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산지석] 6. 25때 중국인민지원군, 왜 치열하게 싸웠나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8/06/02 [17:44]  최종편집: ⓒ 자주시보

 

6. 25 전쟁에서 중국인민지원군, 한국에서 오랫동안 “중공군”으로 불렸던 군대에 대해 아직도 많은 한국인들은 “인해전술”로 밀고 내려왔다는 정도로 안다. 

자동화무기들을 갖추고 기계화수단이 발달한 서방군대 앞에서 그 무슨 “인해전술”이란 통할 리 없음은 군사상식이건만 “인해전술”이란 쉬운 말로 쉽게 해석하려는 사람들은 단세포동물을 연상시켜 머리가 아까울 지경이다. 

 

사실 중국인민지원군에는 전장을 오래 누빈 부대들이 많았고 특히 1950년 10월에 제일 먼저 참전한 몇 개 군(군단)은 해방전쟁기간에 중국의 동북에서부터 남방 끝까지 쳐나간 강군이었다. 

1948년 말에 동북을 떠나 산하이관(山海关산해관) 안쪽으로 들어갔다가 이듬해 5월 창쟝(长江장강, 양즈쟝양자강)을 넘어 강남을 휩쓸면서 1949년 말까지 남방을 모두 해방했고 더욱이 일부 부대는 1950년 봄에 바다를 넘어 중국 남쪽 끝의 하이난도(海南岛해남도)까지 해방했으므로 전투 하면 자신감이 넘쳐났고 전투기술도 높았다. 

하기에 1950년 가을 참전에 앞서 부대들에는 보편적으로 적을 경시하는 정서가 존재했는바, 제1차로 나간 부대들 가운데 여벌 치약도 갖추지 않았던 군인들이 꽤나 되었다는 건 유명한 사실이다. 

39군에는 “빨리 싸우고 빨리 이겨 빨리 귀국하자(快打、快胜、快回国)”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116사(사단) 346퇀(연대) 1련(중대) 5반(분대) 14명 전사 중 12명이 3주일이면 문제를 해결한다고 여겼다. 

“일주일 길을 걷고 일주일 싸움하고 일주일 귀국한다(一个礼拜走路, 一个礼拜打仗. 一个礼拜归国).” 

“구멍 다섯 개짜리 신 한 켤레로 조선 전역을 다 뛰어다닐 수 있다(一双五眼鞋即可跑遍全朝鲜).” 

 

▲ 중국지도. 지도상으로만 비교하면 짧은 기간 내에 쉽게 이긴다고 여긴 이유가 이해된다.     © 자주시보,중국시민

 

10월 25일 첫 싸움이 붙어 미군과 한국군을 이긴 뒤 이런 자신감은 중국인민지원군에서 더욱 널리 퍼졌는데, 싸움이 3주일 내에 끝나지는 않았으나 11월부터 제2차 전역으로 유엔군을 3·8선 이남으로 몰아내면서 빨리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허나 제3차, 제4차, 제5차 전역들을 잇달아 치르면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로해진 사람들이 늘어났다. 346퇀의 사상문제는 1951년 여름에 두드러졌다. 5차례 전역을 거쳐 1951년 여름부터 전선이 상대적으로 고착되고 전쟁이 장기화추세를 보이면서 언제나 끝나겠느냐면서 전투와 고생에 대한 불평불만이 늘어났다. 

346퇀의 해결방법은 “3산1사(三算一查)”였으니, 부정치위원 치레이(齐雷제뢰)가 “세 가지를 계산하고 한 가지를 검사한다”는 “3산1사” 방법을 창조 및 운용하여  좋은 효과를 거둔 것이다. 

세 가지 계산이란 폭행계산(计算暴行), 재난추산(推算灾难), 원한청산(清算仇恨)이고 한 가지 검사란 항미원조 투지를 검사하는 것이었다. 

이 교육방법은 세 단계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우선 방문조사를 조직하여 미리 뜸을 들이면서 필요한 자료들을 준비했다. 부대가 직접 조선인들을 방문하기도 하고 면 정부의 간부와 화교들을 청해다가 보고를 듣기도 했으며 피해자 가족들의 말을 듣기도 했다. 여기서 중점은 신창면(新仓面, 당시에는 평안북도 창성군에 속한 면이었는데 뒷날 북반부에서 면이란 행정구획단위가 취소되고 군 아래에 이가 설치됐음)이었다. 

며칠 방문, 조사 한 다음 2단계로 넘어가 “3산”을 진행했다. 

 

우선 폭행계산은 3부분으로 나누었다. 

1. 살인계산. 여기서는 몇 사람을 죽였는가, 어떤 사람들을 죽였는가, 누가 죽였는가, 왜 죽였는가, 어떤 수단으로 죽였는가를 계산했다. 신창면에서 미군과 한국군(중국어자료에서는 메이리페이쥔美、李匪军즉 미군, 이승만 비적군대라고 표기했음)은 고작 40일 동안에 3300명을 학살했는데 남자, 여자, 노인, 어린이 등이 다 있었다. 사망자들은 노동당원, 지방간부, 인민군 가족, 열성분자, 착한 빈농, 머슴 등이었다. 죽인 자들은 미군과 한국군, 도망갔던 악당, 지주, 치안대였다. 죽인 이유는 그들이 반동착취계급이어서 인민의 해방을 증오하기 때문이다. 살인수단은 총살, 기관창 소사, 불태우기, 세균살해, 비행기 폭격, 몽둥이 타살, 총검으로 찌르기, 윤간해 죽이기와 비인간적인 고문 등이었다. 

