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절의 추학11] 고급 변절자들의 비참한 최후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7/12/24 [22:13]  최종편집: ⓒ 자주시보

 

변절자의 대명사로 되었던 푸쯔가오 

 

근년에 중국공산당의 변절자 하면 변절의 추학 2편(www.jajusibo.com/sub_read.html?uid=29257)에서 소개한 꾸쑨장(顾顺章)이 제일 먼저 꼽히지만, 1960년대 초중반에는 변절자의 대명사가 푸쯔가오(浦志高, 보지고)였다. 실제 역사인물이 아니라 1961년 말에 출판되어 엄청난 인기를 누린 장편소설 《붉은 바위(红岩, 사진)》에 나오는 인물이었다. 

 

▲ 장편소설 《붉은 바위》, 중국청년출판사 출판     © 자주시보, 중국시민

 

수감 경력자들이 창작한 장편소설 《붉은 바위》는 113쇄를 기록하고 2차례 재판하면서 중국어판본만 해도 천만 권 이상 팔렸으며 여러 가지 소수민족 언어로도 옮겨졌으며 외국어들로도 번역되었다. 또한 예술영화 《열화 속에서 영생(在烈火中永生)》, 가극 《쟝제(江姐,강누나, 혹은 강언니)》와 수많은 지방극으로 개편되었고 드라마도 몇 번 촬영된 데다가 유명한 노래들도 파생시켰다. 

 

▲ 붉은바위 저자 뤄광빈(罗广斌, 라광빈, 1924~ 1967), 양이옌(杨益言, 양익언, 1925~ 2017)     © 자주시보, 중국시민

 

소설은 1948년에 국민당 치하의 충칭(重庆, 중경) 중공 지하조직의 활약으로부터 시작하여 특무들과 변절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체포된 다음 특별감옥인 짜즈뚱(渣滓洞, 사재동)과 빠이꿍관(白公馆, 백공관)에서의 투쟁으로 이어지다가, 1949년 말의 충칭 해방으로 끝난다. 지하당원들과 수감자들의 투쟁을 통해 영웅군상들을 그려냈는바, 국민당 특무조직활동과 중공당원들의 감옥투쟁을 소재로 삼은 작품 치고는 최고로 꼽힌다. 

 

소설에는 갖은 혹형을 이겨내고 지조를 지키는 공산당원들이 많이 나오는 반면, 변절자는 하나 뿐이니 중공 사츠취(沙磁区, 사자구) 위원회 위원으로서 경제사업을 책임진 푸쯔가오다. 소총명과 조급증, 출세욕 때문에 당의 비상용 연락소로 만들어진 싸핑(沙坪, 사평)서점 규모를 제멋대로 확대하고 진보적인 서적과 잡지들을 판매하다나니 국민당 특무조직의 눈길을 끌게 된다. 

가난뱅이로 위장하여 진보적인 서점에 와서 어슬렁거리는 “훙치터우(红旗特务, 붉은기 특무, 진보적인 척 하면서 공산당과 진보정당, 단체에 잡입하여 활동하는 요원)” 쩡커창(郑克昌, 정극창)에게 새내기 점원 천쑹린(陈松林, 진송림)만이 아니라 푸쯔가오도 속아 넘어간다.  특무들에게 잡힌 푸쯔가오는 소설의 주요인물들인 쉬윈펑(许云峰, 허운봉), 쟝쉐친(江雪琴, 강설금) 등 간부들을 팔아먹어 지하당조직에 엄중한 해를 끼친다. 

《붉은 바위》의 인물들은 거개 원형이 있다. 열사들이 대체로 성이나 이름을 조금씩 바꾸어 등장하고, 특무두목들도 같은 방법으로 나온다. 

