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산지석] 당원이 뭐길래?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8/07/01 [13:37]  최종편집: ⓒ 자주시보

 

제주도의 예멘 난민과 중국의 회족 

 

예멘 내전이 여러 해 지속되지만, 한국에서 예멘 난민이 화제로 된 건 최근의 일이다. 그 사람들의 정체부터 논란이 많으니 전쟁난민이다, 불법 취업자다 등 주장들이 팽팽히 대립하고 이슬람교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 나아가서는 강간 공포까지 겹쳐서 점점 복잡해진다. 

브로커들이 끼어든 난민장사라는 부정론 외에도 한국에서 쫓겨나면 갈 데가 없다는 불상한 사람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도 예전에 난민이었기에 지금 난민들을 도와야 한다 등 수용론과 동정론을 펴는 한국인들도 꽤나 되는 것 같다. 

근년에 중동에서 생겨난 난민들이 유럽에 가더라도 경제가 덜 발달한 동유럽, 중유럽은 외면하거나 동유럽, 중유럽을 거쳐서 서유럽행을 고집하는 사례들을 양산했고, 게다가 스마트폰으로 이동과정을 실시 공개한 사람들도 있었기에, 그 사람들이 정말 난민이냐는 쟁론이 상당히 치열했었다. 죽음의 위협을 피하는 부득이한 난민이 아니라. 경제적 이익을 위해 더 편한 곳으로 가서 살겠다는 사람들이 아니냐고 말이다. 중동의 난리는 미국과 유럽국가들이 만들어냈으니까 난민문제는 그런 나라들이 해결해야 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았다. 

예멘과 한국 사이에 나라들이 많고 이슬람교가 국교인 나라들도 있건만, 굳이 한국으로 가고 그것도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제주도를 이용한다는 건, 필자 같은 제3자의 눈으로 보기에도 어딘가 찜찜하다. 언론에 보도된 예멘 난민 가운데는 중국을 거쳐서 한국으로 갔다고 털어놓은 사람들도 있으니 돈벌기 의혹을 피하기 어렵겠다. 

일부 한국인들이 난민 거부이유로 이슬람교를 내걸면서 이슬람교의 한국 정착과 전파를 두려워했기에, 중국에서의 경우를 좀 생각해보았다. 

 

중국의 56개 민족 가운데는 다수가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민족이 여렷 있다. 그중에서 후이족(回族회족)은 모두 중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데, 물론 근년의 일이 아니라 수백 년 지어 천년 전에 옮겨온 사람들의 후손이다. 장사를 하러 왔다가 눌러 앉은 사람들 외에 전란이나 재앙을 피해 옮겨온 사람들도 상당했다고 알려졌다. 지금 개념으로는 난민인 것이다. 옛날의 국가와 영토 개념이 지금과 많이 다르기는 하다만 아무튼 그 사람들은 거부당하지 않고 상륙하여 살게 되었고 후이후이(回回회회), 후이민(回民회민) 등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리다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하나의 민족으로 인정되어 후이족으로 불리게 되었다. 

주의할 점은 민족으로 되기 전인 후이후이, 후이민 시기에 벌써 성명의 중국화 혹은 한화(汉化한화)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초기에는 모함메드 등 이름을 쓰던 사람들이 모두 한자성과 한자이름을 가졌으니 모함메드에서 나온 한자성만 해도 무(穆목), 마(马) 등이 있다 한다. 중동, 이슬람교와 연결되지 않은 성들도 많으므로, 누군가 유명해진 다음 한참 지나서야 어, 저 사람이 알고 보니 후이족이었네 하고 놀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청나라 때까지만 해도 옛날에 말하는 후이민 반란, 지금 말하는 후이민 기의 혹은 봉기들이 거듭 일어났고 지역의 정치경제판도는 물론 국제정치판도에도 영향을 끼쳤다. 또한 중화민국(1912~1949) 시기에는 청나라 때부터 내려온 후이족 군벌들이 일부 지역을 할거하고 엄혹한 통치를 진행했으니 역사에서 흔히 “마쟈쥔(马家军마가군)”이라고 불리는 마씨 군벌들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은 민족자치정책을 실시하면서 전에 없는 대융합을 이루었다고 자부하고, 후이족도 “중화대가정의 한 성원”으로 되었다고 인정한다. 후이족이나 이슬람교를 주로 믿는 다른 민족들에 대해, 신앙과 풍속을 존중하는 외에 개별 성원들의 세속화를 반대하지 않는 것도 중국의 특색이다. 하여 후이족이기는 하지만 이슬람교를 믿지 않고 그 복잡한 계률은 물론 이슬람교에서 유래한 풍속들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이는 이슬람교를 일단 믿기만 하면 탈퇴하는 민족이 없다는 설과는 다르다. 

