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문화 가꿔가기33] 대북 삐라, 정말 효과가 있을까?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8/04/15 [08:02]  최종편집: ⓒ 자주시보

 

반북 선전에 목을 맨 사람들 

 

대북 선전은 오래된 화제다. 확성기, 라디오, 텔레비전, CD, 이동저장기, 등등 방식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여러 해 째 기사거리들을 꾸준히 만들어내는 건 삐라다. 반북단체들이 혹은 비밀리에 혹은 공개적으로 풍선으로 삐라를 날려보내는데, 단체들 사이에 풍선이 북에 가느냐를 놓고 쟁론이 벌어지고 또 단체들과 지역주민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 미국이나 일본의 반북활동가들이 한국에 와서 대북풍선 날리기에 끼이곤 했는데 근년에는 좀 드물어진 것 같다. 

 

반북단체들이 조선(북한)의 명절들에 맞추어 풍선을 날리는 바람에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4월 15일 “태양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인 2월 16일 “광명성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립기념일인 9월 9일 “99절”, 조선노동당 창립기념일인 10월 10일 등이 한국에서 자꾸만 보도되어 대중들의 머리에 각인되는 건 참으로 아이러니다. 단 금년에는 남북정상회담을 앞둬서인지 삐라소식이 별로 들리지 않는다. 

 

2017년에는 유엔과 미국 등이 잇달아 내놓은 “사상최강제재”들에도 조선이 굴복하기는커녕 신형미사일들을 선보이고 핵실험을 진행하니, 전향 주사파 모 정치인은 드론으로 평양에 삐라들을 떨어트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네티즌들은 대뜸 그러면 북이 가만 있겠느냐, 드론을 격추하고 “영공침입”이라면서 남을 치지 않겠느냐고 반박했다. 

 

풍선이나 드론으로 선전물들을 북에 보내 이른바 “진실”을 북 주민들에게 알려주면 대규모 탈북사태가 일어나고 북 정권이 뒤집히리라고 실제로 믿는 사람이 얼마 되는지는 모르겠다만, 그렇게 하면 효과가 크다고 꼭 그렇게 해야 한다고 목에 핏대를 올리면서 주장하는 사람들은 한국 안팎에 꽤나 많다. 그들의 논리는 북 사람들이 북 정권의 정보통제로 세뇌당했기에 외부의 정보를 접수하고 외부세계를 알게 되면 북을 떠나거나 북 정권을 반대하리라는 것이다. 

 

일견 그럴듯 해보이지만 눈길을 보다 넓은 세상으로 돌리면 통하기 어렵다. 중국의 조선족들과 일본의 재일조선인, 구 소련지역의 고려인들, 재미동포들은 외부정보에 너무나도 익숙하건만 그 가운데 조선에 호감을 갖고 조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필자만큼 반북자료를 많이 본 사람들도 많지는 않을 텐데 필자의 입장과 견해는 여러 해 째 명백하다. 그 무슨 “진실”을 접하게 되면 생각이 변한다는 기대가 얼마나 허황하냐는 필자나 해외의 이른바 “친북인사”들을 통해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세계가 횡적이라면 역사는 종적이다. 돌이켜보면 휴전 후 한국군과 중앙정보부, 안전기획부가 수십 년 동안 북으로 날려보낸 삐라들이 좀 적은가? 장동건 주연의 영화 《태풍》에서 전두환 시대의 한국이 날려보낸 삐라에 묘사된 자유세계를 동경해 탈북하는 인물이 나왔는데 서슬 푸른 제5공화국의 “자유” 운운이야말로 삶은 소가 웃을 일이 아니겠는가? 《태풍》은 볼만 하게 만든 상업영화지만 무게나 가치를 논하면 전두환 시대의 암울한 모습 및 항쟁을 보여준 《변호인》, 《1987》등과 비길 나위가 없다. 

 

수십 년 동안 보낸 삐라와 선전물들이 얻은 효과는 얼마였던가? 1998년까지 “귀순용사”와 “탈북자”들을 다 합쳐 1,000명 미만이었다니까 굉장히 수지가 맞지 않는 노릇이었음이 알린다. 