 

▲ 붉은바위 소설 속 쉬윈펑, 쟝쉐친, 위신쟝(余新江, 여신강), 치샤오쇈(齐晓轩, 제효헌)의 원형들인 쉬졘예(许建业, 허건업), 쟝주윈(江竹筠, 강죽균), 위주썽(余祖胜, 여조승), 쉬샤오쇈(许晓轩, 허효헌) 열사들(왼쪽 위부터 시계바늘방향으로)     © 자주시보, 중국시민

 

▲ 붉은바위 소설 속 국민당 특무두목들인 쉬펑페이(徐鹏飞, 서붕비), 옌쭈이(严醉, 엄취), 선양자이(沈养斋, 심양재)의 원형들인 쉬위안쥐(徐远举, 서원거), 선쭈이(沈醉, 심취), 저우양하오(周养浩, 주양호), 왼쪽으로부터. 이들은 모두 사로잡혀 전쟁범관리소에서 개조되었는바, 특히 선쭈이는 1980년대에 많은 회고문장을 썼다.     © 자주시보, 중국시민

 

▲ 1991년 베이징에서의 선쭈이 일가. 죄악을 철저히 참회한 선쭈이는 만년에 전국 정치협상위원회 위원으로서 높은 대우를 받았다.     © 자주시보, 중국시민


이처럼 작중 인물과 실존 인물들이 고도로 일치되므로 1980년대부터 원형이 누구냐를 밝히는 바람까지 불었다. 그런데 푸쯔가오는 딱 맞먹는 인물이 없었다. 뒤늦게 밝혀졌지만, 당년에 실제로는 변절자들이 여럿 생겨났고 푸쯔가오는 그런 인물들을 합성한 전형적인 형상이었다. 필자를 포함하여 《붉은 바위》팬들이 놀란 건 변절자들의 지위는 충칭의 한 개 구역 위원회의 경제담당 위원이라는 소설의 설정보다 훨씬 높았던 점이었다. 글쎄 충칭시당 위원회의 1인자가 변절하다니! 12명 변절자 가운데서 5명이 영도간부였다는 건 심각한 교훈을 남긴다. 

 

각급 당조직의 1인자들이 변절 

 

푸쯔가오의 원형은 3명 이상으로서 첫째는 런다자이(任达哉, 임달재)이니 지하당 연락원이었던 그는 1948년 충칭시 당위원회의 기관지 《팅진바오(挺进报, 정진보)》 파괴사건의 첫 변절자였다. 항일전쟁기간에 국민당의 중앙인쇄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했고 실업한 뒤에는 국민당 특무조직 군사통계국의 통신원으로 일했으며 1945년에 경력을 속이고 공산당에 가입했다가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자 변절해버렸다. 그 직위는 높지 않았으나 여러 사람들의 연락방식을 알다나니 파괴력이 강했다. 그가 고발한 첫 사람이 양칭(杨清, 양청)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하던 충칭시당 위원회 위원 쉬졘예(许建业) 열사였으니 소설에서는 쉬윈펑(许云峰, 허운봉)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두 번째 원형은 충칭시 공작위원회(工作委员会 줄여서 꿍워이工委, 중국어어세 꿍쭤工作는 사업, 일이라는 뜻을 가지는 바, 한국어에서의 나쁜 뜻이 없다) 부서기 겸 조직부장이었던 란이쯔(冉益智, 염익지)였다. 

중국어에서는 쑤찌(书记, 서기)가 조선어에서 말하는 비서와 맞먹어 조직의 영도자이고, 미쑤(秘书, 비서)가 조선어에서 말하는 조력자인 서기이다. 이와 같이 정반대이므로 김정일 총비서를 중국어로는 “찐쩡르 중쑤찌(金正日总书记)”라고 옮긴다. 

1948년 4월 16일에 체포된 란이쯔는 그날로 조직을 팔아먹어 쉬졘예의 진짜 신분을 밝혔고 시당 위원회의 제1인자도 고발했다. 뒤이어 충칭 여러 구당 조직과 촨둥(川东, 천동, 스촨성 동부지역)의 지하당조직을 털어놓아 수많은 당원들이 체포되게 만들었다. 소설에서 푸쯔가오가 쟝쉐친을 잡히게 하는 장면은 바로 란이쯔의 경력에 근거해 창작되었다. 

