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속 조국분단] 4. 자이니치의 편에 선 사람들
박명훈
기사입력: 2018/06/22 [15:39]  최종편집: ⓒ 자주시보

 

대일본제국과 시인 종추월에 대하여

“조선 출신의 일본사회 구성원이 아니라, 식민지 역사를 드러내지 않는 일본인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일본제국 vs. 자이니치 대결의 역사 1945~2015> 178쪽.

 

<일본제국 vs. 자이니치 대결의 역사 1945~2015>의 저자 이범준은 책에서 자이니치를 바라보는 일본의 시선을 위와 같이 진단한다. 그 본질적인 배경에는 일제 패망 이후 식민지배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전혀 없이 ‘대일본제국’의 질서를 고스란히 계승한 국가 일본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있다고 설명한다.

 

6000명이 넘는 식민지 재일조선인들이 무참히 학살당한 1923년의 관동대학살을 떠올리면 일본사회에 ‘자이니치 혐오’가 퍼진 지 꽤 오래됐음을 알게 된다. 지금, 조선학교는 외국인 교육기관 중에서 유일하게 무상교육 정부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재특회(在特会, 재일(자이니치)의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들의 모임) 등의 극우단체 회원들은 인터넷에서 ‘바퀴벌레 조선인은 일본을 떠나라’와 같은 혐오발언을 쏟아낸다. 이와 같은 자이니치에 대한 차별은 경제규모 3위를 자랑하는 일본의 추태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 패망 이후 식민지배에 대한 성찰 없이 민족차별을 조장해온 일본의 분위기를 정면으로 비판하며 행동에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 자이니치 자신을 비롯해 자이니치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주는 이들은 노골적인 차별과 억압을 뚫고 살아온 자이니치의 역사를 재조명한다. 마치 그들의 마음가짐은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않고 제국의 질서를 그대로 계승한 국가 일본과 맞서겠다는 태도로 무장되어 있는 듯하다.

 

이제 그들의 모습을 통해 제국 일본의 잘못된 질서, 그 폐부를 송곳처럼 찌르는 자이니치의 존재를 주목해보려 한다.

 

“당신 죽지 말지어다 아직은.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의 대본(大本)의 대신(大神)의
피가 당신의 피가 흐르고 있음으로 하여
적자(赤子)라는 이름으로 끌려온 우리 아버지는
치쿠호(筑豊)탄전의 갱부였던 우리 아버지는
인고단련(忍苦緞鍊)하여 훌륭한 국민이 되겠습니다라고
된다 되어라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황국신민서사를
외우셨다는 우리 아버지는 열도의
흙이 되어 흩어져버렸고
키미가요(君が代 , 당신의 세상)의 키미(당신)의 국토의 자양이 되었다”

 

종추월(宗秋月(1944~2011), 본명 송추자(宋秋子))의 시(時)
‘비탄의 패러독스(哀のパラドックス)’ 중에서 일부 발췌.
-『아사히저널(朝日ジャーナル)』 1988년 10월 14일자.

 

큐슈(九州) 사가(佐賀)현에서 태어난 자이니치 2세 종추월은 자이니치를 글(일본어)로써 알리는 데 힘을 쏟은 시인이자 소설가다. 그녀는 젊은 시절 생계를 꾸리기 위해 양복봉제, 화장품 판매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끝내 ‘자이니치 문학’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조상과 고향을 떠올리는 그리움과 생활고 등을 독특한 심성으로 풀어냈다고 평가받는 종추월의 글은 <종추월전집>, <이카이노타령>(猪飼野タリョン), <사랑해-사랑합니다>(サランへ―愛してます) 등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그녀의 삶과 문학을 기리는 팬들이 상당수 있다.

 

‘비탄의 패러독스’는 종추월의 작품 가운데에서도 특히 일제에 대한 저항과 현실폭로의 메시지가 강력하다. ▲일제강점기 당시 천황을 우러러보는 충직한 신민(臣民)이라는 표현의 적자 ▲일제의 군수산업을 뒷받침하는 석탄의 산출지였던 치쿠호탄전에 징용된 동포들 ▲침략전쟁에서 수세에 몰린 일제가 승리를 바라는 자세를 식민지 민중에게 강요한, 참고 견뎌 몸과 마음을 튼튼히 하라는 인고단련의 태도 ▲천황을 의미하는 키미(君)를 통해 ‘바위에 이끼가 피어날 만큼 오랜 세월이 지나도 천황의 치세는 영원하리’라는 사상을 견지한 일제를 꼬집고 있다.