글쎄 그 후에 탈북자가 늘어나기는 했다만 그 원인은 다양하니 대북선전 때문만은 아니다. 또한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탈북자가 줄어드는 추세임은 한국 통일부의 집계로만이 아니라 중국에서 발생하는 탈북자 관련 사건의 감소로도 알 수 있다. 탈북자 감소원인에 대해서는 북의 경제상황호전설과 통제강화설 등등이 떠도는데, 그건 이 글의 주제와 좀 어긋나기에 논하지 않겠다. 

여기서는 시간을 좀 더 거슬러 휴전 전을 살펴보자. 

 

 

전쟁기간에 미군 주도로 뿌려진 40억 장의 삐라 

 

6.25전쟁 기간에 교전 쌍방이 선전에 힘을 들였고 삐라와 선전물들도 많이 서로 보냈음은 필자가 어릴 적부터 잘 아는 바이다. 인터넷 시대에 들어와서는 중고서적 사이트에서 미군이 중국인민지원군을 상대로 날렸던 선전물들을 보고 웃기도 했다. 중국 군인들의 정서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졸렬한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그 선전물들은 아마 지원군 부대가 귀국할 때 가져다가 자료로 보관했던 모양인데, 세월이 흐른 뒤 어떻게 흘러나와 판매대상이 된 모양이다. 

 

▲ 중고서적 사이트에서 팔린 미군 삐라     © 자주시보, 중국시민

 

▲ 미군이 살포했던 삐라, 가족의 설모임에 당신이 빠진다면서 백골을 그려넣었는데, 중국의 극소수인 지주가정의 식사모습을 보여줬기에 중국인민지원군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출신 병사들에게는 반감이나 자아냈다.     © 자주시보, 중국시민


미군이 살포했던 삐라, 가족의 설모임에 당신이 빠진다면서 백골을 그려넣었는데, 중국의 극소수인 지주가정의 식사모습을 보여줬기에 중국인민지원군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출신 병사들에게는 반감이나 자아냈다. 

 

보다 많은 중국인민지원군 상대 삐라는 요즘에 한국 책을 통해서 접하게 되었고 전날과 같은 웃음을 거듭거듭 터뜨렸다. 예컨대 아래 그림이다. 

 

▲ “언제면 애인을 만날 수 있으랴?“는 글이 첨부된 미녀삐라     © 자주시보, 중국시민


자본주의정부와 군대가 제작한 삐라들에서 미녀는 워낙 단골이다. 공산정권 아래의 사람들은 성욕구가 압제당하기에 그 틈을 노려야 된다는 논리였다. 이 삐라는 거기에다가 “何时才能见爱人(허쓰차이넝잰아이런, 언제면 애인을 만날 수 있으랴)?”라는 글귀도 넣었으니 감성을 충분히 자극하리라고 제작자들은 기대했을 것이다. 허나 효과는 빵점을 수밖에 없다. 중국인민지원군의 절대다수는 가난한 농민이나 노동자 출신이었으니 어찌 사진 속의 도시 부르주아 여인이 애인으로 될 수 있었겠는가! 저런 여자와 연애를 했던 사람이라면 국민당 장교, 경찰이나 자본가, 상인 혹은 상공인 가정의 아들이겠는데 그런 사람들이 중국인민해방군이나 중국인민지원군에 나올 이유가 희박하고 어떻게 되어 끼어들더라도 그 수자가 적다. 그런 자들이 삐라를 보고 항복한대서 부대의 전투력이 약화되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저런 삐라를 만들어 날렸다는 건 총알과 포탄을 엉뚱한데로 날린 거나 다름없다. 

 

위 사진은 《적을 삐라로 묻어라》(이임하 지음, 철수와영희 2012. 10. 476쪽)에 나온다. 