 

세 번째 원형은 충칭시당 위원회 서기이며 촨둥(스촨성 동부) 임시위원회(川东临委) 위원이며 충칭시 공작위원회(工委) 서기로서 충칭시 중공조직의 1인자인 류궈띵(刘国定, 류국정)이었다. 특무들이 감시하는 장소로 갔다는 혐의로 잡혀서 신분이 밝혀지지 않았던 그는 란이쯔의 고발로 정체가 드러났다. 

1918년 생인 류궈띵은 일단 변절하자 1910년 생인 란이쯔보다 자기가 더 중요하고 잘 나가던 인물이었음을 과시하면서 특무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썼다. 하여 두 자는 다투어 비밀을 털어놓았으니 그 고발경쟁이야말로 사건에서 가장 추악한 현상이었다. 

 

이처럼 충칭의 중공 조직 1인자와 2인자가 변절했기 때문에 체포자가 백 명을 훨씬 넘겼고 충칭과 촨둥 일대의 당조직이 마비상태에 빠졌으며 불똥이 스촨성 서부에까지 튕겼으니, 류궈딩이 별명 “쩡얜징(郑眼镜, 정안경)만 제시한 촨캉(川康) 당조직의 1인자 푸화푸(蒲华辅, 포화보)가 체포되어 변절하여 2차례에 걸쳐 숱한 사람들을 털어놓는 바람에 넓은 지역의 당조직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다. 중공과 연계를 갖던 민주인사들도 더러 잡혔다. 

 

당조직 1인자들의 변절은 두고두고 화제와 연구과제로 되었고 푸화푸 같은 경우에는 평소에 편안히 보내기를 좋아하고 위험을 꺼리며 죽음을 겁내던 경력들이 밝혀지면서 부화타락이 변절로 이어지기 쉽다는 교훈을 뭇사람에게 알려준다. 

1910년 생인 란이쯔는 마르크스 레닌주의 이론에 밝고 입담이 좋아 많은 사람들을 교양했고 당원들 가운데는 그를 굉장히 숭배하면서 일거일동을 모방하는 사람, 요즘 말대로 하면 “광팬”들까지 생겨났다 한다. 헌데 그가 당에 받아들인 신입 당원들이 그의 고발로 체포되어 변절하지 않았으나, 그는 너무나도 쉽게 변절해버렸다. 이 역시 말 잘하고 아는 게 많은 것이 정치신념의 견정성과 꼭 정비례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중공 제7차 전국 대표대회 대표였던 투샤오원 

 

1948년 봄부터 시작된 대규모 체포에서 직위만 따지면 류궈띵과 푸화푸가 제일 높다. 그러나 공산당에는 “당내 지위”라는 특이한 개념이 있는바, 구체적으로 해석하자면 너무 길어지지만, 그 사건에서의 경우로는 직무가 좀 낮으나 전국 당대표대회 대표였기에 당내에서 남다른 존경을 받은 것이 사례이다. 그 인물의 이름은 투샤오원(涂孝文, 도효문)이니 촨둥 임시위원회 부서기(즉 류궈띵에 버금가는 2인자격) 겸 샤촨둥지방공작위원회(下川东地工委)서기였다. 

항일전쟁 초기에 입당한 그는 현급 당조직의 서기로 일하다가 중공 중앙 소재지 옌안(延安, 연안)에 가서 공부하였으며 1945년에는 스촨성 당조직의 대표 중 한 사람으로서 중공 제7차 전국대표대회에 참가했다. 이 대회는 변절의 추학 제10편(www.jajusibo.com/sub_read.html?uid=3671)에서 소개했다시피 역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 중국공산당 제7차 전국대표대회의 마오쩌둥 대표의 대표증. 좌석 번호가 씌어졌고(1열 7번) 주의사항이 인쇄되었다. 1. 절대로 남에게 빌려주거나 잃어버려서는 안됨. 2. 회의장에 출입할 때에는 문지기의 검사를 받아야 함.     © 자주시보, 중국시민

 

마오쩌둥 주석이 소지했던 것과 같은 대표증을 투샤오원도 가졌고 마오쩌둥 주석이 대회 막바지에 제시한 17가지 위험도 직접 들었다. 그처럼 중요한 대회의 참가자였기에 그의 “당내 지위”는 아주 높았다. 헌데 그는 체포와 고문이라는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고 마오쩌둥 주석이 예언했던 변절자 무리의 하나로 돼버렸다. 

