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협상의 역사와 교훈
곽동기 우리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
기사입력: 2018/05/24 [02:48]  최종편집: ⓒ 자주시보

[편집자 주: 이 글은 '민족과통일' 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미국 갈루치 대사와 94북미제네바합의서를 교환하는 강석주 비서     ©자주시보

 

정의용 대북특사단 단장이 백악관을 찾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행정부에 전하는 모종의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5월 북미정상회담에 응하면서 한반도 평화에 새로운 희망이 싹트고 있다.

그러나 지금껏 북미회담의 역사를 볼 때 우려가 큰 것도 사실이다. 북미 간 합의를 도출하고도 미국이 이를 파기한 사례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53년 정전협정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탁에 나선 것은 1953년 정전협정이 최초였다. 물론 정전협정은 북한과 중국인민지원군을 일방으로 하며 유엔군을 일방으로 하는 협정이었지만 당시 유엔군은 사실상 미국이 지휘했다고 볼 수 있다. 2013년 이시우 작가는 『유엔군 사령부』란 책에서 1950년 6월 27일 유엔안보리 결의 중 “군사적 조치 권고”를 미국이 자의적으로 해석, 왜곡했으며, 1950년 7월 7일 유엔안보리 결의는 유엔군사령부가 아니라 미국이 주도하는 통합군사령부 창설 결의라고 밝히고 있다.

1953년 7월 27일에 정전협정이 조인되었지만 미국은 그 후 정전협정을 위반하는 길로 나아갔다. 애당초 정전협정은 제4조 60항 ‘쌍방 관계정부들에의 건의’에서 “한국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하여 쌍방 군사령관은 쌍방의 관계 각국 정부에 정전협정이 조인되고 효력을 발생한 후 삼개월내에 각기 대표를 파견하여 쌍방의 한 급 높은 정치회의를 소집하고 한국으로부터의 모든 외국군대의 철수 및 한국문제의 평화적 해결문제들을 협의할 것을 이에 건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정전협정을 체결한 지 2달이 조금 넘은 1953년 10월 1일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면서 주한미군의 주둔을 영구화하려 하였다. 외국군대의 철수를 약속한 정전협정을 그대로 위반한 것이다. 

미국이 외국군대의 철수가 아니라 주한미군의 영구주둔을 꾀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전협정 이후 진행하기로 한 정치회담이 제대로 진행될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1954년 4월 26일부터 제네바에서 열린 고위급 정치회담에서 미국은 한반도 통일이 이뤄지기 전에 미군 철수가 불가능하다고 입장을 뒤집었다. 그리하여 제네바합의는 아무런 합의를 찾지 못하고 결렬되어 버렸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65년간 한반도는 정전체제에 놓여 상시적 전쟁의 위험을 안게 되었다.

 

94년 제네바합의 

지난 1994년에 미국이 문제 삼았던 영변 핵시설을 둘러싼 갈등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북한은 평화적 목적으로 영변핵시설을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미국은 그것이 핵무기로 전환될 우려가 있다며 전면 중단을 요구하면서 북미 간 대결이 첨예하게 불거졌다.

갈등으로 치닫던 북미관계는 1994년 6월 카터 미 전 대통령이 평양을 찾으면서 출로를 찾았다. 미국의 북한체제 보장과 북한의 핵 프로그램 동결이 포괄적인 합의를 보았던 것이다. 북미는 그해 10월 제네바합의를 도출하였다.

그러나 제네바합의는 그로부터 10년 후인 2003년에 전면 파기되고 말았다. 1994년 이후 북한이 심각한 경제난에 빠지자 북한이 곧 붕괴할 것이라고 본 미국이 제네바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이다.

미국은 북한이 제네바합의를 어겼다고 주장한다. 제네바합의에 없는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미국의 제임스 켈리 특사가 일방적으로 폭로할 의혹일 뿐 증거가 없었다.

반면 미국은 북한에 제공하기로 한 미국의 책임을 전혀 이행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미국은 제네바합의에 따라 북미관계를 개선해야 했으며 물질적으로는 북한에 핵물질을 전용할 염려가 없는 경수로 원자력 발전소를 지어주어야 하였다. 1차 경수로 건설은 애초 2003년 완공이 목표였으나 북한의 표현에 따르면 신포 경수로 발전소는 그때까지만 해도 “구덩이만 파놓은” 상태였다. 북한체제가 붕괴하리라고 본 미국이 북미관계개선도 외면하였고 경수로 발전소도 지어놓지 않은 것이다.

이에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은 직접 협상을 거부하고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으며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방침을 폐기하기로 선언했다”라며 당시 미국 부시 행정부를 비판했다.