 

▲ 6. 25전쟁시기 미군이 주도한 심리전을 연구한 《적을 삐라로 묻어라》     © 자주시보, 중국시민

 

저자 이임하(1965~)는 1950년대 여성의 삶을 연구하면서 한국전쟁 연구에서 주목받지 못하던 “전쟁미망인”의 존재를 인식하고 전쟁미망인 45명의 구술 자료를 토대로 5년 여 연구하여 쓴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방송통신대 학술연구교수 재직 중인데 여성 주제 저서와 논문들이 여러 부 있고, 《적을 삐라로 묻어라》는 미국 측의 자료에 근거해 썼다.

 

전쟁이 일어나자 미 육군 장관 페이스가 “적을 종이로 묻어라”고 지시했고, 미 국무부는 “적군과 시민들에게 매일 한 장의 삐라가 전달되어야 한다”고 했으며, 미 8군 사령관인 리지웨이는 그런 의견에 따랐다 한다. “적을 종이로 묻어라”는 말은 삐라로 적을 묻으라는 뜻이란다. 미 극동사령부는 참전해서부터 휴전될 때까지 전선과 후방에 “무려 40억 장의 전술 및 전략”삐라를 뿌렸다고 한국 사료가 기록했단다. 책의 감을 잡도록 차례를 인용한다. 

 

 

차례 

 

머리말 : 옥춘당과 삐라 

이 책을 읽는 독자 여러분께 

 

제1장 총력전의 완성, 미국의 심리전 

01 왜 심리전인가? 

02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국의 선전 기구 

03 미 극동사령부 심리전 기구 

04 미 8군사령부의 심리전 기구와 지휘체계 

05 미군의 심리전 계획과 작전 

 

제2장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가져온 삐라 

01 삐라의 제작 과정 

02 삐라의 살포 

03 생산 기관에 따른 삐라의 분류 

04 삐라의 종류 

 

제3장 적 이미지와 상징 그리고 기호 만들기 

01 적 호명과 이미지 만들기 

02 성별화된 적 

03 두 세계: 자유세계와 노예세계 

04 유엔을 이용하라 

05 이데올로기가 아닌 개인의 감정을 건드려라 

 

제4장 교과서와 심리전의 재생산 메커니즘 

01 문교부로 간 심리전 대본 

02 전시 생활과 삐라 

03 교실로 간 삐라의 논리 

 

제5장 ‘미국적 가치’와 한국 사회의 윤리 

01 정의와 불의의 경계 

02 과학, 무기의 우월성 

03 인도주의와 폭력의 역설 

04 종잇조각 개혁 

05 소련 제국주의의 디자인과 그 꼭두각시들 

06 자유세계와 냉전 

 

후기 : 심리전과 냉전 그리고… 

주(註) 

참고문헌 

 

제2장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가져온 삐라”는 심리전을 대표하는 매체는 삐라와 방송이라고 밝힌 다음 전쟁 때에는 삐라가 훨씬 중요한 매체였으니 당시 반도에 라디오 수신기와 전력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썼다. 

 

“이런 사정 때문에 라디오 방송이나 확성기 방송보다 삐라의 영향으로 항복했다는 포로들이 많았다. 이는 한국전쟁에서의 삐라의 유용성을 입증하는 사례이다.”(55쪽)

 

뒤이어 미국인들의 두 가지 상반된 주장을 전했으니, G3 장교였던 앤더슨은 상당한 수량의 삐라가 뿌려졌음에도 효과는 그리 크지 않다는 주장한 반면에, 페티는 심리전에 드는 비용이 적지 않지만 심리전에서 얻는 효과는 일반 전투 비용의 70배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가정이 미국 사회과학자들이 심리전을 선호한 까닭이었다. 그들은 심리전으로 적은 비용을 들여 최대 효과를 얻고 폭력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고 믿었다. 삐라는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가장 효과적인 심리전 매체로 인정받았고 상당한 종료와 양이 뿌려졌다.”(57쪽) 

 

한국의 전쟁연구서적들을 볼 때마다 늘 느끼다시피 《적을 삐라로 묻어라》도 상당한 유감을 안겨주었다. 품을 엄청 들였고 높은 안목도 보여주었지만, 미국 측 자료에 의존하다나니 내용이 빈약해서였다. 