 

1946년 7월에 스촨으로 돌아가서 샤촨둥 공작위원회를 맡다가 이듬해 10월 위에서 소개한 직무로 승진한 투샤오원은 그 지역 당조직의 중요한 지도자로서 푸청법학원(辅成法学院)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활동하다가 1948년 6월 11일 란이쯔의 고발로 체포되었다. 

1948년 스촨성의 당조직 파괴역사를 살펴보면 서기들이 너무나도 빨리 너무나도 쉽게 변절해버려 자꾸만 한숨이 나온다. 체포 당일 변절한 투샤오원은 수하의 공산당원 20여 명을 불었다. 

그중에는 장편소설 《붉은 바위》에서 리칭주(李青竹, 리청죽)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리칭린(李青林, 리청림 , 1913~ 1949) 열사도 있었으니, 그녀의 견정성과 투쟁이 투샤오원에게 큰 충격을 주어 그의 최후운명을 바꾸었다. 

 

▲ 붉은바위 소설의 원형인물인 리칭린 열사     © 자주시보, 중국시민


본명이 팡츙(方琼, 방경)인 리칭린은 1913년 스촨성 루저우(泸州, 노주, 명주 루저우라오쨔오泸州老窖 생산지)에서 태어나 26살 나는 1939년에 입당하여 고향과 충칭에서 여러 가지 활동에 종사했다. 1947년에 완현(万县, 만현) 농촌무장투쟁을 영도할 임무를 맡고 현당 위원회 부서기로 된 그녀는 현소재지 교외의 제6보 국민학교(第六保国民学校) 교원이라는 공개신분을 가졌다. 무장폭동 준비과정에서 1948년 4월 충칭의 당조직이 파괴되기 시작했고, 소식을 들은 완현 당조직이 대책을 취했으나, 투샤오원의 변절로 하여 리칭린과 동료 당원들은 6월 15일 낮에 체포되었다. 투샤오원 변절 고작 나흘 뒤의 일이다. 

 

리칭린이 시골의 조직들을 발전하고 장악했음을 변절자가 털어놓았기에 국민당 특무들은 그녀에게 큰 기대를 걸었으나, 그녀는 공산당원 신분마저 부인하면서 그저 교학에 바쁜 교원이어서 외부와의 접촉마저 적으므로 아무 것도 모른다고 딱 잡아뗐다. 매질과 혹형으로도 굴복시키지 못한 특무들은 짜즈뚱에서 심문할 때 그녀의 상급인 투샤오원을 불러다가 대질시켰다. 

법관이 투샤오원을 가리키면서 리칭린에게 아느냐고 물으니, 안다고 대답한 리칭린은 무슨 관계냐는 질문에는 원수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원수다, 여러 해 항전시기에 나와 그가 루현 소학교에서 교원으로 일할 때 그가 나를 쫓아다녔는데 나는 싫어서 거절했다, 너절한 녀석이 언젠가 억지로 입을 맞추려 하기에 내가 그 귀뺨을 때렸다, 그래서 그는 한을 품고 있다가 지금 당신들의 손을 빌어 보복하려 든다, 미친개처럼 마구 물어 내가 감옥살이를 살게 만드니 사람이 아니다, 투샤오원, 말해보라, 이렇지 않은가? 

가냘프나 억센 리칭린 앞에서 투샤오원은 엉겁결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감방에 돌아온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부끄러워 몸둘 바를 몰랐다고 고백했다. 

 

당시 체포된 사람들 가운데서 견정한 투사로 인정받은 사람들은 심문과 고문 앞에서 대체로 2가지 책략을 취했다. 하나는 리칭린처럼 아예 딱 잡아떼는 것, 하나는 인증, 물증이 확실하면 공산당원 신분은 승인하되 아무런 비밀도 털어놓지 않는 것. 