이슬람교가 중국에서 일정한 자리를 차지했으나 주류 종교로 되지 못했고, 중동 출신 사람들이 한자 성을 쓰면서 상당부분 세속화된 건 세계적으로 비교적 특수한 예인데, 중국의 땅덩어리, 문화환경 등과 갈라놓을 수 없다. 그런 중국도 요즘에는 합법적 혹은 불법적으로 체류하는 흑인들에 골치를 앓고 백성들이 경계심 지어는 적개심을 드러낸다. 특히 남방 광둥성(广东省광동성) 소재지 광저우시(广州市광주시)에는 수십 만 흑인들이 거주한다고 알려져 엔간한 소수민족 인구보다 더 많은 수자다, 무역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불법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중국인들과의 통혼으로 수많은 후유증들이 생겨난다, 정부가 흑인들에게 초국민대우를 해주는 게 잘못이다..... 별별 반향이 다 나오고 인종비하 발언들도 종종 나온다. 

이러한 역사와 현실에 비춰볼 때, 한국이 그 크기, 종교 구도, 문화 분위기 등으로 예멘이나 중동의 다른 나라들에서 밀려온 난민들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겠느냐에 대해 의문이 든다. 타종교, 타민족 난민 수용역사가 오랜 유럽국가들도 여러 모로 골치를 앓는 판이거늘, 한국이 난민문제의 해결자로 나설 수 있을까? 아무리 심사를 엄격히 한다더라도 물꼬를 일단 틀어 소문이 쫙 퍼지면 막기 어려운 게 난민 홍수인데... 

 

메카 순례 때문에 당적이 박탈된 사람 

 

6월 27일 닝샤(宁夏영하) 후이족자치구의 한 공산당원이 당적을 박탈당했다는 기사가 나와 여러 언론에 실렸고 SNS에서도 퍼졌다. 보도에 의하면 자치구 하이위안현(海原县해원현) 치잉진(七营镇칠영진) 마바오촌(马堡村마보촌)의 공산당원 마팅커(马廷科마정과)가 2015년에 공산당원 신분을 속이고 8월 30일부터 10월 11일까지 이슬람교도들의 메카 순례 (중국어로 차오진朝觐) 활동에 참가했다. 그가 당의 정치기율과 정치규칙을 위반하여 악렬한 영향을 끼쳤으므로, 금년 5월 18일 하이위안현 기율검사위원회에 의해 당적이 박탈되었다는 것이다. 

필자가 본 범위 내에서 이 사건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향은 놀라울 지경으로 지지 일변도였다. 입당했으면 종교를 믿지 말아야지, 공산당원은 무신론자이므로 종교를 믿으면 배신이다, 잘했다, 당에 남겨두었자 지뢰로 될 걸, 왜 3년이나 걸려서 발견했는지 모르겠다, 중동 나라 꼴을 보면 저런 짓을 놔두다가 어떻게 될 지 알린다.... 

당적이 박탈되면 어떤 손실이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한 사람도 있었는데, 장사나 하고 기업이나 운영하겠다면 공산당 참가여부가 큰 상관없다. 더욱이 경제가 발달하지 않은 닝샤의 작은 시골마을에 사는 사람이 당에서 쫓겨난다 해서 잃을 건 별로 없다. 허나 당적박탈은 중국공산당이 굉장히 중시하는 처벌이고 고관의 처벌에서도 항상 당적박탈이 직무박탈과 형사처벌보다 앞선다. 퇴역, 퇴직하여 얼핏 보면 잃을 게 없을 것 같은 당원들도 공산당의 일부 정책을 욕하거나 아예 당의 존재자체를 비난하면서도 스스로 출당신청을 하는 경우가 지극히 드물고, 또한 사회적으로도 누가 공산당원 적을 박탈당했다면 깔보는 분위기니, 외국인들에게는 해석하기 무척 어려운 현상이다. 