 

종추월은 일제강점기 부모님(식민지 재일조선인) 시절의 이야기를 격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는 재일조선인을 억압하던 일제의 질서가 1945년 8월 15일 이후에도 형태가 약간 변했을 뿐 여전히 우리 동포에 대한 차별과 억압이 지속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문학으로써 일본의 실상을 꾸짖으며 그 실체를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이자 비교문학자인 나카무라 카즈에(中村和恵)는 ‘북아사히닷컴’에 실은 2016년 12월 11일자 서평에서 <종추월전집>을 다음과 같이 논한다.

 

“문학이 아닌 그 원천의 목소리에 몸을 두고 자이니치를 살아가는 민중의 입장에 서겠노라고 마음을 굳힌 시인의 시와 소설에서 들려오는 것은 문학을 배울 기회가 없었던 어머니와 그 어머니들의 목소리다”

 

혼혈인 노마 필드, 자이니치를 불러 깨우다

 

앞서 언급한 종추월의 시 ‘비탄의 패러독스’는 일본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일본학자 노마 필드의 대표저작 <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의 서두를 장식하고 있다. 필드는 왜 패전 이후 천황제를 정점으로 한 제국주의적 사고방식에 잠식된 일본사회를 조명하는 이 책에서 하필이면 종추월의 시를 가장 처음 앞세운 것일까? 꼭 그래야만 했던 것일까?

 

필드는 어린 시절을 토쿄(東京)에서 보냈다. 책에서는 일본인이라고도 그렇다고 미국인이라고도 할 수 없던 저자가 일본에서 맞닥뜨린 정체성의 혼란, 그 단면을 엿볼 수 있다. ‘혼혈인’ 필드는 일본인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던 중 어느 한 순간 자신이 보통의 일본인들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고 거대한 충격을 받는다. 그런 필드에게 일제의 분위기가 청산되지 않은 분위기는 무척 기묘하고 위험하게 와 닿았던 것 같다.

 

필드가 취재를 위해 일본에 들어와 있었던 1988년 연말과 1989년 연초. 침략전쟁을 지휘했던 천황(天皇, 일왕(日王)) 히로히토(裕仁)가 위독해지자 일본 전역의 일본인들은 이른바 자숙을 취했다. 천황의 전쟁책임에 대한 비판은 용납될 수 없었으며 웃고 떠드는 코미디 예능프로그램을 중단한 방송은 대중에게 엄숙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전파했다. 천황의 이름으로 침략전쟁을 개시하고 식민 지배를 정당화한 일제의 볼썽사나운 행태는, 대다수 일본인들 사이에서 히로히토의 죽음과 함께 얼렁뚱땅 파묻혀 버렸다는 것이 필드의 결론이다.

 

그녀는 일본의 위화감을 기록하기에 거리낌이 없었다. 필드가 취재한 인물들은 하나 같이 제국 일본에 맞서고 있다. 천황에 대한 충성의 경례를 강요하는 정부의 방침에 반발해 일장기를 불태운 오키나와(沖縄) 주민, 천황제를 비호하며 침략전쟁을 반성 않는 자민당 정권에 대해 쓴 소리를 이어가는 자민당 소속 나가사키(長崎) 시장 등은 일본의 분위기가 잘못 됐어도 한참 잘못되었노라고 거세게 일갈한다. 주변에서 그만두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하다는 협박을 숱하게 받으면서도 말이다. 그들은 지리적으로는 떨어져 있을지언정 일본의 뒤틀린 질서를 용납할 수 없다는 정서를 가졌다는 점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종추월은, 자이니치는 그 정서적 연결의 정점에 자리하는 존재다. 그렇기에 필드가 첫 번째로 호명한 자이니치의 시는 매우 특별하게 와 닿는다. 그녀 자신이 어렸을 적 느꼈던 혼란과 불편함을 자이니치는 더욱 크게 느꼈을 것이란 판단에서였으리라. 자이니치의 삶과 일상은 오늘날 일본사회의 구조가 여전히 제국주의라는 망령에 사로잡혀있음을 뚜렷하게 증명한다. 종추월과 필드 두 사람은 글을 날카롭게 벼려 제국의 질서에 저항했다는 점에서 삶의 자취가 유사하다 할 것이다.