쟝주윈(1920~ 1949)은 잡혀들어갈 때 그 체소한 몸으로 고문을 겪어낼 수 있겠느냐는 동지들의 걱정을 자아냈으나 적들의 질문에 “상급이 누구이고 어디에 있는지, 하급이 누구이고 어디에 있는지 내가 다 안다. 하지만 알려주지 않겠다”고 대답했고, 댓가지를 손톱 밑으로 찔러넣는 등등 혹형들을 다 이겨냈으며 동지들의 위문에 “댓가지는 대나무로 만들었지만 공산당원의 의지는 강철로 만들어졌다”는 명언을 남겼다. 하여 쟝제(江姐,강누나, 혹은 강언니)라는 칭호를 얻어 그녀보다 나이가 이상인 사람들도 그렇게 불렀다. 지금도 “쟝제”는 소설과 가극의 예술형상이자 실존 혁명열사로서 존경을 받는다. 

 

1949년 말, 대륙에서 쫓겨날 운명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 쟝제스(蒋介石, 장개석)는 스촨성에 가서 직접 살인명령을 내렸으니 그 결과는 “11. 27 대학살(11·27大屠杀)”이라고 불린다. 딱 11월 27일의 사형만이 아니라 그 앞뒤 몇 번에 걸쳐 321명을 살육한 사건을 몰밀어 부르는 칭호이다. 예컨대 쟝주윈은 10월 28일에 제1차로 따핑사형장(大坪刑场)으로 끌려나가 공개총살되었고 리칭린은 11월 14일에 희생되었다. 중국 현대사를 바꾼 시안사변(西安事变, 서안사변)의 주역 중 하나인 양후청(杨虎城, 양호성, 1893~ 1949) 장군은 9월 10일 아들딸과 비서 일가와 함께 도합 8명이 비밀리에 살해되었는데, 그들 역시 “11. 27 대학살” 피해자 명단에 들어간다. 

 

고급 변절자들의 비참한 최후 

 

《팅찐바오》사건으로 시작된 검거로 체포된 133명 중 공개적으로 살해당한 사람들이 53명, 비밀리에 살해된 사람들이 35명, 석방되었거나 “11·27” 대학살에서 요행 탈출한 사람들이 25명이다. 장편소설 《붉은 바위》의 저자 뤄광빈이 탈출자 중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러면 변절자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이밖에 특이한 경우로 자수변절한 뒤에도 살해당한 자들이 4명, 변절한 후 특무조직에 참가한 자들이 8명이다. 

런다자이는 감금되다가 1949년 11월 27일에 짜즈뚱에서 총살당했다. 

푸화푸는 2차례에 걸쳐 100명 가까이 팔아먹은 뒤 어쩌다나니 정신을 차리고 더는 털어놓지 않다나니 특무들의 미움을 샀다. 하여 감방에 갇혀있었는데 적들과의 투쟁에서 여러 달 나쁜 짓을 하지 않았고 동지들의 영향을 받아 상당히 견정하게 행동했다. 그런데 나이가 40대로 제일 많고 당내 경력이 제일 오래 20년을 넘기며 직무도 아주 높다는 것을 코에 걸고 걸핏하면 고급간부와 선배로 자처하다나니 남들의 반감을 샀다. 결국 10월 28일 제1차 사형명단에 끼이어 사형장으로 나갔는데, 알짜 공산당원들과 꼭 같이 구호를 외치고 《인터내쇼널》노래를 부르면서 죽음을 맞이했다. 

 

투샤오원은 리칭린에게서 크게 자극을 받은 다음 애초에 이를 악물고 버티지 않은 걸 무척 후회하면서 기껏해야 죽음일 따름인데 왜 두려워했느냐고 한탄했다. 하여 더는 특무들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나쁜 짓을 하지 않았는바, 수용소의 “우대실(优待室)”에서 보내다가 역시 10월 18일 제1차 사형명단에 끼이어 공개총살 되었다. 

제1차 피살자 10명 가운데 이처럼 변절자가 2명 끼었고, 그 뒤에 죽은 사람들 가운데도 변절자들이 있었으며, 게다가 국민당 특별감옥에서 여러 해 갇혔던 사람들은 본명이 알려지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하기에 사망자들에 대한 평가는 수십 년 난제로 되었고 일부 사람들은 1980년대에야 참모습을 밝혀내 “혁명열사” 칭호를 추증받았다. 허나 영원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특무조직에 가담한 8명 가운데서 란이쯔와 류궈띵은 고급 변절자로서 그나마 한때는 잘 나간 셈이었다. 

