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속 조국분단] 3.‘인민 루니’ 정대세와 조선학교

박명훈 | 기사입력 2018/06/20 [13:32]

[일본 속 조국분단] 3.‘인민 루니’ 정대세와 조선학교

박명훈 | 입력 : 2018/06/20 [13:32]

 

눈물: ‘반짝 유명세’에 가려진 자이니치의 그늘

 

저는 민족학교에서 자랐기 때문에 제 자신이 재일(자이니치)’라는 것을 똑똑히 자각할 수 있었어요.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강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됐어요. 일본에서 소수자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흔들리지 않는 지축이나 신념을 우리학교(조선학교)에서 배웠죠” –정대세

 

자이니치 축구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집, <우리가 보지못했던 우리선수> 중에서

 

‘자이니치 3세 축구선수’ 정대세. 북한 축구 국가대표로 2015년 제19회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 출전한 그는 북한 대 브라질 경기가 시작하기 직전 북한의 애국가가 흘러나오자 하염없이 눈물을 펑펑 쏟았다. ‘도대체 그 사람이 왜 그렇게 울었을까?’라는 궁금증에 세간의 이목이 쏠렸다.

 

정대세의 눈물은 자이니치의 복잡한 심정을 고스란히 대변하고 있다. 하나씩 짚어보면 북한과 친북한계 재일동포단체인 조선총련의 지원을 받아 민족교육을 실시하는 조선학교에서 학습한 자이니치가 북한을 ‘조국’으로 삼게 된 역사, 자이니치 대다수의 고향이 한반도 남부인(경상도, 전라도, 제주도) 사실, 눈에 보이는 차별을 감수해야 하는 자이니치가 일본을 삶의 터전으로 인식하는 마음이 얽혀있다. 아울러 조국인 북한의 대표로 참가할 수 있어 감격스럽다는 감정도 읽을 수 있다.

 

눈물로 대변되는 정대세의 가치관은 일본에서 현재진행형인 자이니치의 ‘분단된 일상’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눈물에는 ‘나는 어떤 존재인가’라는 정대세의 고민과 ‘빨리 남북통일을 이루었으면’이라는 소망이 병존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그 고민에 공감하지 못한다. 한반도에 뿌리를 둔 식민지 재일조선인의 자손으로서 일본에 남게 된 동포들의 삶을 학습하지 않는 사회를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규 역사교육과정에서조차 자이니치의 기원(앞선 연재를 참고하시길)을 가르치지 않는 것이 분단국가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국적에 얽매이지 않고 경계를 넘나드는 듯한 자이니치의 삶은 이른바 ‘한국인의 상식’으로는 좀처럼 쉽게 받아들일 수 없으리라.

 

따라서 한국에서 자이니치를 가리켜 ‘동포라면서 우리말을 왜 그렇게 못 하냐’ ‘그렇게 힘들면 차라리 일본으로 귀화를 해라’ ‘한국 국적을 취득했으면서 어떻게 북한을 조국으로 여길 수 있냐’ 등의 반응이 잇따르는 것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한국 사람들’은 무심코 툭 던진 위와 같은 말들이 자이니치의 가슴에 고통스러운 비수가 되어 박힌다는 인식을 할 수 없는 그런 사회에서 살고 있다.

 

한 때 방송 예능프로그램에서 ‘인민 루니’(정대세의 경기모습이 저돌적인 공격수로 이름을 떨친 잉글랜드의 축구선수 웨인 루니와 비슷한 점에 착안해 북한에서 국민을 가리키는 표현인 인민을 더해 화제가 된 바 있다)로 소개돼 한국에서 널리 유명세를 떨친 실력 있는 축구선수 정대세.

 

정대세의 할머니와 할아버지(1세)는 일제강점기 때 경상도 의성에서 일본 아이치(愛知)현 나고야(名古屋)로 건너갔다. 그의 부모님(2세)은 일제패망 이후 태어났다. 각각 아버지 정길부는 한국 국적, 어머니 리정금은 조선적이다. 과거 히로시마(広島)에서 조선학교 교사로 일한 경력이 있던 어머니는 정대세에게 민족교육을 받을 수 있는 조선학교 진학을 적극 추천했고 아버지도 흔쾌히 찬성했다고 한다.

 

일본정부는 1985년 이전까지 아버지의 국적을 따르는 ‘부계 혈통주의’를 못 박고 있었다. 그 결과로 1984년에 나고야에서 태어난 정대세는 한국국적을 취득했다. 이는 자신이 꼭 원한 결과가 아니었다. 만약 그가 국적법을 재정해 부모의 한 쪽 국적을 따르는 ‘부모 양계주의’를 채택한 1985년, 그러니까 딱 1년만 늦게 태어났더라면 한국국적이 아닌 조선적을 취득했을지도 모를 일이다.(다만 조선적은 국적이 아닌, 해방 이전 옛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난 조상을 뒀음을 나타내는 기호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이전 연재를 참고하시길)

 

정대세(3세)는 조선학교를 졸업한 뒤 2006년에 카나가와(神奈川)현 카와사키(川崎)시에 연고를 둔 카와사키 프론탈레에 입단해 J리그(일본 프로축구)에서 첫 축구인생을 시작한다.