3년 전의 일을 금년 5월 중순에 처벌했는데, 6월 말에 하이위안현이 속한 지구급(자치주와 동급임)시 중웨이시(中卫市중위시) 기율검사위원회가 통보를 발표하여 널리 알리면서, 개별적인 공산당원들이 이상과 신념을 잃고 규범에 어긋나는 행위를 한다고 지적한 데는 원인이 있다. 7월 1일이 중국공산당 탄생 97돌 기념일이므로 당의 생일에 즈음하여 경고를 때린 것이다. 

 

시진핑의 편지 한 통 

 

한편 신화통신이 26일 시진핑(습근평) 총서기가 전날 쓴 편지를 보도한 것도 당의 생일을 맞는 분위기 작업의 일환으로 보아야겠다. 

“시진핑이 새로 입당한 영화표연예술가 뉴번에게 보내는 편지(习近平给新近入党的电影表演艺术家牛犇的信)”라고 알려진 편지에서 시진핑 총서기는 상대방이 80고령에 공산당에 가입하여 숙원을 이룬 소식을 알게 되어 기쁘다고 시작고는, 수십 년 동안 당원 기준으로 자신을 재면서 인민을 위해 창작하여 생명력과 감염력이 강한 수많은 예술형상을 창조하여 인민의 높은 평가를 받았음을 돌이킨 다음 당원의 선봉모범작용(先锋模范作用전위적 본보기 역할)을 발휘하여 계속 예술과 사람됨에서 본보기로 되어 보다 많은 문예일꾼들이 신앙과 정취와 담당이 있는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주고, 사회주의 문예를 번영발전시키기 위해 힘을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지난 3월 말 김정은 조선(북한) 국무위원장의 첫 중국방문이 공개보도된 후, 일부 한국 언론들이 두 정상의 용어를 꼬투리 잡으면서 황당한 주장을 퍼뜨리기에 필자는 정문일침 433편 “시진핑이 “너”로 “형님, 동생 관계”를 확실히 부각했다고?“(http://www.jajusibo.com/sub_read.html?uid=38651&section=sc51&section2=)로 반박한 적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사용한 ”니(你)“를 단순히 우리 말의 ”너“라고 옮기거나 이해할 수 없음을 여러 가지 실례를 들어서 밝혔는데, 이번 편지로 사례가 하나 늘어났다. 

 

▲ 80대에 중국공산당원으로 된 노배우 뉴번     © 자주시보,중국시민

  

뉴번(牛犇)은 1935년 생으로서 1953년생인 시진핑보다 18살 이상이다. 그런데 시진핑 총서기는 “뉴번동지(牛犇同志)”라는 호칭 뒤에 “니하오(你好안녕하십니까”에서부터 시작하여 마지막까지 “니(你)”자를 5번이나 썼다. 한국 일부 언론들의 해석방식으로는 시진핑이 “너”로 뉴번과의 형님, 동생관계를 확인했을까? 말도 안되는 소리다. 

예전에 마오쩌둥(모택동) 주석이나 다른 영도자들의 편지에서 나왔던 “니(你)”와 마찬가지로 시진핑의 편지도 이 경우에는 “모두 ”당신“이라고 옮겨야 원뜻에 어울린다. 

근 1억 당원을 거느린 당의 총서기가 말단 예비당원에게 편지를 보내는 건 아주 특이한 사례라 중국에서는 여러 가지 추측들이 많이 나왔다. 총서기가 신앙 있는 노배우를 칭찬했으니 문예계에서 신앙 없고 도덕이 없는 사람들에게 경고한 셈이라고, 이제는 문예계를 정식 손보려는 조짐이라고 해석하는 등이다. 단 뉴번의 입당에 대해서는 필자가 훑어본 여러 기사에 달린 댓글들은 축하가 많았다. 이 역시 중국 인터넷, 모바일 환경에서는 상당히 보기 드문 일치현상이다. 왜 그렇게 됐을까? 뉴번이란 배우의 이미지 덕분이다. 