류궈띵은 중교(中校, 중좌) 계급을 달고 시난행원(西南行辕ㅡ 서남행원) 정방처(侦防处) 전원(专员)으로 임명되어 《중공의 스촨 진입을 방지할 대책(防止中共入川之对策)》. 《중공이 스촨성에서 벌인 활동 개황(中共在川活动概况)》 등 책자를 써서 특무조직에 바쳤다. 충칭 해방 전야에 도망치려다가 실패한 그는 해방 후 부득이 자수했는데, 자술서에서 자신이 죽음이 두려워 당을 배반한 죄를 시인하고, 당과 정부의 처벌이 육체의 소멸에까지 이르지 않는다면 빨리 결정을 지어 실제 사업에서 죄악을 씻게 해달라고 청했다. 1951년 2월에 충칭시 인민법정은 공개심판을 거쳐 류궈띵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총살했다. 

란이쯔 역시 중교 계급을 달고 거들먹거리다가 충칭 해방 후 옛 보밀국(保密局, 군사통계국의 후신)의 시난특구(西南特区, 서남특구) 부구장이었고 이미 자수한 리슈카이(李修凯, 리수개)에게 발견되어 공안국으로 끌려갔다. 1951년 2월 류궈띵과 같은 판결을 받은 란이쯔는 총살에 앞서서 시체를 거친 교외에 던져서 초목과 함께 썩게 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해방전쟁 기간에 생겨난 수자가 많지 않은 중공 변절자들의 등급을 따진다면 류궈띵, 란이쯔, 푸화푸, 투샤오원은 고급이라고 칠 수 있고 숱한 사람들을 해쳤다. 지방들의 당조직이 거의 통째로 파괴된 사례들을 해방전쟁 시기 다른 고장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하기에 사건 당시부터 많은 사람들이 원인과 대책을 연구했다. 

충칭 해방 직후 뤄광빈은 감옥에서 동지들과 연구했던 의견을 정리하여 조직에 바쳤으니 1980년대에 공개되어 “옥중 8조(狱中八条)”라고 불린다. 

 

1. 당조직의 순결성을 유지하고 영도성원들의 부화를 방지할 것. 

2. 당내 교육과 실제 투쟁 단련을 강화할 것.

3. 이상주의에 젖지 말고 상급도 미신하지 말 것. 

4. 노선문제에 주의를 돌리면서 우에서 좌로 넘어가지 말 것. 

5. 적들을 절대로 얕보지 말 것. 

6. 당원 특히 영도간부의 경제, 연애와 생활작풍 문제를 주의할 것. 

7. 엄격하게 당의 대오를 정돈하고 당의 작풍을 정리할 것 

8. 변절자와 특무들을 엄하게 징벌할 것. 

一、保持党组织的纯洁性,防止领导成员的腐化;

二、加强党内教育和实际斗争锻炼;

三、不要理想主义,对上级也不要迷信; 

四、注意路线问题,不要从右到左;

五、切勿轻视敌人; 

六、注意党员,特别是领导干部的经济、恋爱和生活作风问题;

七、严格整党整风;

八、严惩叛徒、特务。

 

“혁명열사들의 피와 눈물의 부탁(革命烈士血和泪的嘱托)”으로 불리는 “옥중 8조”는 특히 근년에 반부패 운동에서 자주 거들어지면서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된다. 