 

이후 정대세는 김정훈 감독이 이끄는 북한 축구팀에 국가대표로 발탁돼 2010년 제19회 남아공 월드컵에 출전해 인상 깊은 활약을 펼쳤다. 그밖에도 독일 프로축구리그인 분데스리가에 진출하고 2011년에는 제15회 AFC 아시안컵에서 다시 북한 국가대표로 나섰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는 한국의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옮겨 K리그에서 뛰었고 2015년 7월부터는 일본으로 돌아가 시즈오카(静岡)현 시즈오카시에 연고를 둔 ‘1부 리그’ 시미즈 애스펄스에서 녹슬지 않은 기량을 발휘하고 있다.

 

여기서 수수께끼. 정대세는 어떻게 한국 국적을 유지한 채 북한 국가대표로 뛸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분단의 특수성을 고려한 축구협회의 이해가 있었다. 재일조선인축구협회가 정대세의 북한 국가대표 발탁을 인정해달라고 호소하자 국제축구연맹(FIFA)은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해 정대세의 북한대표 발탁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 북한. 일본, 독일을 스스럼없이 넘나들며 축구인생에 날개를 단 정대세의 행보는 세계 축구사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독보적이다. 특히 지금까지 정대세가 분단된 조국(한국과 북한)에서 동시에 주목받아 크게 유명세를 떨친 단 한명의 자이니치라는 ‘대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그만큼 한반도의 분단 상황이 엄혹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이렇듯 한국국적을 취득했지만 북한을 조국으로 여기는, 그러면서도 일본인들과 부대끼며 지내는 정대세의 모습. 자이니치 3세로서 일본사회(차별을 포함해서)에 익숙해진 동시에 자신의 뿌리가 분단된 한반도에 있음을 늘 기억하는 이런 삶의 방식이 정대세 뿐만이 아닌 다른 조선학교 학생들에게도 깃들어 있다.

 

만약 정대세가 조선학교에 입학하지 않았더라면, 일본인들이 다니는 학교나 우리말을 가르치지 않는 재일민단이 운영하는 학교에 다녔더라면 위와 같은 인식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조선학교는 우리민족의 정체성과 문화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일본에 남은 유일무이한 통로다. 이 점을 알아야 비로소 정대세의, 학생들의 일상을 공감할 수 있다.

 

환희: 에다가와 조선학교 살리기 운동

 

정대세의 모교인 조선학교는 일제패망 직후 자이니치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일본 각지에 건립한 민족학교다. 조선적, 한국국적, 일본국적을 지닌 자이니치 학생들이 함께 민족의 얼을 배워나가는 연대의 공간이 바로 조선학교인 것이다.

 

일제패망 직후 일본 곳곳에 설립된 국어강습소(한반도로 귀향하기에 앞서 아이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고자 설립된 교육기관)가 기원인 조선학교는 1955년부터 북한과 친북한계 재일동포단체인 조선총련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조선학교는 한국국적 자이니치와, 조선학교를 응원하는 한국 사람들 나아가서는 일본 시민단체로부터도 모금 지원, 조선학교 무상화 차별 철폐 시위 동참 등 다양한 형태의 지원을 받고 있다. 조선학교가 남녘과 북녘과 일본을 아우르는 국제적 교류의 장이라는 평가는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 조선학교의 상황은 일본학교나, 일본정부의 승인을 받은 다른 외국인학교(재일민단이 한국정부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건국학교 등을 포함)과는 달리 매우 열악하며 존폐의 기로에 허덕일 만큼 위태로운 경우도 있다.

 

일본에서는 자이니치에 대한 일본의 차별이 일제의 식민지배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에 핏대를 세우며 배격하는 분위기도 강하게 맴돌고 있다. 지난 2003년 극우 성향의 이시사라 신타로(石原慎太郎)가 수장으로 있던 토쿄도(東京都)가 초등교육을 담당하던 에다가와(枝川) 조선학교(정식명칭은 토쿄 조선 제2초급학교)의 사실상 ‘폐교’를 청구하는 법정소송(이하, 에다가와 소송)을 청구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토쿄도는 에다가와 조선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토쿄조선학원에 대해 학교가 불법으로 현관과 직원실 등 토쿄도 소유의 토지를 무단점거하고 있다며 4억엔에 이르는 토지임대료를 청구하고 토지 반환소송을 제기했다. 재정상황이 열악해 당시 70명도 채 안 되는 학생들을 감당하기에도 벅찼던 에다가와 조선학교로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학교 폐쇄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토쿄도의 주장은 사실일까. 토쿄도는 지난 1941년 토쿄 중심부의 조선인마을을 강제로 철거하고 재일조선인들을 강 하변으로 몰아내면서 쓰레기 매립장을 만들라고 명령했다. 해방 이후 자이니치들은 구정물이 무릎까지 차오르는 황무지를 힘들여 정리하고 에다가와 조선학교를 세워 교육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에다가와 조선학교의 일부 시설물이 토쿄도의 소유라는 점에서 ’불법 점거‘가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지만, 1970년대에 토쿄도가 강제이주 된 자이니치의 역사를 살펴 에다가와 조선학교와 20년 주기로 토지를 무상으로 공여하는 계약을 맺기로 하면서 일단락됐다. 그렇기에 토쿄도가 급작스럽게 제기한 소송에는 평소 자이니치를 헐뜯는 ‘극우 발언’을 거리낌 없이 쏟아낸 이시하라 개인의 의도가 담겨있었음이 명백했다.