 

일상 속 조력자들 (하세가와 카즈오, 쿠와타 케이스케)

 

하세가와 카즈오(長谷川和男)

 

필드가 제국 일본의 질서를 책으로써 통렬하게 성토했다면, 자이니치와 일상을 함께 한 든든한 조력자들도 있다. 비록 이들이 주류는 아니지만 자이니치의 삶에 공감하는 인식이 교육, 언론, 문화계에 퍼져있고 바뀔 것 같지 않는 일본사회에 일정한 균열을 내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그 대표주자인 교육자(내 페이스북 친구이기도 한) 하세가와 카즈오를 소개한다. 하세가와는 토쿄 소재 한 초등학교에서 장애학생을 담당하던 젊은 교사 시절 조선학교의 학생들과 교류하게 되면서 자이니치에 대한 차별을 마주했다. 자이니치의 권리향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뜻이 맞는 일본인 동료들, 조선학교 학생들과 연계해 교육현장에서 목소리를 크게 높였다.

 

은퇴 이후 나이 70이 훌쩍 넘었지만 하세가와의 열정은 오히려 더욱 커졌다. 올해 6월 20부터는 후쿠오카(福岡)시의 후쿠오카조선초급학교를 시작으로 모든 조선학교를 도보로 이동해 방문하겠노라는 결심을 굳혔다. 하세가와 스스로 체력적으로 힘들다 면서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가 도보행진 중에 든 깃발에는 ‘조선학교에도 고교무상화를!’이라는 구호가 선명하게 담겨 있다.

 

조선학교 학생들은 하세가와가 올 때와 갈 때를 맞춰 교문에서부터 깍듯이 예의를 갖춰 열렬히 맞이하고 배웅한다. 학생들은 인상 좋은 일본인 할아버지가 진심을 다해 자신들의 편을 들어주고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감격해 한다. 인연이라 부를 일. 다만 젊은 일본인들이 하세가와처럼 자이니치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기에 앞으로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아 보인다. 일본의 뒤틀린 질서를 변화시키고자 자이니치와 일본인이 함께 등을 맞대고 손을 움켜쥐는 연대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이 확산되고 있는 것도 사실.

 

하세가와의 입장을 인터뷰해 2017년 8월 20일 보도를 통해 고스란히 전달한 토쿄신문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유력지(수도의 지역지라는 상징성이 있어 일정한 영향력이 있다) 가운데 가장 진보적 색채를 뿜어내고 있는 이 신문은 지면에 싣는 사설과 서평을 통해 꾸준히 자이니치의 권리향상을 ‘응원’하고 있다. 다음의 서평은 좋은 사례다.

 

“우리들은 어떤가. 위정자가 역사를 망각하고 증오의 욕을 내뱉는 어리석은 자(者)까지 나타나는 가운데, 이 책의 부름이 한 사람이라도 많은 ‘일본인’에게 꽂히기를 바란다”

 

아오키 오사무(青木理) 저널리스트가 2017년 3월 19일자 토쿄신문에 <사상으로서의 조선적>의 서평을 소개하면서 독자에게 건네는 당부.

 

쿠와타 케이스케(桑田佳祐)

 

1956년생인 쿠와타 케이스케는 일본에서 가장 명망 높은 1978년에 결성된 국민 밴드 사잔 올 스타즈(Southern All Stars)를 이끌고 있다. 사잔 올 스타즈는 1995년 <LOVE KOREA>라는 노래를 발표했다.(36번 째 싱글 앨범인 <あなただけを(당신만을) 〜Summer Heartbreak〜>의 두 번째 수록곡) 쿠와타는 구선혜 한글보조작사가와 협업해 자이니치의 정취가 물씬 풍겨오는 푸근하고 기분 좋은 노랫말을 써 내렸다.

