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문화가꿔가기 38] 평양 창전거리 건설 비하인드 소설《강자》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8/05/20 [09:41]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창전거리 주민집의 수도꼭지를 틀어본 김정은 제1위원장 

 

평양의 창전거리는 조선(북한)이 김일성 주석 100돌이 되는 2012년을 계기로 건설한 거리다. 최고 45층 살림집은 조선에서 전에 없던 높은 주택이었다.

5월말에 창전거리의 완공을 앞둔 아동백화점과 살림집들을 돌아보았던 김정은 제1위원장은 9월 초에는 입주하여 두 달 남짓이 보낸 주민들을 방문했으니 세 가정은 종로동 1반 1현관 3층 1호의 평양기계대학 교원 심동수, 평양동대원중학교 교원 한은순 부부의 집. 1호의 앞집인 중구역도시미화사업소 노동자 박승일, 경상체신분소 우편통신원 장순녀 부부의 집, 2층 1호의 김정숙평양방직공장 노력영웅 문강순과 그 공장의 3대혁명소조원 김혁 부부의 집이었다.

 

▲ 부부와 두 딸이 교원이어서 김정은 위원장이 “훌륭한 교육자가정”이라고 평가한 심동수 가정     ©자주시보,중국시민

 

제일 먼저 찾은 심동수 가정에서 언제 입사를 하였는가, 생활하는데 불편한 것은 없는가, 방바닥이 차지 않은가, 물은 잘 나오는가를 하나하나 물어본 김정은 제1위원장은 세면장에 들려 수도꼭지도 틀어보았는데, 수도시험사용이 인민생활관심의 표본으로 부각되어 기사들에 거듭 나타났다. 

그해 필자는 기사들을 보면서 조선에서는 수돗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때도 있는 모양이구나고만 생각했다. 6년 뒤의 오늘에 와서는 그 보도의 의미가 새롭게 안겨오고 당시 그런 보도들을 보면서 울고 웃으며 만세를 부른 사람들도 있었으리라는 걸 짐작하게 되었다. 고층아파트에 쓰이는 펌프를 수입하느냐 자체 제조하느냐 쟁론이 심각했고 국산펌프를 만들기까지 얼마나 우여곡절이 많았으며 또 그 펌프제조의 핵심인물이 심동수가 일하는 평양기계대학출신임을 알게 되어서이다. 장편소설 《강자》(백상균 지음, 문학예술출판사 2017년 6월, 357쪽)의 덕이다. 

 

▲ 창전거리용 펌프를 제작한 사연을 그린 장편소설 《강자》     ©자주시보,중국시민

 

창전거리는 어떤 곳? 

 

최고 150미터를 넘기는 고층아파트에서 쓸 특수펌프의 수입이냐 제조냐가 왜 쟁론거리로 되었느냐를 이해하려면 먼저 창전거리를 알 필요가 있다. 자료들을 종합하여 소개한다. 

평양의 중심부인 만수대지구에 자리 잡은 창전거리는 평양대극장에서 개선문방향으로 뻗어나가는 승리거리와 만수대에서 옥류교 방향으로 가는 만수대거리가 교차하는 종로네거리를 기점으로 펼쳐져있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동상이 세워진 만수대언덕을 정면에서 보면 언덕의 왼쪽을 둘러싼 형태로 거리가 형성되었다. 행정구획는 중구역의 종로동과 대동문동, 경상동 등이 창전거리에 속하는데 현대적인 살림집들, 100개 이상 봉사시설들 그리고 공공건물들이 세워졌다.

살림집들은 종로네거리를 기점으로 하여 3개의 방향으로 뻗은 거리들을 따라 유선형, 원형, 각형 등 특색 있는 건축형식으로 일떠섰다. 모두 14동으로서 가장 높은 아파트가 45층짜리이고 그 외 40층, 36층, 26층, 20층 등이 있다. 모든 아파트에는 고속승강기들이 설치되었고 1층(건물에 따라서는 2층까지)부분은 식당, 상점, 약국 등의 봉사시설들이 꾸려졌다. 

