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초의 선거는 왜 분단선거가 됐을까?
최한욱 기자
기사입력: 2018/05/07 [12:1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사진은 1948년 4월 김일성 주석과 김구 선생이 평양에 있는 모란봉극장에서 열린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걸어가는 모습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선언으로 통일의 열기가 한껏 높아지고 있습니다.

 

올해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70년을 맞는 해이면서 동시에 분단체제 수립 70년이 되는 안타까운 해입니다. 1948418일 김구 선생은 단독정부 수립을 저지하고 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3.8선을 넘어 남북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에 참가했습니다.

 

김구 선생은 김일성 주석과 만나 외국군대의 철수, 통일정부 수립을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510일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분단선거가 강행됩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이 탄생했지만 결국 동존상잔의 비극으로 이어지게 되었으며 분단은 70년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왜 우리는 단독정부 수립을 막지 못한 것일까요? 생생현대사 ‘4.18통일회담과 5.10분단선거편에서는 분단체제의 기원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역사는 미래의 거울입니다. 실패한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면 실패한 미래가 또다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자주통일, 평화번영의 새로운 시대로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생생현대사가 미래로 가는 길라잡이가 되겠습니다. 지금 다운로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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