미군이 살포한 삐라를 미국 자료에 근거해 연구하면 부족점들이 존재한다. 

 

첫째, 저자가 본 삐라들이 모두 미국이 보관한 것들이므로 어떤 종류의 삐라를 제작하고 살포했다는 기록들이 충분하더라도 실제로 적진에 살포된 것이 아니다. 즉 실제로 사용되지 않았으니까 중국인민지원군이 수집하여 보관했던 삐라들보다 자료로서의 신빙성과 권위성이 떨어진다. 

둘째, 삐라의 효과에 대한 주장들은 모두 미군이 포로와 월남자들을 통해 모은 것이므로 편향이 심하다. 귀순한 사람들은 당연히 귀순 혹은 변절을 합리화하기 위해 애쓰고 따라서 삐라의 효과를 과장하기 쉽다. 그런 사람들의 말을 믿고 중복했거나 개진한 삐라들은 결국 악순환에 들어가서 영향범위가 갈수록 좁아지게 된다. 

셋째, 삐라의 종류와 성격은 학술적으로 분류를 아주 잘했는데 전시에 삐라들이 어떻게 변화에 적응했는지는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 시간대 변화, 전투형식과 전투부대별로 어떤 삐라들이 임시로 제작, 살포되었는가는 쌍방의 자료들을 충분히 얻어보아야만 가능하다. 

 

당년에 포로나 귀순자, 변절자들의 말을 믿고 진화해갔던 삐라들은 역설을 낳았다. 1951년 여름까지는 이래저래 포로들이 꽤나 되더니, 진지전에 들어서면서 삐라들이 더 정교하게 만들어져 더 많이 뿌려졌으나 포로만이 아니라 귀순자, 변절자들은 급감했으니 말이다. 

조선 정부와 인민군, 백성들이 당시 삐라를 어떻게 대했느냐에 대해서는 조선의 자료들이 거의 없다. 중국인민지원군의 대응방식은 정치사상사업자료들이 종합, 출판되었기에 당년의 상황을 생생히 알 수 있다. 

 

미군 심리전에 대한 중국인민지원군의 대응 

 

자료들은 많으나 1950년 10월에 제일 먼저 참전한 부대 중의 하나인 40군의 대응이 대표적이므로 당년에 정치부 주임이었던 리보츄(李伯秋리백추, 1916~2005)가 쓴 글 《적들의 “심리전”은 인민군대 앞에서 실패(敌人“心理战”在人民军队前的失败)》를 간추려 소개한다. 

 

▲ 중국인민지원군 40군 정치부 주임이었던 리보츄(리백추)     © 자주시보, 중국시민

 

글은 조선전장에서의 미군 선전수단이 주로 선전물 살포와 확성기 방송으로서 삐라들은 비행기와 대구경 포탄으로 대량 살포해 지원군 진지와 길목들을 덮었고, 확성기는 탱크에 장착하여 아군 진지에 접근하거나 지원군 측에서 2000피트 떨어진 공사에 설치했고 비행기에 실어 야간에 조용할 때 방송했다고 소개했다. 

글에 의하면 미군이 일본에 배치한 삐라복제중대는 평균 한 주일에 2천만 장 이상 삐라를 제작했고, 한국에 주둔한 미8군 소속 심리전 부대는 주 평균 350만 건의 선전물을 제작했다고 전했다. 

3년 동안 전장에서 40군이 수집한 선전물은 118종으로서 신문형식의 《자유세계》, 각종 형식의 삐라, 만화, 장기판, 일력, 뒷면을 조선화폐양식으로 인쇄한 “안전통행증” 및 담뱃종이, 유리종이로 만든 방수주머니 등이 있었다. 