살림집내부는 살림방들과 부엌, 식사칸, 위생실, 창고 등으로 이뤄졌는데 가구들과 각종 위생기구들도 설치되었으며 베란다도 넓다.

살림집의 크기와 방배치의 형태는 3칸짜리, 4칸짜리, 5칸짜리 몇 가지가 있는 바, 실례로 1호 동은 공동살림방과 살림방 4칸, 부엌, 식사실, 위생실 2개, 창고, 베란다가 설치된 4LDK형이며 면적은 145㎡이다. 

창전거리 아파트들에는 총 2,784세대가 입사하였고 그중 원래 이 구역의 주민이 2,500여 세대이다. 한국식으로는 “철거민”들이 되돌아왔는데, 수자만 봐도 훌륭한 아파트들의 주인이 이른바 “특권층”들만이 아님이 알린다. 

창전거리의 위치가 중요하고 건축물 질이 높은데다가 1980년대의 평양대건설기 뒤 1990년대 중반부터 큰 건설이 별로 진행되지 않았으니까 간만의 대규모거리 건설이 얼마나 중요한 의의를 가지겠는가! 강성대국의 문을 열어제끼겠다고 예고한 2012년에 인민들에게 줄 중요한 선물이었다. 

 

고층아파트용 펌프가 필요하니까 만든다 

 

아파트를 비롯한 건축물들에는 많은 자재와 설비들이 들어간다. 모든 것을 자체로 생산할 수 없거니와 모든 것을 자체로 생산할 필요도 없다. 예를 들어 높은 살림집들마다에 설치되었다는 고속승강기들을 조선이 만들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타일 등 외장재도 국내에 없으면 수입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음료수와 난방용수를 아파트 꼭대기까지 올려 보낼 펌프의 수입은 커다란 풍파를 일으킨다. 

그처럼 놓은 곳까지 물을 올려 보내는 고양정펌프는 조선에 없거니와 생산한 경력도 없다. 발전했다는 몇 개의 나라에서만 만든다는 첨단제품이다. 하기에 건설초기에 관련일꾼들이 펌프의 수입을 결정하고 내각의 허가까지 받은 것은 상식에 따른 사고방식의 결과다. 

헌데 평양 거리를 지나다가 우연히 펌프수입소식을 들은 기계전문가 엄명선은 분개한다. 동주뽐프(펌프)공장에서 나와 다른 기계공장에서 일하지만 펌프수입계약을 맺으러 누군가 외국에 갔다는 말에 속이 뒤집힌다. 그를 통해 펌프수입결정을 알게 된 동주뽐프공장 지배인 리대철은 창전거리 건설지휘부로 달려가 주먹으로 테이블을 치면서까지 수입의 부당성을 역설한다. 리대철은 건설장을 꿰질러 걸으면서 남의 쪽지를 받고서야 고양정펌프 문제를 알게 된 자신을 꾸짖는다. 

 

“하늘을 치받으며 솟아오른 고층 아빠트들을 보느라니 쇠집게로 가슴을 비츠는 듯 숨이 가빠났다. 

리대철이 너는 도대체 어떤 인간인가. 

창전거리를 건설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에서 뽐프를 만들라는 과업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느냐. 애국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누가 시키지 않아도 조국의 부강에 다소나마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스스로 맡아안을줄 아는 것이 애국이다.”(20쪽)

 

이로부터 수입을 주장하는 무역회사 사람들과 자체제조를 주장하는 뽐프공장 사람들의 쟁론과 충돌이 이어진다. 

무역회사의 일부 간부들은 경험도 담보도 없이 무턱대고 수입을 취소하라는 동주사람들이 무모해보인다. 예정한 거리 준공날짜가 1년도 남지 않은 판에 설계도에 줄 하나 그어지지 않은 국산펌프를 믿다가는 자칫하면 큰 일 난다는 논리다. 

