의 메아리》의 여자 주인공 이름은 고진히로서 고지니가 아니다. 일본인이 가다카나로 “지니”라는 음을 표기했더라도 한글에서는 “진히”라고 정확히 옮겨야겠는데, 엉뚱하게 수십 년 전의 조선사람이름에 쓰일 가능성이 희박한 “지니”로 적었으니 번역자가 역사를 모르고 북을 모름을 드러냈다. 

 

그리고 고진히가 어떻게 “고용희와 아주 닮았다”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성이 같은 고씨이고 뿌리가 제주도라는 것 외에는 나이도 경력도 비슷한 점이 전혀 없는데 드라마(조선에서는 텔레비죤련속극이라고 부른다) 《한라의 메아리》가 고영희-고용희 우상화 작업의 일환이라고 우긴다면, 《한라의 메아리》드라마와 원작 동명장편소설을 본 사람들이 얼마나 우습게 여기겠는가. 한국식 표현을 빌면 “일고의 가치도 없다”. 

 

▲ 2000년 출판된 장편소설 《한라의 메아리 제1부》     © 자주시보, 중국시민


장편소설 《한라의 메아리 제1부》는 2000년 8월 문학예술종합출판사가 내놓았고 저자는 양의선이다. 책 뒤의 1999년 9월에 쓴 “작가의 말”에서 저자는 자신이 1942년 9월 27일 중국 남방 어느 도시에서 태어났고 광복 후 귀국했는데 전쟁기간에 아버지를 따라 월북했고 그때 흩어진 맏누이와는 소식이 끊어졌다고 소개했다. 뒤이어 저자는 노동당의 배려로 인민학교 5년, 중학교 3년, 고급중학교 3년, 대학 5년에다가 작가양성반 2년까지 합쳐서 무려 18년 간을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오히려 장학금과 교복, 학용품을 받아 가며 공부했다고 고마움을 드러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자신을 작가로 이끌어주었고 조국통일주제를 쓰고 싶어하는 소망까지 헤아려 “조국통일을 위해 싸우다 희생된 강규찬, 고진히부부를 원형으로 한 장편소설을 창작할데 대한 크나큰 믿음을 안겨 주시였다”(431쪽)고 적었다. 

작품이 때늦고 미숙하다고 자평한 저자는 맨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이 작품 창작과정자체에도 분렬의 고통과 모순들이 배여 있다. 나는 제주도에 한번 가보지 못한채 1부를 썼다. 또 지리산 한귀퉁이도 디뎌보지 못하고 2부를 써야 한다. 작가한테는 변명이 있을수 없다지만 분렬로 인해서 생긴 오점들을 어쩔수 없다. 오직 통일만이 그 오점도 씻어 줄것이다. 통일, 통일만을 바라는 그 열망이 남달리 힘든 나의 창작과정을 떠밀어 줄것이다.”(431쪽) 

 

필자는 10여 년 전 책을 얻어 1940년대의 순박하고 무식한 해녀 고진히가 반일활동가 강규찬의 영향으로 차차 세상물정에 눈을 뜨게 되어 반일, 반미 투쟁에 나서다가 1948년에 선거자 명부를 갖고 간난신고 끝에 평양까지 가서 중요한 대회에 참가하는 내용을 흥미롭게 본 다음 2부가 궁금했으나 아직까지 2부를 보지 못한 게 무척 유감이다. 

필자가 알기로는 역사인물 고진히의 존재를 북에서 부각시킨 사람은 비전향장기수 이인모 선생이다. 

 

▲ 한국에서 출판된 이인모 수기     © 자주시보, 중국시민

 

1990년대 초에 이인모 선생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북에서 수기를 전재했는데, 고진히(수기에서는 “고진희”로 표기)의 죽음이 조선 잡지를 보던 필자에게 굉장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한국에서 출판된 내용을 그대로 따온다. 

 

“52년 1월 대성골에서 국군의 들것에 담겨 포로가 된 나는 광주포로수용소에서 3개월을 지낸 후 전라남도 경찰국 유치장으로 옮겨졌다. 처음 며칠 간은 검사실을 들락날락하며 검사취조를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라산 빨치산 출신인 고진희 동지가 붙잡혀왔다. 당시 백운산에서는 광주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는 동지들을 구출하기 위한 전투가 준비되고 있었는데 고동지는 이 전투를 위해 백운산에서 정찰임무를 띠고 광주로 들어왔다가 체포되었던 것이다. 

고진희 동지가 체포됨으로 해서 광주포로수용소 습격계획은 무산되었지만 우리는 산에 있는 동지들의 배려에 무한한 감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그때 취조관들의 혹독한 고문에도 의연히 버티던 고진희 동지가 취조를 마치고 유치장에 돌아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한밤중에 치마를 뒤집어쓰고 변소에 뛰어든 것이다. 전라남도 경찰국 유치장의 변소는 흔히 시골 농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매우 깊었다. 

그 여성을 잃고 우리는 슬피 울었다. 자기책임을 완수하지 못한 죄책감으로 죽음을 택한 여인. 우리는 그런 용기도 없어 이토록 시달리면서도 삶을 이어가고 있는데…. 그는 죽었지만 죽음으로써 승리하였다.”

 

이인모 선생의 수기 덕분에 조선에서는 1948년에 평양에 왔었다는 기록이 있을 뿐 최후를 잘 모르던 고진히의 결말을 확인하게 되었고 뒷날 애국열사능에 강규찬, 고진히 부부의 가묘를 만들었다. 

작가 양의선은 아마도 이 선생의 수기에서 충격을 받고 《한나의 메아리》를 쓰게 되지 않았을까? 자료의 빈약함을 좀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저자의 상상력에 무척 감탄하게 된다. 헌데 드라마 《한나의 메아리》를 고용희 우상화와 결부시키는 누군가의 비약적인 상상력과 일본기자의 베끼기에는 질리지 않을 수 없다. 

고미요지 씨의 책이 지금 알려진대로 나온다면 세상의 웃음거리로 되기 마련인데, 조선이 어떤 태도를 취할까? 

 

일본 《아사히신붕》과 TV아사히의 조선관련 보도들에 대해서는 11월 17일 조일교류협회 대변인이 “조선에 대한 허위보도를 한 일본언론의 책임있는 자들에게 해당한 제재가 가해질 것”이라고 언명하면서 해당한 제재가 가해질 것이라고 단언했는데, 고미요지의 오류투성이 책은 아예 무시해버릴 확률이 높겠다. 

 

고미요지 씨의 책을 필자는 절대로 사보지 않을 것이다. 이것도 일종 무시라, 어떤 사람들이 “종북”딱지를 붙일지도 모르겠다. 미리 웃어본다.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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