 

▲ 미군이 제작한 안전통행증, 릿지웨이는 한국군에게도 선처를 요구했다.     © 자주시보, 중국시민

 

▲ 미군이 제작한 안전통행증,     © 자주시보, 중국시민

 

▲ 조선화폐를 본딴 안전보장증     © 자주시보, 중국시민

 

미군은 선전에서 언어사용을 무척 중시했는 바, “아국(俄国러시아)”를 “소련”으로 바꾸고 심지어 “당신들의 큰 형님(你们的老大哥)”라고 불렀으며 “장관”을 “간부”로, “대륙”을 “조국”으로 칭하면서 전사들의 “용감(성)”과 “애국(심)”을 칭찬하는 등 말투를 부드럽게 하면서 자극적인 방식을 피했다 

 

리보츄의 이런 소개를 통해 미군이 초기 선전의 오류들을 일부 인식하고 바로잡았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변화들은 소련을 악마화한 삐라들만 보아서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선전물에는 글이 적고 그림이 많았으며 글자 곁에 주음부호(注音符号라틴식 병음이 나오기 전에 쓰이던 한자발음표기범. 위의 미인그림에도 글자 곁에 주음부호가 있다)가 첨부되었고, 신문은 산뜻한 색깔로 인쇄했는데 유희내용을 넣어 주목을 끌려고 노렸다. 

 

“심리전” 초기에 40군은 위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경험부족으로 일시 곤경에 빠졌는데, 특히 투항, 변절 현상들이 나타난 뒤 일부 부대들에서는 서로 의심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호기심에 적들의 삐라를 보고 적들의 방송을 들으면 정치적으로 동요한다고 인정되었고, 관병관계가 좋지 않거나 다른 원인으로 소침해져도 정치와 결부시켰다. 

 

허나 40군은 곧 대책을 취해 공산당원과 공청단원들을 발동시켜 대중의 사상을 요해하고 낙후분자들을 참을성 있게 도와주면서 “우리를 단결하고 적들을 전승하자(团结自己,战胜敌人)”는 구호 밑에 굳게 뭉치게 되었다. 

대중이 각오한 뒤에는 “4불”구호가 나왔으니 “줍지 않고 보지 않고 듣지 않고 쓰지 않는다(不拾, 不看, 不听,不用)”이었다. 이로써 “심리전”을 반대하는 투쟁공약이 자연스레 형성되었고 적 삐라 소멸운동이 전개되었다. 한 개 퇀 진지 주위에서 경상적으로 한 번에 적 삐라 수십 만 장씩 집중파기했고, 후에는 주둔구역으로 확대하여 조선 정부와 배합하여 군민의 일제동원으로 한 번에 심지어 수백 만 장 삐라를 파기하기도 했다. 이런 투쟁으로 군중들의 “반 심리전” 자각성이 높아졌고 장기간 투쟁을 겪은 다음 적들의 심리전에 신경 쓰는 사람이 아주 적어져 “심리전”은 실제상 효과를 잃었다. 

 

필자는 한 개 연대가 수십 만 장씩, 지원군과 조선 지방정부가 손잡고 수백 만 장씩 삐라들을 없앴다는 대목에서 웃었다. “심리전” 종사자들이 알면 얼마나 맥이 풀리겠는가. 북파공작원, 잠복특무들이 그런 소식을 전했더라면 욕이나 실컷 먹고 목마저 날아났지 않았을까? 

 

미군의 선전이 먹혀들지 않은 중요한 이유는 현실과 떨어졌기 때문이다. 《적을 삐라로 묻어라》의 삐라들은 중국공산당 치하의 중국이 굉장히 비참해졌고 여자들이 소련으로 끌려간다고 묘사했으나 지원군 전사들은 국내방송과 신문, 잡지 그리고 편지들을 통해 천지개벽이 이뤄진 조국의 현실을 잘 알았다. 결국 미군의 “심리전”은 중국인민해방군에 사로잡혔다가 편입된 “해방전사”, “해방군관”, 국민당 부대가 집체로 기의하면서 넘어온 관병들 중에서 질이 좋지 않은 “기의군관”, 자진하여 참군했으나 전투에 겁을 먹은 “참군전사” 등 소수 인원들이나 동요시켰을 따름이다. 또한 미군은 “해군과 공군 우세”, “비행기와 대포 우세”, “원자탄 우세” 등을 열심히 선전했지만, 지원군은 초기 진격의 승리, 중기와 후기의 진지 고수 및 진지 점령을 통해 자신의 위력함을 재삼 확인했기에 우세자랑은 웃음거리로 되었다. 