한편 나라의 외아들공장으로서 수백 종 펌프를 생산해내는 동주사람들은 1980년대에 주체사상탑 앞의 대동강에 설치할 분수용 수중펌프의 수입을 막고 자체로 만들어낸 자랑이 크다. 그런 전통이 있으므로 국산을 주장하면서 수입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수입병”에 걸렸다고 비난한다. 펌프수입에 들어갈 돈도 아깝다. 자기 돈은 아니지만 나라의 돈을 아끼는 것이다. 헌데 공장의 상급단위인 채취기계공업지도국이 지지해주지 않는다. 채취기계공업지도국은 말그대로 채취부문 담당이라 분공과 관계없는 건설에 공장이 끼어드는 게 불만스러운 모양 이다. 리대철이 차 부국장에게 문제를 반영하고 의사를 밝힌 뒤의 대화를 보자. 

 

“용수철달린 장난감처럼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던 차부국장이 갑자기 리대철의 말허리를 자르며 버럭 성을 냈다. 

《여보! 지배인동무, 지금 제정신이요?》 

《?》 

《동무도 알다싶이 창전거리건설은 국가적인 관심속에 진행되는 대상이요. 그런만큼 누구도 그 일에 간섭할 권리가 없단 말이요.》 

자기의 의견을 긍정해주고 지지해줄줄 알았던 차부국장이 처음부터 반발하자 리대철은 그만 아연해지고 말았다. 

《나라의 존엄과 관련되는 중대사이기에 우리가 맡아 해결하겠다는데 그게 어떻게 간섭으로 됩니까?》 

《너무 요란하게 말하지 마오. 동무의 리해와 표현대로 한다면 다른 나라에서 사들여오는 수입품은 다 나라의 존엄을 허무는 것으로 된다는건데... 이것 보오. 우리가 만들지 못하는것을 사들여오는건 국가적인 립장에서 보면 어긋나는 것이 아니요. 아무렴 건설지휘부 사람들이 그걸 몰라서 그런 결심을 했겠는가.》 

속에서 장대가 치미는것을 가까스로 내리누르던 리대철은 그만 리성을 잃고말았다. 

《나라가 젖짜는 암소입니까? 나라에 돈이 남아돌아갑니까? 부국장동지도 고양정뽐프 한대 값이 얾마인지 모르지 않겠지요. 수십대 가격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보십시오. 그 돈이면 인민생활에 이바지할 공장 하나를 더 지을겁니다. 그래 부국장동지는 당의 국산화요구를 몰라서 그런 무책임한 말을 하는 겁니까?》 

흥분해서 손짓, 몸짓을 해가며 열변을 토하는 리대철을 어이없는 눈길로 치떠보던 차부국장이 손가락권총을 꼬나들고 엄포를 놓았다. 

《여보! 주제넘게 놀지 마오. 나도 그만한건 알아. 대상설비생산만 보장하자고 해도 숨이 가쁜 동무네 공장에서 어떻게 경험도 없이 첨단급고양정뽐프를 만든다고 흰소리요, 흰소리! 이부자리보고 발을 펴라는 말이 무슨 소리인줄 아오? 승산도 없는 일을 벌려놓았다가 ㅇㄹ이 망그러지면 그 책임은 누가 지는가 거기에 들어가는 자재, 로력이 얼마인지 타산이나 해보았소? 싹 그만두오. 주물직장이설로 남흥과 흥남가스화, 2.8비날론 그리고 숱한 대상설비생산을 미달해서 쩔쩔매는 형편에서 어벌뚝지 크게 뭘 만들겠다는거요.》”(41쪽) 

 

허나 리대철은 쉬이 물러나지 않는다. 기어이 자체로 제작하겠다고 달라붙으나 아무런 토대도 없다. 

 

“... 인민대학습당에 자료작업을 하러 올라갔던 설계실장과 설계원들이 빈손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인민대학습당을 뒤져보았으나 마음이 급해서인지 첨단급고양정뽐프에 대한 자료를 도무지 찾을수가 없었다. 발전된 몇개 나라의 독점물이다보니 기술자료를 일체 비밀에 붙인듯싶었다. 

리대철은 넘지 못할 산과 마주선 듯 앞이 막막하였다. 

참고할만한 자료가 없는 것만큼 령으로부터 시작하여야 했다. 