 

이는 학교 부지가 60년 동안 에다가와 조선학교의 땅으로 인정받아온 온 관행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묵살한 폭거였다.

 

자이니치의 소식을 전하는 인터넷매체 KARMS.TV의 2009년 5월 2일 보도에 따르면 송현준 에다가와 조선학교 교장은 “학교는 그야말로 지역동포들로 꾸려진 커뮤니티의 장이며 학교가 없어진다는 건 지역동포들의 커뮤니티가 없어진다는 것”이라면서 “학교의 존재는 민족의 계승으로 이어진다”라고 강조했다.

 

송 교장 자신이 자이니치 2세이자 에다가와 조선학교의 졸업생이다. 송 교장은 직접 하교하는 학생들을 집으로 바래다주는 운전기사를 자처해 재정을 절약하는 한편 학부모들로 구성된 학교운영위원회에서 논의를 통해 위기극복을 위해 절치부심했다. 그 노력이 빛을 본 것일까. 에다가와 조선학교는 ‘분단을 초월하는 연대’에 힘입어 고비를 넘기고 살아났다.

 

4년 동안 이어진 ‘에다가와 소송’은 토쿄 지방재판소(지방법원)가 2007년 3월 8일 에다가와 조선학교와 토쿄도 양측에 화해조정을 권고하면서 물꼬가 트이게 된다. 에다가와 학교는 토지시가의 10%인 1억 7천만엔에 토쿄도로부터 부지를 매입하라는 재판소의 조정안에 합의했다.

 

한 고비를 넘겼을 뿐 시련은 여전했다. 한화로 17억 5천만원(2017년 8월 9일 기준)에 이르는 큰돈을 재정이 열악한 에다가와 조선학교가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문제는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는 물론 조선총련과 대립각을 세우던 재일민단 소속 회원 등으로부터 후원이 빗발치면서 머지않아 해결됐다. 2007년 6월 학교 측이 토쿄도에 1억 7천만엔을 지급하면서 소송은 종료된다. 그렇게 에다가와 조선학교는 온전히 자이니치를 위한 교육공간으로 거듭났다.

 

특히 한국에서 결성된 시민연대인 ‘에다가와 조선학교 지원모금 공동대표단’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김용택 시인과 당시에는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맡고 있던 박원순 서울시장 등이 에다가와 조선학교의 구원타자로 기꺼이 나섰다. ‘북한의 지원을 받는 조선학교에 지원해서는 안 된다’는 몇몇 인사들의 주장을 물리친, 분단의 굴레를 넘어선 눈부신 쾌거였다.

 

마지막으로 이명박 정권 당시 2011년의 한 일화를 소개하면서 조선학교의 의의를 곱씹어보고 싶다.

 

몇 년 전 에다가와 조선학교가 토쿄도에 부지를 빼앗길 위기에 처했을 때 조총련계와 민단, 그리고 내국민이 힘을 합쳐 소송과 모금활동을 통해 위기를 극복한 사례가 있었다. 이는 재일동포사회에서는 조선학교가 북한식 교육이 아닌 우리말을 가르치는 민족학교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현재 단 4개뿐인 한국학교의 상황으로 볼 때, 조선학교가 붕괴 될 경우 재일동포의 민족교육에 큰 공백이 생길 우려가 있다. 이념대립의 장이 아닌 통일 시대를 대비한 교육의 장으로 나아가고 있는 만큼 우리정부도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촉구해야 한다

 

김충환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외교통상부 전체회의에서 밝힌 발언(201133)

 

위는 이명박 정권 당시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김충환 의원이 조선학교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봤는지 잘 보여준다. 이명박 정권을 비판하는 시민을 향해 ‘종북’이라고 낙인찍던 한나라당의 소속 의원조차도 조선학교의 존재를 ‘상식’으로 여겼다는 것.

 

조선학교의 존치는 상식이다. 북한을 추종하는 조선학교를 없애야 한다는 얼토당토않은 이념의 논리를 배격해야 한다. 우리는 조선학교가 분단된 남녘과 북녘 그리고 자이니치를 잇는 ‘통일의 통로’로 기능하고 있음을 면밀하게 주시해야 한다.

4. ‘제국 일본과 맞짱뜨다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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