 

▲ 지원군이 추위에 떤다고 묘사하면서 변절자의 명의로 보낸 삐라, 지원군이 뜨뜻하게 입고 배불리 먹은 진지전에서 이런 삐라는 웃음거리로 되기 마련이었다.     © 자주시보, 중국시민

 

리보츄의 글에는 “쓰지 않는다”는 구호가 생겨난 이유를 충분히 밝히지 않았는데, 다른 자료들에는 당시 구체적인 사용방법들이 나온다. 

초기에 간부들이 삐라 쯤에 신경 쓰지 않을 때, 전사들은 다양하게도 삐라를 이용했다. 삐라로 공책을 만들어 쓰기, 담배 말아 피우기, 편지 쓰기, 보고용지로 삼기, 모자 안의 받치개로 쓰기, 풀을 발라 편지봉투 만들기, 약품이나 서류를 포장하기, 방공굴벽에 바르기. 

이밖에 감춰두거나 내용을 전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교육을 거쳐 사람들은 깊이 뉘우쳤으니 예를 들어 한 위생원은 적들이 살포한 종이로 약을 쌌었는데 만약 동지들이 중독되었더라면 나의 죄로 된다면서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40군 외의 부대들에서도 적들의 “반동선전품(反动宣传品)”을 한 장도 줍지 않고 한 글자도 보지 않으며 한 마디도 듣지 않는다고(一张不拿、 一字不看、一句不听) 서로 보증하는 공약을 세웠다. 부대들에 따라 하지 않는 “*불”내용이 좀씩 달랐으니 어떤 부대는 “6불요(不要)”라고 하여 “줍지 않고 보지 않고 쓰지 않고 읽지 않고 듣지 않고 속지 않는다(不事、 不看、 不用、 不读、 不听、 不上当)”을 강조했고, 어떤 부대의 “4불”은 “줍지 않고 보지 않고 감추지 않고 쓰지 않는다(不拣、 不看, 不藏、 不用)”이었다. 

 

이밖에 확성기를 포격하고 대공사격을 진행하며 적군와해공작도 활발히 벌림으로써 중국인민지원군 부대들은 미군의 “심리전”을 거뜬히 이겨냈다고 자부한다. 실제로 항미원조전쟁에서 뒤로 갈수록 지원군은 물질적으로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점점 더 강해졌다. 

 

 

지금까지 조선에서 유일하게 대북삐라를 거든 장편소설

 

미국의 “심리전”에 맞선 중국인민지원군의 대응은 정전협정 조인 뒤에도 이어지다가 1958년 철군하면서 그쳤다. 

조선인민군은 그 뒤에도 수십 년 동안 미군과 한국군, 한국 정보부문, 민간단체들의 반북선전과 맞서야 했다. 단 오랫동안 대북삐라를 거드는 자료들이 없다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주인공으로 하는 총서 “불멸의 향도”중 장편소설 《영원한 넋》(한영호 지음, 문학예술출판사 2017년 3월, 453쪽)에서 묘사했으니, 필자가 알기로는 지금까지 유일하게 대북삐라를 언급한 작품이다. 

 

▲ 총서 불멸의 향도 장편소설 《영원한 넋》     © 자주시보, 중국시민

 

《영원한 넋》은 1990년대 중반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인민군을 강화하면서 항일유격대의 모범을 따라배워 강한 부대를 만들어내는 “오중흡 7련대칭호쟁취운동”을 발기하여 추진하는 과정을 그렸다. 대북삐라는 만수대예술단 단장 박영호가 현실체험을 위해 일선 부대에 가 있으면서 새벽에 기상하여 밖으로 나왔을 때에 나온다. 