뽐프의 원리는 어슷비슷하지만 일반뽐프와는 달리 150메터이상의 높이에 물을 쏘아올려야 하는 것만큼 날개바퀴의 개수와 각도 등 기술적으로 해결하여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였다.”(76쪽)

 

허나 물러서서는 안 된다. 설계실장이 말한다. 

 

“지배인동지, 걱정마십시오. 뽐프설계가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항일혁명선렬들이 맨손으로 연길폭탄을 만들어 원쑤들을 족친데 비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소, 동무들?》”(79쪽)

 

전문가들은 정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정신을 발휘하여 끝끝내 요구에 부합되는 설계를 내놓고 컴퓨터로 모형까지 제작해낸다. 

그 뒤에도 주형에 쓰는 목형제작, 초고압에 견뎌야 하는 구상화흑연주철의 생산, 각종 원자재의 확보 등등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들이 자꾸만 발목을 잡지만 동주사람들은 하나하나 풀어나가고 반대자를 찬성자로 바꾸는 기적도 낳는다. 

원래 동주뽐프공장은 수입해야 하는 콕스에 의지하는 봉탄용선로를 썼는데 몇 해 전에 그걸 대담하게 까버리고 조선의 탄광들에 흔한 무연괴탄에 의한 용해법을 개발해냈고 또 수입원료에 의존하여 빚어지던 주물심형을 화학공장 폐기물로 만들어냈다. 

그러니까 콕스는 철강제련에서만 조선의 발목을 잡은 게 아니었다. 비콕스제철법으로 만든 “주체철”만큼 널리 선전되지는 않았어도 뽐프공장의 용선로개조는 경제실리를 크게 늘인 모양이다. 헌데 무연괴탄 용해법이 널리 보급되다나니 동주뽐프이 쓸 무연괴탄을 제때에 제대로 보장받지 못해 지배인 리대철이 직접 탄광 저탄장에 가서 경사면으로 굴러떨어지는 무연괴탄을 수집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기술개혁의 유쾌한 역설이라 해야겠다. 

또한 이런 묘사를 통해 조선의 석탄수출이 유엔 제재로 막힌다더라도 내수용도가 많아지고 내수규모가 커진다는 걸 알 수 있다. 필자는 전에 글에서 석탄의 수출금지로 백성들의 취사, 난방용석탄이 늘어나겠다고 판단하면서 “제재의 역설”을 언급했는데, 소설을 보면 공업용 내수시장(?)규모가 훨씬 크겠다. 

고양정펌프제작은 단순한 새 품종 개발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 리대철을 비롯한 인물들이 성격, 능력 등 부족점들을 극복하면서 더 큰 인간으로 자라나는 것이 감동 포인트인바, 어떤 사람이 진짜 강자인가를 몇 번에 걸쳐 밝혀준다. 

중년부부들의 가정생활, 청춘남녀들의 사랑싸움 등등도 재미거리다. “쇠덩이나 주무르는 공장에 무슨 먹을알이 있다고 일생을 파묻겠는가”(27쪽)고 여기면서 뛰어난 목공재간을 발휘해 사사로이 가구제작을 하면서 돈을 벌던 청년 정창근이 도소재지에 있는 대외건설사업소로 옮겨가려고 애를 쓰다가 결국 정신이 들어 일을 잘하는 등 역전도 볼만하다. 

 

책임의식과 계약의식 

 

무역회사가 자신 있게 펌프수입을 밀고나갔던 건 내각의 허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나라의 건설전반을 맡아보는 부총리(성도 이름도 나오지 않음)가 뒤늦게 무역회사 사장 리석민을 사무실로 불러들여 문제를 요해하는데, 리석민이 첨단급을 운운하고 완공된 살림집들에 물보장을 못하는 경우의 돌이킬 수 없는 엄중한 후과를 거들면서 구차스레 변명하여 아래의 대화가 생겨난다. 