2. 집 불태우기 계산. 한 개 이부터 시작해 나아가서는 한 개 면, 한개 군의 상황을 추산하고 마지막으로 전체 조선의 형편을 추산하면서, 부대의 행군노선도를 그려서 전사들로 하여금 지나온 마을들 가운데 불에 타지 않은 게 몇이나 되었던가를 회억하게 했다. 수자를 집계한 다음에는 가치를 계산했으니 이런 집들의 가산은 얼마이고 인민들이 얼마나 많은 피땀을 흘려야 갖출 수 있었느냐를 따졌다. 농민이 일년 일해 거둘 수 있는 식량은 얼마이고 남길 수 있는 돈은 얼마이며 얼마만한 돈이 들어야 집을 한 채 짓고 새 옷을 한 견지 해입으며 생산도구와 생활용품들을 갖출 수 있겠는가? 여기서는 최저수자에 근거해 계산할 수 있으나 굳이 정확한 수자를 맞추느라 애쓸 필요 없이 전사들이 놀라고 적들을 미워하게 하면 된다고 정치일꾼들에게 귀띔했다. 

3. 간음 계산. 여기서도 정치일꾼들에게 귀띔했으니, 상세히 계산할 필요가 없다고, 전사들의 적들의 짐승 같은 야만성을 인식하고 증오하도록 하면 된다는 것이다. 

 

간음, 실제는 강간에 대해 구체적으로 따지지 말라는 건 피해자들이 생존했기에 그들의 체면과 장차 생활을 고려한 조치라고 필자는 이해한다. 

 

다음은 재난추산이었으니 조선의 재난에 비추어 중국에서는 어떤 재난을 당할 수 있느냐를 추산한 것이다.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으로 전사들을 퉁겨주어 깊이 넓게 생각해보도록 하였다. 

1. 전쟁이 중국으로 퍼진다면 중국인민들이 어떤 적들을 만나겠는가? 

2. 전쟁이 중국으로 퍼진다면 중국인민들이 어떤 재앙을 당하겠는가? 어떤 사람들의 피해가 제일 심하겠는가? 

3. 전쟁이 중국에 퍼지면 동무의 집은 피해를 입지 않겠는가? 동무네 마을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재앙을 당하겠는가? 

4. 미 제국주의, 국민당 반동파, 일본제국주의, 지주, 악당들이 과거에 중국에서 왜 지금만큼 못되게 놀지 않았는가? 살인과 방화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는가? 

5. 지난날 동무의 집은 제국주의와 국민당반동파의 압제를 받았는가? 그런 자들에게 어떤 원한이 있는가? 

6. 한 사람이 조선에서 잠시 고생하는 게 좋은가? 아니면 전쟁이 조국으로 퍼져 온 집안이 장기간 종살이를 하는 게 좋은가? 

7. 만약 미 제국주의가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면 동무네 집 살림은 어떠하겠는가? 

 

열렬한 토론을 거쳐 사람들은 항미원조의 필요성을 충분히 인식했다.

 

셋째로 원한청산은 개인을 동원하여 과거의 설움을 털어놓게 함으로서 뭇사람의 공감을 자아내는 방식을 취했다. 

3단계에서는 고생과 전투를 두려워하고 상급을 믿지 않으며 항미원조의 승리를 의심하던 사상들을 검사하여 투지를 분발시켰다. 2련(중대)을 예로 보면 학습 전에 보편적으로 승리를 믿지 않았으나 검사 후에는 1명만이 믿지 않았고, 전에는 다수가 귀국하고 싶어했으나 후에는 보편적으로 이제 10년 싸우더라도 고생스럽다고 아우성치지 않겠다고 보증했으며, 원래는 전투를 겁내는 사람들이 26명이었으나 후에는 2명만이 잘 싸우겠다는 결심을 표시하지 않았고, 원래는 42명이 고생을 두려워했지만 후에는 7명만이 결심을 표시하지 않았다. 

 

346퇀의 교육효과가 좋은 원인은 내용이 전사들의 경력과 밀접히 연계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되었다. 부대는 참전한 후 운산에서부터 평양, 서울, 한강 등을 전전하면서 가는 곳마다에서 미군의 방화, 살인, 강간 폭행에 부딪쳤으니, 불을 끄고 길가의 여인과 어린이 주검을 묻고, 폭격에 부상당한 백성들을 치료하고, 사형장에서 군중들을 구출했다. 강간당해 죽은 처녀, 죽은 어머니를 두드리며 우는 피투성이 아기, 떠돌다가 얼어 죽고 굶어죽은 백성들을 그들은 여러 번 보고 들었고 토론도 했으며 분개도 했었다. 그처럼 토대가 견실했으므로 교육은 기대한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346퇀 만이 아니라 중국인민지원군 전반적으로도 정황의 변화에 따라 각 부대 특징에 맞게 적절한 정치사상사업을 전개했고 진지전 시기에는 물질적으로도 보장을 잘 해나갔기에 많은 모범전투사례들을 창조할 수 있었다. 

 

여기서 소개한 아군강화용 정치사상사업을 통일문화 가꿔가기 33편(www.jajusibo.com/sub_read.html?uid=38999)에서 소개한 적군의 “심리전”에 맞선 정치사상사업과 결부시키면 중국인민지원군이 어떤 생각으로 그렇게 치열하게 싸웠는지 좀이나마 감이 잡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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