 

83세 고령으로 중국공산당에 입당한 노배우 

 

국민당 통치 시기인 1935년에 톈진시(天津市천진시)에서 태어나 일제 강점기인 1941년에 부모를 잃은 뉴번은 베이핑(北平북평, 지금의 북경)의 한 영화촬영소에서 운전수로 일하던 형님을 따라 살면서 배우들과 어울리다나니, 1945년 광복 후 11살 때 아역배우가 될 기회가 생겨 영화계에 들어섰다. 70년 연기인생에서 주역을 맡은 적은 한 번도 없고 항상 단역만 맡았으나 개성적이고 특색 있는 연기로 몇 세대 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중화인민공화국 건립 전야 홍콩에서 영화를 찍으면서 좌익선배들을 통해 공산당과 공산당의 주장을 조금 알게 됐던 소년 뉴번은 17살 나던 1952년 상하이영화제작소(上海电影制片厂)로 가서 배우생활을 하면서부터 당을 따라 혁명을 해야 한다는 도리를 인정했다 한다. 

우수한 선배배우들이 모두 당원이었고 자신이 그들에 미치지 못한다고 여겨져 입당신청을 미뤄왔던 뉴번은 후에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들과 본보기로 되지 못할 당원들을 접하면서 입당결심을 내리지 못했다. 한때는 좋은 사람, 좋은 배우로 되기만 하면 충분하다고 여겼던 그가 생각을 바꾼 계기는 2016년에 만들어졌다. 그가 속한 상하이영화그룹(上影集团)이 상하이의 이름난 법관이었다가 심장병으로 급사한 저우비화(邹碧华추벽화, 1967~ 2014)를 다룬 영화 《저우비화》를 촬영했는데, 뉴번은 민원을 넣으러 법원에 찾아간 노인 역을 맡았다. 제작팀이 우수당원 저우비화의 사적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이 생전에 한 말을 발견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워낙 완미하지 않다. 허나 바로 그가 완미하지 않기에 우리는 노력하고 분투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우리의 존재가 가치를 갖는다.(我们生活的世界本来就不完美,但正因为它的不完美,才需要我们去努力、去奋斗,我们的存在才有价值。)” 

 

81살의 뉴번은 그 말을 듣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촬영결속을 축하할 때 뉴번은 촬영조의 임시당지부(临时党支部)에 입당신청서를 바쳤고, 재빨리 입당열성분자(入党积极分子)로 확정되어 많은 젊은 영화인들과 함께 상하이영화그룹의 입당열성분자 양성활동에 참가했다. 

중국공산당의 규정에 의하면 입당하려는 사람은 입당소개인(入党介绍人) 2명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 조선노동당에서 입당보증인이라고 부른다는 존재와 비슷한 개념이다. 선배당원으로서 새 당원을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뉴번의 두 입당소개인은 상하이영화그룹 당위원회 서기 런중룬(任仲伦임중륜)과 유명한 노배우 친이(秦怡진이, 1922~)였다. 중국에서는 단순한 배우의 경지를 벗어난 예술인들을 예술가라고 부르니 친이에게는 “저명한 표연예술가(著名表演艺术家)”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 노배우 친이     © 자주시보,중국시민

 

1930년대 중국 “영화계의 황제(影帝)”로 선출되었던 김염(金焰, 1910~ 1983)의 부인이다. 

 

▲ 중년 김염의 일가     © 자주시보,중국시민

 

이분은 우리 민족의 걸출한 배우로서 그 덕에 한국에서도 꽤나 소개되었는데 그녀의 공산당원 신분은 별로 거들어지지 않은 것으로 안다. 사실 친이는 1941년에 혁명에 참가했고 1959년에 입당한 공산당원이라 한국식으로 말하면 “골수 빨갱이”다. 

30여 년 전 남편과 사별했고 정신질환이 있는 아들 김첩(金捷, 1948~2007)을 수십 년 거둬주다가 2007년에 떠나보낸 뒤 홀로 살아오던 친이는 96살 고령이었으나 후배 배우 뉴번의 입당신청소식을 듣고 기꺼이 소개인으로 돼주었다. 

▲ 친이가 뉴번의 입당소개인으로 되면서 당조직에 보낸 글     © 자주시보,중국시민

 

“뉴번은 좋은 동지입니다. 저는 기꺼이 그의 입당소개인으로 되겠습니다. 저는 그가 아주 잘 하리리고 믿습니다.(牛犇是个好同志,我愿意做他的入党介绍人,我相信他会做得很好。)” 

 

근 2년 동안 당 조직의 양성, 소개인들의 추천과 인도, 조직의 엄격한 고찰을 거쳐 당원자격을 갖췄다고 인정받은 뉴번은 2018년 5월 31일에 예비당원으로 되었고 6월의 어느 날에 입당선서의식에 참가했다. 