 

“초봄날의 청신한 새벽공기가 기분좋게 그의 페부로 흘러들었다. 상쾌함에 휩싸여 산보삼아 병실과 잇닿은 산기슭쪽으로 걸음을 옮기던 그는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여러명의 병사들과 어울려 중대장이 산기슭 경기저기서 모닥불을 활활 지피고있었다. 무슨 일인가, 부업밭을 일구는것 같지는 않고... 호기심에 이끌려 그곳을 향해 걸어가던 그는 다시금 무춤 멈춰섰다. 발치에 무슨 화페같은것들이 널려있었던것이다. 무심결에 그 종이장을 집어보던 그는 소스라치듯 놀랐다. 감히 우리의 존엄을 헐뜯는 글자가 적혀있었던것이다. 

아니, 어떤 놈이 이런걸 여기에 뿌렸을가?... 종이장을 들고있는 두손이 후들후들 떨렸다. 

때마침 중대장 리철이가 조용히 웃으며 걸어왔다. 

《단장동지, 뭐 놀랄건 없습니다. 이다위 종이장으로는 저 하늘의 태양을 가리지 못합니다. 적들의 얼빠진 <풍선작전>입니다.》 

《<풍선작전>?》 

《아침에 기상하여 보면 적들이 풍선에 달아보낸 삐라들이 온 산판을 뒤덮습니다. 어떤 날에는 병실마당과 지붕에서까지 가랑잎처럼 굴러다닙니다. 하지만 놈들의 이런 심리전은 오히려 병사들의 복수심만 더 끓게 합니다. 우리 병사들이 오늘은 비록 이 삐라장을 불태우는것으로 그치지만 어느때건 이런걸 날려보낸 놈들의 본거지를 불바다로 만들어버리겠다고 윽윽합니다.》 

박영순은 새삼스러운 눈길로 리철을 바라보았다. 건장한 체격에 여유작작한 거동이 척 보기에도 믿음과 호감이 가는 청년이였다.”(84~ 85쪽)

 

썩 뒤에 가서는 투하된 물자들도 나온다. 총정치국 책임일꾼 박진건이 102연대의 어려운 상황을 요해한 다음 418연대로 가는 과정에서이다. 

 

“박진건은 불현듯 운전사에게 일렀다. 

《차를 세우오....》 

야산기슭에서 몇명의 병사들이 모닥불을 피우고있었다. 삭정이도 아니요 무슨 번쩍번쩍하는 비닐봉지같은것을 불속에 던져넣는다. 

박진건은 호기심을 가지고 천천히 차에서 내렸다. 

세명의 병사들이 놀란듯 자리에서 일어나고있었다. 낯모를 장령이 그것도 대장의 군사칭호를 단 장령이 다가오자 그들중 오목한 입귀가 인상적인 다부진 몸매의 사관이 구령을 쳤다. 

《차렷! 대장동지, 3중대 2소대 2분대는 산나물채취를 하고있습니다. 중사 신금성!》 

《쉬엿하오....》 

박진건은 답례를 하고나서 부드럽게 물었다. 

《허, 산나물을 채취한다면서 무얼 태우고있나?》 

분대장 신금성이가 다시금 몸가짐을 바로햇다. 

《장령동지, 쓰레기를 태우는중입니다....》 

《쓰레기?....》 

박진건은 그제야 모닥불에 타고있는 적지물을 알아보았다. 당과류, 빵, 요구르트, 수지병에 넣은 막걸리, 담배... 그리고 런닝샤쯔, 양말, 지어 실패까지 있었다. 그중 화려한 상표가 찍혀있는 빵봉지를 손짓하며 짐짓 분대장에게 물었다. 

《분대장, 저기에 먹어도 안전하다고 썼구만!》 

《개나발입니다》 

신금성은 단마디로 부정해버리고나서 흘러내린 담배갑들을 불땀이 센쪽에 올려놓으며 말을 계속했다. 