 

변절의 후유증 

 

앞에서 쓰다시피 “11. 27” 대학살 피해자들 가운데서 일부는 1980년대에야 “혁명열사”칭호를 추증받았다. 그 본인들이야 알 리 없으나 유가족들에게는 사망자 신분미확인이 굉장히 고통스러운 고문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공산당원이었느냐 아니냐가 애매하여 “혁명열사”로 인정하기 어려웠고 어떤 사람들은 적들이 기록한 진술내용 때문에 절개를 지켰느냐 변절했느냐를 가르기 힘들었다. 사람마다 성격, 인식수준, 처사방식이 다르다나니 누구나 쟝주윈, 리칭린처럼 깔끔하게 마무리하지는 못했다. 어떤 사람들은 특무들이 확실한 증거들을 제시하니 그런 일들을 했노라고 인정했고, 어떤 사람들은 모든 일을 자기가 했다고 주장했다. 뒤의 경우 전우들을 보호하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도 있으나 어찌 보면 적들에게 뭐나 다 불면서 굽어들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었다. 하여 도대체 그 사람의 그런 진술로 피해를 본 사람들이 있느냐 없느냐를 일일이 조사해야 됐고, 피해자가 없더라도 그런 진술이 전술이었느냐 자백이었느냐를 가려내야 했다. 비밀서류나 심문기록을 절대화할 수 없음은 지하투쟁역사 연구에서 특별히 중요한 원칙으로 나선다. 

 

신분미확인자들의 유가족들이 공부와 취직에서 여러 모로 불이익을 당했다면, 확실한 변절자가 남긴 후유증은 한결 뚜렷했다. 

푸화푸가 팔아먹은 사람들 중에는 아내 궈더셴(郭德贤, 곽덕현)도 있었다. 1924년에 태어나 15살 난 1939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한 그녀는 적들이 집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자신이 보관하던 당의 서류를 태워버렸고 또 촨캉 당조직의 2인자 마스투(马识途, 마식도, 유명한 작가임)에게 사람을 보내 소식을 전함으로써 마스투가 위험에서 벗어나게 했다. 감옥에 갇혀서도 절개를 굽히지 않았고 1949년 11월 27일의 대학살에서 뤄광빈 등과 함께 포위를 뚫고 나왔는데, 그 과정에서 딸을 잃어버렸다가 사후에 신문에 광고를 실어 되찾아왔다. 그녀의 경력은 아주 깨끗하고 증명해주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헌데 스촨성에서 으뜸가는 변절자의 아내였기 때문에 당생활을 하지 못하다가 1983년에야 당적을 회복했다. 공산당원은 입당년한을 굉장히 중시하므로 궈더셴의 당내 경력을 1939년 8월부터 계산한다는 것은 명예의 완전회복을 말해준다. 지금까지 사망소식이 없으니 90대 할머니가 아직도 생존하는 모양이다. 

 

변절의 추학 전편들은 1명을 주인공으로 삼아 가급적으로 상세히 경력을 소개했으나, 이번 11편은 변절자들이 여럿이고 그 경력을 일일이 쓰면 너무 길어지기에 간단히 다뤘다. 하기는 두터운 연구서적들이 숱해 나온 상황에서 상세한 소개는 비현실적이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역사는 참으로 복잡하고 평가는 참으로 어렵다는 생각이 한결 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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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지적 자랑 17/12/24 [23:38]
변절과 추악이라고라! 중국에도 혁명이 있었던가?
한족 지식인들도 입 다물고 있는데.. 이미 돈맛을 봐서.
오직 얼치기 조선족 먹물들은 마치 제가 세상 아무도 모르는 중국 내면세계를 마이 알고 있다는 듯이 지껄이지. 내가 예전 북경에서 만난 조선족 연변대 출신종자도 입이 청산유수였지.. 내가 청산유수라고 평할 때는 단순히 언어스킬이 좋다는 말이 아니다.

변절자, 배신자를 이야기하려면 모택동이 부터 야그해야 한다.
모택동이의 모실론과 인민민주의의론이 얼마나 불철저한지를!!!
그걸 요해하고 자기식대로 비판적 이해를 할 수 없으면 주둥아리를 다물어야 한다.

모택동,주은래,주덕,팽덕회,유백승이 또누구 교활한 행세주의자 임표?
내가 봤을 땐 네들 공산당 대가리들이 떠받드는 모택동이의 사상도 반푼짜리에 불과하다.
당연히 온푼짜리가 나올 수가 없다. 온푼을 본적도 경험한 적도 없으니까?