또한, 제네바합의 당시 회담 당사자인 찰스 카트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무총장 또한 “제네바합의의 내적 논리에는 북미 간 관계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었”으나 “특히 (부시 정권 출범 후) 지난 2년간을 돌이켜보면 관계개선은 고사하고 더 악화됐다”라고 말했다.

 

북미 공동코뮤니케 

북미 간 합의는 또한 2000년 10월 북미 공동코뮤니케를 들 수 있다. 이 합의에 따라 2000년 10월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하였고 이어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미국을 찾았다. 그러나 이어 미국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할 차례였지만 이는 실현될 수 없었다.

당시 북미는 적대관계 종식을 선언하였고 평화보장체계를 수립하기로 하였다. 북한은 미사일 시험발사를 유예하며 제네바합의를 준수하기로 약속하였다.

그러나 이 합의가 타결되었던 시점이 클린턴 행정부 말기였다. 2000년 말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조지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부시 행정부는 클린턴 행정부가 타결했던 북미합의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폭정의 전초기지’로 몰아 북한에 대해 핵선제공격을 하겠다고 위협하였다. 북미 간 적대관계를 종식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악화시켜버린 것이다. 북미 간 평화보장체계도 제대로 추진될 리 만무하였다.

 

9.19 공동성명 

제네바합의가 파기된 이후에는 북미가 상대를 신뢰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했다. 결국, 한반도 핵문제 해결에는 그 당사국인 북한과 미국 이외에도 한국과 중국, 러시아와 일본 등 6개국이 중재자로 나서는 6자회담이 열리게 되었다.

2005년 9월 19일, 6자회담 장에서는 9.19 공동성명이 채택되었다. 이 자리에서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북미 간 동시행동 원칙을 합의하였다. 북한은 핵무기를 파기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하며 미국은 북한에 에너지를 제공하고 북미관계정상화를 추진한다는 틀이었다.

그러나 9.19 공동성명을 파기한 쪽은 이번에도 미국이었다. 9.19 공동성명 합의 직후 미국은 재무부가 나서서 북한과 거래하는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에 대한 제재에 나섰다. 이는 북한과 미국이 상호 주권을 존중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자는 9.19 공동성명 내용과 부합하지 않는 북한에 대한 적대 행동인 것이다. 2005년 당시는 북한이 핵보유선언을 하고 있던 상황이어서 9.19 공동성명 파기는 2006년에 북한이 제1차 핵실험을 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2.13 합의와 10.3 합의 

9.19 공동성명이 무산되었지만 6자회담은 우여곡절 끝에 지속되었다. 미국이 공동성명을 파기하는 원인을 제공했지만, 중국이 6자회담의 의장국으로 국제적 영향력 확대를 노리고 있었고 당시 노무현 정부도 6자회담의 틀에서 동북아균형자론을 견지해 회담 틀이 무산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지속된 회담의 결과로 2007년에는 2.13 합의가 채택되었으며 그해 10월에는 10.3 합의가 도출되었다. 2.13 합의는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는 미국이 제기하였던 BDA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문제가 나섰다. BDA 문제가 해결된 이후인 2007년 10월에 10.3 합의가 도출되었다. 10.3 합의는 2.13 합의의 연장선이며 제2차 남북정상회담과 맞물려 채택된 측면에서 지속될 수 있는 여건이 있었다.

그러나 2008년 오바마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미국은 이번에도 합의를 외면하였다. 북한이 발사한 인공위성을 탄도미사일이라 주장하며 유엔 안보리를 동원해 대북제재에 나서면서 북미 간 합의가 또다시 표류하게 된 것이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 

지난 기간 북미회담은 합의와 파기의 역사였다. 이는 끝없는 순환고리의 반복을 보는 듯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하나의 방향성은 분명히 존재하였다.

그것은 미국이 합의를 파기하면 할 때마다 북한의 핵능력과 미국본토 타격능력이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난 2017년 11월 29일, 북한은 화성 15형 발사에 성공하면서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번에 합의된 5월 북미정상회담은 지금까지 있었던 북미회담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지금까지 북미회담은 북한의 국가핵무력이 완성되지 않은 상황이었던 반면 이번 북미 정상회담은 미 본토를 타격할 핵단추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집무 책상 위에 있는 상황인 것이다. 최근에 국가핵무력을 완성하였다는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북미정상회담은 최후통첩의 성격이 있는 것이다.

이미 지난 9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개인 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을 두고 “미국의 늙다리 미치광이를 반드시, 반드시 불로 다스릴 것이다”라고 선언하였다. 만일 트럼프 행정부가 이전처럼 또 합의를 파기하려 하면 한반도 정세는 파국을 면치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측면에서 북한과 미국은 북미정상회담에 성실하게 나서야 한다. 그리고 북미 정상회담의 합의를 성실하게 이행해야 한다. 그것이 한반도 정세를 파국으로부터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출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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