 

▲ 뉴번과 중청년 신당원들의 입당맹세     © 자주시보,중국시민

 

▲ 뉴번에게 당의 휘장(党徽)를 달아주는 소속 당지부의 최연소 당원.     © 자주시보,중국시민

 

배우생애 72년에 영화촬영을 앞두고 긴장한 적 없었던 뉴번은 입당선서의식 전날 밤에 그만 잠을 이루지 못했으니 그에게는 중국공산당 예비당원이 되는 게 일생의 최대 행운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미 여든 몇 살이다. 당을 위해 일할 시간은 잠을 자지 않더라도 별로 길지 않으니 반드시 아껴야 한다. 공산당을 따라야만 자신의 유한한 생명을 보다 의의 있게 살 수 있다. 나는 또한 내 나이가 적지 않으나 당에 대한 인식은 아직 아주 적음을 잘 알고 있다. 나는 살아있는 동안 당의 영화사업을 위하여 또 중국공산당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고 싶고, 최종적으로 공산주의사업을 위해 평생 분투하는 사람으로 되겠다.(我已经80多岁了,为党工作的时间,就算不睡觉也不会太长,所以一定要珍惜。只有跟着共产党,才能把自己有限的生命活得更加有意义。我也深知,自己虽然年纪不小,但对党的认识还很少。在我有生之年,愿为党的电影事业,也为中国共产党努力地工作,最终成为为共产主义事业奋斗终生的人。)”

 

뉴번의 말이다. 입당선서의식에서 뉴번은 무척 흥분되어 단상과 단하의 당원들에게 말했다. 

 

“나는 드디어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게 되었소. ‘나는 당신들의 동지”라고!(‘我终于可以骄傲地说,‘我是你们的同志了’!)” 

 

뉴번의 선택, 뉴번의 인식, 뉴번의 흥분을 외국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가슴에 당의 휘장을 단 83살 신입당원 뉴번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96살 노당원 친이를 찾아간 동영상이 인터넷에서 떠돌아 숱한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것 또한 외국인들에게 설명하자면 무척 어렵다. 

 

당원이 뭐길래? 

 

26일 오후 뜻밖에 시진핑 총서기의 격려편지를 받은 뉴번은 기쁘고도 압력을 느낀다면서 계속 노력하여 “인민을 위한 창작”을 인생의 추구목표로 삼겠다고 언론에 표시했다. 

영화계에서 여러 가지 상들을 받았고 특히 2017년 9월 16일 제31기 중국영화 진지쟝(第(中国电影金鸡奖중국영화금계상)에서 종신성취상(终身成就奖평생성과상)을 받아 배우로서는 더 바랄 게 없는 뉴번이 기어이 중국공산당에 가입한 건 뭔가 더 얻으려는 계산 때문이 아니다. 

예전부터 중국공산당원이란 남보다 더 가혹한 시련과 더 많은 기여를 의미해왔다. 친이는 혁명참가부터 입당까지의 18년 공백을 설명한 적 있다. 전쟁시기 한 여당원이 체포되었는데 적들은 그녀의 아이 등에 총검을 바싹 들이대고 그녀에게 자백을 강요했다. 아이가 엉엉 울고 여당원은 가슴 아파 까무러쳤었으나 역시 당의 비밀을 고수했다. 입당권유를 여러 번 받은 친이는 줄곧 스스로 물어보았다. 

 

“나는 그처럼 아이를 사랑하는데, 만약 내가 그런 경우에 부딪치면 당의 비밀을 지켜낼 수 있을까? 모두들 공산당원은 툭수한 재료로 만들어졌다고 말하는데, 나는 그런 사람일까?(我那么爱孩子,如果换我,我能保守党的秘密吗?都说共产党员是用特殊材料做成的,我是吗?)” 

 

그런 잔혹한 고비가 사라진 평화시기에 이르러서야 친이는 그런 물음에서 벗어났는데 평화시기에는 시련이 없겠느냐고 자신에게 물으면서 자신감을 얻을 때까지 입당을 미뤘다는 것이다. 

전쟁시기 홍군, 팔로군, 신사군, 민주연군, 해방군, 지원군 등등 이름으로 불렸던 중국공산당의 부대들은 당원비례수를 중요한 지표로 삼았다. 관병의 20%가 당원이면 그 부대는 공격도 방어도 문제없고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하더라도 흩어지지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게 통설이었다. 수많은 불가사의한 전투승리는 모범적으로 나선 공산당원들의 언행과 갈라놓을 수 없다. 