 

“우리 집에서 찌개안주에 와인. 김치의 맛 어머니의 사인. 멋지네!! 그런가!? 그립다!! 그렇지. 어쩐지 고향에 온 것 같아. 저고리의 소매 훌륭한 라인. 아버지는 동네야구의 나인(9명이 한 팀인 야구를 비유). 교포형님!! 왜!? 뭉클하잖아!? 그런가. 누구보다 멋진 인생이야”
<LOVE KOREA> 노랫말 중에서

 

쿠와타는 노래를 관통하는 찌개, 김치, 어머니, 저고리, 아버지, 교포 등의 단어를 최대한 우리말 발음에 가깝게 불렀다. ‘안녕하세요’와 ‘괜찮아요’라는 넉살 좋은 인사말도 등장한다. 한국에서도 LOVE KOREA(사랑해요 우리나라)를 제목과 주제로 삼은 노래가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실로 파격적이다. 일본인 쿠와타는 어떻게 이 노래를 발표하게 된 것일까?

 

쿠와타는 자이니치의 집성촌이 위치한 카나가와(神奈川)현 치가사키(茅ヶ崎)시에서 성장해 자이니치 이웃들과 한 데 어울려 살아왔다.(세간에서는 일본인으로 귀화한 자이니치라는 소문도 있지만 진위여부는 확실치 않다) 본인은 1995년에 노래 <LOVE KOREA> 발표 후 <WHAT’s IN?>이라는 음악정보지에서 “특히 의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최근 맛있는 한국요리 집을 찾았다. 그 인상을 담아낸 것뿐”이라고 밝혔다.

 

쿠와타는 노래를 선보이는 무대에서 자이니치가 운영하는 야키니쿠(불고기) 집과 분위기를 매우 구체적으로 재현했고, 이후에도 아리랑을 비롯해 통일의 염원을 담은 북한가요 <임진강>을 우리말로 부르는 등 우리민족에 대한 애정을 한껏 드러냈다. 그의 출신이 자이니치인지, 아니면 우리 동포와 살갑게 지내는 친한파 일본인인지는 알 수 없지만(쿠와타가 스스로 진실을 고백하지 않는 한 영영 알 수 없을 테고 논란은 지속될 것) 일본 음악계에서 명실 공히 가왕으로 인정받는 그의 따스한 시선이 자이니치를 향하고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쿠와타 역시 앞서 언급한 하세가와, 토쿄신문과 같이 제국 일본의 질서를 거스르려 한다. 자이니치의 문화를 노래로써 일본사회에 전달하는 한편, 공연 무대에서 군사대국화를 목표로 헌법 개정을 추진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에 대한 강력한 비판도 이어가고 있다. 아베 일본총리와 동시대를 살아온(아베는 54년생) 그가 무대에 아베와 박근혜의 가면을 쓴 아이들이 티격태격 다투는 장면을 넣는 등 ‘극우 타도’의 은유를 잔뜩 풍기는 퍼포먼스로 꾸미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자이니치의 삶에 공감하고 일본의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이 일본에는 있다. 방식이 다른 각각의 궤적은 아직 경천동지의 변화까지는 이끌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2017년 7월 28일 오사카(大阪) 지방재판소에서 일본 법정에서 역사적인 ‘조선학교 무상화 승소’ 판결을 가슴 속에 아로새겼다. 그러면서도 2017년 7월 19일 히로시마(広島) 지방재판소에서 ‘무상화 기각’ 판결이 나왔던 패배의 순간도 기억하고 있다.

 

승리와 패배가 교차하는 경험을 함께 하며 환호와 슬픔을 공감한 자이니치와 그를 응원하는 일본인들. 토쿄 지방재판소의 무상화 판결이 2017년 9월 13일로 다가온 가운데 제국 일본의 질서를 변화시키기 위한 뜻깊은 연대가 일본에서 점차 결실을 보고 있다. 그 한가운데에 자이니치가 있음을 각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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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18/06/23 [04:00]
조총련이나 재일한국인들은 좋게말해 난민들이지 나쁘게 말하면 불법체류자들
1---------------1
북한국적----한국국적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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