 

“《옳습니다. 그건 심중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 동무들을 믿었어야 했습니다. 우리의 힘, 우리의 기술로 첨단급이 저들의 독점물인것처럼 으시대는 외국의 기술을 누르고 나라의 존엄을 떨치겠다는 그들의 배짱이 얼마나 귀중합니가. 그걸 믿어주고 내밀어주는것이 일군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로동계급이 결심해서 못한 일이 있습니까. 더구나 당에서는 사대주의와 수입병을 뿌리뽑고 자력갱생하라고 했는데 왜 우리 힘을 믿지 않고 수입에 매달리는겁니까?》 

부총리의 어조는 높지 않았으나 마디마디에 서리발이 느껴졌다. 

빠질 구멍이 막힌 리석민은 이마에 내돋은 땀을 손바닥으로 문대며 기여드는 소리를 하였다. 

《그 말은 옳습니다. 전 다만 첨단급을 만들어본 경험이 없는 그들을 믿었다가 물보장을 못하면 어쩌랴 하는 로파심으로...》 

《로파심인지 아니면 그 어떤 리해관계 때문에 그랬는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고... 현재 그 문제가 어떻게 되였는지 말해보시오.》 

리석민은 자기 속을 말짱히 헤집으려는 부총리가 원망스러웠다. 

반정신이 나간 리석민은 한동안 궁여지책을 짜내듯 침묵을 지키다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예. 그래서 대방과 계약했던 뽐프전량을 들여오지 않고 먼저 몇 대를 들여다가 동주동무들이 만든 뽐프와 대비시험을 해보고 성능이 좋은걸 선정하기로 했습니다.》 

불만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부총리가 말을 이었다. 

《어쨌든 일처리를 잘못했습니다. 물론 건설초기에 뽐프 수입문제가 제기되였을 때 우리 나라에서는 고층 아빠트에 물을 보장할 수 없는 고양정뽐프를 만들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수입해들여와야 한다는 동무의 말에 귀를 기울이였던 내 잘못이 큽니다. 그에 대하여서는 당조직에 찾아가 비판을 하겠습니다. 사장동무도 비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라도 동주뽐프공장 로동계급을 밀어주며 기어이 우리 식 뽐프를 성공하여야 합니다. 창전거리살림집들에는 수입품이 아니라 우리의 것을 놓아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부총리와 담화를 끝내고 밖으로 나서는 리석민의 등골로 땀이 철철 흘러내렸다. 

딛고 선 땅이 지진에 흔들리는듯 하여 몸중심을 바로잡지 못하고 비칠거렸다. 

어쩌면 자가의 운명에 피할 수 없는 함정이 입을 쩍 벌리고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은 게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233~ 234쪽)

 

이 대목에서 필자가 약간 놀란 건 부총리의 책임의식이었다. 그는 당조직에 가서 (자아)비판을 하겠다고 밝힌다. 행정직급이 굉장히 높더라도 당조직 내부에서는 자신을 평당원으로 간주함을 보여주는 것 같다. 반대로 리석민은 자꾸만 책임을 회피하고 요령을 부리다가 결국 골탕 먹는다. 조선에서 “숙청”당했다는 사람들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다고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장편소설 《강자》에 나오는 무역일꾼 형상은 썩 좋지 못하다. 훌륭한 간부 하나에 못난 간부 둘이라 1: 2비례다. 다른 문예작품들에서 대외무역일꾼들이 아예 나쁜 인물로 그려지던 것과 비기면 그나마 좋은 간부 하나가 등장하니 완전매도하지는 않았다고 할까? 언젠가 대외무역일꾼이 정면인물로 심지어 주인공으로 그려진 문예작품이 나온다면 그거야말로 조선사회와 조선문예계의 커다란 변화로 간주되겠다. 사실 정직하고 일 잘하는 무역일꾼들도 있을 게 아닌가. 

위 대목에서 뽐프를 일부 들여온다는 등 계약의 변경이 거들어지는데, 소설이 계약의 체결과 변경, 뽐프들의 대비시험 등을 다른 독자들은 어떻게 여길지 모르겠다만, 필자는 무척 중시했다. 