그래서 등소평과 유소기 습중훈 따위의 거간꾼 장사치들의 득세는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내눈에는 어떻게 보이는 줄 아나? 난 이미 네들의 개폼 개본질 개행동 개수작 개성명 개잔치, 개칭커 다 안다. 네들은 절대로 세상을 다스리거나 지휘할 수 없다.

왜냐하면 네들 한 몸 한 마음도 다스리는 방법을 아지 못하기 때문에..
조선족은 일러 무삼하리요..

내가 조선족의 실체를 함 까발려 보기를 진정으로 원하다면 요청하라.
말과 글은 세상의 전부다. 말과 글의 소재거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양심 즉 한가운데 마음이다.

내가 북경에 있을 때 그때는 무슨 의미인 줄 잘 몰랐는데 조선족 중에 국적을 뗏놈국적으로 바꾸지 않고 여전히 북한국적으로 갖고 민증도 없이 오직 자신의 한가운데 맘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사람은 왜 그랬을까?

왜 중화인민공화국은 혁명전쟁이 끝나자 마자, 국적도 불문하고 오직 유일무이한 대의, 제국주의 일본과의 민족해방전쟁에 함께 목숨을 바쳐 피를 흘린 조선인 혁명열사와 그 조선민중을 폄하하였는가?

조선족? 그 따위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봉천에서 장춘 길림에서 때론 하얼빈에서 일제 시다바리의 떡고물에 취해있던 자들의 또다른 이름은 아닐런지.. 네들이 그리 당당하면 왜 일제가 물러간 1945년 8월이후에 남한이나 북한의 고향을 찾아가지 않고 중국에 남아,,, 그 마저도 민족적 자존심이나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지키려한 게 아니라 오직 서푼어치도 안되는 스레기같은 개목숨 유지하기 위해 연변조선족 자치주라는 감옥을 수용한 것이 아니던가???

문익환이나 윤동주? 그들이 40년 민족해방투쟁사의 대명사인가? 용정 연길 돈화 화룡?
아나 여있다..

네들은 네들 자신의 뿌리를 다시 점검해야 다시 살 수 있다.
그래봤자 살 놈이 그리 많지는 않다.

씰데없는 글쓰느라 날 새우지 마시고 그냥 돈 없으면 마른 명태에 소주나 빠시오.. 수정 삭제
ㅋㅋㅋㅋ 17/12/25 [01:09]
너무 하시는군요.ㅋㅋㅋ
뭐가 켕기는데 있나요? 너무 헐뜯지 마세요. 수정 삭제
애독자 17/12/25 [02:23]
말 잘하고 아는 게 많은 것이 정치신념의 견정성과 꼭 정비례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고급 변절자들을 주의하자. 수정 삭제
백과사전 17/12/25 [10:59]
위 지적자랑 정체가 의심스럽다 수정 삭제
관중석 17/12/25 [11:59]
변절의 추학11라 111까지 기대합니다. 수정 삭제
ㅇㅇㅇ 17/12/25 [12:23]
자주시보 보면 북한보다 더 친중 같아 보인다. 정작 북한은 중국에 휘둘리지 않을려고 친중파 군인들을 숙청해버렸는데 자주시보는 중국을 빨고 있음 수정 삭제
ㅇㅇㅇ 17/12/25 [12:24]
그리고 대한민국 일반 국민들은 이런 중국 공산당 소설보다 김용무협지를 더 좋아한다. 김용무협지가 실제로 이런 중국 공산당 소설 나부랭이보다 훨씬 재밌기도 하고 수정 삭제
ㅋㅋㅋㅋ 17/12/25 [12:42]
훨씬 재밌을거외다. 수정 삭제
단순 무식자 17/12/25 [13:26]
내 인생 곧 환갑인데.. 지적자랑 하는 사람 중에 변절하지 않는 사람 여태 본 적이 없소다! 지적자랑 마이 하이소 ㅋㅋ ㅋㅋ 수정 삭제
허허허허 17/12/25 [13:34]
인생 정리나 잘 하시유 수정 삭제
ㅎㅇㄹ 17/12/26 [10:14]
조선족 행태를 보면 .... 중국시민의 글을 폄하하는 건 아님. 그러나 중국시민에게서는 중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묻어있는 듯 보임.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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