《설사 안전하다해도 그걸 먹는건 개들이나 할짓입니다. 하긴 우리들은 개한테도 저런걸 던져주지 않습니다.》 

《음!...》 

박진건은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세 군인들을 정겹게 둘러보았다. 

《자, 우리 여기 앉아서 담배나 한대씩 피우자구!...》 

박진건은 풀밭에 자리를 잡으며 그들에게도 어서 앉으라 손짓하였다. 서로 눈치를 보며 따라 앉는 그들에게 담배를 한대씩 나누어주고 라이터불까지 켜들었다.”(248~ 249쪽)

 

뒤이어 박진건은 병사들과 함께 담배도 피우고 상황도 요해하다가 점심시간이 됐다면서 군용밥통들에 담긴 밥을 같이 먹자고 한다. 신금성이 대장동지 몫이 없다고 자르니, 박진건은 깍쟁이라고 나무라면서 전사영장을 단 애리애리한 병사에게 밥통을 가져오라고 이른다. 밥통을 열어본 박진건은 달래가 섞인 잡곡밥이기에 눈을 흡뜬다. 매일 이런 밥을 먹느냐고 물으니, 신금성은 제풀에 바빠서 두 손을 내흔들며 어제부터라고, 식량운수가 중지되어 그렇다고 변명한다. 

418연대의 상황은 김정일 최고사령관에게도 보고되어, 인민군 지휘성원들을 만나는대목에서 언급된다. 

 

“박진건이 418련대지휘부를 찾아가던중 산기슭에서 만나보았다는 병사들의 모습도 그려지시였다. 식량수송이 지연된 결과 그들의 군용밥통에서는 달래를 섞은 밥이 담겨있었다고 하였다. 그런데도 그들은 적들이 공중으로 투하한 심리전용물자들을 불에 태우며 최고사령관의 안녕을 부탁하고있었다. 

이들이야말로 오늘날 오중흡7련대칭호쟁취운동에 떨쳐나선 우리 병사들의 참모습이였다. 이런 병사들에게 저 하늘의 별은 따다주지 못할망정 초보적인 생활조건이야 왜 마련해주지 못한단 말인가?”(266쪽)

 

소설이 묘사한 시기로부터 20여 년이 지났다. 그동안 정부 차원의 삐라살포가 중지되었다지만 민간단체들의 대북풍선날리기 등은 끊어지지 않았다. 혹시 대북선전물들로 조선사람들이 불을 지피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도 조선의 인력, 물력 소모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조선을 약화시키는 데 기여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거꾸로 가끔 분계선 북쪽에서 일어나 남쪽으로 퍼져서 “북한의 화공”의문을 자아내는 불길이 삐라 따위 소각 때문에 생겼을 수도 있다. 

 

전시의 수십 억 장 삐라가 얻은 보잘 것 없는 효과를 가늠해보고, 조선 군인들이 삐라와 “적지물(적지에서 보낸 물건이란 뜻이겠다)”을 대하는 태도와 처리방식을 알고 보면, 민간단체들이 날리는 풍선들이 무슨 효과를 낼지 의문스럽다. 보내느라 낭비 많고 태우느라 환경파괴임은 분명하다. 낭비와 파괴의 반대로 나아가야 시너지 효과가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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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18/04/15 [09:11]
앞으로 종전과 평화협정 군축 회담이 진행되면 남한 보수에서 큰 반발이 생길꺼 같습니다. 그들에게 대항하는 논리로 간단하게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안 풀면 트럼프 정부는 북한을 공격하고 그럼 핵전쟁으로 남한의 부자들과 부가 몰린 서울과 수도권은 끝장 나고 남북한 한반도는 핵전쟁으로 못사는 땅이 된다. 그래서 트럼프발 북폭으로 인한 남북한 공멸을 막기 위해선 북한과 대화, 종전, 평화협정, 군축을 위한 회담을 해야 한다./ 이런 논리로 나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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