소설의 앞부분에서 펌프수입소식을 전해받고 건설지휘부로 달려간 리대철은 이미 무역일꾼이 펌프수입계약을 체결하고 상대방과 맞도장을 찍었다는 “사형선고와도 같은 소리”에 눈앞이 아뜩해졌으나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가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 계약을 취소시킬 수 없다는 겁니까? 왜 취소시키지 못합니까. 구걸이 아니라 돈을 주고 사오는 것인데 이제라도 얼마든지 취소시킬 수 있지 않습니까.”(18쪽)

 

외국회사의 물건도 대체로 주문서(오더)를 내리고 제작해야 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리대철의 이러한 계약의식은 조선 사회내부에서 통하더라도 외부에서는 통하기 어렵다. 솔직히 조선의 대외무역신용도는 오래 전부터 높지 않았는바, 소설이 그려낸 내부변수가 초래한 계약변화를 내놓고도 계약자체에 대한 인식이 외부 특히 자본주의사회의 공장, 회사들의 계약의식과 다른 게 원인으로 된다고 보인다. 거기에다가 소설에 그려진 계약 부대조건(한국식으로는 “이면합의”) 따위까지 존재하니 계약의 불확실성이 크지 않을 수 없겠다. 

창전거리가 준공 5년 뒤 시점에서 출판된 장편소설 《강자》는 창전거리에 설치된 고양정펌프들이 몇 해 째 잘 돌아감을 말해주고 또한 다른 고층건물들에도 고양정펌프들이 많이 쓰이리라고 짐작케 해준다. 소설은 물론 자력갱생의 필요성과 가능성, 수익성을 강조한 작품이지만 뭐가 보기 나름이라고 조선의 허점을 파고들려는 사람들로서는 무역회사 사장 리석민과 부원 윤상배의 언행과 심리를 통해 조선사람 공략수법을 알아낼 수도 있겠다. 어떻게 돈이나 물건으로 매수하느냐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강자》는 조선의 다른 문학작품들과 달리 본 후에 찜찜한 여운도 남겼다. 

북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다 그려진 《강자》는 이래저래 한 번 볼 필요는 있는 작품이다. 

 

 

 


광고

트위터 페이스북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애독자 18/05/20 [21:21]
안주뽐프(펌프)공장이겠군요.
역시 뉴스보다는 소설에서 그 속살을 읽을수 있군요. 물론 중국시민님이 소개하는 파편들로 밖에 접할 수 없지만요.


고양정펌프가 능력도 능력이지만 전력도 상당히 작게 소비되는 첨단제품이라네요.
요즘 전력부문에서 전국적인 전력공급체계가 세워지고, 교차계약체계가 실시되며, 각지 수력, 화력발전소들의 효율도 적극적으로 향상시키는 노력이 상당하다는군요. 태양빛과 풍력, 조수력발전도 전국적인 범위에서 도입되구요. 무연탄가스화에 의한 전력생산공정이 생산단위별로도 도입되고 있죠.
아마도 소형 원자력발전도 상당한 수준에서 진척되고 있으리라 추측되는데...물론 현재 진행되는 단천발전소, 강원도의 6개 발전소와 전국적인 중소형발전소건설등도 계속 진행되구요.


전력부문만해도 이런데 각 부문의 주체화, 현대화, 정보화, 과학화도 진행한다고 보면 북측의 자립적민족경제의 깊이를 추정해볼 수 있겠네요.


세계적으로 앞선 남측의 전력부문에 안주하여 북측을 폄하하는 풍조가 만연한 요즘...
판문점선언을 남측은 실사구시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큰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많으며, 모처럼 찾아 온 경제적 기회도 날려버릴 수 있다고 봅니다.
외부환경에 요동치는 빚더미경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북측의 경제구조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필요가 요즘은 더욱 절실해지는 시기입니다.
남측의 장점이 무역관련마케팅실력인데 이 부문에서 북측과의 협력(북측에게 노하우를 전수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던가 인턴형식으로 북측인원을 고용하던가)이 진행된다면 서로 도움이 될텐데...

아...그리고 엘리베이트는 요즘 평양승강기공장이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면 국산화가 광범위하게 진행되어 도입되고 있으리라 봅니다.


북측에서 나타난 경제고립봉쇄시도가 오히려 국산화를 촉진하는 경제제재의 역설이 요즘은 러시아와 중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는듯...


다음 편을 기다리며... 수정 삭제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 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