전쟁 시기 부대가 위험에 부딪치면 수장은 “공산당원은 앞에 나서라!” 명령했다시피, 평화시기에도 산불, 홍수, 지진 등 재난 구조에서 공산당원들이 앞장서는 건 기본으로 되었다. 비상사태가 아니라 평소에도 어느 상점에 당원표식이 있거나 은행의 접수창구, 버스의 앞머리에 당원표식이 붙어있으면 성실하고 우수한 봉사를 받을 수 있다는 판단으로 마음이 편해지는 게 현실이다. 택시에 탔을 때 운전사 개인정보 카드 곁에 공산당원 표식이 있으면 바가지를 쓸 염려가 없다는 안도감이 드는 것 또한 현실이다. 

 

현재 부정부패로 패가망신한 당원들이 상당히 많고 자격미달자들이 입당하는 현상들도 엄연히 존재하지만, 한편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진지하게 입당하여 엄청 높은 기준을 잣대로 살아가는 당원들도 많다. 때문에 근년에 만들어진 선전동영상에서 제일 먼저 일하고 제일 늦게 퇴근하고 제일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들이 바로 중공당원이라는 대사가 많은 사람들의 “좋아요”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당원수가 1억에 가까운 중국공산당에 진짜배기 당원이 10%만 있더라도 근 천만이고 엄청난 힘이다. 게다가 사진에도 나오다시피 젊은 피들이 계속 들어가기에 생기와 활력도 보장된다. 

중공의 몰락을 예언하는 사람들이 여러 나라에 적잖은데, 몰락 예언이 80여 년 그치지 않았음을 고려하고 중공의 현실을 살펴보면 예언자들보다 중공이 더 오래가리라는 결론이 나온다. 

누군가 이름을 날리면 여러 당에서 모셔가려 경쟁하고, 당에서 조금만 마찰이 생기면 탈당계를 던지며, 분당과 재창당이 관습으로 된 한국식 정당들이 좀이나마 참고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 한국에서 백년 정당을 바라기는 어렵다만 이름을 20년 쯤 유지한 정당이라도 나오는 때 정당의 성숙도를 논할 수 있지 않을까? 

 

첨부자료: 시진핑 총서기가 노배우 뉴번에게 보낸 편지 원문 

 

  牛犇同志:

  你好!得知你在耄耋之年加入了中国共产党,实现了自己的夙愿,我为此感到高兴。

  你把党当作母亲,把入党当成神圣的事情,60多年矢志不渝追求进步,决心一辈子跟党走,这份执着的坚守令人感动。

  几十年来,你以党员标准要求自己,把为人民创作作为人生追求,坚持社会效益至上,塑造了许多富有生命力、感染力的艺术形象,受到人民群众高度评价和充分肯定。希望你发挥好党员,继续在从艺做人上作表率,带动更多文艺工作者做有信仰、有情怀、有担当的人,为繁荣发展社会主义文艺贡献力量。

  顺祝身体健康、生活幸福!

 

  习近平

  2018年6月25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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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18/07/02 [03:11]
한국에 중국의 공산당 같은 당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살 수 없을 것이다. 매일 10만 이상이 모여서 당을 해체하라는 데모가 끊임없이 일어날테니. 그런 당은 박정희시대때 한번 겪었으면 족하다. 수정 삭제
동안 18/07/02 [18:25]
1.일본 : 메이지유신때 정권을 잡은 집단들이 패전후에 자민당이라는 명패를 내걸어 재집권하고, 1990년대 자민당에서 파생해 나간 민주당에 잠시 정권을 내주었다가(그놈이 그놈), 다시 집군해서 오늘에 이름. 약 120-130년간 집권 = 독재 그 이상 2.중국 : 1949년 건국이래, 다른 정당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공산당 일당독재 실시 중 당원은 일당독재하는 그 공산당에 충성맹세를 하는 것. 거리마다 "민주"라는 표어는 붙어 있으나 기본적인 선거하나 없는, 공산당 독재의 나라. 무엇이 그리 영광이라 당원이 되려할까. 첫째는 뭐니뭐니해도 출세이리라. 중국의 누가 그것을 부정하랴.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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